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누구를 위한 박물관인가?’
문명과 야만의 역사와 함께한
박물관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미래
적어도 15세기 이후부터 유럽인 중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그리스와 로마 시대 골동품, 르네상스 미술작품, 그리고 중국 도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18세기 후반에 오면 수집가들은 이렇게 모아들인 방대한 수집품을 대중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기에 이른다. 이들 전시장은 뮤지엄museum, 즉 ‘뮤즈들의 성지’라고 알려졌다.
오늘날 서양의 박물관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들은 아주 먼 곳에서 살았거나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원시인’이나 ‘부족민’의 세계를 전시한다. 이 박물관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유럽의 식민지 건설이 한창이던 188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했고,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에 이르러 쇠퇴기에 접어든다. 21세기의 박물관은 이제 새로운 해답이 필요해진 것이다.
『박물관의 그림자』는 이처럼 문명과 야만의 역사와 함께한 박물관의 탄생과 발전을 다룬다. 동시에 그들이 어떻게 타인의 유물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때로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균형감을 유지한 이 책은 독자 여러분에게 여러 논쟁 속에서 실존하는 박물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며 약탈이나 환수가 아닌 제3의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저자 소개
애덤 쿠퍼 Adam Kuper
런던정경대학의 인류학 100주년 교수이자 세계적인 인류학자. 요하네스버그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을 졸업한 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런던 대학 유니버시티칼리지에서 강의했고, 네덜란드의 레이든 대학 아프리카인류학, 영국 브루넬 대학 인류학 교수로 재직했다. 1989년에 유럽사회인류학자협회의 창립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며 보스턴대학교의 객원 교수를 맡기도 했다. 영국 BBC TV와 라디오에 출연했으며 〈런던 리뷰 오브 북스The London Review of Books〉,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에서 정기적으로 비평을 작성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류학과 인류학자들』, 『네안데르탈인 지하철 타다』 등이 있다.
목차
1장 ‘타인의 박물관’에 어서 오세요!
1부 먼 곳에 있는 사람들
2장 타인의 박물관의 탄생
-박물관을 만든 사람들
3장 문명과 야만
-대영박물관과 피트 리버스 박물관
4장 독일 박물관과 인류 문화사
-훔볼트, 클렘, 그리고 바스티안
5장 인간 박물관의 흥망
-민족학과 인류학, 그리고 미학
막간 파리의 미국인
2부 아메리카 원주민, 명백한 사명, 그리고 미국 예외주의
6장 스미소니언, 서부로 가다
-서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7장 프란츠 보아스, 스미소니언에 도전하다
-문화상대주의의 등장
8장 하버드 피바디 아메리카 고고민족학 박물관
-퍼트넘과 가장 오래된 인류학 박물관
9장 1893년 콜럼버스 만국 박람회
-진보와 아메리카 인디언
3부 박물관의 분화와 재창조
10장 유골 다툼
-박물관의 인간들
11장 제국의 전리품
-아프리카 궁정 예술과 노예무역
12장 그런데, 이게 예술인가?
-원시 미술의 발명과 부족 예술 박물관
13장 국립 박물관과 정체성 박물관
-정체성의 정치학과 대화하는 박물관
14장 보여주고 말하라
-영구 전시회와 단기 전시회
15장 코스모폴리탄 박물관
-모두의 박물관을 향하여
감사의 말
역자의 말
미주
책 속으로
1830년대에서 1840년대를 지나며 생겨난 타인의 박물관은 아주 먼 곳에서 살았거나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원시인’이나 ‘부족민’의 세계를 전시한다. 이 박물관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유럽의 식민지 건설이 한창이던 188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러 다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에 이르러 쇠퇴기에 접어든다. 미국에 있는 인류학, 민족학 박물관들도 이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는데 미시시피 서쪽(인디언들 거주지)을 식민지화하던 시기에 절정을 맞이했다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정체성 박물관identity museum01 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로 타인의 박물관은 전면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지금 이대로 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 울 듯하다. [9p]
문명은 지금까지 세 번의 정점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유럽 르네상스, 그리고 모두 알듯이 최고급 문명 박물관이 세워져 있는 파리, 런던, 뉴욕과 같은 대도시. 문명의 대척점이면서 문명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석기 시대’ 혹은 ‘원시’ 사회로 대변된다. 그들이 만든 미숙한 그림이나 공예품은 자연사 박물관이나 ‘타인의 박물관’으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14p]
한때 슬론의 하인이던 제임스 솔터James Salter는 슬론이 수집한 진귀한 물품을 조롱하는 의미로 ‘솔터 씨의 커피하우스’를 차렸는데 그곳을 방문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는 거기에 “악어나 거북과 같은 다양한 이국적인 동물뿐만 아니라 인디언과 다른 이방인들이 입는 옷과 무기류”까지 진열했다. 그러나 영국 왕자를 포함한 저명한 인사들까지 슬론의 소장품을 보려고 초대에 응해 첼시 장원을 찾아 왔다. [75p]
매사추세츠에 있는 작은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일곱 형제 중 한 명이었던 피바디는 볼티모어 에서 장사를 시작했고 금융업자로 변모했다가 런던으로 가서는 미국인 은행가로 자리 잡고 유명해졌다. 한때 피바디는 자신이 발행한 채권을 메릴랜드주가 거부하면서 심각한 어려움에 부닥친다(개혁 클럽Reform Club에서 그의 가입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때의 일로 그가 세운 회사는 금융위기를 맞아 파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피바디와 그의 은행은 모든 시련을 이겨냈다. 그는 1864년에 은퇴했고, 자기 자 본은 모두 빼낸 뒤 회사 경영권을 자기 동료였던 주니어스 모건Junius S. Morgan에게 넘겼는데 그가 바로 훗날 J. P. 모건이라는 거대한 금융 제국을 일으킨 J. P. 모건의 아버지였다. [205p]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돌려줘야 하는가? 베냉의 오바와 에도 주지사가 지원하는 그 지역 협의회가 서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은 외국 박물관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2022년 1월 나이지리아 국립박물관위원회는 베냉 유물에 관한 협상권은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발표했다. 외국 정부와 박물관들로서는 일단 안도할 만한 일이 었다. 마침내 제대로 된 권한을 가진 대화 상대가 나타난 셈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들의 고대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하면서 보여준 나이지리아 국립 박물관의 참담한 역량을 생각하면 회의론은 좀처럼 해소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323p]
특정 인종에 속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각인된 지식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특정 인종이어서 통찰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파워 게임power game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선조가 특정 문화권 출신이 아닌 자가 그 문화 전통에 관해 내놓는 발언은 단지 개인적인(부모에게서 물려받거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편견에 불과하므로 아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럴 바에야 무엇을 위해 그들의 주장을 다 듣고 나서 판단하는가? 그냥 처음부터 어디 출신인지 밝히라고 요구하면 될 일이다. [453p]
출판사 서평
보호인가? 아니면 약탈인가?
박물관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위기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서양박물관의 탄생에 있어 식민지 지배와 약탈은 빼놓을 수 없는 꼬리표다. 특히 1830년대에서 1840년대를 지나며 생겨난 ‘타인의 박물관the Museum of Other People’은 아주 먼 곳에서 살았거나 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원시인 혹은 부족민의 세계를 전시했으며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유럽 식민지 건설이 한창이던 188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했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유럽 제국주의가 한창일 때 다른 경쟁 제국에서 강제로 빼앗아 오거나 은밀한 거래를 통해 획득한 것들이다. 베이징 북쪽에 있는 이화원은 과거 아편 전쟁의 보복으로 영국과 프랑스 군대에 철저히 약탈되었고 지금까지 반환되지 못한 물품이 상당수다.
하지만 1960년대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한다. 미국에 있는 인류학 민족학 박물관들도 자국 원주민들의 실상을 담은 정체성 박물관identity museum이 주류가 되었고, 타국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들은 전면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타인의 박물관과 정체성 박물관이 공존하는 현대에서 무엇이 진정 옳은 박물관의 모습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빌릴 것인가? 혹은 돌려줄 것인가?
새로운 박물관의 미래를 고민하다
박물관의 역사는 딜레마dilemma의 역사이기도 하다. 문명의 보호가 한 측면에서는 문명의 약탈로 이어진다. 야만의 역사에서 태어난 박물관은 한편으로 과거 문명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박물관의 그림자』는 서양 인류학자의 시선에 박물관의 모든 이야기, 즉 탄생과 발전, 그 사이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과 이를 주도한 인물들을 최대한 제3자의 시선으로 평가하고자 했다. 박물관이라는 하나의 무대 안에서 때로는 약탈과 야만스러운 행위를, 때로는 다른 문명과의 가슴 따뜻한 교류를, 때로는 박물관 설립이라는 꿈을 위해 매진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해당 국가의 관할 내에 들어와 있는 문화재는 국가가 보존해야 한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민족주의적인 입장’과 모든 문화재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며 이에 가해지는 위해는 모든 인류의 문화유산에 가해지는 위해이므로 국가를 넘어 모두가 보존에 힘써야 한다는 ‘코스모폴리탄 원리’를 균형감 있게 다룬다. 그러면서도 모든 인종과 국가 차원의 정체성을 초월하며, 경계선을 허물어 가는 코스모폴리탄 박물관이라는 인류학자로서의 꿈을 정중히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 여러분은 박물관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점과 역사, 그리고 타인의 박물관과 정체성 박물관을 넘어 범인류적인 박물관의 미래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