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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삿 7:9-18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삿 7:9-18 / 그날 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미디안의 진지로 내려가 보아라. 내가 이미 네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다. 10)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네 부하인 부라를 데리고 내려가 보아라. 11)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말을 하는지 엿들어 보아라.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듣고 나면 네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은 부하인 부라를 데리고 미디안 군대가 진치고 있는 진지로 내려갔다. 12) 내려가 보니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쪽의 사막에서 온 사람이 진을 치고 있는데, 마치 메뚜기 떼가 온 땅을 뒤덮고 있는 것처럼 넓은 평원을 뒤덮고 있는게 아닌가! 또 낙타 떼도 얼마나 많은지 바닷가에 널려 있는 모래알처럼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13) 어쨌든 기드온은 미디안 진영을 지키고 있는 초소 부근으로 가까이 다가갔는데, 그곳을 지키고 서 있던 두 사람이 서로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이보게, 내가 엊저녁에 꿈을 꾸었다네' `그래, 무슨 꿈인가?' `글쎄, 꿈에 말이지 보리떡 한 덩어리가 산에서 우리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닌가! 그런데 어떤 천막 가까이로 굴러 들어오더니만 그 천막을 내리덮쳐 와르르 무너뜨리는 게 아닌가!' 14)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동료가 이렇게 해몽하였다. `그래, 그 꿈은 다른 꿈이 아닐세.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이들 기드온이란 자의 칼날을 말하는 것일세. 우리는 이제 싸움에서 졌네. 신이 우리 미디안 군대와 그 밖의 모든 군대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군 그래' 15) [기드온을 돕는 하나님] 기드온은 미디안 보초들이 주고 받던 꿈이야기와 그 해몽을 듣고 나자 꿇어 엎드려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고 이스라엘 진지로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자, 쳐들어가자. 하나님께서 우리 원수 미디안 군대를 이미 우리 손에 넘겨 주셨다. 이 싸움은 이미 우리가 이긴 싸움이다.' 16) 기드온은 가려 뽑은 300명 민병대를 세 부대로 나누었다. 그러고나서 각 사람에게 신호용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게 하였다. 그 빈 항아리 속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는 17)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자, 이제부터 우리가 모두 저 원수들의 진지로 내려가 그 진지를 완전히 에워싸자. 각 부대가 각자 위치대로 다가간 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유의해서 보아야 한다. 내가 먼저 신호를 보낼 테니 내가 하는 대로만 따라 하여라. 18) 다시 한 번 말해 둔다. 나와 나를 따르는 부대에서 먼저 신호용 나팔을 불면 너희 각부대도 저 원수들의 진지 사변에서 그 나팔을 불어라. 그러고는 이렇게 소리 질러라.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비록 미디안의 병사들보다 이스라엘의 병사들의 수가 현격히 적으나, 기드온의 군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공격을 명령하시고 미디안 병사의 꿈을 통해 승리를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공격 명령과 꿈을 통한 계시(9-14)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나타나십니다. 급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드온이 두려워해서인지, 더 지체했다가는 남은 300명마저 기세가 무너질 것 같아서였는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급하게 찾아오셨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너무 두려우면 부하 부라와 함께 내려가도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웠던지 부하 부라와 함께 내려간 기드온은 메뚜기 떼와 같고 바다의 모래알처럼 많은 적군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꾸는 자를 준비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기드온의 칼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치고 쓰러지게 할 것이라고 계시합니다(14).
기드온의 격려와 작전 실행(15-18)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던 밤, 두려움에 술 통에 들어갔던 기드온이었습니다. 이와같은 겁쟁이 기드온이 적진의 수가 메뚜기 떼와 같이 많은 것을 직접 보고 두려워할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꿈꾸는 자를 준비시키시고 기드온을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가 전장에 나갈 군인들을 격려합니다. 그리고 300명의 군사를 세 대로 나누고, 나팔과 횃불을 감춘 항아리를 들고 야간 기습 공격을 계획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니 두려워 숨었던 겁쟁이가 용사가 된 것입니다. 보통 용사가 아닌 지략을 겸비한 용장이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면 두렵지만, 하나님을 보면 누구나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적용: 오늘 만날 일과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메뚜기 떼와 바다의 모래알 같은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요, 아니면 용기와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볼 것인가요?
두려움 그 자체든, 두려워하는 대상이든, 회피할수록 두려움은 더욱 강해집니다. 뒤에 무언가 무시무시한 것이 숨어 있을 것만 같던 그 공포의 다락문이나 벽장문을 기억하나요? 두려움에 외면할수록 문은 더욱 열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떤 두려움이건, 사랑이나 진실에 대한 두려움이건,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건, 누구나 몇 번이고 이런 선택 앞에 놓입니다. 혼자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다가올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두려움을 내려놓게 된다면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 설 교 >
거룩한 전쟁(Holy war)
삿 7장 9~14절 / 김윤기목사
이슬람 말로 ‘지하드를’ ‘성전(聖戰)’즉 거룩한 전쟁이라고 번역합니다. 이 싸움은 ‘오른손에는 검, 왼손에는 코란’이라고도 표현되듯, 옛날부터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약탈전쟁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반드시 공격적 성격만을 띠는 것은 아니고 평화를 갈망하는 이슬람교도가 위기에 처하여 부득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방위적 성격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년이 된 모든 남자 이슬람교도는 지하드에 참가할 의무가 있다고 이슬람교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참가자에게는 전리품의 분배가, 순교자에게는 천국이 약속된다고 합니다.
후세인은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대 국민 연설에서 "신앙의 중심지에 대해 침략자들이 행하고 있는 공격은 종교와 부, 명예, 영혼에 대한 공격이며, 이슬람의 영토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세인 대통령은 "그러므로 성전은 그들에 대한 의무"라며 "순교한 자들은 천국 에서 보상받을 것이다. 형제들이여 기회를 잡아라"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성경은 이 성전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본문을 통해 조명해보면서 성전의 승리의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성전(聖戰)의 개념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역사의 주권자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을 수행하실 때 직접하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인간생활에 그 영향을 미치는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전쟁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들어 악한 자를 멸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직접적 명령에 의해 수행케하시는 전쟁을 거룩한 전쟁(성전)이라고 합니다.
본문 앞장인 6장에서 해방전쟁의 주인공이 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바로 기드온 자신임을 천사를 통해 들었을 때(삿6:11), 기드온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겁이 나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이기에 그런 큰일을 할것이며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있습니까?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고 보급도 없나이다. 이때 하나님은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성경 가운데는 하나님이 직접 전쟁을 명령하는 거룩한 전쟁이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가나안 정복 과정과 사사시대에 특히 두드러지며 후기로 갈수록 성전적 의미보다는 징계적 의미가 강해집니다. 그러면 성전의 승리 방법은
Ⅰ. 여호와의 명령대로 수행해야 합니다.
1)거룩한 전쟁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럴 때 명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속히 수행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앞에 있는 삿7:1-8에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이 미디안의 군대(13만5천명)와 싸울 때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의 32,000명의 군대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떠는자 22,000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0,000명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시험하여 보냅니다.
2)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의 조심성을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명령하십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목마를 때 무릎을 꿇고 마시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전쟁 시에는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는 적이 뒤에서 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제력이나 조심성이 결여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는 주위를 경계하는 조심성과 자제력과 군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입니다. 기드온은 이런 사람 300명을 선발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착실히 수행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고 자신의 임의대로 하지 않는 전쟁이 거룩한 전쟁 즉 성전입니다.
3)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적진을 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두려우면 부하를 데리고 적의 동정을 살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은 그대로 수행하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수행했습니다.
Ⅱ.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재가를 받아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전쟁을 벌일 때가 있습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 전쟁 등을 해야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재가를 받아야 합니다. 삼상17:47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그 수행에 있어서 뿐 아니라 준비에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여호와께 의존해야 합니다. 거룩한 전쟁은 하나님의 재가를 받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찬성하시는 전잰만이 승리가 보장됩니다.
이에 대한 재가의 방법은 전쟁 당사자가 ①꿈 ②우림 ③에봇 ④선지자의 예언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물어 결정을 합니다(삿7:9-14, 삼상28:6, 30:7, 삼하5:19-23).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삿7:9에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1] 다윗은 삼상16장에서 삼하 12장까지에서 전쟁을 15회 이상합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재가를 6회 받습니다. ①삼상23:2 ②삼상23:4 ③삼상23:9-12 ④삼상30:7-8 ⑤삼하5:19 ⑥삼하5:23이렇게 다윗이 전쟁 전에 한나님의 뜻을 묻고 그대로 실천하여 전쟁에 승리를 했습니다.
[예2] 제1차 십자군전쟁(1096-1270)의 일입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는데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은 교황 우르반 2세와 은둔자 베드로 였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순례 여행을 하던 중 성묘교회에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에서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성지를 정화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프랑스, 스페인, 라인강등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십자군을 호소하여(1095)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예3] 십자군들이 안디옥을 포위하는 작전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당시 십자군은 식량이 거의 다 떨어진데다 도망병들이 속출하였으므로 오히려 포위당한 측이 보다 풍부한 식량을 보유한 실정이었습니다. 이 때에 어떤 자가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렀던 성창이 안디옥에 묻혀 있다는 환상을 보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그 인물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지점을 파내려간 끝에 실제로 성창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창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렀던 성창이라고 믿었던 십자군들은 원정을 계속하기로 하였습니다. 성창을 발견한 인물의 지시에 따라 5일간 금식과 기도 끝에 이들은 숫적으로 훨씬 우세한 터어키군을 향해 돌진하였습니다. 이들의 군기는 성창이었으며 그 기세가 무척 용맹하였기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한 터키군은 패퇴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군은 승리했습니다.
[예4]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1339-1453)이 있습니다. 1412년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을 시작한 지 73년째 되는 해 프랑스 동부 동레미라는 마을에서 잔 다르크라는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몹시 쾌활하고 명랑한 소녀로 자랐습니다. 13살 되던 해 여름, 그녀는 천사들의 합창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어 천사장 미카엘이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를 지켜라, 잔. 오를레앙을 구하거라” 그러나 태어나서 한번도 자기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시골소녀인 잔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의 소리는 그 후로도 몇 차례 들려왔습니다. “잔 왜 망설이느냐? 그것이 너의 사명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녀는 드디어 결심을 하고 근처에 사는 기사 보르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왕세자 샤를의 충실한 부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잔을 만난 보르리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가엾게도 머리가 돈 모양이군. 어서 끌고 나가거라” 고 했습니다만 그러나 잔 다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쟁에 나가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습니다.
오직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쟁을 하고 자신의 임의대로 하지 않는 전쟁이 거룩한 전쟁이 됩니다.
3. 성전 수행자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 신뢰와 성실한 헌신으로 해야 합니다.
성전 수행의 주체가 여호와입니다. 성전은 선저포고에서부터(출17:16, 민31:3) 여호와가 능동적으로 참여하십니다.
1)그러나 이런 사람은 성전을 참여하는 무사로서 결격사유가 됩니다.
①겁을 내는자 ②갓 결혼한자 ③경제적으로 집안 걱정에 사로 잡혀 있는 자입니다(신20:5-9). 결격의 이유는 즐거이 헌신했던 다른 용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단결심을 깨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삿5:2).
2)성전수행 하는 자는 다른 성역과 같이 의식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①배설물은 진영밖에 묻어야 합니다.(신23:12,13)
②몽설함으로 부정케 된 자도 진 밖에서 1일 동안 머물러 세정의식을 행해야합니다(신10:11).
③여인을 가까이 했던 사람이 진중에 들어가는 것도 금지 했습니다.
그래서 분문 앞절의 삿7:1-8절에서 “겁을 내는자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자로 보았습니다. 삿7:3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2만 2천 명이었습니다.
미디안의 13만 5천명 대 기드온의 3백명의 싸움은 게임이 안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성전의 수행자의 힘은 약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나갈 때 하나님은 승리를 보장해주시고 기필코 승리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Ⅳ. 성전의식에 충실했을 때 항상 승리했습니다.
신20:4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 구원하시는자’로 규정합니다. 즉 성전의 주체는 여호와이며 수행자는 이스라엘이고, 상대자는 이스라엘의 대적입니다. 여기서 성전은 전적으로 여호와에 의해 수행되는 ‘여호와의 싸움’(삼상18:17)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단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순종하는 가운데 군대 앞에서 전투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좇아 갈 뿐입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성전이 수행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십니다. 따라서 비록 성전의 수행자의 힘은 약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담대해야 합니다. 골리앗을 이긴 다윗과(삼상17:41-47) 단독으로 블레셋을 공격했던 요나단은 바로 그러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삼상14장)
하나님 뜻을 이루려는 성전의 수행자들이 성전의식에 충실했을 때 항상 승리를 획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목적을 상실하고 인간적 정복욕에 사로잡혔을 때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또한 성경에 언급된 전쟁의 규례에서, 성전은 목적에서 뿐만 아니라 그 수행 과정에 있어서도 거룩함을 견지해야만 최후의 승리자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맨 앞의 예화에서 성전이라고 말하지만 만우절에 어서 무모한 살생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꾸며 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는 세상 끝날까지 마귀와 더불어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딤후2:3). 하나님의 명령대로 싸워 승리하시는 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입니다
사사기 7:12-18 / 최응희목사
사사기를 읽다가 보면 다섯 개의 과정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새 약속, 둘째 하나님을 거역, 셋째 하나님의 징계, 넷째 회개와 간구, 다섯째 하나님의 용서와 해결. 하나님께서 이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우신 사람이 사사(士師/Judges)였습니다. 사사는 공동번역에서는 ‘판관’(判官)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은 부족국가의 형태를 가졌을 시기에 정치적, 군사적으로 통치자의 역할도 감당하였고,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재판관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종교지도자의 역할까지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사기에는 대체로 13명의 사사가 나옵니다. 그 사사들 가운데 큰 일을 했던 유명한 사사는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 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우리는 기드온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오늘 사사기의 본문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이라는 이방민족에게 억압받는 생활을 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때 므낫세 가문에 ‘기드온’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그는 힘이 센 장사였습니다(사사기6:12). 그러나 아무리 힘이 세고 용감하다 하여도 거대한 미디안의 세력 앞에서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지금 동굴 속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타작을 하다가는 모두 빼앗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하고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계속 고통이 겹치는지, 어려움이 겹치는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옛날 조상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과 이적으로 조상들을 인도하여 내셨다는데 그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 것인가? 홍해를 가르시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신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오늘 우리의 이 창피하고 비참한 현실을 왜 돌아보시지 않는 것인가! 기드온은 마치 기도와 같이 이러한 생각들로 매일 매일을 보내면서도 현실은 현실인지라 숨어서 곡식을 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이런 간절한 믿음을 보셨습니다. 어느 날 천사를 보내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사사기 6:14
기드온은 자신은 그런 사명을 감당할 인물이 못된다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의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로 하자 뜻을 같이 하는 32,000명의 병사들이 모여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숫자가 많다고 돌려보내라 하셨습니다. 기가 막힌 말씀이었지만 순종합니다. 결국은 300명의 사람만 남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냥 몇 천년 전에 기드온이 300용사를 데리고 승리했었대... 그렇게 이 말씀을 읽는다면 우리는 동화를 읽고 있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오늘 읽어야 하는 이유는 기드온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300명을 가지고 135,000명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때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도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네 환경이 열악하고 내 앞에 닥친 문제는 135,000명의 미디안 군대처럼 복잡하고 어렵고 힘들고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이요, 너 가진 것은 300명 군사 밖에 없지만, 네가 정말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너를 이기게 하실 것이다. 그 음성을 들으라고 이 말씀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기드온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갔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나는 300용사 밖에 없고, 나는 부족하지만,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135,000의 미디안 군대를 이길 수 있다. 그것이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말씀속에서 이 메시지가 여러분에게 들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이들의 승리는 칼과 창으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300명 용사들에게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1. 이들은 보리떡 군사였습니다.
기드온 군사의 별명은 보리떡 군사입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을 준비하는 중에 미디안 진영으로 정탐을 나갔습니다. 한 밤중 교대하는 미디안의 두 보초병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사사기 7:14
기드온은 이 보리떡 꿈 얘기를 듣고 하나님께서 자기 손에 미디안을 주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그 밤에 출정하여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어떻게 135,000의 미디안 대군(사사기8:10)을 300명의 기드온 용사들이 이길 수 있었나? 하나님은 때때로 그렇게 일하십니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라고 강력한 메시지를 주십니다. 숫자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보리떡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시면 보리떡처럼 보잘것없는 것으로도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꼬마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300명으로 135,000을 이깁니다. 기드온 300명의 군사의 의미는 너는 보리떡이지만 믿음으로 승리하리라.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보리떡은 보잘것없음의 상징입니다. 보잘것없는 보리떡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벳세다 들녘에서 한 어린아이가 예수님께 드린 떡이 보리떡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보잘것없는 보리떡이 주님 손에 들려 졌을 때, 오 천 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 남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보리떡을 들어 쓰십니다. 아니면 보리떡이 되게 하여 들어 쓰십니다. 모세를 들어 쓰실 때 광야의 40년을 통해서 그가 보리떡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을 들어 쓰실 때, 애굽의 종살이를 통해서 보리떡이 되게 하신 후에 들어 쓰셨습니다. 바울을 들어 쓰실 때에 다메섹에서 꺾으시고, 아라비아 사막의 3년을 통해서 보리떡이 되게 하신 후에 들어 쓰셨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보리떡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하나 그 시대에 이렇다 할 지위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는 보리떡 열 두개가 굴러 나와 예루살렘을 뒤흔들더니 급기야는 대 제국 로마를 흔들고, 오늘날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약할 그 때에 곧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설의 진리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역설의 진리 위에 서시기 바랍니다. 내가 보리떡 되면 하나님이 나를 높이시고, 무릎꿇어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면 보리떡 같은 나를 들어 강하게 하시고, 내가 보리떡 되어 나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나의 모자람도 풍성케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보리떡의 의미입니다.
2. 이들은 빛의 군사였습니다.
기드온 군사의 또 다른 별명은 빛의 군사입니다. 기드온의 용사들은 횃불을 항아리에 숨겨 가지고 적진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의 나팔 소리에 맞추어서 동시에 항아리를 깨뜨리면서 횃불을 높이 들었습니다. 칠흑 같던 미디안의 진중에 갑자기 항아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 불빛이 비추이면서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미디안 군대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사방으로 도망치고, 서로 싸우고 하여 크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기드온의 용사들은 빛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들의 무기는 빛이었습니다. 횃불의 빛은 항아리가 깨어질 때 밖으로 힘차게 뻗어 나왔습니다. 깨지는 항아리에서 빛이 나오고, 깨지는 옥합 속에서 향기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게 깨어져야 할 항아리는 없는 것인가? 내 굳은 껍질이 하나님의 빛을 가리우지는 않는가? 하나님 앞에서 항아리 깨지는 소리로 세상을 놀래키고,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옛 사람이 깨지는 소리, 거짓된 자아가 깨어지는 소리, 이기심이 깨지는 소리, 교만이 깨지는 소리. 변화의 소리, 믿음의 소리, 그리고 그 껍질이 깨어짐으로 믿음의 빛이 높이 드러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 이들은 나팔의 군사였습니다.
기드온의 용사들의 별명 또 하나는 나팔의 군사였습니다.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적진으로 향했습니다. 한 밤중 미디안 군대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300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나팔을 입에 대고, 있는 힘을 다 하여 힘차게 불었습니다. 본래 나팔수는 천 명당 한 명으로 배치가 된다고 합니다. 300개의 나팔은 30만명의 군대를 의미하는 소리였습니다. 미디안 대군도 한 밤중의 이 나팔소리에 모두 싸울 의욕을 잃고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나팔에 대해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들어야 할 나팔--말씀, 올려야 할 나팔--기도, 불어야 할 나팔--복음. 여기 기드온의 나팔이 바로 불어야 할 나팔입니다. 복음의 나팔입니다. 나팔불기 참 어렵습니다. 아무나 불수 없습니다. 얼굴 벌개져야 겨우 소리 나옵니다. 그래도 복음의 나팔 우리가 불어야 합니다. 이 나팔은 내 영혼을 깨우고, 세상을 깨우고, 죄악을 물리치는 나팔입니다. 나팔로 내 영혼을 깨우고, 나팔로 세상을 깨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보리떡 같은 기드온을 들으셔서 이스라엘의 용사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들으셔서 횃불 높이 비추게 하시고, 나팔 소리높이 불게 하시어 복음의 큰 역사를 이루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네 항아리를 깨뜨려라
삿 7장 15~23절 / 박조준목사
본문은 이스라엘의 사사 기드온 때에 있었던 감격적인 한 장면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약속한 땅을 얻었지마는 위대한 종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강력한 지도력의 부족으로 여러 가지 혼란을 가져온 때도 있었습니다. 사사시대의 정확한 존속 기간은 분명하지 않으나 대개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400여년으로 보 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끊임없이 근접한 나라에 의하여 도전을 받아 왔습니다. 사사 기드온 때만 하더라도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때문에 7년간이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굴에 몸을 숨기고 구멍을 파고 식량을 간수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괴롭힘을 당하곤 하였습니 다.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께서는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을 부르신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어 려운 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기드온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었 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님께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 표적 을 분명히 보여주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는 약속을 받고 기드온은 힘을 얻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미디안 군대와 싸우러 나선 기드온을 따라 수만의 사람이 하롯샘 곁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불러 너를 좇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내가 오히려 그들의 손에 미디 안을 붙이지 않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오히려 나를 거슬려 자긍하기를 우리 손이 우리를 구원하였다. 생각할까 한다. 그러니 미디안과 싸우기 위하여 장병을 선발해야겠는데 우선 싸움 에 나서기를 두려워 떠는 사람이 있으면 아예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라 그래서 그때 돌아간 사 람이 22,000명이고 남은 사람이 10,0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다시 말씀하셨 습니다.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으로 내려가서 물을 마시게 하는 것으로 시 험하라. 물을 마실 때에 개의 핥는 것처럼 그 혀로 물을 핥아먹는 자를 따로 세우고 또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따로 세우고 물을 손으로 움켜쥐고 마시는 자를 따로 세우라 고 했는데, 만 여명 가운데 물을 손에 움켜쥐고 마시는 사람이 300명 뿐이고 대개는 개처럼 물에 입을 대고 핥아먹거나 무릎을 꿇고 마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드온의 군대의 자격을 봅니다. 그들은 조심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 을 손에 움켜쥐고 사방을 둘러보며 물을 마셨습니다. 적이야 오던 말던 물부터 마셔야겠다고 개처럼 물에 입을 대고 핥아먹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군인은 언제나 군인으로서의 정 신무장이 필요합니다. 조심성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요? 적군은 항상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 : 8-9).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 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셨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마 24 : 42-43) 적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언제나 조심하고 깨어 예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사이 남과 북이 대담하는 기회를 만들었다고 해서 어떤 이는 통일이 문턱에 이른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지각없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 도의 군대인 우리 그리스도인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극기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전쟁터에 나와 있 는 저들은 자신의 위치를 자신을 깨닫고 절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본능이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능대로만 살면 그것은 짐승이지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주님을 따르는 생활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생활입니다.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 우리는 보통 부를 추구합니다. 우리 주님은 부하셨으나 우리를 부하게 하시기 위해서 가난해 지셨습니다. 우리는 편한 것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 일 곳이 있지마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환영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들에게 배척과 싫어버림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상하셨고 우리의 잘못 때문에 매를 맞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는 온전히 다른 사람 중심을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 관념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을 마시라니까 그저 엎디어 무한정하고 개처 럼 핥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무릎을 꿇고 옆도 보지도 않고 시간이 오는지 가는지 알지 못하고 물을 마신 것이 아닙니다. 시간에 대한 관념이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물을 마셔야만 하 는 것을 아는 저희들은 한가하게 그러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가 아니라 적과 대진해서 싸우는 마당에 시간은 돈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바쁜 세상입니까? 한가히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요사이 우리 나라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우리 나라의 대학이 문을 닫고 당분간 쉴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퍽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 젊은 대학생들은 부지런히 공부해야 합니다. 한가히 다방에 앉아서 잡담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 시간 을 아껴야 합니다. 왜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윈스턴 처칠 경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보다 효과있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시간을 속량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드온이 군대는 어떤 자세였습니까? 첫째로 저희들은 단결하였습니다. 미디안의 연 합군은 수가 많았습니다. 사사기 7장 11절에 보니 기드온이 부하 부라를 데리고 부대가 있는 곳에 정탐을 가보니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 기의 중다함 같고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았다 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의 군 대는 300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단결하였습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뭉쳤습니다. 여 기에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기드온의 군대는 기드온의 명령 하에 하나로 뭉쳐서 싸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대한 민국이 처하여 있는 이때는 우리 겨레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를 노리는 적은 어떻게 하든지 민심을 소란하게 하 고 국가의 안정을 교란케하여 곳곳에서 불만과 불평을 하게 하며 결국 소위 인민 봉기를 일으 키려고까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유언비어에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가 되는 일에 교회가 본이 되어야 이 민족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뭉쳐야 삽니다. 우리가 하나되는데 방해가 되는 어떤 요소라도 과감히 잘라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두려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담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기드온 장군이 앞에 있으니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담대하게 진격하였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진격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여러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 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 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사망으로 우겨쌈 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그 까닭은 능력이 심히 크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후 4 : 7-9)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는 무서 워 아니합니다.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입니까? (히 13 : 6)어린애가 아버지의 손에 붙 들려 갈 때면 어디를 가나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갓난애가 어머니 품에만 있으면 마음 놓고 잡니다.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도 주님만 따라가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싸움터에 나가갈 때 무서운 생각부터 나면 그 싸움엔 반드시 집니다. 그리스도의 군대는 담대해야 합니다. 셋째로 기드온의 군대는 목적이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의 종 기 드온을 위하여 싸운 것입니다. 어느 개인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의 군대의 자세입니다.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 14 : 9)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 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 : 31). 우리의 생각이 다소 다르고 주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생각과 주장을 한 곳에 모을 때 위대한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나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나 하 는 데로 생각을 모아야 주님의 교회도 이루어져 나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1 -22절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신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였습니다. 기드온의 군대는 어떻게 싸웠습니까? 이 본문에 보면 그들의 손에는 무슨 특별한 무기가 없 었습니다. 손마다 나팔과 항아리 그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하는 군인 에게 적합하지 않은 무기처럼 생각됩니다. 기드온은 300명 군인을 세 대로 나눠서 100명씩 하 여 미디안 군대를 포위하고 기드온의 명령에 의해서 일제히 나팔을 크게 불고 항아리를 깨뜨려 항아리 속에 있던 횃불이 일시에 빛을 발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온 적군이 혼비백산하여 동무 끼리 서로 칼로 치며 도망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속시원한 일입니다.나팔, 그것 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팔을 크게 불어야 합니다. 가급적 일제히 불어야 합니다. 전국 복음화 운동을 일으킨 이유도 전군 신자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팔(복음의)을 불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물어야 합 니다. 이것은 우리 대장 예수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우리 60만 전군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수고하시는 군목들을 기억하며 그 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로 총회에서 군목주일 로 정하여 하루 지키게 됩니다. 일선 고지에까지 나아가 하나 하나의 장병을 찾아다니며 복음의 나팔을 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나팔을 열심히 불어 지금 60만 가운데 20만이 넘는 우리 국군이 세례교인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입니까? 우리는 군목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고 협조해 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의 군대는 나팔만 분 것이 아닙니다.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그때 항아리 속 에 있던 횃불이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항아리를 깨드리는 것은 희생과 봉사와 헌신을 의미 합니다. 항아리 자체에 큰 값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온전히 주님을 위하여 깨뜨릴 때 빛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온전히 저희의 생을 바친 예 수님을 이하여는 죽기까지 준비가 되어 있은 몇 사람의 젊은이로 말미암아 미움으로 가득찬 세 상에 나가서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서가 아니 었습니다. 비록 적은 무리요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정말 보잘것없은 사람들이었지마는 참으 로 주님께 몸바친 사람들이 나아갈 때 어두움의 세상을 빛으로 밝힐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약 성경을 펴보세요. 기독교에 대한 말씀을 할 때 나오는 말은 명사가 아니고 동 사입니다. 싸운다 고난 당한다 일한다 이와 같은 동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제 자들로 하여금 초대 교회를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심한 고난을 받아야 하 는 군인으로서 신약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 세상에서 오래 살는지 알 수 없습니 다.
1년, 2년, 5년, 10년 오래 되지 못합니다. 어차피 한 번은 깨어지고 말 항아리와 같은 몸 들입니다. 이 몸을 온전히 주님을 위하여 바칠 마음은 없으십니까? 일사의 각오를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그리스도의 군대에 입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대장 주님은 네 항아리를 깨뜨리라 고 명하십니다. 내 항아리를 깨뜨릴 각오를 하고 나선 사람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내 항아리를 깨드리려고 나선 분이 누구십니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삿 7장 15~23절 / 박조준목사
지난 주일 청년 기드온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사실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청년 주일을 당해서 우리 교회에서 자라나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과 어떻게 역사하시나 하는 것을 생각하는 가운데 축복이 되시기를 바 랍니다. 청년 기드온이 훌륭했던 점은 그에게 위임된 사명에 대해서 조금도 지체하거나 연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한 일이라고 인정되는 일이 있을 때는 다음으로 미 루지 아니하고 당장에 행합니다. 왜냐하면 내게 다시 그 기회가 주어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 니다. 의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우리의 마음을 정하기를 망설 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여러모로 계산을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과 내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전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쟁을 준비하는 일에 회피하 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이번 전쟁에 이겨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싸워야만 했습니다. 싸 워야 할 적군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서 전략만 짜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는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적군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 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꼭 믿고 나아갈 참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튿날 새벽 하롯 샘가에 비정규 군인 3만 2천명을 모았습니다. 이미 미디안 군대는 모레산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무 런 훈련도 받지 못한 기드온의 군사들에게 큰 위협을 느끼게 해주는 무서운 모습이었습니다. 기드온의 가장 뛰어난 정예부대조차도 말이나 병기는 고사하고 나귀 한 마리도 갖고 있지 못 한 형편이었습니다.기드온의 군대는 미디안의 군대의 병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열세였습니다. 기드온의 부대원들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적군들에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겁을 먹고 있었 습니다. 그들은 거의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다 예상하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자기에게 직면한 위험만을 생 각하게 됩니다. 이때 기드온에게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군대가 너무 많다. 기드온은 너무 놀라서, 너무 많다고요? 그렇다, 이처럼 많은 군대로는 미디안을 쳐부수지 못하도록 하겠다. 아마 저희가 이기면 자기네 수와 용맹이 이긴 것으로 착각 할는지 몰라. 그러니까 겁이 나서 그러는 사람은 아예 집으로 돌려보내라. 기드온은 거기에 대 해서 반론을 펴지 않았습니다.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령관인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지체없이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싸움에 나가기가 조금이라도 두려운 사람이 있으면 집으로 돌아가라! 아마 인류의 전쟁 역사 중에 이처럼 이상한 명령을 한 지휘관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 기드온에게 있어서는 말할 수 없는 고민의 순간이었습니다. 충성된 마음으로 무기를 잡 았던 사람들 몇몇이 중얼거리며 친구들을 위로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움직임이 다른데로 퍼져 나가자 제일가는 군인들이 무더기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서 2만 2천의 군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만 2천명 가운데 2만 2천명이 빠져나가서 모두가 다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루아침에 기드온은 자기 군대의 3분의 2를 잃었습니다. 아마 다른 장군 같으면 떠나는 사람 들을 다시 불렀을 것입니다. 기드온 앞에 남은 군인은 만 명의 훈련도 안된 군대였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욱 신뢰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것이 바로 기드온의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언제라도 즉각적으로 망설임 없이 따르려고 하는 사람만이 자기 앞에 놓인 길과 그 길의 방향을 확신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면서 앞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어둠 속에 서 있는 것만 같고 우리의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가고 이 상하게 생각합니다. 왠지 아세요? 하나님이 주신 빛을 따라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5분만 충성하면 우리 스스로 생각하느라고 한 달을 머뭇거리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하고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견해는 우리의 것과는 전혀 타협해 볼 수 없을 만큼 특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열어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우리의 인간적인 방법을 버리고 그분의 전략대로 움직일 것을 바라고 계십니 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조그만 두려움, 자신의 성공에 대한 얄팍한 자부심, 우리 스스로의 일에 대해 자 기 중심적인 결단을 내림으로써 우리는 자기의 기술과 경험 그리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 땅에 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안간힘을 쓰면서 지친 나머지 무엇이 잘못되었을 까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 남아 있는 만 명도 너무 많다! 여러분, 그때 이스라엘을 둘러 진치고 있는 미디안 족 아말렉인과 베두인 족이 얼마였는지 아 십니까? 무려 13만 5천명이었습니다. 본래 모였던 3만 2천의 군대를 가지고도 대항하기 힘든 숫 자였습니다. 이제 만 명이 남아서 한 사람이 열 네 명을 당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런데도 하 나님은 아직 너무 많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용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를 의심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령관이 되셔서 이 무거운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정예부대를 뽑아주실 것을 꼭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기준은 우리들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역사를 위해 뽑으신 사람들 은 대개가 우리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분의 뜻을 이뤄드릴 만한 정직한 영혼을 가진 사람, 자신을 온전히 드리 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시 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 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군대를 선택하는 일이 끝났을 때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청년 300명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인원수 비율로 보면 1대 450이란 어이없는 비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군인 하나가 450명의 적군을 물리쳐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갈멜산에서 벌린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과도 같았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450명의 거짓 선지자들 과 생명을 내걸고 대결했던 것입니다. 그 비율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와 함께 하시 기만 하면 지극히 적은 무리로도 많은 무리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믿는데는 참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원하시는 점입 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존귀케 하십니다. 기드온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하나 님은 기드온의 중심에서 위대한 면을 발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을 저버리 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를 살피시며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단지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과 그 시기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렀습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을 너희 손에 붙이셨다. 이것은 승리 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이 음성은 기드온의 300명 용사를 용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마 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기드온은 이 300명 군대에게 매 사람마다 빈 항아리 하나씩을 갖도록 명 령했습니다. 각 사람마다 오른 손에는 나팔을 들도록 했습니다. 항아리 외에 불붙는 횃불을 그 안에 숨기고 오른 손에 산양 뿔나팔을 든 기드온의 300 군사는 허리띠에 날선 검을 찼습니다. 기드온은 명령했습니다. 너희는 내 명령을 기다리라.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해야 한다. 적들 의 야영지를 포위하여 삼면에서 나오면서 내 주위 사람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한꺼번에 나팔을 분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외치라. 하나님과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말이다. 횃불을 들고 기습하는 것이 유목민인 적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수 있으며 그들이 금기로 여기 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그들은 미디안 군대의 진을 둘러쌌습니다. 얼마 안 있어 301개의 전쟁 나팔 소리의 진동하는 소리가 밤공기를 뚫고 울려 퍼 졌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놀래서 기드온의 군대가 부대 안까지 침입해 온 것으로 알았습니다. 유목 민족은 서로 믿지 않는 성품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찔러 죽였습니다.
기드온의 군대 는 가슴속에 있는 힘을 다 내어 목이 부어오르도록, 혈관의 피가 끓어오르도록 소리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갑자기 더 놀라운 소리가 밤공기를 울렸습니다. 300개의 항아리가 일시에 깨지니 무서운 소리 가 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맑은 밤 공기를 타고 횃불이 불꽃으로 번졌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혼비백산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찔러 죽이고 놀란 낙타들이 달아나면서 사나운 발길로 사람을 짓 밟아 버리고 넘어진 사람을 깔아 버리고 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고함을 지르며 비명 을 올리며 마구 칼을 휘둘러 삽시간에 미디안 군 진지는 피바다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풍 지박산이 난 미디안 군대는 어둠 속에서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기드온 군대의 승리에서 우리는 오늘의 생활에서 적용되는 몇 가지 진리를 배 웁니다. 첫째로, 기드온이 승리를 확신한 후 미디안을 향하여 대항하는 전쟁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탁상공론(卓上空論) 하지 않고 그는 묵묵히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이것은 심오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때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드온은 실천의 사람이었습 니다.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알았습니다. 그 리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도구를 찾으려 하지 않았 습니다. 흙으로 구운 항아리, 집에서 만든 횃불 그리고 수양의 뿔로 된 흔히 목동이 쓰는 나팔 같은 일용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 가지고 일하라고 하십니다.
특별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일하게 하십니다. 애굽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것은 모세의 손에 들린 목자들이 쓰는 막대기였습니다. 온 이 스라엘이 벌벌 떨던 골리앗을 죽여 블레셋을 물리치게 해준 것도 놀라운 무기가 아니라 그저 다 윗이 베들레헴 들에게 양을 칠 때 사용하는 다윗의 손에 들린 물매와 미끄러운 돌멩이였습니다. 굶주린 수천 명의 군중을 먹인 것이 어디에서 차로 음식을 운반해온 것이 아니라 이름없는 어린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과 물고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필요한 장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그것을 내게 맡겨라. 내가 그것을 가지고 수많은 백성을 축복하도록 하겠다 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들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고 그냥 봐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생을 통해 역사하시기 를 원하고 계십니다. 둘째로, 자기 임무를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기드온은 평안히 앉아 명령이나 내리는 사령관은 아니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사령탑에서 지시 나 내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하와 똑같은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최일선 에서 자신이 돌격하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공격하는 일에 선두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 를 최전선에 걸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거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습니다. 우리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향해서도 아버지 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보 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영적인 지도자는 누구든지 죄와 사탄과 자신과 싸우는 성도의 하나로 서지 않는다면 제대로 쓰임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도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 는 명성이나 특권의 상아탑 속에 들어앉아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찢기고 상한 심령들 의 무리 속에 직접 뛰어들어야 할 것입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이 싸움에서 보여준 행동에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테니슨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문제는 왜 가 아니라 행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을 것이냐 하는 절박한 문제 인 것입니다. 이 300명의 군대에게는 기드온의 경우처럼 하나님을 보거나 알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의아해 하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조용히 믿음으로 전선에 나아갔습 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더구나 훌륭한 일은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맡은 자리에서 명령받은 그 대로 자기의 임무를 지켰습니다. 그 결과 이토록 놀라운 승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도자로 택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기드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범인에게도 각자가 해내야 할 역할과 맡겨진 임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 에선 교사나 성가대원이나 구역 권찰이나 전도회 회원이나 제직원이나 당회원이 될 수 있습니 다. 사회에선 의사나 교수나 사업하는 분이나 정치하는 분이나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일을 맡아 있습니다. 어떤 직분이든지 다른 분들의 정성어린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우리의 의무는 나팔을 부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횃불을 높이 드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외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다른 것 말고 내가 가진 재능,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물질, 내가 가진 기회, 내가 맡은 책임을 통해서 이 사명 다 하십시다. 반드시 우리에게 놀라운 승리를 안겨주실 줄 믿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삿07장 15~23절 / 박조준목사
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청년 기드온의 전적인 순종, 전적인 신뢰, 전적인 헌신을 통한 승리를 배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청년 기드온이 훌륭했 던 점은 그들에게 위임된 사명에 대해 조금도 지체하거나 연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 다. 성 어거스틴이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선한 일이라고 인정 되는 일이 있을 때는 다음으로 미루지 아니하고 당장에 행합니다. 왜냐 하면 내게 다 시 그 기회가 주어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우리의 마음 정하기를 망설이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가지고 여러모로 계산을 해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과 내기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 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으로부터 전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라 할 때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반드시 이번 전쟁에는 이겨야만 했습니다. 반드시 그는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싸워야 할 적군들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전략만 짜 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적군이 강 하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약속을 꼭 믿고 힘차게 나아갈 참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튿날 새벽 하롯샘가에 비정규 군인 삼만 이천명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 운명이 문자그대로 풍 전등화와 같이 되었을 때 내 민족, 내 나라를 건져야 된다는 강력한 호소에 감동 받 은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이미 미디안 군대는 모레산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한 기드온의 군사들에 게는 이것이 큰 위협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습니다. 기드온의 가장 뛰어난 정예 부 대조차도 말이나 병기는 고사하고 나귀 한 마리도 갖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기드온의 군대는 미디안 군대의 병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세이었습니다. 기드온 부대원중에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적군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겁을 먹고, 떨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의 절망에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려워하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번 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삼만 이천명이 되기는 하지 만 적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이 개미떼처럼 많은데 우리가 어떻게 저들을 대항해 나간 다는 말인가. 더구나 우리는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하고 그저 마음의 뜨거움 하나 가 지고 나선 것뿐이고 저들은 많은 훈련을 받고 훌륭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군인들인데 어떻게 대항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두려운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조차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자기에게 직면한 위험 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드온에게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기드온아! 네! 이 군대 가 너무 많다. 기드온은 너무 놀랐습니다. 아니 너무 많다니요? 그렇다. 이처럼 많은 군대로는 미디안을 쳐부수지 못하도록 하겠다. 아마 저희가 이기게 되면 자기의 수와 용맹이 이긴 것으로 착각할는지 몰라서 그러니 겁이 나는 사람은 사람이 있으면 아예 미리 집으로 돌려보내라. 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거기에 대해서 반론을 펴지 않았습 니다. 우리보다 저 미디안 군대가 많은데 여기서 돌려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맥이 빠져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령관인 하나님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지체없이 그는 부하들을 향하여 명령을 내렸습니다. 너희는 들으라! 너희 가운데 싸움에 나가는데 두려운 사람이 있으면, 겁나는 사람이 있으면 아예 집으로 돌아가라. 세상에 어느 지 휘관, 사령관치고 싸우겠다고 나온 군인들을 향해 무서운 사람 있으면 돌아가라 는 명령을 내린 사령관을 본 적이 있습니까. 기드온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드온은 이렇게 말은 했지만 고민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충성된 마음 가지고 나라 를 지키기 위해서 나섰던 사람들 몇이 중얼거리면서 친구들을 위로하고 집으로 발길 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움직임이 다른 데로 퍼져 나가자 군인들이 무더기 로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얼결에 뜨거운 마음 가지고 나왔었는데 정작 싸 움에 나서자니 저 군대가 많은데 저 사람들에게 죽으면 어떡하나 겁이 났었는데 잘 되었다 너는 안 갈래 너는 안 갈래 그러면서 충동질 해 가지고 돌아가는데 술술 빠져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빠져 나가는고 하니 삼만 이천명 중에 이만 이천명이 빠져 나갔 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른 볼 때 다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더구나 기드온 앞 에 남은 군인 역시 만명뿐이었는데 이 사람 역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기드온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 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드온의 성공의 비결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언제나 즉각적으로 망설임 없이 따르려고 하는 사람만이 자기 앞 에 놓인 길과 그 길의 방향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하면서도 앞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왜 이렇게 어두움 속에 서 있는 것만 같고, 우리의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가 하고 이상하 게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빛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 입니다.여러분 하나님께 5분만 더 충성하게 되면 우리 스스로 생각하느라고 한참을 머뭇 거리고 고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 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방법하고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견해는 우리의 것과 전혀 타협해 볼 수 없을 만큼 특이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믿음에 문을 열어 하나님의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우리 인간적인 방법을 다 버리고 그 분의 전략대로 움직일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가 많지가 못합니다. 여기 인간의 실패가 있고, 비극이 있는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조그만 두려움, 자신의 성공에 대한 얄팍한 자부심, 우리 스 스로의 일에 대해 자기 중심적인 결단을 내리므로 우리는 자기의 기술과 경험 그리고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법을 쓰면서 지나친 나머지 무엇이 그릇 되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또 하 나님께서 기드온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아!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이 많다. 여러분, 그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 진치고 있는 미디안족 아말렉 사람과 베두인족이 얼마나 되었는지 아십니까. 무려 십삼만 오천명이었습니다. 본래 있던 삼만 이천명의 군대를 가지고도 대항하기 힘들 정도의 숫자였습니다. 이제 만명만 남아 있는데 한 사람이 열 명을 감당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도 너무 많다고 말 씀하십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용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 다.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를 의심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령관이 되셔서 이 무거운 사명을 감당해 낼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꼭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기준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 뽑 으신 사람들은 대개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 를 보시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 드릴 만한 정직한 영혼을 가진 사람,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고린도 전서 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 를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 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 들을 폐하려 하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군대를 선택하는 일이 끝났을 때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청년 300명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인 원수를 비교하면 1:450이라는 어이없는 비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군대 한 사람이 450명의 적군을 물리쳐야 하는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갈 멜 산에서 벌린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과도 같았습니다. 엘리야는 혼자서 하 나님의 명에 따라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생명을 내걸고 대결했던 것입니다. 그 비 율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와 함께 하기만 하면 지극히 적은 무리를 가지고라도 많은 무 리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이것을 믿는데는 참된 믿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원하시는 바 입니다.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존귀케 하십니다. 기드온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중심에서 위대한 면을 발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을 절대로 절대로 저버리시지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시며 우리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단지 우리는 이런 하나 님의 역사하시는 방법과 그 시기를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렀 습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을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이것은 미리 승리를 알리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군대는 승리가 보장이 되어 있 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긴다는 사 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음성은 기드온의 300명 군사를 힘있게 만들었습니다. 확신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기드온은 이 300명 용사를 향하여 매 사람마다 빈 항아리 하나씩을 갖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항아리 안에 횃불 하나씨을 숨기도록 말했습니다. 각 사람마다 오른손에 는 나팔을 들게 했습니다. 항아리 안에 불붙는 횃불을 숨기고 오른손에는 수양 뿔나 팔을 든 기드온의 300명 군사는 허리에 칼을 찼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명령합니다. 너희는 내 명령을 기다리라. 내가 하는 대로 너희는 꼭 따라 하라. 적들의 야영지를 포위하여 삼면에서 나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 그대로 똑같이 맞추어 행동을 취 하여야 한다. 우리는 한꺼번에 나팔을 불 것이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과 기드온의 칼이여라고 외치라 고 했습니다. 횃불을 들고 기습하는 것이 유목민인 적들 을 공포에 몰아 넣을 수 있으며 그들이 금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기드온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유목민들은 횃불을 보게 되면 정신이 나가고, 미치고, 무서워서 도망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그들은 미디안 군대의 진을 다 둘러 쌓습니다. 얼마 안 있어 300개의 전쟁 나팔 소리가 밤공기를 뚫고 울려 퍼졌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놀라서 기드온의 군대가 자기들 부대 안까지 침입해 온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 다. 유목 민족은 서로 믿지 않고 불신하는 성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서로서로 자기 들끼리 칼로 찔러 죽이기 시작합니다. 기드온의 군대는 가슴 속에 있는 힘을 다 내어 목이 부어 오르도록 혈관의 피가 끓어 오르도록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여 기드온의 칼이여 라고 외쳤습니다. 갑자기 놀라운 소리가 밤공기를 울렸습니다. 300 개의 항아리가 순간 한꺼번에 깨지면서 무서운 소리가 났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맑 은 밤공기를 타고 횃불이 불꽃처럼 환하게 비춰지게 되었습니다.미디안 군대는 그대 로 혼비백산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찔러 죽이고 놀란 낙타들은 달아나면서 사나운 발 길로 사람들을 짓밟아 버리고 넘어진 사람들을 깔아 버리고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 들은 고함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며 마구 칼을 휘둘러 삽시간에 미디안 군대 진 안은 피바다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풍지박산이 난 미디안 군대는 어둠 속으로 다 도망 쳐 버리게 되고 기드온의 300명 군대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기드온의 군대의 승리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생활에 적용되는 진리를 배웁니 다. 첫째로 기드온은 승리를 확신한 후에 미디안을 향하여 대항하는 전쟁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탁상공론하지 아니하고 그는 묵묵히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이것은 심오 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때는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드온은 실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음성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는 자기 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특별한 도구를 찾으 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흙으로 구워 만든 항아리, 집에서 만든 횃불 그리고 수 양의 뿔로 된 흔히 목동이 쓰는 나팔 같은 일용 도구를 사용한 것뿐입니다. 그렇습니 다. 하나님은 언제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찾으십니다. 바로 그것 가지 고 일하라고 하십니다. 특별한 것, 이상한 것 가지고 하라고 하지 아니하십니다. 내 가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보십시오. 애굽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것은 모세의 손에 들려 있던 목자들이 쓰는 막대기였습니다. 지팡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 지만 그것으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지 않았습니까? 온 이스라엘이 벌벌 떨던 족장 골리앗을 죽여 블레셋을 물리치게 해 준 것도 놀라운 무기가 아니라 다윗이 베들레헴 들에서 양을 칠 때 사용하던 물매와 매끄러운 돌멩이였습니다. 굶주린 수천 명의 군 중을 먹인 것은 어디에서 차로 만든 음식을 운반해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름 없는 어떤 소년이 자기가 먹으려고 가지고 왔던 보리떡 다섯 덩이, 생선 두 마리를 사심없이 온전히 주님께 드렸더니 바로 그것을 가지고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바구 니가 남았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 손에 있는 것으로 드린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는 것도 그 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필요한 특별 한 장비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이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 냐 그것을 내게 맡기라는 말씀이십니다. 내가 그것을 가지고 많은 백성을 축복하겠다 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일상적이고도 평범 한 일들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거나 그냥 봐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의 조그맣고 보잘것 없어 보이는 그 생을 통해서 역사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 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나 자신이 볼 때는 보잘것 없어 보이고 아무런 가치가 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걸 온전히 주님께 드리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 를 행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의 임무를 충실하게 감당했습니다. 기드온은 가만히 앉아서 명령이나 내리는 사령관이 아니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사령탑에서 지시나 내리는 사람이 아니 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하와 꼭 같은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최일선에서 자기 자신이 돌격하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공격하는 일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최전선에 걸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거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습니 다. 우리 주님도 이 땅에 계실 때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향하 여 아버지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말씀하시면서 보라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약속했습니다.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영적인 지도자는 누구든지 죄와 사탄과 자신과 싸우는 성도의 하나로 서지 않 는다면 제대로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 지도자도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명 성이나 특권의 상아탑 속에 들어앉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오히려 찢기고 상한 심 령들의 무리 속에 직접 뛰어 들어야만 할 것입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이 싸움에서 보 여준 행동에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테니슨이 일찍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문제는 왜가 아니라 행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 면 죽을 것이냐 하는 절박한 문제에 있는 것입니다. 이변을 따질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 가지고 내가 어떻게 헌신하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 300명의 군대 에게는 기드온의 경우처럼 하나님을 보거나 알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는 것도 아 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의아해 하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조용히 상관의 명령에 따 라서 전선에 나갔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더구나 훌륭한 일은 모든 사람이 하나같 이 맡은 자리에서 임명받은 그대로 자기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이토록 놀 라운 승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도자로 택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기드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범인에게도 각자가 해 내야 할 역할과 맡겨진 임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가령 교회 에서는 성가대원이 될 수도 있고, 교사가 될 수도 있고, 구역 권찰이 될 수도 있고, 전도회회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의사나 교수, 사업하는 분이나 정치하는 분이나 여러 가지 방면에서 일을 맡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직분이든지 다른 분들 의 정성 어린 도움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의무는 나팔을 부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횃불을 높이 드 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 을 널리 외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줄 믿 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은 다릅니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 바로그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어느 신학교의 이사회에 참여했는데 어느 이사 중에 사업하는 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형편으로 계속 축복해 나가시어 이 사업이 계산대로 되면 자기 재산이 2000년대가 되는 십년 후에 돈으로 백오십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 하시면 자기 재산 중 50조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내놓을 계획을 가지고 기도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자기 재산을 털어 가지고 방을 내놓고 선교원을 짓는데 300억 원을 투자해 내년 말이면 모든 시설이 끝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천 년대에 50조 를 내놓게 되면 일년에 떨어지는 것이 5조가 된다고 합니다.
이 5조 원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내놓겠다고 합니다. 아마 이 자리에 않아 있는 분 가운데 그런 분은 없을 겁니다. 5천만원을 내려고 해도 어려울 줄 압니다. 하나님은 일년에 5조원을 내 놓는 사람도 찾지만 한 달에 5천원을 내놓는 사람도 찾습니다. 네 손에 있는게 뭐냐 많으냐 적으냐가 문제가 아니고 귀하냐 천하냐가 문제가 아니고 네 손에 가지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여러분 예배 순서 안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몇 가지를 적었습니다. 외국 선교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까요, 농어촌 교회를 돕는데 내가 무엇을 할까요, 방송 선교를 하는데 내가 무엇을 할까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을 돕는데 내가 무엇을 할까요, 많은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손에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을 하나님은 찾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으로 일하라. 다른 것 말 고 내가 가진 재능,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물질, 내가 가진 기회, 내가 맡은 책 임을 통해서 이 사명을 다 하십시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과 승 리를 안겨 주실 줄을 믿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오늘 아침 우리는 하나님의 젊은 종기드온의 전적인 순종, 전적인 신 뢰, 전적인 헌신을 통해서 놀라 운 승리와 축복을 얻은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네 손에 있는 것으로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지 못하고우리가 가진 것이 변변치 못하지만우리의 생명 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 모든 것할 수 있는 것으로하나님 앞에 드려서많은 열매 거두 게 해 주시고이 땅의 끝까지 주의 복음 전파하는데한 몫을 담당하게 하여 주시옵소 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을 위한 삼 백 명
삿 7장 15~23절 / 김춘섭목사
세계에는 다양한 교리와 신학적 입장을 가진 서로 다른 그리스도 교회들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되신 한 하나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교회로 나누어진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놓은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교 일치주일입니다. 같은 하나님 안에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나아가 할 수만 있다면 이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힘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중요한 내용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하나가 되는 일을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을 믿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분열은 쉽지만 연합하기는 힘이 듭니다. 인간이 한번 분열해 놓으면 다시 합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역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운 연합과 일치를 위한 노력을 하나님께서는 무척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 면에서 서로 다른 교파의 세 교회가 연합하여 이룬 우리 아름다운연합교회는 그 자체로 이미 소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을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소중한 역사를 잘 가꿔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복음의 어울리는 하모니로 한 목소리를 이루어, 분열로 점철된 교회의 어두운 역사를 밝히는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을 겸손하게 다짐하면서, 우리의 신앙 자세를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사람의 숫자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아니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숫자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한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숫자를 저는 3백 명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3백 명의 가져야 할 정신과 신앙을 이스라엘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 일했던 사사 기드온과 그의 3백 명의 군인에게서 배웁니다.
1. 기드온의 소명
이방 민족인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산에서 굴을 파고 숨어 지내기도 했습니다.(삿 6:1) 농사를 지어도 다 탈취해 갔고 가축도 그대로 끌고 갔기에 어려움을 대단했습니다. 이런 때에 기드온은 얻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가만히 타작을 하다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납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하면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을 칠 것을 명령합니다. 힘이 약하여 할 수 없다고 거절하던 기드온은 결국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결단의 기도를 드리며 마음에 평강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 살롬' 곧 '하나님은 평강이시다'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를 다짐한 기드온이었지만 바알신을 섬기는 미디안이 쳐들어오게 되자 확신이 서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놓고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땅에 없으면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줄 알겠다고 합니다. 이튿날 그것을 확인하였지만 다시 요청합니다. 이번에는 땅에는 이슬이 있고 양털에는 이슬이 없도록 해달라고 전날과 반대로 기도합니다. 그렇게 하여 확신이 선 후에 비로소 군대를 모집하게 됩니다. 확신이 서기까지는 두려워하였지만 일단 확신이 선 후에는 더 이상의 주저함이 없이 앞장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합니다.
전쟁을 위하여 군대를 모집했는데 처음 3만2천 명이 모였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10만이 넘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군사가 너무 많으므로 숫자를 줄이라고 합니다. 너희들의 손으로 구원 얻었다고 교만해질 수 있으니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는 길르앗 산에서 돌아가라"(3절)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1만 명이 남게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두려움에 빠질 수 있는 자 3만 2천 명보다 용기로 뭉친 1만 명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1만 명도 하나님 편에서는 많았습니다.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4절)고 하십니다. 산위에서 내려온 그들은 목이 말랐기에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5절)고 하셨습니다. 물을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마신 자의 수가 삼 백 명이었습니다.
2. 선택된 3백 명
이 삼 백 명은 세 단계를 통과한 자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3만 2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응답한 자들이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나라를 구해야겠다고 나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 한 몸 보태야 한다는 각오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그러나 그 믿음만으로는 안 됩니다. 감정적인 결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한 목숨 바쳐 조국을 구하겠다고 하였더라도 어려움이 닥치면 두려움과 함께 쉽게 식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려워서 돌아간 2만 2천 명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향한 담대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요단강을 앞에 둔 여호수아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말며 놀라지 말라"(수 1:9)고 하였습니다. 위기가 올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믿으며 담대할 수 있는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두려움 없는 용기에 또 하나를 추가 시켜야 합니다. 남은 1만 명 중 9천 7백 명이 불합격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른 목을 축이다가 군인의 본분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언제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긴장을 풀고 있다가 목적의식을 잊어버린 그들은 합당한 자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믿음과 용기와 함께 늘 깨어서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은 3백 명만이 하나님의 정예 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련에 대항할 믿음이 있습니까? 어려운 위기임을 알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떨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까? 마른 목을 축이는 것 때문에 잠시라도 하나님나라의 목적을 잊어버리지는 않습니까?
3. 하나의 목적을 가진 3 부대
이렇게 모인 3백 명으로 10만이 넘는 미디안을 치러갑니다. 3백 명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들을 1백 명씩 3개의 부대로 나누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또 한 손에는 횃불을 감춘 빈 항아리를 들게 하고는 산 위에 세웁니다. 보초병의 교대시간에 맞추어 신호에 따라 일제히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오른 손에는 나팔을 불면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군인이 자기 진까지 들어온 줄을 안 미디안 군인들은 자기편끼리 죽이게 됨으로 스스로 패하였고, 칼 하나 쓰지 않는 기상천외의 방법으로 기드온의 3백 명은 승전고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목적을 위한 분명한 믿음과 두려움 없는 용기와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늘 깨어 있는 3백 명의 정예군인, 거기에 좋은 작전이 첨가되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기드온의 군대는 3백 명으로 넉넉하게 역사의 한 부분을 감당하였습니다. 세 편으로 나누었지만 세상을 향하여 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분명한 복음선포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불을 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마 5:14-16)는 말씀 그대로 입니다.
이번 가을심방은 세 목사가 셋으로 나누어서 각 가정을 다녔습니다. 몇 년 전에는 각자의 교회에서 자기 교인들에게만 하던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어울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것이 아니라 당연해졌습니다. 하나의 공통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내년 봄에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시 세 목사들이 함께 각 가정을 심방하려 합니다. 그런 생각과 다짐을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연합을 통하여 더 열심히 선교하고, 하나되는 일을 세상에 전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뚜렷한 목적이 결코 흐려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한 기드온의 3백 명이 되게 하옵소서. 3백 명이 필요합니다. 이 정도는 있어야 우리가 역사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낙오됨이나 빠짐이 없이 이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이번의 전도 운동은 그런 일꾼을 모으는 기회가 되게 하옵소서."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성이 멸망했고, 단 한 사람의 의인이 없어서 예루살렘이 망했습니다.(렘 5:1) 포스딕은 "세계의 희망은 소수인에 달려 있다"고 했고, 토인비는 "역사의 위기는 언제나 창조적인 소수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분열로 치닫고 있는 세상의 역사에 그리스도 교회도 한몫 거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역사적인 사명을 결코 잊지 마십시다. 오늘 우리에게 이 창조적인 소수의 사명이 있습니다. 기드온의 3백 용사를 구하는 일이 놓여 있습니다.
가장 고귀한 그릇
삿 7장 15~18절 / 피종진목사
본문에 보면 미디안 연합군 135,000명과 기드온 용사 300명이 전쟁을 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 7:12에 보면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대적의 위협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저들과 싸울 군사를 모집하게 했습니다. 한 순간에 삼만 이천명이라고 하는 군사가 모집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다시 길르앗 산에 모아놓고 외쳤습니다. 그 중에서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삿 7:3)고 했더니 이만 이천명이 돌아가고 일만명이 남았습니다. 그 수를 가지고 접전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이 수도 많다. 저 시냇가에 가서 물을 먹이는데 손으로 물을 떠서 핥듯이 마시는 자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삿 7:4,5)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적을 향해서 보면서 물을 손으로 움켜서 마신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남은 수를 세어보니 3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통해서 그들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한 손에는 나팔을 들고, 한 손에는 빈 항아리를 들되 그 안에 횃불을 감추게 하고 밤중에 300명을 세 대로 나누어서 미디안 적진을 향하여 진격하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선봉자가 되어서 자신과 그를 좇은 사람들이 먼저 나팔을 불면 진 사면에서 일제히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하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미디안 군대는 이스라엘 대군이 진격해 온 줄로 착각하고 갈팡질팡 도망하며 자기들끼리 칼로 서로 치다가 다 멸절되고 기드온 용사의 승리로 싸움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이 항아리는 보잘것없고 깨어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가장 고귀한 그릇은
첫째, 불을 담은 그릇입니다.
“삼백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16절) 성령의 불이 있는 그릇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회개를 통하여 자아를 죽이고 깨어질 때 성령의 불을 받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많은 이론, 경험, 환경도 필요하지만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능력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역사해주셔야 됩니다. ‘주여, 성령의 불을 내게 주시옵소서’ 성령은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함께 하십니다. 성령과 더불어 생각하고, 성령과 더불어 말하고, 성령과 더불어 행동한다면 반드시 좋은 일들이 있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일은 마치 기름 없는 자동차가 달려가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없는 곳에는 생명 없는 조화와 같이 의미가 없고 향기도 없고 열매도 없습니다.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는 것도 성령으로는 다 됩니다(슥 4:6).
하나님은 비록 무능하고 어리석고 둔하고, 경험 없고 환경 여건도 나쁘고, 보잘것없고 아무 흠모할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불을 주셔서 하나님을 위하여 크게 들어 쓰십니다. 예를 들면 기드온과 옷니엘, 드보라 사사 그리고 이사야, 예레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선지자 등입니다. 부족하지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게 하여주신 은혜를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만나를 담은 그릇입니다.
이사야 22:24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해주시는데, “각 작은 그릇 곧 종지로부터 항아리까지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담아서 법궤 안에까지 들어가게 했는데, 이 만나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질그릇 같아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이 없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생명의 말씀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시험했지만 예수님은 신명기에 있는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신앙의 기초와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했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면 그 말씀이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워주고 성장시켜 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으면 강퍅하고 교만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육성이 영성으로 사로잡혀서 말 속에도 은혜가 있고, 행동 속에도 덕과 열매가 있게 되며, 삶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배할 때 우리의 생각과 취미, 성품, 인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향을 담은 그릇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 8:3) 기도하는 성도, 기도하는 직분자를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아무리 직분을 크게 받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인간의 이론만 전개합니다. 인간의 이론을 전개해서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참으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튜핸리는 ‘기도는 신앙의 유모’라고 말했습니다. 기도가 살아있다면 신앙이 점점 장성하게 됩니다. 기도가 없으면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기도의 부르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채워주기 위해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고 말씀했습니다. 100가지 이론보다도 한마디 기도가 더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의 기도는 태양과 달을 멈추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수 10:12,13)
마가복음 11:24에 보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기도하고 구했으면 그대로 될 줄 믿어야 합니다. 농촌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비가 너무 오지 않으니까 목사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는데 한 아이가 우산을 여러 개 준비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그 이유를 물은즉 비 오기를 위해서 기도하면 비가 올 테니까 비 올 때 사용하려고 가지고 간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되 응답받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중언부언하는 기도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생명있는 기도를 드려야 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기도입니다.
넷째, 순금같은 믿음의 그릇입니다.
“그가 또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출 37:17) 성전의 어떤 기물은 나무로 만들어서 금으로 싸게 한 것도 있지만 등대는 100% 순금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또 금그릇이 있고, 금대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금같은 믿음의 그릇을 고귀하게 쓰십니다.
순금은 약하고 부서지기 쉬운데 가장 귀하게 쓰입니다. 우리의 혈기, 분노, 교만이 깨어지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순금처럼 빛나게 쓰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변하면 안됩니다. 교회에서 집사는 시장에 가서도 집사요, 집에 가서도 집사요, 들에 가서도 집사라야 합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서는 집사, 부엌에 가면 밥사, 들에 가면 잡사인 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환경 따라 변하면 안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도 집사는 집사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 집사님 회사 근처에 지나가다가 기도해주고 싶어서 사무실에 들어가서 ‘집사님’ 하고 불렀더니, ‘집사’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펄쩍 뛰더랍니다. 12년 동안 근무하면서 옆에 있는 동료들이 집사로 알기는커녕 교회 다니는 줄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순금같은 신앙생활을 못했으면 그랬을까요? 우리는 항상 누가 언제 어디에서 보더라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을 담은 그릇과 같이 성령의 불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만나를 담은 그릇과 같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되며, 향을 담은 그릇같이 항상 기도하는 성도가 되고, 순금같은 믿음의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고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항아리를 깨뜨리라
삿 7장 13~23절 / 김영준목사
전쟁은 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기지 못할 전쟁은 하면 안됩니다.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외교를 통해야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자기의 일만 군사로 저 이만으로 오는 자를 이길 수 있을지를 먼저 헤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이길 수가 없다면 사신을 통해서 화친을 청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승산이 없을 때는 타협이라도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데에 뜻이 있지 않느냐, 그건 지는 사람이나 하는 변명입니다.
이차대전 미군 지휘관이었던 조지 패튼은 ‘조국을 위해 죽겠습니다.’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쟁은 조국을 위하여 죽음으로써 이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적군으로 하여금 자기 조국을 위하여 죽게 함으로써 이기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운동경기도 마찬가지에요. 운동경기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사람은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이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그 말은 경주에서 이기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으니 너희도 이기기 위해서 경주하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참여하는데 뜻이 있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됩니까? 그것은 민망하지 말라고 지어낸 변명일 뿐입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적어도 자기 나라에서 일등을 했기 때문에 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나라에서 최고인 선수를 내보내고 예선을 치르고 거기에 이겼기 때문에 올림픽에 나가서 경주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 자체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도 자기 나라에서만큼은 일등을 해 본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애썼다고 상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열매를 보시고 상을 주십니다. 천국에는 애석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천국에는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노력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한다,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 버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좀 가혹하시지 않느냐,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열매를 맺으라고 나무를 심으십니다. 열매를 얻기 위하여 나무를 심으십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하나님이 심으신 목적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다가 멀리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열매가 있을까 하여 가까이 가셨는데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으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나무를 저주하셨지요. ‘다시는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먹지 못하리라’ 저주하셨더니 그 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버렸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좀 가혹하시지 않느냐, 그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맺기 때문에 무화과나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무화과나무가 아닌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 무화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은 강자를 칭송하고 약자를 무시하는 논리가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강자와 약자 논리가 왜 여기에 등장합니까. 강자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약자이기 때문에 전쟁에서 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비교했을 때 더 강자였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몸무게 체급별로 겨루게 돼 있지만 원래 유도의 원리는 몸집이 작은 사람이 몸집이 큰 사람을 넘어뜨리는 운동입니다. 그게 유도의 비결입니다. 그게 묘미입니다. 어떻게 몸집이 작은 사람이 자기보다 몸집 큰 사람을 넘어뜨리느냐?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도의 ‘유’자는 ‘부드러울 柔’입니다. 부드러움을 통해서 나보다 강한 사람을 넘어뜨린다는 논리인데 이건 유도뿐만이 아니고 인생의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는 것은 자신이 강자이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케 되는 것이 그것이 비결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때로는 너무 당연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서 그것을 거부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궤변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