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나 생성형 GPT 등에 대해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요즈음이다. 그렇게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닌데도 그렇다. 엊그제 오픈 AI란 회사의 한 임원은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며 미국 정부가 투자액의 일정 지분에 대해 보증을 서야 한다고 말했다가 호된 역풍을 맞았다.
우리는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파멸적인 결말을 서둘러 따라가려는 것일까? 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메리 셀리 원작의 '프랑켄슈타인'이 넷플릭스에서 7일 공개돼 흥미롭게 감상했다.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 쉴새 없이 오가는데 어쩔 수 없이 셸리가 200년 전 예감했던 파멸의 예감을 델 토로는 AI를 새로운 크리처로 여겨 두려워함을 알 수 있다.
'헬보이',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크림슨 피크', '세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피노키오' 등을 연출하며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판타지 거장 델 토로는 NPR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성형 AI를 사용하기보다 차라리 죽겠다"고 말했다.
그는 "AI, 특히 생성형 AI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것"이라면서 "나는 61세인데, 죽을 때까지 AI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덧붙였다.
철학적 고찰이 화려한 미장센과 어우러지는데 균형감이 상당했다. 빅터 역의 오스카 아이작은 뒤틀린 천재를 실감나게 창조했고, 키 195cm로 압도적인 '크리처' 체격과 예민하고 섬세한 어린 아이 같은 감성을 완벽하게 연출해낸 제이콥 엘로디의 연기 앙상블이 빛났다.
몇 가지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주변의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쥐고 흔들려고 합니다. 폭군들이 그렇듯 피해자 행새를 즐기고요. 그나마 장점이라면 본인이 얼마나 잡스러운지 모른다는 겁니다."
동생의 약혼녀가 미행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고해 성소에 신부 대신 몰래 들어온 빅터를 놀리며 "마음으로 누군가를 증오하는데 기괴하고 소름끼치는 약혼남의 형"이라고 고해한 뒤 빅터를 묘사한 말이었다.
크리처가 지평선 위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스크린이 어두워지며 바이런 경의 싯구 '그리하여 마음은 부서질 것이나 부서진 채로 살아가리라'(and thus the heart will break, yet brokenly live on)가 떠오른다.
무엇보다 색감이 좋았다. 화려한 의상과 미술, 특수효과 등에 합격점을 주고 싶다. 그 중에서도 영화 전반에 고루 등장하는 북쪽 끝 어딘가의 얼음 바다가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이 바다는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앞선 영화들에서 그다지 강조되지 않았던 듯했다. 그래서 찾아보니 영국 BBC 기사에 답이 있었다.
이 프랑스 빙하는 지난 200년 동안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포함해 수많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림, 사진 및 현대 위성은 셸리가 매료됐던 뒤에 이 장소가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했는지 보여준다.
1800년대, 프랑스 알프스의 샤모니 마을 위에는 경외심과 약간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얼음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산길을 오르던 이들은 흰색, 진한 파란색, 청록색으로 이뤄진 황량한 얼음 바다를 마주했다. 탐방객들은 멈춰 선 것 같은 파도와 소용돌이의 급류와 비슷한 장면들을 묘사하곤 했다.
당시 많은 화가들이 이 얼음 바다를 그렸지만 가장 눈에 띄는 이미지 중 하나는 1850년대 촬영한 은판 사진이다. 작가 존 러스킨의 조수가 촬영했다.
이 장관은 몽블랑 대산괴에서 흘러내린 압축된 눈 덩어리인 메르 데 글라스(Mer de Glase) 빙하였다. 몇 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가장 큰 빙하로 남아 있으며 과학적으로 연구된 최초의 빙하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1800년대 중반 이후 2.5km 이상 크게 줄어들었고, 최근 방문하면 알 수 있듯 러스킨 사진을 찍은 지점에서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엄격한 배출 감축에도 불구하고 2050년까지 적어도 2km는 더 밀려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원격 감지나 지상 측정을 통해 추적된 많은 빙하 후퇴와 달리 메르 데 글라세는 그 변화가 회화, 사진 및 문학에 포착됐기 때문에 예외적이다.
가장 주목할 인물로는 젊은 셸리가 있다. 1816년에 작가는 이곳 빙하를 트레킹하며 빅터와 크리처의 대립과 긴장을 가장 극적으로 대비를 이룰 장소로 이곳을 선택하게 됐다.
메리와 동시대 사람들, 그 뒤 몇 년에 걸친 그림, 사진과 비교함으로써 한때 아름다웠던 이 얼음 바다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다. 1800년대 이 방하는 너무 커서 1820년대의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아래 샤모니 계곡의 정착지를 집어삼킬 듯 달려든다.
이 시기에는 유럽을 횡단하는 "그랜드 투어"가 유행이었고, 많은 화가와 작가가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알프스를 통과했다. 찰스 디킨스는 1847년에 방문한 후 샤모니 빙하와 다른 명소가 "가장 터무니없는 기대를 뛰어넘는다"고 썼다. "나는 자연에서 이보다 더 엄청나고 숭고한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지금 그것에 대해 글을 쓴다면 정말 열광해야 한다. 그런 엄청난 인상이 내 안에 가득해 있다."
화가 JMW 터너가 1802년에 왔을 때 메르 데 글라스를 아래처럼 그렸다.
그리고 1826년에 스위스 화가는 Refuge du Montenvers 호텔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며 러스킨 다게레오타이프와 같은 지점에서 아래 그림을 남겼다.
18세의 셸리(당시는 울스톤크래프트 고드윈)가 방문했을 때 얼음 바다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른바 여름이 없던 해인 1816년, 그녀는 이복 여동생 클레어 클레어몬트, 곧 남편이 될 시인 퍼시 셸리와 함께 이 빙하를 구경하러 왔다.
말을 타고 출발한 세 사람은 소나무와 눈 덮인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 현기증이 ㅇ나는 길을 탐색했다. 어느 순간 노새 한 마리가 미끄러져 계곡에 떨어질 뻔했다. 그들이 올라갈수록 풍경은 점점 더 황량하고 끔찍해졌고, 마침내 빙하 위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몬텐베르에 도착했다.
셸리는 일기에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황량한 곳 – 얼음 산이 둘러싸여 있다 – 우리가 그 장면을 보는 곳을 제외하고는 초목의 흔적이 없다"고 적었다. "얼음의 측면은 파란색으로 보이고 표면은 더러운 흰색으로 보이는 불규칙한 틈새가 있다."
파트너 퍼시도 비슷하게 충격을 받았다. 나중에 그는 "어지러운 경이로움의 진실한 장면"을 회상했다. 그리고 빙하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것이 "바다"라고 명명된 이유를 포착했다. "골짜기 자체는 기복이 심한 얼음 덩어리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서리가 갑자기 거대한 급류의 파도와 소용돌이를 묶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파도는 덩어리 표면에서 4m나 5m 높이로 올라가며, 덩어리 표면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틈이 교차하며, 그 측면의 얼음은 하늘보다 더 아름다운 푸른색이다."
이 여행은 나중에 부부의 문학에 영감을 줬다. 퍼시에게 알프스 풍경은 많은 이들이 연구한 1816년 시 몽블랑에 투영됐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한 장면에서 셸리는 자신의 캐릭터를 얼음 바다 표면에 배치했다.
1818년판 10장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위안을 찾아 샤모니를 방문한다. 크리처가 동생을 살해하고 비난을 받던 동생 약혼녀가 부당하게 처형된 후 죄책감에 시달린 과학자는 "끔찍하고 장엄한 자연"이 자신의 고통을 구제할 수 있기를 바라며 메르 데 글라스로 올라간다. 빙하를 가로질러 하이킹을 하면서 그는 빙하를 "험난한 바다의 파도처럼 솟아오르고, 낮게 내려가고, 깊숙이 가라앉는 균열이 산재해 있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대결을 위해 얼음 너머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크리처를 보고 그의 위안은 깨진다.
2023년 여름, 이 기사를 쓴 리처드 피셔 기자도 이곳을 찾았는데 기후 변화로 빙하가 후퇴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후퇴했는지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한때 소용돌이치는 크레바스의 바다가 있었던 계곡은 이제 가루 빙퇴석과 녹은 물방울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다. 빙하는 멀리 있는 산비탈의 곡선 뒤에 숨어 있어 거의 완벽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중에 나는 같은 몬텐베르 관점에서 찍은 이미지를 사용해 빙하의 후퇴를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전히 얼음 바다였다. 1926년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계곡에서 훨씬 낮은 곳에 위치해 크레바스가 적고 가루 빙퇴석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점점 빨라져 아래는 2014년의 빙하다.
2018년 아티스트 엠마 스티본은 아래와 같은 시아노타이프를 만들었다. 러스킨 다게레오타이프를 본 그녀는 스타일을 반영하는 이미지를 제작하고 그 이후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또 터너가 방문했을 때 묘사한 것과 동일한 풍경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라디오 다큐멘터리 제작에 힘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알프스 전역의 빙하에서 기록적으로 얼음이 사라진 2022년의 특히 더웠던 여름에 이어 2023년 여름에 방문했을 때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오늘날 빙하가 너무 후퇴해 빙하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면 2024년에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고 계곡으로 내려가야 한다. 과학자들은 다음 세기 빙하의 범위를 모델링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여름이 더워지면서 엄격한 배출량 감축에도 불구하고 2050년까지 2km 더 물러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1800년대 셸리가 방문했을 때부터 21세기 접어들기까지 줄어들었던 거리와 거의 같다. 최악의 시나리오 모델에서는 2099년에 완전히 사라진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배출 경로는 이제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간주된다.
셸리의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메르 드 글라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창조한 크리처를 망가뜨리면서작가 자신이 1816년에 만났을 숭고하고 고양된 장면을 묘사한다. "바다, 아니 오히려 광활한 얼음 강이 의존하는 산들 사이로 구불구불하고, 그 공중 정상은 그 움푹 들어간 곳에 매달려 있다. 얼음처럼 반짝이는 봉우리가 구름 너머로 햇빛에 빛났다. 전에는 슬픔에 잠겼던 내 마음이 이제는 기쁨 같은 것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메리가 오늘 살아서 빙하를 만났다면 그녀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기후 변화가 프랑스에서 가장 큰 빙하에 미친 영향이다. 얼음 바다가 아니라 엄청나게 인공적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