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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묵상글 *
지난 번 이태리 성지순례를 다녀올 때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보게 된 광경이 하나 있습니다.
화장실에 갔다가 제 자리로 돌아오다가 각자의 자리 앞에 있는 모니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니터를 통해서 사람들은 영화나 방송 그리고 기타 정보들을 볼 수가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고 있는 화면들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서로 다른 영화를 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고 있으며, 음악이나 뉴스를 듣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화면들이 조화를 우리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습니다.
만약 다 똑같은 화면이라면 어떤 통일성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느낌을 어떤 신부님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당연한 거 아냐?”라고 말씀하시네요.
맞습니다.
다양한 모습들이 멋지고 아름다운 것인데 이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왜 그리 많을까요?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또 신부님은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이렇게 답이 다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답이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인 것이지요.
산의 모습이 모두 똑같다면 아마 사람들은 등산을 즐기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산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산, 저 산을 쫓아서 등산을 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다름에 감사할 수 있고, 또 그 다름을 멋있다고 칭찬해 주면 안 될까요?
항상 우리를 지지해주시는 주님처럼 말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로 너무나 젊은 나이에 순교를 하시게 되지요.
박해를 가했던 당시의 집권자들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많은 천주교인들이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이 틀림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끔찍한 박해를 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들의 큰 착각은 틀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모습은 계속 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의 틀림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의 박해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다름의 아름다움을 인정해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세상은 더욱 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입니다.
- 인천교구 / 안식년
*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묵상글 *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1845년 8월17일에 상해 근교의 김가항에서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때는 서품식이 요즘처럼 성대하지 않았습니다.
쪽배를 타고 그곳까지 간 11명만이 참석한 조촐한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한국천주교 사상 가장 뜻깊은 날입니다.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사제품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이 진정 빛나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될 만큼 명실 공히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서품을 받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15세에 영세 입교하시고 신학생으로 뽑혀 멀리 산 설고 물 설은 마카오로 떠난 그날부터 겪은 고초를 생각하며 감개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겠습니까?
우리는 상상할 뿐이지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서품을 받으면서 그날 모든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부님이 사제가 되어 고향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금의 환양이요. 개선장군같은 환영입니까?
아닙니다.
박해의 칼, 체포와 죽음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사제가 된다는 것은 어려움도 있지만 교회 내에서는 영광스럽고, 소중한 품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신분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께서 사제가 되었을 때는 사회적으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순교정신,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안겨다 주는 일이었습니다.
명실공히 십자가를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것을 잘 아시면서도 바로 그 믿음과 순교정신으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한국 신자공동체가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당의 복음화와 구원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도 좋다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신부님은 자신을 위해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신 분이 아닙니다.
동포를 위해, 조국을 위해 세상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1845년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양들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수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29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리고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시절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구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주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습니다.
그런데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는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입니다.
반면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쓴 것입니다.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기뻐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 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 겸 청주상당노인복지관장
* 송영진 모세 신부님의 묵상글 *
<박해>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를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는 "박해자들을 조심하여라."인데,
박해를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 아니라, 박해를 받더라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이(신앙인들이) 받게 될 박해를 예고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왜 꼭 박해를 받아야 하는가?
하느님(예수님)께서 박해 자체를 막아 주실 수는 없는가?"
하느님(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 하려고만 하시면 '박해'라는 것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것은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1)
베드로 1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면서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없어지고 말 황금도 불로 단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보다 훨씬 더 귀한 여러분의 믿음은 많은 단련을 받아 순수한 것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1베드 1,6-7. 공동번역)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믿음이 그저 그런 상태였다가
어떤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되면 더욱 강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련과 고난 덕분에 정신을 차려서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그렇게 될 수도 있고,
편안할 때보다 시련과 고난을 겪을 때 주님을 더 간절하게 찾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박해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고 순수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뜻이고,
하느님(예수님)께서 신앙인들의 믿음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박해를 일으키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박해를 받지 않았어도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해서 성인품에 오른 분들도 많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도 거의 대부분 다른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반대로 박해 때문에 믿음을 아주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마태 13,21).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그런 사람은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기쁘게 받았지만 '뿌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뿌리가 없다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상태라는, 즉 제대로 믿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실 편안할 때에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짜 믿음은 시련과 고난을 겪어봐야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박해는 알곡과 쭉정이를 미리 구분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마태 3,12)
그러나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일부러 박해를 일으키신다는 것은 아니고,
결과가 심판 때와 비슷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참고 견디면 알곡이 되고, 포기하면 쭉정이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박해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몸이 편안하면 마음이 풀어지기 쉽다는 것이 인간의 약점입니다.
2)
박해는 믿음을 증언할(복음을 선포할) 기회가 됩니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이 말도 역시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기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시대 때에 사도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시 교회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예루살렘에서의 성공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랬다가 스테파노 순교 후에 큰 박해가 닥치자 신자들이 모두 예루살렘을 떠나서 흩어졌고,
그 일은 다른 지역에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사도 8,1.4).
3)
긍정적인 결과가 생긴다고 해도,
그래도 박해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반역죄이고, 순교자들은 그 범죄의 피해자들입니다.
이것은 카인이 아벨을 살해할 때 이미 시작된 일입니다.
그래서 박해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마태 10,23)
이 말씀은 신앙을 버리고 비겁하게 도망가라는 뜻이 아니라,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가라는 뜻입니다.
(무력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박해자들과 싸우지 말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앞에서 이미, '하느님께서는 왜 박해를 막아주시지 않는가?' 라고 물었지만, 다시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아벨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만 계셨을까?"
"하느님(예수님)께서는 왜 우리가 박해를 받는 것을 보고만 계실까?"
이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
또 카인도, 박해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예가 다윗을 박해한 사울의 경우입니다.
사울 왕도 원래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인물입니다.
박해자들 자신들은 인정하지 않거나 모르고 있지만, 그들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박해자들 앞에서 믿음을 증언하는 것은 사실은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4)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박해자들도 구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전주교구 / 함열본당 상지원 공소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묵상글 *
<공동체의 품격 -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아침기도 찬미가가 구구절절 아름다운 감동이었습니다.
'서라벌 옛터전에 연꽃이 이울어라/
선비네 흰옷자락 어둠에 짙어갈 때
진리의 찬란한 빛 그 몸에 담뿍안고/
한떨기 무궁화로 피어난 님이시여'
고작 만25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참으로 강렬한 삶을 사셨던 성인이셨습니다.
얼마나 오래가 아닌 어떻게 충실한 삶을 사느냐가 주님을 믿는 우리의 화두입니다.
새삼 성인들의 생애와 산 햇수를 묵상할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묻게 됩니다.
삶과 죽음은 함께 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문제는 '어떻게 죽어야 하나?'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하여 주님이 저에게 단 하나의 소원을 말하라면
'깨끗하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에 죽음'이라 고백하고 싶습니다.
첫째, 매사 조심하십시오.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미워하라는 것도 싫어하라는 것도 피하라는 것도 아닌 유심히 바라보라는 것이며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분별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요 깨어 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 누가 보든 안보든 조심스런 삶은 필수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바로 전, 주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마태 10,16)
그대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예전이나 오늘이나 양들과 이리 떼가 공존하는 영적전쟁 치열한 불변의 인간 사회 현실입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주님의 경고 말씀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지혜와 순수를 겸할 때 사람들을 조심하게 되고 언제 어디서나 깨끗하고 향기롭고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어제 산책 중 야생화 들꽃을 보며 써놓은 '들꽃의 영성'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버려진 빈 터
곱다
작다
소박하다
청초하다
생 짧다
연분홍 메꽃이 연노랑 달맞이꽃이
그러하다
들꽃의 영성이다.'
들꽃처럼 무욕(無慾)의 삶이 바로 지혜롭고 순박한 삶입니다.
저절로 조심하여 주님 안에 숨어사는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택합니다.
둘째,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음이 빛이라면 걱정은 어둠입니다.
믿음의 빛이 걱정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대부분의 걱정은 환상입니다.
믿음이 약한 탓입니다.
하루하루 일상에 충실할 때 대부분의 걱정도 사라집니다.
하루하루 못살기에 증폭되는 걱정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이미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의 영, 성령 따라 살 때 저절로 걱정도 사라집니다.
아버지의 영에 사로잡혀 산 분들이 바로 예언자들입니다.
오늘 1독서 역대기 하권의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힌 순교자 즈카르야 예언자의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는 임종어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
주님을 늘 모시고 살 때 주님도 늘 함께 하시어
우리 내면의 온갖 불안과 두려움, 걱정을 일소시켜 주십니다.
셋째, 끝까지 견뎌내십시오.
끝까지 견뎌낼 때 승리의 구원입니다.
바로 제 삶의 자리에 끝까지 항구히 견뎌내는 게 우리 분도수도자들의 첫째 정주서원입니다.
바로 이런 삶 자체가 살아있는 순교입니다.
말그대로 순교적 삶입니다.
피흘리는 비상한 순교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일상의 순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확약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견디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이 있어 자발적 기쁨의 항구한 견딤입니다.
이런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선사된 하느님의 사랑에서 샘솟는 희망이 백절불굴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매사 조심하십시오.
2.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3. 끝까지 견디어 내십시오.
이래야 깨끗하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에 죽음입니다.
주님은 '얼마나'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의 질로 우리 삶을 평가하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순교적 삶에 항구할 수 있는 믿음, 희망, 사랑을 선사 하십니다.
아멘.
- 성 베네딕토 수도회 성 요셉 수도원
* <굿뉴스> 매일미사 묵상글 담당 신부님의 묵상글 *
몽골의 첫 신학생이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올해 부제품을 받았고,
두 번째 신학생도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박해 시대에도 우리나라에는 선교사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고 지금 몽골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있지만,
한 나라에서 그 나라 출신 첫 번째 사제는 그 나라 교회 전체를 위하여 참으로 소중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려고 몽골에서 파견된 첫 신학생들은 몽골 교회의 미래를 짊어진 이들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몽골에 돌아가 돌보아야 할 후배들과 신자들에 대한 강한 소명감과 책임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이와 같으셨을 것입니다.
최초의 신학생으로 마카오에 유학하여 공부하시면서, 늘 우리 교회의 앞날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박해받는 교회, 목자 없는 양 떼!
이 땅에 돌아와서는 사제로서 짧은 삶을 사시고 순교하셨으니,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영광이야 아쉬움이 없으셨겠지만
이 양 떼를 두고 가시는 간절한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김대건 신부님이 피로 순교하셨다면,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땀의 순교자,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두 분 신부님들이 오래 사셨다면,
사제 부족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초창기 우리나라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아주 인간적인 생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이와 달랐습니다.
우리 인간은 통계나 경험을 토대로 만사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만,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우리 생각이 다를 때,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지요.
한국 교회가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순교자들의 피와 전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해가 없는 오늘날,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교회가 순교 정신을 잊고 복음에 대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오늘 특별히 김대건 신부님의 전구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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