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11절에 언급하고 있는 다섯 종류의 사역자 중 마지막에 언급하고 있는 교사(didaskalos)의 직무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이 단어를 단순한 교사로 이해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목사와 교사는 우리 교회 안에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한 직임이었기 때문에 별로 깊이 관찰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와 선지자는 초대 교회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런 사역자들로 알고 있고 교회가 질서가 잡히고 공교회의 틀이 형성된 이후 이 사역들은 자연스럽게 목회자에게 흡수되었다고 보아왔던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선교사나 부흥사로 이해되고 교사는 주일학교 교사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서 이런 이해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제기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이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안수 받은 목회자가 이 다섯 부분의 역할을 모두 떠맡는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일인 오역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한 가지 일을 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이런 다섯 가지를 다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지요. 그리고 성경은 분명히 이 다섯 가지를 각각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들 다섯 가지 직임을 언급하면서 "어떤 사람은"이라고 개별적인 지칭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이렇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 직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지요. 부분적으로 한 두 가지는 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직무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며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주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직무를 주심은 이 세상의 학문과 지식을 쫓아가는 것을 피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게 하기 위함이지요.
교사는 이런 의미에서 주일 학교 교사와는 비교될 수 없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주일학교 교사는 책을 통해서 배운 성경적 지식과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하지만 성령이 세우시는 교사는 성경지식은 물론 성령의 은혜로 얻은 지식과 경륜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얻은 지식과 경륜이란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얻어진다는 점에서 교사로 세워지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지식의 말씀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사는 성경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가르침을 받는 사람의 영적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언적인 능력을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게 지금의 영적 상태와 그에 따라서 다가올 영적 변화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사의 목적이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상태에 따라서 적절한 가르침을 주고 그에 맞게 대비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입니다. 영적 가르침은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자신의 행동을 교정 받고 그런 다음에 일어날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도록 지시하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에 따라 일어나는 변화와 하나님의 기대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일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들마다 상황이 다르고 영적 상태가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향한 의도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일률적으로 도식화하여 지도하는 것은 세속적인 방법이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르치는 교사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의 영적 수준에 맞는 가르침과 그에 따라 발생할 것들을 정확히 예측하고 지시하는 것이 가르치는 자의 몫입니다.
영적 교사는 무엇보다 배움을 받는 제자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즉 지식의 말씀이 없이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교리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지도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입니다. 이런 교사를 통해서 제자들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 가운데 특별하게 소명에 관한 것을 잘 아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사역자는 교사의 직무를 받은 것이지요. 이들이 해야 할 일이 제자들을 바르게 세우는 일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교회에는 이런 교사가 부족하여 수많은 사역자들이 어려운 사역에 매달리고 있지요. 교사는 제자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주님으로부터 부여 받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도 정확하게 압니다. 이런 교사를 통해서 교육을 받으면 큰 어려움 없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교육할 때 그 모든 제자들이 어려운 시험의 과정을 다 지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올바르게 교육 받아 제대로 헌신할 수 있다면 굳이 어렵고 고통스런 훈련을 겪게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최소한의 훈련은 통과해야 하지요. 모세가 40년의 광야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생명이 120년이라는 장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7~80에 죽을 사람이라면 그런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훈련 받다 세월이 다 가고 말지 않겠습니까? 오랫동안 훈련시키는 사람에게는 그럴 까닭이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역자가 모세처럼 되기 보다는 여호수아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교육을 받아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역에 필요한 최소한의 훈련으로 그 과정을 통과하기 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제자들을 세우는 일을 하는 직임이 교사인 것입니다.
교사는 우선 성령님과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경험이 풍성해야 합니다. 많은 경험은 여러 가지 다양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영적 경험이 풍부하지 못하면 그 폭이 자연적으로 좁아지고 좁은 폭을 가진 교사로부터 배운 사람은 자연히 사역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사로 세워질 사람은 많은 경험을 거치게 됩니다. 고난의 굴레와 시험을 통과하여야 온전한 교사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사는 제자들을 대신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어려운 삶을 살게 되고 거친 광야의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사는 영적 경험이 다른 사역자들보다 깊고 넓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경험을 넓게 하는 것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맡겨질 많은 제자들에게 풍성한 지식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교사는 성령님이 세우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책임을 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는 수준에 맞을 때까지 가혹한 영적 훈련을 거치게 됩니다. 이 부분은 5중 사역자들에 모두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교사의 가르침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제시한 말에 대해서 하나님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없다면 그는 거짓 교사이거나 미숙한 교사일 것입니다. 교사가 영적인 모든 분야에 대해서 골고루 깊은 지식과 경험을 소유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소모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어차피 어떤 분야에 집중하게 됩니다. 어느 한 부분에 강력한 지식과 경험을 소유하게 되며, 그런 부분에서 헌신하게 될 제자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여러 분의 교사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강력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교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여러 명의 교사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되면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 과목별로 전공한 교사가 따로 있듯이 이렇게 전문화된 교사가 있는 교회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고린도 교회는 이런 능력이 넘쳐나는 교회이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혼란을 겪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직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일인의 과도한 집중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 보다는 목회자의 지식과 경륜에 의지하는 교회가 다수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태도에 따라서 교회가 부흥하기도 하고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교사로 세워진 사람을 우리 교회가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교사가 제 위치에 있지 못함으로써 능력 있고 영성이 풍성한 제자들이 길러지지 못하고 학문적 지식으로만 가득한 사역자들이 판을 치는 교회가 되어 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내고 있고 교회는 급속히 세속화하며 세상에 대해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는 5중 사역이 회복되는 시기입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 강력한 능력과 담력으로 무장한 신실한 종들이 나와 거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말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친 시대보다 어쩌면 더 힘들고 어려운 영적 싸움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진정으로 자기 위치를 깨닫고 그 위치에 맞게 헌신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소망합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각종 은사를 가진 사역자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교사들로 채워진 그런 교회가 온전한 교회입니다. 목회자 일인에게만 편중된 모순된 교회를 언제까지 유지하려고 합니까? 목회자 한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 그런 불합리하고 비 성경적인 교회를 이제는 보다 온전한 것에 가까운 교회로 대치해야 할 것입니다. 5중 사역의 직임이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합니다.
( 장봉운 목사님 글에서 )
http://cafe.godpeople.com/healinghouse - 장봉운목사님카폐
http://theme.godpeople.com/theme/15109 - 손기철장로님 말씀치유집회
첫댓글 ( 로마서 12장 )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고린도전서 12장 )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에베소서 4장 )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