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십자가에 대해 간단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십자가에 대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요?
분명 밝고, 가볍고, 기쁜 이미지는 아닐 것이라고 봅니다.
오히려 어둡고, 무겁고, 슬픈 이미지에 가깝지 않을까요?
십자가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업보(業報)와 같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얽히고설킨 죄의 결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고,
그리스도를 죽인 인류 전체가 보여준 어리석음과 욕망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는 하느님 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내야 할 극기와 보속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결국 무거운 짐이 되고 맙니다.
시지프스의 형벌(Sisyphus punishment)처럼 삶 자체가 형벌의 연속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너무도 잘못된 이해입니다.
분명 예수님의 죽음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십자가이니 십자가에는 반드시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냐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거창하게 이런 저런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지어내신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시고자 선택하신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즉, 십자가의 이유는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 벌을 주시려는 하느님이 아니라,
그 벌을 당신 스스로 받고자 하는 하느님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으로 지어내셨으니 그 사랑에 책임을 지신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3.16)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느님의 사랑을 우선적으로 떠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제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선물이라는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아름다운 삶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하는 은총의 시간임을 의식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로 받아들인 십자가가 될 수 있을 때, 십자가는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 희망이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십자가는 ‘지는 것’이 아닌 ‘껴안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세사키 가톨릭 천주교회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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