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청정마에 울리는 요들송
가수·연주자·관광객 등 20만 명 참가… 야생화 핀 산악마을에는 트레킹 물결 알프스에서 직접 듣는 요들은 특별했다. 세모지붕을 스친 바람과 설산을 감싸는 구름에 옥구슬 같은 메아리가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요들을 풍류 삼아 야생화 핀 알프스를 트레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늑했다. 스위스 베르너 오버란트의 중심도시인 인터라켄은 알프스의 둥지 같은 곳이다. 융프라우와 이어지는 산악마을들의 아지트인 이 도시는 해발 4000m급 봉우리에 둘러싸여 6월이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6월이 오면 인터라켄은 요들 천국으로 변신한다. 요들 페스티벌이 열려
알프스와 호수 사이의 마을을 낭만적인 분위기로 채색한다.
이런 상상, 한 번쯤은 해봤을 듯싶다. 알프스 봉우리가 배경이 된 산장에 몸을 눕힌 채 감미로운 요들에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이 감미로운 꿈이 6월 중순 알프스 전통악기인 알펜호른의 연주까지 곁들여 현실이 된다. 융프라우의 관문인 인터라켄이 6월 ‘요들의 메카’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각지에서 기량을 뽐내던 요들의 고수들이 집결하는 ‘스위스 요들 페스티벌’은 16~19일 펼쳐진다. 3년 전 호수의 도시 루체른에서 열린 이 축제가 올해로 28회째를 맞는다.
▶인터라켄 일대의 마을은 붉은색 산악열차로 소통을 한다.
3년마다 열리는 페스티벌은 올림픽 같은 흥분된 분위기에서 치러진다. 요들의 대가, 알펜호른 연주자, 깃발 던지기의 달인 등 1만여 명의 실력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알프스를 상징하는 융프라우 자락에서 열리는 뜻깊은 축제에 올해 20만 명의 관람객이 모여들 전망이다.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도시 인터라켄은 요들 때문에 벌써부터 떠들썩하다.
진정한 휴식이 깃든 무공해 마을
툰 호수와 브린츠 호수 사이에 위치한 인터라켄은 산악마을들로 향하는 관문이다. 해발 567m인 이 도시의 중심가 회에베크 거리는 전 세계에서 모여든 여행자로 늘 흥청거린다. 도심 골목에서도 병풍처럼 둘러싼 알프스의 준봉들이 눈에 들어온다.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하더 쿨룸 전망대에 오르면 아이거·융프라우·묀히 등 베르너 오버란트의 3대 봉우리가 도시 위로 아득하게 펼쳐진다. 올해는 이 아득한 풍광이 요들의 메아리로 덧씌워진다.
요들이 남긴 여운은 새 소리, 시냇물
소리가 곁들여져 장엄한 알프스의 오케스트라가 된다. 인터라켄에서 산자락에 들어선 마을까지는 알프스 향취가 가득한 산악열차들이 데려다 준다. 산악열차가 스쳐 지나는 마을은 대부분 알프스의 청정마을들이다.
01.스위스의 전통악기인 알펜호른. 요들과 궁합을 맞추는 낮은 저음을 낸다.
02.축제 기간에는 산양의 머리뼈 장식 등이 전시되기도 한다.
03. 산악마을의 전통놀이를 즐기는 알프스의 꼬마들.
융프라우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라우터브루넨은 ‘엽서 한 장’에 담긴 평온함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공간이다. 샬레 가옥에 머물며 창문을 열면 초록빛 엽서가 방 안으로 날아든다. 괴테가 시의 영감을 얻었다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는 300m 높이에서 물이 떨어지고 멀리 교회당에서는 종소리가 흩어진다. 그 평화로운 마을에 알레취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소리도 내려앉는다. 커다란 방울을 딸랑거리며 산으로 향하는 소들의 긴 행렬은 ‘전원일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굳이 문밖으로 나서지 않더라도 이 세상 가장 평화로운
엽서 한 장을 이 계곡마을에서 받아보는 셈이다.
라우터브루넨에서 노란색 산악열차를 타고 이동하면 벵겐으로 이어지고 곤돌라를 타고 오르면 뮈렌으로 연결된다. 두 곳 모두 전기자동차만 다니는 무공해 마을이다. 해발 1275m에 위치한 벵겐에서는 앙증맞은 초록색 트럭이 거리를 분주히 오가는데 소음도, 먼지도 없다. 이 고요한 마을의 골목은 치즈를 파는 가게와 별빛이 쏟아지는 노천 바로 채워진다. 마을 위로는 멘리헨 봉우리가 병풍처럼 서 있다.
▶피르스트에서 즐기는 ‘플라이어’ 체험.
산악마을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곳은 바로 뮈렌이다. 1639m에 자리 잡은 마을은 지대가 높아 베르너 오버란트의 3대 봉우리인 아이거·융프라우·묀히를 가장 가깝게 볼 수 있다. 100년이 넘은 고풍스러운 가옥들은 미로 같은 골목에 낮게 웅크린 채 흩어져 있다. 지붕에는 집이 만들어진 연도가 선명하게 적혀 있고 창문 위는 방울과 산양 머리뼈로 장식됐다. 아기자기한 골목들에는 커피 한 잔 마시기에 좋은 인적 뜸한 카페들이 숨어 있다.
이런 한적한 산악마을에서 갖는 휴식은 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융프라우 지역의 매력은 산악마을들의 무공해 교통수단과 함께 숱하게 연결된 트레킹 코스 때문이다. 알프스의 ‘흙’을 밟고 ‘향기’를 맡는 상상 밖의 일들이 이곳에서는 편리하게 이뤄진다.
트레킹과 산악열차로 소통하다
트레킹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라우터브루넨의 동쪽마을인 그린델발트의 호흡이 가장 풍성하고 깊어진다. 라우터브루넨이 고요하다면 산악활동의 아지트인 그린델발트는 한껏 들떠 있다. 거리의 상가들은 자정까지 문을 열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이방인이 어우러져 마을이 북적거린다.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를 거쳐 바흐알프 호수까지 이르는 길은 벌써 여름이 무성하다. 바흐알프에서는 만년설과 빙하가 덮인 알프스의 봉우리가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대칭을 이루며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바흐알프는 스위스를 소개하는 책자에 단골로 등장하는 멋진 호수다.
융프라우 지역의 전통 축제인 인터포크 페스티벌 공연, 바흐알프 호수까지
이어지는 길은 알프스 트레킹의 백미로 꼽힌다, 그린델발트의 샬레 가옥.
알프스의 가옥들은 대부분 세모지붕이다.
이곳은 평균 기온이 낮은 탓에 나무가 자라지 못해 키 작은 풀만 무성하다. 산행에는 족히 4m는 됨 직한 나무기둥만이 듬성듬성 꽂혀 있는데 한겨울 눈이 쌓였을 때를 대비해 길을 표시하려고 꽂아놓은 기둥이다. 꼬불꼬불 내리막길을 따라 알프스 마을에 내려서면 ‘삶의 젖줄’인 게으른 젖소들이 구식 슬라이드 화면처럼 긴 잔영을 남긴 채 스쳐 지난다.
산악마을들을 구경했으면 융프라우로 향해 그 감동의 정점을 찍는다. ‘신이 빚어낸 알프스의 보석’이라는 칭송을 받는 융프라우는 높이가 4158m다. 아이거·묀히와 더불어 융프라우 지역의 3대 봉우리 중 최고 형님뻘이지만 이름에 담긴 뜻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젊은 처녀’다. 수줍은 처녀처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산 밑 인터라켄의 날씨가 화창하더라도 융프라우는 구름에 오갈 때마다 만년설의 알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빼어난 알프스의
고봉이 즐비하지만 융프라우는 알프스 최초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목록을 뒤져보면 빼어난 산세, 빙하와 함께 끊임없이 계속되는 날씨 변화를 등재 사유로 꼽았다. 융프라우는 유럽의 예술·등반·여행에도 큰 몫을 한다.
융프라우로 연결되는 융프라우 철도는 내년에 개통 100주년을 맞는다. 유럽 최정상의 역 융프라우요흐 위에 얼음터널을 뚫고 새로운 역이 들어선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의 높이 역시 3705m로 바뀔 전망이다.
인터라켄과 산악마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축제는 이 일대의 알프스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알프스의 전통축제인 인터포크 페스티벌도 매년 펼쳐지고, 가장 높은 고도(2061m)에서 열리는 야외 팝 콘서트인 스노펜 에어 콘서트도 유럽의 청춘들을 열광케 한다. 겨울에는 스키 챔피언십,
9월이면 산악마라톤도 열린다. 올 6월은 요들송에 취해 낭만적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한낮 뜨거웠던 축제의 열기가 가라앉으면 주민과 외지인은 산악마을의 노천 바에 앉아 전통맥주인 루겐브로이 한 잔을 마신다. 알프스 봉우리 위로 별이 쏟아지고 요들송과 함께 향긋한 알프스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몽롱한 가운데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평생 지우지 못할 진한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 TIP
교통 스위스의 관문인
취리히와 제네바까지는 항공기로 이동한 뒤 베른을 경유해 인터라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빌더스빌을 거쳐 그린델발트행이나 라우터브루넨행 열차를 이용할 수 있다. 열차는 산악마을들을 거쳐 유럽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이어진다. 인터라켄 융프라우 일대를 제대로 감상하며 휴식도 취하고 여가활동을 즐기려면 ‘VIP 패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융프라우 VIP 패스는 2일 혹은 3일 동안 융프라우 철도를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티켓으로 28개 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빙하·산악마을 등을 방문하고 구간별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체험
융프라우요흐 정상에는 펀 파크가 개장해 여름에도 눈썰매·스키·자일타기 등이 가능하다. 다양한 여가활동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펀 파크 1일 패스도 있다. 융프라우요흐 ‘테크니컬’ 투어에 참가하면 유럽 최정상 역 내부에 담긴 첨단기술의 비밀을 관람할 수 있다. 피르스트 정상에서는 알프스를 배경으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거나 시속 90km로 나는 ‘플라이어’를 타본다. 피르스트 하산길에 트로이바이크를 이용하면 알프스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구석구석 구경하며 그린델발트까지 내려올 수 있다. 융프라우 철도 개통 기념 100주년을
기념해 하더 쿨룸에도 ‘풋 브리지’라는 체험시설이 문을 열 예정이다.
숙소 인터라켄 인근에 다양한 숙소가 마련돼 있다. 빌더스빌의 알펜블릭(www.hotel-alpenblick.ch)은 융프라우로 오르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소박한 느낌의 샬레형 호텔이다. 인터라켄 시내처럼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스위스 풍으로 밤을 보내기에 좋다. 빌더스빌은 야생화 정원이 있는 쉬니케 플라테로 오르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인터라켄의 빅토리아 호텔이나 그린델발트의 그랜드 레지나 호텔 등은 외국 스타들이 머무는 고급호텔로 럭셔리
스파시설을 갖추었다. 그린델발트의 로지(오두막)나 라우터브루넨의 민박집에 머물러도 좋다.
음식 이 지역 전통맥주인 루겐브로이와 화이트와인, 치즈 퐁듀 등은 꼭 먹어볼 것. 인터라켄의 레스토랑 ‘슈(Schuh)’에서는 스위스 전통 초콜릿을 취향에 따라 맛볼 수 있다. 인터라켄 관광청(www.interlaken.ch), 융프라우 철도 한국사무소(www.jungfrau.co.kr)를 통해 레스토랑·축제 등 다양한 현지 정보와 열차 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월간중앙 2011.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