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회 지학순 상에 오충공 영화감독
제25회 지학순정의평화상 수상자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애쓴 오충공 영화감독을 선정했다.
재일 동포 2세인 오 감독은 지난 40년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학살된 곳을 찾아 만행을 당했거나 목격한 이들의 증언을 모아 영화를 만들었다.
1983년에 나온 '감춰진 손톱자국'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영상으로 처음 기록한 작품이다. 이어 1986년 두 번째 다큐 '불하된 조선인 – 관동대진재와 나라시노수용소'를 제작했다. 관동대지진 100년을 맞는 올해에도 새 작품 '1923 제노사이드, 100년의 침묵, 역사 부정'(가제)을 선보일 예정이다.
8일 기자회견에서 오충공 감독은 “일본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연구하는 학자, 추모하는 시민들과 함께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과 근대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역사학자 고 강덕상 선생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제25회 지학순정의평화상을 받은 오충공 감독. ⓒ배선영 기자
1923년 9월 일본 간토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10만 명이 넘게 사망했다. 당시 일본은 불안한 정세를 수습하기 위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했다’ 등의 헛소문을 퍼트렸고, 군인과 경찰, 자경단이 6600명 넘게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3년 첫 다큐가 나온 이후 오 감독이 아는 한 2200번이 넘게 상영됐다. 복지회관, 학교, 교회 등에서 상영했고, 80퍼센트는 일본에서 봤다. 그는 “영화를 보고 보내 온 감상문이 내 보물이다. 40년 전 초등학교 때 다큐를 본 사람이 지금은 50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6600명에서 1만 5000명이 희생됐다”며 일본 정부뿐 아니라 일본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지진으로 도쿄에 있는 신문사나 인쇄소는 무너졌지만, 지역 언론에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기사로 실려 이를 믿고 조선인을 살해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미해결’임을 강조하며,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본에 항의 공문을 보냈고,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0년이 됐다. 역대 정부 대통령 누구 하나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일본 정부에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인 희생자 650여 명의 명부는 있다. 이름도, 주소도, 나이도, 어디에서 죽었는지도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검문으로 조선인을 색출했는데, 일본말을 못 하거나 조선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일본말을 하도록 했고, 이때 조선인으로 오인해 중국인, 오키나와인 등도 살해됐다.
오 감독은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재일조선인의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역사”임 알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에 따르면 희생자 가운데는 지진이 일어난 그해 또는 1년 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말도 모르고 길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다큐를 찍으며 만난 이의 증언 내용이 너무 심하니까 처음엔 그조차도 믿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그림을 잘 그리는 한 목격자가 그림을 그려 보여 줬다. “놀랐어요. 하루는 (사람을) 바다에 던지고 다른 날에는 불에 던지고.... 그 할아버지는 지금도 꿈에 나온다고 했어요.”
1923년 당시 목격자가 그린 조선인이 학살당하는 모습. ⓒ배선영 기자
다큐에 나온 증언자들은 진실이 알려지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영화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연했다. 그는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 사실을 축소하려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 이 영화는 일본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영화를 보고) 자기 머리로 직접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희생자는 없는 사람이 된다며,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희생당했는지 아는 것이 반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대인 학살의 진상규명을 말한다고 해서 반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40년간 해 오니 정신적으로 힘들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돌아가신 강덕상 선생을 생각하고, 유족들을 만나면서 끝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진실을 알리는 일에)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10일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열리며, 11일에는 전진상센터에서 '불하된 조선인: 나라시노 수용소' 상영과 오충공 감독과 직접 대화하는 자리가 있을 예정이다.
지학순정의평화상은 2021년부터 시민들이 직접 추천하고 심사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지난해 9월 모집으로 전문 추천위원단 57명이 등록했고, 이들이 추천한 6개 단체를 대상으로 1차 투표를 진행했다. 이후 평화운동에 관심 있는 시민이면 누구든지 투표할 수 있는 2차 투표를 진행했고, 338명이 참여해 최종 수상자를 결정했다. 특히 올해부터 이 상의 정신을 지지하는 25개 평화, 인권 단체가 공동시상하기로 했고, 가톨릭농민회,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한베평화재단 등이 함께한다.
지학순정의평화상은 1970년대 불의에 저항하는 이들과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돕고,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양심선언’ 발표로 감옥에 갇혔던 지학순 주교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7년 만들어졌다. 여러 나라에서 정의와 평화,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과 단체에 상을 주면서 동아시아에서 인권, 평화운동에 관한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