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를 찾아서
이달 초순 강화도 농협에서는 속노랑 고구마 택배 신청이 한창이었습니다. 생육기의 장기 가뭄으로 작황이 안 좋았는데요. 직원에게 물동량을 물었더니 하루에 10킬로그램 들이 1,500상자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고구마 택배 시즌은 한 달 이상 이어집니다. 얼마 전 농협이 ‘요소수 품귀로 11월 9일부터 택배 운영 긴급 중지’라는 문자를 조합원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더니 이튿날 밤에는 ‘11일부터 택배 정상 운영’이라고 공지했죠. 택배 회사가 정상 가동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별별 경험을 다 시키더니 이제 농촌에도 요소수 대란이 밀려온 겁니다.
나는 요소를 비료로만 기억하고 요소수가 저공해 차량에 필수품임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요소수는 SCR(Selective Catalytic Reduction: 선택적 환원 촉매)장치를 갖춘 경유차의 배기가스인 질소산화물에 뿌려져 이를 질소와 물로 바꿔 공기를 정화해준다는 겁니다. 참 착하죠. 이 기술은 원래 화력발전소의 배기가스 처리에 쓰였던 것인데 2004년 일본의 니싼디젤공업이 세계 최초로 자동차에 적용해 실용화했습니다.
2000년에 2,000만 원 주고 산 싼타페 경유차 1세대는 주행거리가 10만 킬로미터를 넘자 엔진이 점점 요란해졌고, 배기가스와 냄새는 달리는 공장이 되어갔습니다. 왜 이렇게 배기가스가 많이 나오느냐 하고 묻자 카센터 직원은 고급 경유를 넣으라고 했습니다.
환경 감시원들이 고속도로 입구에서 배기통에 계기를 대고 매연을 측정할 때는 조마조마했죠. 적발되어 경고장을 받았고 때로는 몇 만 원의 과태료를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는 ‘자동차를 10년 타자’고 캠페인 하더니 악(惡)으로 바뀌어 당황했습니다. 검사 때마다 불안하여 카센터의 권고대로 엔진 밸브를 고가에 갈았습니다. 그런데도 별 차이가 없어 주행거리 20여 만 킬로미터 대에서 차를 넘기고 쏘렌토로 갈아탔습니다. 쏘렌토는 자동차 공업이 발전한 덕분인지 아주 좋았죠. 소리도 조용했고 연비도 높았으며 무엇보다 공해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6년 전부터 적용된 유로6 기준에 맞췄다는 경유차를 타는데 배기관 뒤에 서 있어도 냄새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바로 요소수 덕분이란 거죠. 요소수는 그냥 첨가제 정도로 생각하며 왜 주입구가 따로 있지 궁금했을 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번 대소동으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요소수의 부족 원인은 다국적입니다. 중국과 호주가 다투다가 호주가 중국을 제재한 것인지, 중국이 호주를 제재한 건지, 아무튼 중국의 호주산 석탄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겁니다. 석탄에서 나오는 요소를 원료로 하는 요소수가 문제가 될 것이란 뉴스는 11월 초순에야 알았습니다. 하기야 정부도 몰랐으니까요. 크게 보면 중국이 비료, 석탄, 전력난으로 요소 수출검사를 강화한 게 원인이란 겁니다. 자원 무기화의 직격탄이죠.
생각해보니 농기구를 사러 갔던 농협 자재 창고에서 요소수라고 쓴 막걸리처럼 하얀 병을 보면서도 얼마 후 대란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살까 말까 했지만 화급한 것이 아니었고 둘 데도 없어 그냥 나왔습니다. 사태가 널리 알려진 뒤 주유소마다 가보았더니 매진이었죠. 농협은 농기계용으로 갖다 놓았는데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이 몰려와서 사갔다고 했습니다. 오죽하면 다급한 정부가 군수용을 방출했고, 4대뿐인 안보전략자산인 공중급유기를 동원하여 호주에서 고작 2만 리터를 들여온다고 했나요. 어느 평론가는 “쇼하지 말라. 군이 백댄서냐”고 비난했습니다. 겨우 10리터용 승용차 2,000대 분량이죠.
중국이 요소 검사 규제를 풀어 계약한 물량이 다 들어오면 한두 달은 버틴다는데, 요소수 사정이 좋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이소의 생필품을 대체로 중국산이 점령한 줄은 오래전에 알았지만, 군사용 필수품인 요소수까지 중국에 의존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200만 대의 차량과 중장비들이 의존하는 전략 상품의 다변화는 없었던 것입니다. 반도체 무역전쟁에서 일본의 지배를 벗어나고 싶었다면 중국으로부터도 원자재 지배를 벗어나야죠.
나는 늘 왜 기업들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라는 공산국가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나 의아했습니다. 시장이 큰 것 못지않게 리스크가 클 것이라는 게 걱정스러웠죠. 사드 부지로 보복 당한 롯데는 상당 부분 철수했습니다. 아는 부인이 아들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몇 년 전 물어보기에 “끝이 안 좋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이 안보를 위해 배치한 사드에 온갖 비난을 퍼붓고 기업 활동까지 제약한 것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구호가 얼마나 순진한 것인가를 깨닫게 했습니다. 체제와 가치관이 다릅니다. 시진핑 체제는 15년 장기집권에 도전합니다.
하기야 요소수 주무 부처의 하나인 산업자원부는 에너지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위대한 원자력을 버리고 풍력, 태양광 등 불안정한 탈원전에 올인하면서 러시아와 북한 등 공산권을 경유하는 천연가스 도입으로 에너지를 외세에 종속시키려 들죠. 프랑스는 탈 탄소를 위해 원전을 확대한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요소의 국산화를 서두르세요. 외교부는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라고 일각에서 비판하는 종전선언에 매달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고서도 요소수는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중국 매체의 조롱대로 자업자득이죠.
한일 간에 원자재 무역 분쟁이 터졌을 때 일본 분석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국가들에게 한국산 반도체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은 부담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일본의 압박에 미국도 암묵리에 동의할 거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요즘 자유세계 19곳에 반도체 증설 열풍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공급망을 강조하며 반도체 업체들에게 고객 리스트까지 요구했다는 것은 전략물자의 대중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일환으로 보입니다. 이제 귀중한 것은 경제든 안보든 가치관을 공유하는 축(軸)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사드도 반대하고 한미 안보 협력망도 반대하면서, 중국이 전략적 제휴 동반자 관계라고 내세우는데 먼저 압박한 뒤 이미 계약한 요소 약 2만 톤의 일부를 풀어주며 생색내는 게 한중 관계인가요. 과거사만 파먹다 보니 돈 뿌리는 것 말고는 무슨 대단한 미래 비전이 있겠는가 하고 묻는 일각의 여론에 납득이 갑니다. 세금을 열심히 바쳐야 하는 국민이 처량합니다.
자동차에 ‘요소수 보충까지 1,500킬로미터’, ‘보충 안 하면 시동이 안 걸림’이라는 경고가 뜨자 불안해서 전자 상거래 사이트들을 여러 시간 헤매다가 싱가포르 사이트에 주문하여 일본발 제품을 국제 택배로 사흘 만에 받았습니다. 개인도 국제 거래로 사는데 국가는 왜 못 사오나요. 계속 줄 세울 건가요. 수십 조 원을 쪼개는 푼돈으로 선심 쓰지 말고 KF94 방역 마스크나 요소수 같은 필수품을 주세요.
[아무튼, 주말]
中 “요소 수출 안 한다” 통보에도 한 달간 방치… 짚신 장수보다 못한 정부 [노정태의 시사哲] 리카도의 ‘비교 우위론’과 대한민국 요소수 공급대란
한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우산을 만들었고 둘째는 짚신을 삼았다. 어머니는 근심이 끊일 날이 없었다. 비가 오면 우산 장사는 잘되겠지만 짚신은 잘 팔리지 않을 것이다. 맑은 날이면 짚신 장수야 좋지만 우산은 도통 팔리지 않을 테니 역시 걱정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 어떤 현명한 사람이 찾아와 조언해주었다. 맑은 날이면 짚신 장수 아들의 장사가 잘되는 것이니 좋은 일이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이 잘 팔릴 테니 좋은 일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나쁜 쪽으로 봤을 때는 어떤 쪽에서 봐도 불행했던 어머니는 생각을 바꾸자 해가 뜨나 비가 오나 행복한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독자 여러분도 모두 아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 이야기다.
좋게 말하면 비판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삐딱했던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상은 그대로인데 긍정적인 면을 본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겠느냐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공부하다 보니, 저 흔한 전래 동화에 경제학의 핵심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발견한 ‘비교 우위(comparative advantage)’가 바로 그것이다.
가정을 해보자. 형제는 근면하게 하루에 14시간씩 7일 동안 총 100시간을 일한다. 첫째는 둘째보다 손재주가 좋아서 한 시간에 우산 네 자루, 짚신 세 켤레를 만든다. 반면 둘째는 한 시간에 우산 한 자루, 짚신 두 켤레밖에 만들지 못한다. 즉, 첫째는 우산뿐 아니라 짚신도 둘째보다 더 잘 만든다. 첫째는 동생이 답답하게 한 시간에 짚신 두 켤레만 만드는 꼴을 보고 있느니, 차라리 본인이 직접 우산도 짚신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 경우 첫째의 생산량은 어떻게 달라질까?
만약 100시간 내내 우산만 만든다면 우산 400자루를 만들 수 있다. 반면 50시간씩 나눠서 우산도 만들고 짚신도 만들면 우산 200자루와 짚신 150켤레를 갖게 된다. 우산과 짚신 모두 하나에 한 냥이라고 가정해보자. 첫째는 400냥이 아닌 350냥을 벌게 된다. 손해다. 비록 우산뿐 아니라 짚신 역시 첫째가 둘째보다 더 잘 만든다 해도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우산에 집중할 때 생산량이 높다.
첫째와 둘째 모두의 생산량을 놓고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계산해보셔도 좋겠다. 두 사람이 50시간씩 나눠서 생산하면 우산과 짚신의 전체 가격은 500냥. 반면 형제가 각자 더 잘하는 일에 집중하면 형제는 도합 600냥어치의 우산과 짚신을 생산하여, 첫째는 400냥을 벌고 둘째는 200냥을 벌게 된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 짚신 장수가 우산도 만들고, 맑은 날에 우산이 안 팔릴까 봐 우산 장수가 짚신도 만드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상대보다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포기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비교 우위 원리는 그 당연한 세상의 법칙을 경제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우리는 무인도에 갇혀서 모든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아니다.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 세상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것, 그런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리카도는 왜 비교 우위 원리를 주장했을까? 1815년부터 영국에서 시행한 곡물법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밀에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 밀은 일정 금액 이상으로 팔 수 없도록 했다. 리카도가 볼 때 곡물법은 영국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값싼 외국산 곡물을 수입하는 대신 영국이 비교 우위를 지니는 모직물을 생산하여 수출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큰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그 후 영국은 곡물법을 폐지하고 산업화에 집중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거듭났다.
비교 우위 원리가 만능은 아니다. 곡물법에 반대했던 영국인들의 우려가 전적으로 잘못된 건 아니라는 소리다. 어떤 재화는 가격이 낮고 부가가치가 작지만 없으면 곤란해진다. 현재 공급 대란을 겪고 있는 요소수가 대표적 사례다. 요소는 비료의 원료이면서 동시에 화약 재료가 되는 핵심 전략 자원이다.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경제적 효율이 떨어지는데도 요소 공장을 유지하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반면 우리는 오직 시장 원리에 따라 요소 공장들이 폐업하도록 방치했다가, 중국에서 벌어진 석탄 공급난의 유탄을 맞아 나라 경제가 마비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시장경제는 때로 오작동하고 실패한다. 그것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것은 정부 몫이다. 대한민국호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중국 측 해명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한 달여 전부터 요소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한국에 통보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그 무렵 선제적 대응책을 고심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임기 막바지에 부인을 대동하고 유럽 순방을 하며 로마 교황을 만나 북한을 방문해달라는 뜬금없는 부탁이나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고는 화물차 333대에 나눠 넣으면 소진되는 요소수 2만 리터를 군용기로 공수한다고 홍보한다. 주중 대사 장하성은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중국 정부에 똑 부러진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우산 장수 짚신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국민을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분통 터진 어머니가 짚신을 신고 뛰어나와 우산으로 등짝을 때려주는 장면을 상상하게 될 지경이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달리 세계시장에 일찌감치 참여했다. 우리가 가진 비교 우위를 최대한 활용했다. 근면하고 손놀림이 빠른 여공들이 경공업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렇게 쌓인 자본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산업을 고도화해 나갔다. 그 결과 우리는 반도체와 문화 상품이라는 최첨단 영역에서 비교 우위를 지닌 경제 강국을 이룰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이 낳은 세계 경제사의 기적이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국민을 걱정하고 다가올 위험에 대비하는 현명한 정부가 필요하다. 내년 3월, 우리 각자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좋은 정부를 선택할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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