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붙여:이 글은 한겨레신문 1월 15일(수)자 31쪽에 있는 칼럼난인 [사설]에
"청와대 행정관이 여당 대표를 우습게 아는 정권"이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
좋은 글이라 여겨 이곳에 그대로 옮겨 놓았읍니다.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한겨레신문의 [사설]
청와대 행정관이 여당 대표를 우습게 아는 정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수첩에 적혀 있던 ‘문건 파동 배후는 케이(K), 와이(Y)’라는 메모의 당사자는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고, 이 발언을 한 사람은 음종환 청와대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청와대 행정관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파문의 배후로 여당 대표와 여당 중진의원을 지목했다는 얘기다. 아무리 기강 없는 정권이라 해도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여당 인사들 앞에서 당대표를 거침없이 비난할 정도로 엉망일 수 있는 건지, 나라와 정권의 수준이 걱정이다.
음 행정관은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라 불리는 청와대 비서 3인방과 친한 사이이며,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보고서에 언급된 ‘십상시’ 중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직급은 행정관이지만 비서 3인방의 권력에 기대어 얼마나 위세를 부렸을까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사안에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진짜 문건 파동의 배후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런 발언이 단지 음 행정관 개인의 생각이겠느냐는 점이다. 아마 비서 3인방도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건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많은 이들이 추측한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지난 연말 박 대통령이 친박 핵심 몇 사람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하면서 김무성 대표는 쏙 뺐는데, 그런 행동과 이번 파문이 별개라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식의 당청 관계를 유지하면서 박 대통령은 국회 협조가 절실한 우리 사회의 구조개혁을 어떻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사안은 박 대통령이 왜 비서 3인방을 청와대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유 의원은 음 행정관이 자신을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했다는 얘기를 듣고, 3인방 중 한 사람인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적절한 조처를 요구했다고 한다. 여당의 3선 중진의원이 음 행정관 직속상관인 홍보수석이나 공직자 기강을 다루는 민정수석이 아니라 업무상 아무 관련이 없는 비서 3인방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이 지금 여권의 권력 지형을 보여주는 단적인 풍경이다. 이러니 3인방과 가까운 행정관이 여당 대표를 무시하고,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까지 3인방에게 줄을 대려는 행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문고리 권력을 도려내지 않으면 정부·여당의 공식적인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책임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