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어지러워지는 세상 -
때는 중평(中平) 육 년 사월,
이 무렵 세상(世上)은 다시 어지러워질 징조(徵兆)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반란(叛亂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양(漁陽)에서는 장거(張擧)와 장순(張純)이 모반 (謀反)을 일으켰고, 장사(長沙)와 강하(江夏)에서는 난동(亂動) 이 일어났다. 이런 모반과 난동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조정(朝廷)의 악정(惡政)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그것은 황건적(黃巾賊) 난(亂) 이후에 십상시(十常侍)의 못된 행패(行悖)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 원인(原因)이라고 해도 옳을 것이다.
십상시(十常侍)들은 황건적(黃巾賊) 토벌로 영웅(英雄)이 된 황보숭(皇甫嵩) 장군(將軍)과 주전(朱儁) 장군(將軍)들조차 자신들에게 뇌물(賂物)을 바치지 않은 것을 괘씸하게 여겨 황제(皇帝)를 부추겨 그들의 직위 해제(職位解除)하고 낙향(落鄕)시켜버렸다.
공(功)을 세운 장군들이 이런 형편(形便)이었으니 신분(身分)이 낮은 관리(官吏)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불평(不平)과 불만(不滿)이 터져 나오고 반란(叛亂)이 일어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상시(十常侍)들은 황제에게 <천하는 태평하고 모든 백성들은 폐하의 정치에 만족하고 있사옵니다>라고 거짓 보고를 일삼았다. 또 술과 여자를 안겨 주어 황제가 세상일에는 흥미를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낙양(洛陽) 거리에는 소와 돼지를 잡는 백정(白丁) 일을 직업으로 하는 하진(何進)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何進그에게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누이동생이 있었다.
십상시(十常侍)들은 그 처녀를 황제(皇帝)에게 바쳤다.
황제는 그 아름다운 여인과 술에 푹 빠졌다.
누이 덕분에 하진(何進)은 일약 벼락 출세하여, 도성인 낙양(洛陽)을 경비(警備)하는 대장군(大將軍)에 임명(任命)되었다. 하진(何進)의 누이는 하후(何后)로 불리며 황제(皇帝)의 아들을 낳았고 그 황자(皇子)의 이름은 <변(辨)>이라 했다.
십상시(十常侍)들은 하후(何后)를 황제(皇帝)에게 바친 직후 다시 왕미인(王美人)이라는 처녀(處女)를 황제에게 바쳐서 왕미인 역시 얼마 후에 황자(皇子) 협(協)을 낳게 되었다.
하후는 워낙 질투심이 강한 여자였기에, 아들을 낳은 왕미인을 몹시 미워한 나머지 아무도 모르게 독살 시켜버리고 그녀가 낳은 <협(協)>은 황제의 어머니인 동 태후(童太后)에게 맡겨 버렸다.
동 태후는 <협(協)> 황자를 극진히 사랑했다. 그리고 영제 자신도 하후의 몸에서 태어난 <변(辨)>보다도 왕미인의 소생인 <협(協)>을 불쌍히 여겨 그를 더욱 사랑하였다.
십상시의 한 사람인 건석(蹇碩)은 그런 눈치를 재빨리 알아채고 어느 날 술과 여자에 빠져서 병을 얻어 병상에 누워 있는 황제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만일 황제께서 <협(協)>황자를 후계자로 삼고 싶으시다면 하진(何進) 장군을 먼저 없애 버리셔야 할 줄로 아뢰옵니다. 원래 백정이었던 하진(何進)이 지금은 대장군이 되었사옵니다. 그리고 하 태후는 자신의 누이동생이므로 제 누이동생의 아들을 제위(帝位)에 앉히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옵니다. 하진을 죽이지 않고서는 협 황자를 후계로 삼으실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음...." 영제(靈帝)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죽기 전에 그 문제만은 깨끗이 해결해 놔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제(靈帝)는 병상에서 신음하면서도 황명을 내렸다.
"대장군 하진(大將軍 何進)을 부르라!"
그러한 모략을 알 턱 없는 하진(何進)은 황명을 받고 부랴부랴 황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막 중문 앞에 이르니 사마 반은(司馬 潘隱)이 황급히 앞을 막는다.
"하 장군(何將軍)님 지금 궁(황皇宮)으로 들어가셨다가는 큰일 납니다. 환관(宦官) 건석(蹇碩)이 장군님을 살해(殺害)하려고 황명(皇命)을 받아 입궐(入闕)하라는 거짓 명령(命令)을 내린 것입니다." 하진(何進)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며 수레를 집으로 돌리게 하였다.
내심(內心) 크게 분노(憤怒한 그는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모든 대신(大臣)들을 불러다가 이렇게 말했다.
"십상시(十常侍) 건석(蹇碩)이란 놈이 나를 죽이고 협(協) 황자(皇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冊封)할 음모(陰謀)를 꾸미고 있는 모양이니 세상에 그런 죽일 놈이 어디있소? 그러잖아도 십상시(十常侍)란 놈들이 평소(平素)에 작패(作悖)가 극심(極甚)하여 백성(百姓)들의 원성(怨聲)을 사고 있으니 이 기회(機會)에 그놈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려고 하는데 경(卿)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 하진(何進)의 말에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 벌어진 사태(事態)가 너무도 중대하기에 경솔(輕率)하게 찬부(贊否)를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말석에 앉아 있던 젊은 장군 하나가 가만히 일어나더니 하진(何進)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십상시(十常侍)들을 척결해야 한다는 것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황궁을 장악하고 있는 십상시(十常侍)들의 세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장군께서 섣불리 손을 쓰셨다가는 오히려 화를 당하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는 젊은 장군은 전군 교위 조조(典軍 校尉 曺操)였다.
하진(何進)의 지위에서 보면 보잘것없는 일개 장군에 불과하므로 그는 노기를 띠며,
"닥쳐라! 너 같은 풋내기 호반이 무엇을 안다고 황궁 대사에 주둥이를 놀리느냐!" 하며 호통을 질렀다. 마침 그때 사마 반은 이 급보를 가지고 달려왔다.
영제(靈帝)가 방금 세상을 떠났으므로 건석이 다른 십상시(十常侍)들과 공모하여 거짓 조칙(詔勅)을 꾸며 하진(何進) 장군을 황궁으로 불러들여 후한이 없도록 죽여 버린 뒤에 황자 협을 황제에 앉혀 놓고 나랏일을 자기들 손으로 주무르려 한다는 것이었다.
하진(何進)은 그 소리를 듣고 노발대발하였다.
"십상시(十常侍) 놈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하진(何進) 장군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그 자리에 있던 문무백관들의 얼굴은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적인 격동을 눈앞에 두고 그들은 자신의 거취에 대한 걱정으로 모두 참담한 심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정의 양대 세력인 하진(何進)과 십상시(十常侍)가 정면으로 대결하여 세력을 저마다 잡아 보려로 하고 있으니, 한나라 사백 여 년의 천하가 망조에 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대신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는데 사마 반은의 밀고대로 조정에서 칙사가 왔다. 천자께서 지금 임종을 앞두고 하진(何進) 장군에게 황실의 후사를 부탁하는 분부가 계실 것이니 급히 입궐하라는 조칙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하진(何進)은 즉석에서 조서를 가지고 온 칙사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십상시(十常侍)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야 한다!" 하고 대신들에게 단언하였다.
그러자 조금 전에 책망을 들은 조조가 다시 일어서며 이렇게 말한다.
"장군님! 만약 이번 일을 단호하게 결행하실 생각이시라면 먼저 새로운 황제를 모시고 나서 그놈들을 쳐부수도록 하십시오."
하진(何進)은 그 소리에는 수긍되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 나와 함께 황궁으로 들어가 대사를 도모할 사람은 없는가?"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한 사람이 성큼 일어서며 대답한다.
"장군님! 저에게 정병 오천 명만 주시면 장군님을 모시고 황궁으로 들어가 신황(新皇)을 옹립한 뒤 환관의 무리를 모조리 없애겠습니다."
이렇게 소리쳐 말한 사람은 사도교위 원소(司徒校尉 袁紹)였다. 그는 사도 원봉(司徒 袁逢)의 아들로서 일찍부터 이름높은 장수(將帥)였던 것이다.
"좋다! 그대는 나를 따르라!"
하진(何進)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원소(袁紹)는 즉시 갑옷을 갖춰 입고 도성(都城) 수비대(守備隊) 오천 명을 거느리고 황궁(皇宮)으로 행하였다.
삼국지 - 28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