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공포
2020.6.15. 김 난 희
2020.2월23일 딸네는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양천구 목동으로 이사했다. 외손녀가 3월2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때문에 일주일간 도우미 공백이 생겨 내가 대신 봐 주러 갔을 때 일이다. 이사 온 뒤 딸이 목이 칼칼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몸살이라고 생각하며 배 즙과 홍삼차를 한번 씩 먹고 주말에 푹 쉬면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딸은 이것이 코로나의 증상이 아닐까 하면서 겁을 냈다. 분명 그렇게 확신 하는 듯이 만약 확진이 되면 아파트 단지 전체의 소독, 저와 제 남편의 직장도 물론 폐쇄되고 사람들은 저를 코로나의 원흉으로 매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검진을 안 받을 수도 없으니 상황은 무척 곤란하다.
주말이 되어 검진을 받아봐야 하는데 drive-through 의 검진이 그래도 좀 안전할 듯하니 거기로 가겠다고 3월 2일 아침 식사 후 출발 하더니 잠시 후 다시 돌아 왔다.
제 아빠와 통화를 하고나서였다.
그때 대구는 신천지 교회의 신도들확진자가 대량으로 나오고 청도 요양병원에서도 확진 자가 무더기로 나왔던 시기였다.
신천지 교회는 예배 방식이 색달라 바닥에 옆 사람과 간격도 좁게 앉아서 율동처럼 팔 도 흔들고 말 도 큰 소리로 외치고 해서 더 많은 전파를 했다고 한다. 어디를 가든지 대구에서 왔다고 말 할 수도 없는 때였다.
그 무렵 중국 우한은 코로나-19의 발병으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확진 자가 늘고 어떤 약으로 치료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급속히 환자 수 가늘어 수용 할 병실도 없고, 우리나라 서울과 경기도 인구를 합치는 만큼 많다는 우한시를 폐쇄했다.
길거리에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집 밖 외출도 제한해서 그 우한의 주민들은 공포 속에서 창문을 열고 다른 동 사람들과 서로 서로 소리 지르며 “힘내자 우한” 하던 시기였다. 확진자중 사망자도 수없이 나왔고 걸리면 거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우리나라에도 처음 대구 청도의 확진 자가 나오면서 긴장했던 코로나-19의 발병 초기였다.
식품도 슈퍼마켓에서 인터넷 주문을 하고 물품은 문 앞에 벨 만 눌러놓고 하고 간 후 들여놓았다. 손도 수시로 씻고, 밖에 갔다 오면 바로 씻고 마스크도 반듯이 하고 감염자와 2m 이내에 있으면 바로 감염된다고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겁먹을 때였다.
딸이 감염되었다고 의심하는 원인은 내가 남편과 같이 서울로 올라온 2월 23일 보다 3일전인 2월 20일 남편의 대장 내시경 검사가 예약되어 있어서 취소를 할 까 하다가 무슨 일이 있겠냐 하고 그냥 강행했다.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나도 물론 같이 갔다.
우리가 병원을 방문했던 3일 뒤인 25일 부터인가 그 병원의 사무원 한명이 확진 되어서 몇 일간 폐쇄 됐다고 하는 이야기를 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겁이 많기로 치면 첫 번째 가는 딸은 아빠의 내시경을 할 때 병원 어딘가에서 접촉이 되고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나랑 같이 저희 집에서 지내고 있으니 분명 그 증세는 코로나-19라고 단정을 했다.
나는 병원 방문에도 아무 일 없었음에 안도하고 아슬아슬 했었다는 이야기를 딸 내외가 재미있게 들어 줄 거란 뜻으로 했는데, 딸은 엄청 위험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단정에 확실한 증거를 밝힐 수 없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옛 말이 생각났다. 차라리 말 안함만 못했다. 말이란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이니 꿀 먹은 벙어리란 말이 있듯이 아무 말 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것이 코로나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대장 내시경 하는 날 문도 발로 밀고 들어갔고 사람과의 접촉도 가까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방문자 주소도 남편이 썼다.
남편이 접수확인 및 의사 간호사와접촉이 있긴 했지만 정말 황당했다.
딸이 검진하러 출발 했다가 돌아온 날도 아빠는 아니라고 ,검사할 필요 없다고 오히려 가서 감염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던 모양이었다. 나도 잘 생각 했다고 했고 월요일은 휴가를 냈었는데 몸도 좋아져서 취소하고 출근을 했다.
그러다가 한 일 주일은 괜찮은 모습으로 잘 지냈다. 또 3월 3주째 주말이 되었는데 또 아프다고 했다. 벌써 거의 한 달이 되도록 코로나다 아니다 로 신경전을 벌렸다. 또 몸이 이상 하다고 토요일 잠을 자보고 검진하겠다던 것이 토요일은 등이 좀 덜 아프다고 했다.
비상시국이니 일요일에도 코로나 검진은 될 것이라고 미루었는데 일요일 검진 하는 병원이 없어서 또 하루를 보내고 월요일은 별 탈 없는 듯 출근을 했다.
딸은 코로나를 겁냈지만 나는 젊은 것이 아프다는 게 너무나 답답했다. 혹시 심장이나 폐 정밀 촬영을 해 볼 것을 권해서 보냈다.
내일 (화) 금식하고 촬영 예약 됐다고 했다.
자꾸 아프다고 하니 무엇이 던지 단단히 탈이 난듯했고 확인이 필요했다. 딸이 화요일 점심 무렵 진단결과 폐와 심장 모두 이상 없다고 연락이 왔다.
기쁜 것은 물론이어서 어린 입학을 기다리는 외손녀도 “휴~ 됐다.” 할 정도로 온 식구가 마음속의 가시가 쑥 빠져 나갔다.
감기 몸살 증세를 코로나-19의 무서운 감염 걱정이 불러온 가상 코로나 –19 감염이었다.
휴우 ~ ~
그 이후 멀쩡하고 밝은 모습으로 잘 지내고 있다.
말 의 중요성을 생각게 하는 사건이었다.
첫댓글 자라에 놀란가슴 솣두껑에 놀란다 했나요? 딸의 오버센스 때문에 걱정 많이 하였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겪은 에피소드 이제 웃음으로 맞이하게 됐으니 다행입니다. 덩달아 긴장하면서 읽었는데 이제 안도의 한 숨 쉬어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금 이 시국에 조심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걱정은 몸에 해로습니다. 서로가 사회적 거리를 지켜 나가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잠시동안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입니다. 빨리 코로나19가 끝나 일상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두려움은 의심에서 생겨나고 그 중에도 스스로 만들어가는 심리적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게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가 까지의 불안과 잘 해결되고 난 뒤의 섭섭함도 짐작이 가네요,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섬세한 감정의 흐름이 문맥마다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신천지교회 신도가 코로나를 몰고와 대구를 휩쓸었던 그 한창때 딸아이 때문에
얼마나 놀랐습니까? 그 모습이 고스란히 글속에 적혀있습니다. 사람이 불안감에
쌓이면 평소와 조금만 달라도 내가 주인공이 된듯 하지요. 불안함은 봄이와 봄이
갈때까지 같은 맘이었습니다. 모두 당했던 심정이라 대구 코로나로 돌아 간 듯한
글 잘 읽었습니다.
코로나19의 공포가 극심하던 시기에 충분히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황이라 이해가 됩니다. 무엇보다 검진결과 이상이 없으셔서 다행입니다. 가족분들과 더 건강하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직접 경험한 코로나의 공포를 수필로 써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건 입니다. 마음 고생 많이 하셨지만 별일이 없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코로나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며 몸의 변화에 지례 겁을 먹고 병원에 갈수도 안갈수도 망설이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마음의 홍역을 치루었으니 이제 코로나 걱정은 안하셔도 될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