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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팔공산
2024년 05월 12일(일요일)
산행코스 : 팔공산케이블카 - 신림봉(09:15) - 낙타봉(10:15) - 비로봉(11:30) - 하늘정원(11:50) - 비로봉(12:15) - 동봉(12:40) - 염불암(13:45) - 동화사(14:30) - 동화집단지구(15:45)
산행거리 : 13.6km
팔공산케이블카를 타기 위하여 갑니다.
팔공산 케이블카
팔공산케이블카 정상에 있는 신림봉 정상석
신림봉 정상
동봉 2.2km, 염불암 1.5km, 정자 35m, 동화사 2.0km, 동화집단시설지구 1.3km
동봉 2.0km, 케이블카 0.2km
낙타봉 0.1km, 동봉 1.8km, 케이블카 정상 0.5km, 동화사 시설지구 1.8km
낙타봉
케이블카 정상 0.6km, 철탑삼거리 0.9km, 동봉 1.7km
낙타봉
낙타봉에서 바라본 신림봉 방향 파노라마
저멀리 관봉이
당겨본 관봉과 팔공골프장
신림봉
낙타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염불암 사거리
케이블카 1.4km, 동화사 2.6km, 염불암 0.7km, 비로봉 0.9km, 동봉 0.8km, 수태골주차장 2.7km
동봉 0.3km, 수태골주차장 3.2km, 동화사 3.5km, 비로봉 0.4km, 서봉 0.8km
비로봉 갈림길
서봉 700m, 동봉 400m, 비로봉 300m
비로봉 0.23km, 서봉 0.84km, 동봉 0.31km
서봉 0.79km, 동봉 0.4km, 하늘정원 1.1km
저멀리 서봉이
한티재 7.7km, 파계봉 4.55km, 동봉 0.5km, 팔공산 하늘정원 1.05km
비로봉
하늘정원 갈림길
비로봉 0.03km, 팔공산 하늘정원 1.02km
비로봉에서 하늘정원으로 가는 길
하늘정원
비로봉 1.05km, 동봉 1.48km, 서봉 1.81km, 동산계곡 7.31km, 군위삼존석굴 9.91km
하늘정원 전망대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비로봉 방향 파노라마
팔공산 비로봉
청운대
뒤돌아본 하늘정원
다시 돌아온 하늘정원 갈림길
뒤돌아본 청운대와 하늘정원
좌측 낙타봉
동봉 갈림길
가야할 동봉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과 동봉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이 불상은 서쪽을 향해 바로 세운 전체 높이 6m의 거대한 약사여래입상입니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불상도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정면을 향한 입상은 상투 모양의 육계를 갖추고 두 볼은 풍만하며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바로 선 발 끝은 드러나 있고 발가락 조각도 뚜렷합니다. 옷은 두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입고 치마를 걸쳤습니다. 오른 손은 무릎 위로 늘어뜨려 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가슴 위에 올려 물건을 받치고 있습니다.
옷의 새김은 투박하고 전체 균형도 고르지 못하나 대체로 조화를 이룹니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표면은 많이 풍화되었습니다. 이 불상에는 손과 발의 기형적 조각 수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잘 조화되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육계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상투모양으로 .두드러진 혹 같은 모습
뒤돌아본 비로봉
동봉
서봉 1.1km, 파계재 6.1km, 한티재 8.3km, 갓바위 7.3km, 도마재(신령재) 2.7km
동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방향 파노라마
서봉
좌측 서봉
비로봉
동봉에서 바라본 관봉 방향 파노라마
치산계곡 방향
저멀리 관봉이
동봉(미타봉)
동화사 방향
수태골주차장 3.2km, 동화사 3.5km, 동봉 0.3km, 비로봉 0.4km
염불암 사거리
염불암
염불암 청석탑(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흑색점판암으로 만든 탑으로 이 탑은 화강암인 바닥돌 외에는 모두 점판암을 사용했습니다.
팁의 몸돌은 없어졌고 10층의 지붕돌만 포개진 채로 남아 있습니다. 하부 3층과 상부 1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파손이 심해 각 층마다 빗물받이면에 돌을 괴어 지붕돌받침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지붕의 두께의 얇고 물이 떨어지는 면은 평평하며 네 귀퉁이가 위로 솟아 있어 대단히 경쾌한 느낌을 줍니다.
지붕돌의 체감율은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넓은 바닥돌 위에 놓인 작은 탑이기 때문에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염불암 극락전
극락전(極樂殿) 편액
극락전 내부에는 삼존좌상인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특히 삼존좌상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1841년 작품으로 모시바탕에 채색된 관경변상도입니다.
관경변상도는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극락의 세계를 표현하였는데, 그림의 중앙에 극락의 연못이 있고 상단에는 연화좌에 앉아서 법회를 열고 있는 삼존좌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영불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
동화사 염불암 안에 있는 큰 바위의 서면과 남면에새겨진 불상으로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하셨습니다.
서면의 여래좌상은 아미타불로 네모난 얼굴에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습니다, 연꽃이 새겨진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데 대좌으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습니다,
남면의 보살좌상은 관음보살로 추정되는데 머리에 부채꼴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있습니다. 옷은 상의와 하의를 걸치는 일반적인 보살과는 달리 왼쪽 어깨를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방식으로 입고 있습니다. 두 손목에는 꽃잎이 새겨진 팔찌를 끼고 있으며 무릎 위에 얹은 왼손은 관음보살의 특징인 긴 연꽃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남면의 보살좌상
서면의 여래좌상
석주문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라고 쓰여진 돌기둥이 있습니다.
'이 문에 들어올 때에는 지해(知解)를 두지 말어라’라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무해공기(無解空器) 알음알이 없는 빈 그릇이라야
대도성만(大道成滿) 크나 큰 도를 가득 이루리라.
동봉 2.8km, 염불암 0.7km, 동화집단시설지구 1.5km, 동화사 1.2km
동화사 부도암 부도(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것입니다. 이 부도는 바닥돌과 몸돌, 지붕돌을 갖춘 팔각원당형으로 크기가 작습니다. 팔각원당형(八角願堂形)의 부도 양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한 것입니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 부재석의 구성이 단조롭고 지붕돌의 모서리가 없어졌으며, 그 모습이 투박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도암
수선당(修禪堂)
스님들의 선방인 수선당
수선당 편액
부도암 관음전
관세음보살살과 신중탱
관세음보살
동화사 설법전
설법전(說法殿) 편액
봉서루
봉서루는 "봉황이 깃든 누각"이란 뜻으로 동화사를 대표하는 누각입니다.
현재는 주로 제사나 재를 지내는 장소로 사용됩니다.
봉서루( 鳳棲樓) 편액
봉서루 편액의 글씨는 단아한 해서체로, 쾌선(快善) 유기성(柳箕城 1693~1764) 스님입니다.
동화사 대웅전(보물 제1563호)
지금의 대웅전은 영조 3년(1727) 에서 영조 8년(1732)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절의 가장 중심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대웅전의 기둥과 기둥사이에 지붕을 받치는 여러 개의 포가 놓인 다포식 건축입니다. 내부 불단 위에는 삼세불상(三世佛像)인 석가모니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를 봉안하였습니다.그리고 그 위로는 닫집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특히 주목 할 수 있는 것은 대웅전 정면의 문짝에 새겨진 꽃살문으로 이는 부처님께 꽃을 공양한다는 불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가공하지 않고 아름드리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하여 시각적으로 자연미와 함께 건물의 안정감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건물로써 기둥은 자연곡재를 사용하였고 조각이 매우 장식적인 조선 후기의 시대적 수법을 잘 지니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편액 글씨는 단아한 해서체이다. 글씨를 쓴 분은 쾌선(快善) 유기성(柳箕城 1693~1764) 스님입니다.
스님은 칠곡 출생으로 팔공산 송림사에서 득도하였고 글씨에 능통하였습니다.
봉황문의 일주문 글씨도 스님의 글씨입니다.
대웅전 측면
대웅전 내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좌, 우에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을 모시고 있습니다.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2호)
고종33년(1896) 화승 진철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전체적으로 원색을 사용하였으며 본존과 보살상은 가는 먹선으로 윤곽선만을 표현한 반면 십대제자와 신장상들의 얼굴은 음영처를 하였으며, 보살상의 보관과 사천왕상의 지물 일부에는 금박을 이용하여 사실적인 표현을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조사전
조사전(祖師殿) 편액
조사전은 동화사를 거쳐간 역대 고승의 영정을 모셔둔 곳입니다.
조사전에는 초창주로 알려진 극달화상과 보조국사, 사명대사, 세장, 두여, 의첨, 지화, 총륜,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 등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칠성각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전각입니다.
칠성은 수명장수신으로 가람 수호신의 기는도 가지고 있습니다.
칠성각(七星閣) 편액
편액의 글씨는 “임자년(壬子年) 가을에 시산(詩山)이 썼다”고 새겨져 있으나, 시산이 누구의 호(號)인지 불분명합니다.
동화사의 칠성각 안에는 1857년(철종 8년)에 그려진 삼존 형식의 칠성탱화(七星撑畵)가 있습니다.
칠성광여래를 주존(主尊)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손에 금륜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에 협시로 배치됩니다.
특히 조선시대 가장 성행한 전각으로 운문사, 옥천사, 선암사의 칠성각 등 수많은 예가 남아 있습니다.
산신각
산신탱
호랑이와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산신을 조상하여 탱화로 모시고 있습니다.
삼층석탑
영산전
맞배지붕에 겹처마 형식의 건축으로 1920년 중건하였습니다.
영산전(靈山殿) 편액 글씨는 해사 김성금의 글씨입니다.
석가삼존불을 중심으로 십육나한산이 좌우로 열좌해 있습니다.
석가여래,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종문(宗門) 뒤로 염화실 (拈華室)
염화실은 염화미소(拈華微笑)에서 온말로 사찰에서 조실스님이나 방장스님이 거처하시는 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육화당(종무소)
육화당( 六和堂) 편액
통일범종루(종각)
통일약사대불과 짝을 이루어 통일을 염원한다는 뜻으로 통일범종루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통일범종루(統一梵鐘樓) 편액
원음각(圓音閣)(옛종각)
설법전 옆에 위치해 있으며 실제 종각의 역할은 하고 있지 않고 전시용으로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옹호문
옹호문(擁護門)은 다른 사찰에서는 사천왕문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2003년 낙성하였습니다.
문 내부의 양측에 동방 지국천왕, 남방 증장천왕,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 등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옹호문(擁護門) 편액
남방증장천왕과 서방광목천왕
북방다문천왕과 동방지국천왕
동화사 사적비
동화사 사적비(寺跡碑)는 대웅전에서 통일약사대불로 가는 길에서 해탈교(解脫橋) 앞 모퉁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조선불교선교양종 제일수찰 대본산 경상북도··· 동화사적비명[朝鮮佛敎禪敎兩宗 第一首刹 大本山 慶尙北道··· 桐華寺跡碑銘]’이란 제목으로 동화사의 사적(事跡)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크기는 비개(碑蓋) 높이 50cm× 가로 350cm이고, 비신(碑身)은 높이 208cm× 가로 203cm입니다.
형태는 거대한 화강암을 ‘홀’모양으로 가운데를 파서 다듬은 벽비(壁碑)인데, 비개는 용두(龍頭)로 장식하였습니다.
당초에 제작한 사적비는 마멸되어 다시 만들었는데, 1931년 3월 주지 황보응(黃普應)이 조성하였다. 비문은 자당거사(藉堂居士) 김정래(金鼎來)가 지었고, 긍석(肯石) 김진만(金鎭萬)이 썼습니다.
동화사 당간지주(보물 제254호)
높이 3.1m
절에 행사가 있을 때나 사찰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은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동화사 당간지주는 현재 당간은 없어지고 그것을 지탱하던 두개의 돌기둥만 남아 있는데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기둥 꼭대기를 반원으로 처리한 수법 등을 통해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돌로 만든 지주의 안쪽 위와 아래에는 당간을 고정시키즌 긴 네모꼴과 둥근 모양의 구멍이 있습니다.
동화사 비각
인악당(仁岳堂)
동화사 인악당(인악대사비각)
인악당은 조선 시대 고승 인악 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각입니다.
인악대사비는 귀부를 거북으로 하지 않고 봉황으로 조각한 것이 다른 비석들과는 대별된다. 이것은 동화사가 봉황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문은 1808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있던 안동 김씨 김희순이 짓고 썼는데 와희지풍의 필체로 서법이 매우 유려합니다.
통일대불
통일대불의 높이는 총 33m입니다,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석공 108명이 7개월 동안 황동석 2,000톤으로 불상을 3,000톤으로 좌대를 만들어 팔공산 동화사로 옮겼습니다.
좌대높이 13m, 전체높이 33m
동화사 통일약사여래대불
1990년 10월 26일 착공하여 1992년 11월 27일 점안대법회를 봉행하였습니다.
통일기원대전
통일대불 맞은 편에 있습니다. 전각 안에서 유리를 통해 바로 통일대불의 얼굴을 마주 할 수 있습니다.
통일기원대전(統一祈願大殿) 편액 글씨는 대통령 노태우 글씨입니다.
봉황문(보물 제2204호)
동화사 봉황문은 동화사이 일주문으로 선조 11년(1633)에 처음 건립된 대구 동화사 봉황문은 지금의 용호문 자리에 건립되었으나 1965년 현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봏황문은 단칸 팔작지붕으로 주심포와 주간포가 있는 다포식으로 내부천장은 우물반자 형식으로 양측단에 용두2개가 걸려 있습니다.
주기둥 상부에 비스듬히 부재를 덧댄 형태와 주기둥 옆에 보조기둥 2개를 세운 형태가 혼합된 형식으로 드문 사례입니다.
팔공산동화사봉황문(八公山桐華寺鳳凰門)’ 편액은 기성 쾌선 스님의 글씨입니다.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43)
암벽에 돋을 새김한 불상을 마애불이라 합니다. 이 마애불좌상의 손모양은 오른손에 무릎에 대고 아래를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배꼽 앞에 놓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옷은 양쪽 어깨를 모도 덮은 통견입니다. 머리와 몸 뒤의 광배는 두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고, 그 가장자리를 불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표현이 정교합니다. 불상이 앉아 있는 연꽃대좌가 구름 위에 떠있어 사뿐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구름무늬의 사실적인 표현으로 불상이 더욱 생동감있게 느껴집니다. 이 불상은 체구에 비해 얼굴이 풍만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대좌와 광배, 형식화된 옷주름의 표현으로 보아 통일후기의 것으로 보입니다.
불상의 높이는 1.06cm, 대좌 높이는 39cm, 광배 높이는 1.5cm입니다.
동화집단지구
첫댓글 공부도 많이했겠지만 그 나중도 창대하면
사찰 연설전문가 되세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