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제 14회 인문학 축제를 마치고
인문학 축제
14년 전으로 올라가 처음 축제를 기획했던 때를 떠올려본다. 책마을이 생긴지 4년 정도 지났나? 이권우 도서평론가에게 한 여름 대천해수욕장에서 인문학자 여러 명을 초청해서 1박 2일로 축제를 열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선생님은 책『호모 부커스』의 저자로 08년도에 책마을에서 초청을 해 인연을 맺은 분이다. 책마을은 머드축제로 유명한 대천해수욕장에서 놀기만 하지 말고 인문학 공부도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여름 날 바닷가에서 놀다가 ‘뭐 이런 것도 있네~’라는 호기심으로 그야말로 마실 오는 기분으로 오는 축제말이다. 인문강좌 중간에 노래도 부르고 청중들의 감상평과 질문도 넣고, 발표자와 듣는 이가 어울리는 뒷풀이도 준비하면서. 그렇게 흥하다 말다 하면서 꾸역구역 올해까지 이어졌다.
올해는 권정생선생님의 대표저작인 『몽실언니』40주년을 기념하고, 이를 철학사적으로 조명한 유대칠철학노동자의『대한민국철학사』를 가지고 공부하기로 했다. 인문학 유행이 사라지고 참여가 저조해지는 상황에서 행사를 하루로 정하고 장소와 프로그램 규모를 줄였다.
행사 당일 촌장님과 운영위원 한 분이 몽실언니 분장을 하고 오는 이를 반겨줬다. 나는 아들아이와 해수욕장 놀러 오는 컨셉으로 슬리퍼에 하늘색 밝은 티셔츠, 그리고 선글라스를 끼고 갔다. 다들 반갑게 인사. 적은 수지만 수원, 청양, 대전, 서울, 강원도에서도 지인 초청으로 많이들 오셨다.
몽실언니
먼저 세대별 독후감을 발표했다. 10대인 중2 유준희님은 “몽실언니가 풍족한 우리 시대에 태어났다면 씩씩한 학생회장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한다. 일제강점기와 전쟁등을 거치면서 힘들게 살아온 이들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절룸발이가 되어 어려운 환경에서 동생들을 챙긴 몽실언니가 용감하다고 했다.
20대인 23살 원영섭님은 책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내 문제도 해결할 것이 많은데 소설의 우울하고 불쌍한 문제까지 떠 앉는 것 같아 위로가 안된다고 말했다.
40대 대표 최광야님은 몽실언니는 하이데거가 이야기 했듯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몽실언니도 이웃의 따뜻한 손길로 치유 받고 온전한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내게 된 건 아닌가 하고 말한다. 장골할머니, 최씨네집, 거지빵아저씨, 서금년언니,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결혼한 남편의 따뜻한 지지.
60대 대표인 시인 이시백님은 몽실언니가 경험한 것을 직접 공유한 세대가 우리가 아닌가 말한다. 자신의 삶과 소설의 상황을 연계시키면서 진솔하게 당신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이어서 권정생년보를 쓰신 이기영선생님께서 권정생작가의 삶과 소설 몽실언니를 소개하면서 발표한다. 권정생작가는 몽실언니같은 사람들이 당시에는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슬픈 이야기, 착한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반공동화가 판치는 당시에 반반공동화를 쓰고자 했다고한다. 소설에서 사람은 지위와 돈, 소속이 아닌 사람 자체로 만나면 서로 죽일 수 없는 존재라 말한다.
대한민국 철학사
저자는 뒷풀이에서 대화를 나누는 중 강의 전날 건물 철거현장에서 노가다를 하고 왔다고 한다. 대학 철학과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 강사료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철학자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을 철학노동자로 일컬어 달라고 한다. 철학을 하려면 라틴어, 한문, 외국어를 익혀야 한다고 한다. 노가다 현장에서 사고가 난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면 일을 중단한 채 달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본인을 다들 선생님이라고 부른단다. 어느 외국인 노동자는 당신의 이름이 ‘선생님’으로 안다고도 한다. 저자의 강의는 파워포인트를 올리지 않고 빠르게 그러나 적확하게 집중력있게 진행된다. 강의를 들은 이 중 한 분은 강의 직전 있었던 두통이 싸악~ 사라졌다고 한다. 그만큼 대단한 강의였다.
철학은 우리에게 ‘너 자신을 알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내가 무엇을 아는가?’보다는 ‘내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를 보면 된다고 한다. 지나온 삶의 여정을 뒤집어 반성하면 된다. 저자는 위계의 철학을 통렬히 비판한다. 조선의 성리학, 초월의 힘을 밖에서 찾고 잘난 이들이 모범이고 교범이고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을 비판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서로 함께 하는 서로 주체성을 세워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각 시대는 각 시대의 철학이 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철학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작업의 일환이 바로 이 책이다. 철학의 회임으로서 정약종의 ≪주교요지≫, 철학의 출산으로서 최제우의 ≪용담유사≫. 그리고 그 계보는 윤동주, 류영모, 함석헌, 문익환, 장일순, 권정생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권정생의 철학은 ‘자기내어줌’으로의 철학이다. 강아지똥이 그 대표적이다. 본인의 삶이 그러했고, 몽실언니의 삶도 그러했다.
앞으로의 철학은 누가 만들어 갈 것인가? 위대한 이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책마을처럼 작고 작은 모임으로 시작하는 ‘철학공부’가 중요하다고 한다. 자기 삶의 아픔을 공유하고 우리 삶의 아픔을 승화해 나가는 과정 속에 우리 시대 대한민국의 철학은 완성될 것이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