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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koinedata.tistory.com/1653 [코이네자료실:티스토리]
따라오려거든
예배일자 : 2024-04-07
[목회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 주신 큰 사랑에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많지만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게 하심 믿고 예배하며 감사드립니다.
부활주일 지난 이후 늘 부활의 삶을 기억하게 하시고, 늘 십자가의 길에서 부활이 있음을 묵상하게 하옵소서.
우리들 모두 주님의 사랑과 희생과 섬김의 길을 따라 사는 제자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간 예배하는 이들 모두 부활의 삶을 살아갈수 있게 은혜 베풀어 주시고 은혜 충만케하옵소서.
우리들 모두에게 십자가를 능히 지고 부활의 갈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말씀을 전하고 듣습니다. 굳은 마음은 부드럽게 바꿔주시고, 열매 맺기에 방해되는 걸림돌은 제거하시어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외쳤던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왕이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게 아니었습니다.
왕의 자리를 얻기 위함도 아니었고, 로마의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루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향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받게 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 8:31)
예수님이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막 8:32) 했습니다.
그냥 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아끼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판단으로 ‘그럴 수 없고, 그래선 안된다’는 뜻으로 항의하며 예수님을 말렸던 것입니다.
(새번역, 쉬운성경 참조)
그때 베드로는 ‘자기 의(義), 자기 기준’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거나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큰소리 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막 8:33)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려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까지 하시면서 물러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고(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는 비결입니다.
저는 성경의 이 장면이 / 그때 베드로의 행동이 그 당시‘보통 사람의 행동’이 아닐까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베드로가 아쉽기는 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예수님과 같이 있었는데 … 어떻게 그렇게 예수님의 마음을 몰랐을까요?
그런데 사람이 같이 오래 있었더라도 같은 마음을 품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 집에서 오랜 기간 같이 산‘남편/아내’… 잘 맞나요?
결혼한 지 오래 된 분들 여전히 깨가 쏟아지나요? 잘 맞아서 살고 계시나요?
어떤 분이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남편은 정말‘로또’같아!”
그 아내가 한 말의 뜻은 “로또처럼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작년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신문에 난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외식을 하며 집에 가면서 로또를 사기로 하고, 번호 6개를 미리 골라 두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아내는 볼일 보러 다른 곳으로 가야 해서 남편에게 ‘집에 들어가는 길에 로또를 사라’고 했습니다.
며칠이 흘러 아내가 당첨 번호를 찾아보니 … 1등 당첨 번호가 외식하면서 골라 둔 번호랑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로또 사기로 한 것 어떻게 했어?”
그랬더니 남편이 “차에서 내리기 귀찮아서 안 사고 그냥 왔어. 이번 주에 다시 사자!”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고, 재차 확인했습니다.
“진짜 안 산 거 맞아? 사놓고 안 샀다고 하는 거 아냐? 지난번에 고른 그 번호가 1등이래!”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서 있었고, 아내는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앞으로 남편이 30년 간 설거지를 해야 한다, 내가 다 울화통이 터진다, 그게 인생이다”같은 반응을 보였답니다.
<2023.06.30. 동아일보 기사 참조>
부부로 20년, 30년을 같이 살아도 같은 마음이 되기 어렵습니다.
저 43년, 햇수로 44년 같은 마음일까요? 제 아내에게 물어보세요.
<나와 같은 생각,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잘 맞는다고 생각되면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참는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축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가 베드로였다면 예수님과 동행했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다면 베드로처럼 하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도왔을까요?
저도 목회에 연륜이 쌓이다 보니 … 제가 가르쳤던 제자들이나 후배들이 제게 조언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우리 교회 이런 일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제가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본문 마가복음 8장 27~34절에 나오는 ‘베드로’ 같은 성도들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 자신의 말과 행동이 100%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판단하고, 하나님인 것처럼 말하고,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열을 냅니다. 본문의 ‘베드로’ 같은 사람들이 교회를 시끄럽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라고 하시며 조건을 달았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같아지기를 원한다면 … 주님의 발걸음을 따르려면 …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더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義)가 강합니다.
‘항변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사람의 일’이요, ‘사탄의 마음’에 합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고, 죄값을 치루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 살려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실 십자가는 저주와 수치의 상징입니다.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험한 십자가”(찬150장), “그 참혹한 십자가”(찬269장)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 (고전 1:18)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예수 믿는 성도들은 십자가를 말하고, 십자가를 찬양하며, 십자가를 곁에 둡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액세서리로 귀에 걸거나 목에 걸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 …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물과 피를 쏟아내야 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일입니다.
그것을 아셨던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 했습니다.
하나님 십자가를 내가 안지면 안되겠습니까? 꼭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까?
하나님 안 할 수 있다면 …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고통을 아셨기에
“…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라는 말씀처럼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은 확신을 가지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기도 하고 목숨을 아까워하지도 않고
기꺼이 자기 목숨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값을 치르기 위해 한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의를 위해서 죽어간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중요한 일이다’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사람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듭니다.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그‘의미’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살고 계십니까?
무엇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십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 천국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라면
복음이어야 합니다. 십자가여야 하고 영혼 구원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삶을 불태워 던질 만큼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선교지로 달려간 사람들이 선교사들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저 학생 참 똑똑하다. 어떻게 저렇게 영어를 잘하나?
어떻게 저렇게 머리가 좋은가?’라고 생각했던 학생들 대부분이 선교사로 갔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파송한 김광희 선교사도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했고, 석사학위도 받았습니다.
호주에 유학도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되겠다고 신학대학원에 다시 들어가서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모잠비크로 갔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아프리카에 갔을 때 부부를 앉혀 놓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내가 너희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
그랬더니 ‘싫어요 여기서 살겠습니다. 여기서 선교사로 살겠습니다.’
설교 시간에 그냥 듣지 말고 여러분의 외아들이 그렇게 말을 했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김광희 선교사 외아들입니다. 아이들 셋이 있는데 교육할 환경이 안되니 엄마가 가르치고 있답니다.
그래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귀하기 때문에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 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중심이며,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하며 십자가를 앞세웠습니다.
우리는 오늘 종려주일을 시작으로 고난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짐이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감히 죄 값을 치르기 위한 십자가 … 우린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고 견디고
내가 신앙 생활하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일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 가정에서 크리스천으로서 /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 혹은 자녀로서 … 예수 믿기 때문에 /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례 받고 집사, 권사, 장로 되었기 때문에 가정에서 참아야 될 일이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합니까? 그렇다면 누군가 참고 산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자신을 내려놓고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 일터에서도 져야 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정도를 가는 것 …
편법과 술수로 가득한 세상에서 청결하게 사는 것 …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걷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 교회에서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속회, 선교회 등 … 모임이 잘 되기 위해서는 견디고 참아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지역장, 교사 등 … 봉사하며 시간 쓰고 돈 쓰고 에너지도 써야 합니다.
찬양대원, 주차위원, 안내위원, 새가족 영접위원, 방송실 봉사자 등으로 봉사하다 보면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안 좋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를 위해 땀 흘려 번 돈을 드리는 것 …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살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 …
모두 예수 믿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 내가 맡은 직분 때문에 때로는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들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기 때문에 … 예수님 때문에 겪어야 하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합니다.
한 번이야 누군 못합니까. 지속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고,
물질적인 손해도 보고 때로는 상대하기 싫은 사람도 상대해 가면서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 … 힘든 일입니다.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예수님처럼 …
“…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라고 기도하며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내 원대로 좀 되게 해주세요. 내가 원하는 게 이거예요. 내 원대로 되게 해주세요.’
아버지의 원하심,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뜻에 관심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되고 기분 나쁘면 ‘때려치우지 뭐. 안해’라는 소리 하는 겁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고난주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에 승리한다는 자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승리하기 위해서 애쓰고 승리하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처럼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며
감당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에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신, 사람의 몸으로 오신 그리고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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