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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법규와 범칙금
어떤 청년 갑동이에게 그의 할아버지가 차를 한대 사주었습니다.
갑동이는 매우 기뻐서 운전하고 다니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스틱커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범칙금을 할아버지가 내주었습니다. 그뒤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법규 위반할 때마다 대신 아버지가 내주었습니다.
그때 범칙금은 납부규정이 있었으며, 납부금액과 납부의무자, 대리인에 관한 규정, 납부기일과 효력등이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납부규정은 교통법규 안에 포함되어 그 일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또 몇십년이 지나서 아버지도 돌아가셨습니다. 갑동이 본인 스스로는 범칙금도 잘 못내는데 형님이 내주셨습니다.그렇지만 형님이 잘못하여 잊어버릴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운전 면허가 취소되고 감옥에 갇힐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갑동이가 진 빚 모두를 갚아주시고 모든 범칙금을 내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앞으로 지을 범칙행위들에 대한 모든 범칙금도 미리 내주셨습니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갑동이의 모든 범칙금 뿐만 아니라 인류 모두의 범칙금도 미리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갑동이에게 성령님이라는 운전자를 보내주셨고 갑동이는 그분이 운전하도록 맡기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모두가 지을 범칙행위에 대하여 그 모든 죄값을 지불하고도 넘치도록 수천조원 이상의 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온 우주의 모든 것보다 억천만배 이상 값비싸고 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앞으로 평생 내내 지을 죄값을 미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제 교통법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이제 교통법규는 폐기된 것입니까?
이제 더 이상 교통법규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까?
이제 성령님은 교통법규 무시하고 그분이 원하시는대로만 운전하십니까?
이제 교통법규에서 자유를 얻으셨지요?
때로는 갑동이가 성령님 운전자를 놓아두고 혼자서 차를 끌고가고 싶은 때가 자주 있습니다. 때로는 음주한 상태에서도 차를 갑동이가 차를 운전합니다. 그때에 갑동이가 교통법규를 무시해도 되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믿는데 그까짓 교통법규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음주운전으로 인한 죄값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갚아주셨습니다! ( 이것은 참 진실입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요? 갑동이는 틀림없이 자기가 행한 바를 후회하고 주 예수님을 부를 것입니다. 그때에도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그 현장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너의 이 죄마저도 사함받게
하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며 피흘리고 죽었노라!
이제 교통법규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으면서 그 법규에 벌벌 떠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복음을 모르는 무식한 율법주의자들이지요?
성령님께서 교통법규를 준수하면서 당신의 삶을 운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직 못깨달으셨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이미 깨달았다는 사람들의 말도 좀 들어보셔야 하겠습니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은 어찌된 것일까요?
로마서 6장
14 왜냐하면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아래가 아니라, 은혜아래 있음이라. 15 그러면 무엇이냐? 우리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으므로 우리가 죄를 짓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말은 율법의 정죄와 심판아래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은혜아래 있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은 죄사함의 은혜 아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앞으로 교통법규를 무시하듯 율법을 무시하며 범법하며 살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것을 15절에서 말하는데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고 요일 3장 4절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시대에 있어서 죄=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쉽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말은 사망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지 율법이 무효화 되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로마서 3장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들로 그분 앞에서 어느 육체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나니, 왜냐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임이라.
왜냐하면 당신의 앞에서는 어느 생명체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니이다
그럼에도 구약시대 성도들은 율법을 준행하려 힘썼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앞으로 계속 살펴볼 주안점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이후에도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며,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거를 받았으니,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모두를 위한 하나님의 의라. 왜냐하면 차별이 없음이니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의는 신약시대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에도 나타났었습니다!
다만 차이는 구약시대에는 모형이며 그림자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실체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 신약시대는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 요 8:56-58) 모쉐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히 11:26) 모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요 5:46). 그 성경이 바로 율법입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셨습니다(벧전 1:11) 브찰엘 안에 거하신 지혜의 영(출 35:30-31) 은 바로 그리스도의 영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도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만군의 여호와 이십니다! 모르셨습니까? 제가 쓴글 여러개에 그것이 설명되고 증명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이 계셨습니다. 그들은 그 영께 순종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7장
18 이는 선행의 계명이 그것의 연약함과 무익함을 인하여 무효화가 발생함이라. 19 이는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하지 못하였음이며, 보다 나은 소망의 소개가 있었으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이 말씀은 바로 앞서의 교통법규와 범칙금의 예화에서 범칙금 납부규정과 납부금액 납부 당사자와 대리인, 납부금액의 유효기간과 효력 등에 관한 규정과 같습니다.
율법중 희생제사법이 무력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아론의 제사장직분이 무력하고 연약하여 대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죄를 담당하시고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단한번의 제사로 드리셨고 완벽하게 완수하셨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지을 수많은 범칙행위들에 대한 범칙금을 완벽하게 미리 내주셨다는 말이며 더 이상 그 범칙금 규정은 유효하지 않으며 폐해졌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소잡고 양잡아서 드렸던 모든 희생제사와 그 제사법과 그것에 관련된 여러 법규들은 완수되었으며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일반법규들 즉 도덕법 예를들면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등의 모든 말씀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잘 실행하도록 예수님은 영원한 속죄를 드리셨던 것입니다.
갈라티아 서 5장
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으로 인도함 받으면, 너희는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율법을 무시하여 경찰서에 자주 불려가면 그것이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입니까? 그것이 성령으로 인도함 받는 것입니까?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말은 바로 율법의 요구보다 높은 수준의 삶을 사는 것이며 넉넉히 율법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켜 주고도 남아서 율법위의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가 아니라 위입니다.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죄를 범하면 율법 아래로 들어갑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그 율법 아래로부터 해방되는 법을 배워서 그것을 날마다 실천해가며 참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면 그들은 죄 아래 팔린 것이며 죄를 다스리는 법 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에페소서 2장
15 그분의 육체로 그 원수관계, 곧 율례들 중에 있는 계명들의 법칙을 폐하신 분이시니, 이는 자기 안에서 그 둘로 한 새 사람을 창조하시고, 평화를 이루시기 위함이며, 16 그 둘로 한 몸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십자가로 말미암아 화해하게 하시고, 그것으로 원수관계를 파괴하시기 위함이라
예수님이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폐하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원수관계,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원수관계를 폐하신 것입니다.
율법이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콜로쌔서 2장
14 율례들로서 우리를 거스려 손으로 쓰여진 우리를 대적하여 있었던 것을 도말하시고, 그것을 가운데서 취하셔서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으며
율법을 도말하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를 대적했던 문서를 도말하셨으며 그것을 못박았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우리를 정죄하던 정죄문서, 기소장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뜻입니다. 예를들면 신명기 32장 34절 말씀이 한 예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결코 폐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에 반하여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3장
31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을 무효화시키느냐? 천만에!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세우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폐합니까? 천만에 !
그러므로 인류의 유일한 스승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훗날에 많은 선생들이 나타나서 율법을 무효화시키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을 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5장 17-19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내가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러 왔노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까지 율법의 한 점이나 한 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들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라도 허물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그도 천국에서 지극히 작게 여김을 받을 것이요, 그것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니라.
다시 말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서 율법이 폐해졌다고 믿고 남들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은 여전히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그 천국에서 그들은 가장 작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듭난 이후에 성령께서 우리안에 내주하시고, 우리는 율법을 지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만을 좇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성령님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신다는 것입니다!(롬 8:4) 그것은 성령께서 율법을 무시하거나 위반하면서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점을 크게 간과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난 2천년동안 기독교계는 구약시대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모쉐, 이사야, 엘리야, 다니엘, 같은 사람들과 율법준수믿음을 가졌던 베드로, 요한, 사도 바울과 같은 메시야닉 유대인들에 필적할만한 인물을 내놓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깊이있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추구할 때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시는 성령님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율법이 폐해졌다면, 성령님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실 필요( 롬 8:4)가 없을 것입니다!
2014. 10. 24 하토브
( 후기)
이제는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으므로 우리는 마음껏 율법을 무시하여도 된다는 말입니까?
이제 교통법규로 다시 돌아가봅시다.
갑동이 외에도, 을숙이와 병남이와 정인이라는 사람들이 모두 거듭났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이 모든 범칙금을 납부해주셨고 이제는 우리가 교통법규 아래 있지 아니하고 성령님의 은혜 아래 있으며 그것을 안믿는 것은 성령 운전자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모두가 항상 24시간 3600 초 매 순간마다 성령님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대신 자기 스스로가 운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자꾸만 자기 고집과 염려 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 운전자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운전하여 과속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을 좇으면 너무나 꼼꼼이 법규를 지키며 그렇게 살다가는 세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자기 스스로가 액셀 페달을 밟아서 과속하기도 하며 때로는 약간 신호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네명의 운전자들이 각각 자기 차들을 운전하여 마침 4거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때 신호가 있었지만 을숙이는 그냥 무시하고 은혜를 마음껏 누린다고 교통신호 무시하고 네거리를 질주하였고 갑동이는 자기 신호를 따라 정당하게 4거리를 질주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또 병남이는 우측으로 주행하다가 좌측 차선으로 중앙선을 넘어가서 역주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 상대차선에는 정인이가 운전해오고 있었는데 그렇게 역주행해오는 차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었고 그 결과 두 차량은 정면 충돌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성령께서는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킵니다! 성령께서는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운전하지 않습니다!
나는 교통법규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 운전자가 내안에 오신 뒤로는 오직 성령님만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은 교통법규를 지킵니다. 성령도, 새생명도, 교통법규에 대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새생명은 교통법규를 넉넉히 지키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제가 성령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여 제가 직접 운전하는 경우에는 어찌될까요?
그것은 바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마저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음껏 제 마음대로 성령님 대신 운전하며 죄를 지어도 될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교통법규를( 613개조항) 어떻게 지킵니까? 성령께는 6척억 7천억 법규 조항이라도 지키는데 아무 염려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님을 좇다가 수시로 벗어나서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죄는 예수님의 속죄희생으로 값을 지불받았으며 우리는 차츰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변화되어가고 율법을 넉넉히 충족시키며,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며, 율법을 세우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인 것입니다.
율법을 못 지켜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실 일이며, 차츰 변화되어 지킬 수 있는 체질로 바뀌며, 그것이 성화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성령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시는 사실과(롬 8:4) 성령께서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사실을(롬 3:31) 간과하고 율법으로 구원얻을 수 없으며 거듭난 이후에도 율법의 행사들로 성화될 수 없다는 것에만 치중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성령께서는 율법을 위반하지 않으시며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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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브 아브라함의 할례가 침례를 의미하지요.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이 할례는 율법을 의미합니다. 문맥을 읽어 보십시오.
@소금인형 아브라함의 할례가 침례를 의미한다면, 아브라함때에 남자아이들만 할례받았으니까 여자들은 침례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네요? 아니면 여성 할례를 주장하시는가요? 여성 할례는 무지에서 나온 죄악일 뿐인데요?
@소금인형 << 소금인형 14.10.29. 19:39 new
국기에 대한 경례 같은 것은 하시나요?
태양신 숭배라 생신은 안챙기시겠네요? >>
저는 생일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굳이 해야 한다면 저는 차라리 거듭난 날을 기념하겠습니다.
소금인형님은 갈라디아 2:20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하면서 죽은 사람 생일을 기념하고 있구만요?
소금인형님은 헝겊에 인쇄한 것을 경배하십니까? 세계에서 국기에 경례하는 나라는 몇나라 안될 것입니다. 여기 캐나다 미국에서는 국기에 경례하지 않는데요?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이 경례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세계적으로 국기에 경례하지 않는 것이 추세인데 어찌 모르시는지요?
@소금인형 << 소금인형 14.10.29. 19:41 new
피를 덜 뺐는지도 모르니 고기 먹는 외식은 전혀 못하시겠네요.
잘 사는 친구를 부러워해도 회개를 하셔야겠네요. >>
외식에서 피를 뺏는지 안뺏는지를 따지지는 않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모두 담당해주신 것으로 믿어도 된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구약만이 아니라 신약 사도행전 15장에서도 경고한 바 있는 피채 먹는 일을 일부러 명백히 어기면서 순대를 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희 가족을 축복해주신 것은 모르시는군요. 저희는 여러모로 잘되어 평안히 잘지내고 있습니다.
@소금인형 << 소금인형 14.10.29. 19:36 new
안식일에 일을 하시게 되면 회개하시나요? >>>
안식일에 일을 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성령님께 맡깁니다. 언젠가는 그런 모든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실줄을 알고 그분을 주목하고 순종하고 있습니다.
@소금인형 << 소금인형 14.10.29. 19:42 new
음식과 절기에 대한 율법은 육신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지키는 것입니까? >>
음식과 절기에 관한 율법은 대부분 의식법에 속하고 성전제사법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전제사법은 예수님 십자가로 완성되고 폐해졌으며 의식법은 대부분 원리만 남았다고 믿어집니다. 왜냐하면 성전 정결례와 같은 경우 성전시대에 필요했으며 음식법 또한 성전시대에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조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의 경우는 제사들이 그날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배가 바로 그 제사들을 총정리한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것이므로 그날에 예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토브 우리는 조회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도 있고 생일도 잘 챙깁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생일을 챙기고 가끔 이웃의 생일도 챙기고 그러지요.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며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하토브 아브라함의 할례가 침례를 의미한다고 하였지요.... 의미...의미 말입니다....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만들어내지 마십시오. 제발~~~
요한복음 15:12 내 명령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13 아무에게도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요한복음 15:14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가 나의 친구니라.
새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형제를 위해 생명까지 내놓는 사랑입니다.
형제를 위해 생명까지 내놓는 사랑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에는 도둑질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는 계명은 없는가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언제 공포되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인지 한번 알려주실수 있습니까?
율법에서 <원수를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레 19:18) 는 계명은 형제를 위해 생명까지 내놓지 않아도 할수 있는 일이지요?
고작 안식일이나 지키고 고기에 피가 있나 없나 살펴서 먹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여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과 비교하겠습니까?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문제는 고기에 피가 있나 없나를 살피는 사람, 일요일 예배 대신 안식일 예배를 준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열정을 훨씬 더 갖고 있다는 것을 반율법 은혜 방탕주의자들, 사랑무법주의자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안식일에 예배함이 옳다, 피로 만든 순대는 사도행전 15장 말씀대로 안먹는 것이 옳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안갖고 있다고 착각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소금인형님의 줄기찬 고집의 결론은 < 교통법규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지요?
앞으로 교통법규 지키지 않으면 자기의 믿음을 실천하시는 줄로 알겠습니다. 소금인형님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교통법규 지키지 않지요?
형제를 사랑하므로 교통법규를 지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형제, 가족, 또는 이웃이 교통사고가 날까봐입니다.
부모님도 공경합니다.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간음도 안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을 지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형제사랑은 우리가 가야 할 최종목표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행하는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자 힘쓰지는 않으나 저절로 율법을 완성해가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에 모든 율법의 완성이 들어 있습니다.
지극한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법보다 훨씬 높은 차원입니다.
@소금인형
<<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에 모든 율법의 완성이 들어 있습니다. >>
그러니까 율법이 들어있지 않는 맹탕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계속 강조하는 것은 율법이 포함되어 있는 성령님을 추구한다 이말입니다. 율법에 반대하면서 성령님을 좇는다거나,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으면서 성령님을 좇고 있다거나, 율법에 반대하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말은 틀린 것입니다.
인정하신다면 제가 믿는바와 많이 틀리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바리새인들이 율법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고 회의에서 사도들은 유대인과 조상들이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두려한다고 야보고 예수님 동생이 말했으며 이에 따른 율법과 할례를 지켜야 한다는 명령을 준 적이 없으므로 안디옥과 시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형제들에게 율법과 할례를 지키지 말라고 서신을 보냈네요! 안식일이 신약에서는 없고 돌에 쓴 율법도 예수님께서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모세이전의 양심법으로 돌아갔으며 모든 날이 주님의 날 안식일이죠.
바울이 반대한 것은 바로 할례라는 율법의 행사를 고집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한 것입니다.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바입니다. 즉 율법의 행사주의에 반대한 것이며 그런 부류에는 결례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이 돌에 쓰여져 있는데 그것을 왜 지키느냐? 또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는 계명을 왜 지키느냐? 하고 책망한 구절이 있으면 하나 가져와 보십시오.
사도행전 15장 21절에 <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였는데,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이 안식일마다 글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일요일마다 읽을지니라! 하고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안식일마다 모여 모세의 글 즉 율법을 읽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에 안식일에 모여 성경 읽기를 일요일로 바꾸라고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의 안식일은 변함이 없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까지 율법의 일점 일획도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허무는 자들과 그렇게 가르치는 자들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로 불리울 것이라고 예수님은 예고하셨습니다(마 5: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에나 그분의 말씀을 허물려는 선생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믿는 자들의 심지는 굳건히 서있는 것입니다. 믿고 싶은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과는 각자가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