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동서 비교철학의 세계적 석학 프랑수아 줄리앙
중국에 진출하는 유럽 경영인들을 위한 ‘효율성’ 강연
중국과 서양
두 문명은 고유의 편견과 습벽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의 대면을 통해서만 각자의 편견을 자각할 수 있다
중국은 서양철학의 편견을 읽어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이 책은 동서 비교철학의 세계적 석학 프랑수아 줄리앙이 중국에 진출하는 유럽의 기업가들과 경영자들에게 효율성과 전략을 주제로 진행한 강연을 엮은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동서양의 만남과 그 여파, 동서양 전략 각각의 철학적 특징 및 양자의 관계, 전략 개념에 근거한 세계 근현대사의 의미를 짚는다. 동서양의 고전을 섭렵하며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들의 서양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을 잇고자 노력해온 저자 줄리앙은 서양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중국철학과의 맞대면에서 찾는다. 역사, 언어, 개념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의 사유는 서양과 아무런 관련 없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중국은 서양철학의 편견을 읽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저자 소개
프랑수아 줄리앙(François Jullien)
1951년생. 프랑스 철학자로, 파리7대학 교수다. 프랑스 파리국제철학대학원 원장, 프랑스 중국학협회 회장, 파리7대학 현대사상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중국 사유와 서양 사유를 맞대면시키는 작업을 수십 년째 진행 중이고 40여 권의 비교철학 저작을 내놓았다. 들뢰즈, 푸코, 데리다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장들에 이어 서양중심주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에 있다. 그는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중국 사유와의 맞대면에서 찾는다. 중국 사유는 역사, 언어, 개념 등 모든 면에서 서양과 관계없이 정립되었기 때문에 서양 사유의 편견을 읽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다. 서양의 대다수 이론가들이 동양사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많은 동양철학자들이 서양사상을 정확히 다루지 못하여 줄리앙의 관점은 아직 엄밀한 연구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그의 철학은 동서양 양쪽 이론가들에게 무궁무진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이미 그의 많은 저작이 20여 개 나라에서 번역되었다.
목차
문화적 양자택일
사유의 동요
정신의 다른 가능성을 열다
효율적이려면 모델화하라
‘주도’ 요인에 의거하기: 파도타기
문제: 모델의 풍요성은 어떤 한계가 있는가?
모델화가 불가능한 전쟁 행위는 일관성이 없는 것인가?
중국의 『손자병법』: 상황 잠재력 개념
용기: 본질적인 자질인가 상황의 결실인가?
평가-결정
수단-목적
조건-귀결
쉬움의 예찬
과정(processus): 작물의 성장을 성찰하다
전략적 양상들: 우회와 은미(隱微)
유럽: 행동, 영웅주의, 서사시
중국의 경우: 무위(無爲)
행동-변화
사건의 신화
경험론인가?
계약도 역시 변화 속에 있다(그러나 우정도 역시 과정이다)
진보와 운행
기회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간극: 효율성-효능
논박
대장정(大長征)은 서사시인가?
(희생당하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여백을 찾다
덩샤오핑은 중국을 ‘변화’시켰다
위대한 정치인은 어떤 사람인가?
역자 해설-사유의 분란
출판사 서평
모델화 vs 형세: 서양과 중국의 문화적 습벽
전략은 국가들 간의 전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돈, 사랑, 도덕 등 가장 구체적인 일상부터 국제정세에 이르기까지 영역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효율성의 추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는 전략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문화적 편견 또는 습벽을 살핀다. 그러면서 계획과 실행,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 구도를 희랍사상에서 정초되어 기독교와 근대계몽주의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명 전반에 퍼져 있는 일종의 습벽으로 규정한다.
생산 영역에서 모델화는 효과가 크지만, 적대적 주체들이 상호대립하고 반응하는 전쟁에서 모델화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전쟁이론가 클라우제비츠는 유럽의 사유가 전쟁을 사유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았다. 실제로 전투는 항상 상황에 의한 변수와 마주치게 되어 있다. 모델로 구상한 절대적 전쟁과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는 현실적 전쟁 사이에는 마찰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실제 전쟁에서 발생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델화와 무관한 천재적 능력 혹은 영웅적 행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변화와 이행과정에서 침묵하는 모델화의 고정성, 모델화를 대체하는 영웅주의를 유럽 사유의 습벽으로 본다. 유럽 사유가 존재를 제시한다면, 중국 사유는 변통(變通)을 말한다.
『손자병법』에 나타난 계(計)의 개념
중국의 고전 『손자병법』 1편에 나타난 계(計)의 개념은 이념이나 모델화와 완전히 대치된다. 서구의 모델화가 최선을 목적으로 하여 관념적 구상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미래지향적 구조라면, 중국의 계는 미래에 실현할 계획이 아닌 철저히 현실적인 것이다. 중국적 전략의 핵심은 철저한 상황 평가를 바탕으로 상황의 흐름을 타는 데 있다. 중국 사유에서 전략, 도덕, 제도 등 모든 것은 계절이 변화하듯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이는 병법, 유교, 도교, 법가 등 모든 중국사상이 논의의 필요도 느끼지 않은 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전제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파악한다. 중국 사유의 또다른 특징은 전략적 효율성과 유교적 도덕의 연결에 있다. 최대의 효율성은 최대의 덕에 의해 달성되므로 선한 군주의 덕은 세계 전체에 대한 권력이 되는 것이다.
중국 사유의 맹점을 지적하며 유럽 사유의 가치를 재발견
이 책의 역자는 해설에서 저자 줄리앙의 논의가 중국 예찬으로 잘못 이해되는 것을 경계한다. 중국 사유의 맹점을 지적하면서 유럽 사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성찰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서양 근대의 전형적 정치관이라면 유기체적 공동체주의는 유교적 정치관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정치적 문제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에 공감하고, 핵심적 문제는 ‘개인과 사회의 연계를 모색’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의 주요 대목
유럽 사유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동시에 유럽 세계만큼 발전되고 문명화되었으며 텍스트까지 갖춘 문화세계로 눈을 돌리고 싶다면 요컨대 그런 곳은 중국밖에 없다.(8쪽)
위대한 장군은 항상 자기 아래의 경사를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오직 땅의 경사를 따라가는 물처럼 자신의 군대가 애쓸 필요도 없이 쇄도하는 모습을 그는 볼 것이다. 동시에 그는 물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그에게 저항할 수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자신의 흐름과 함께 쓸어갈 것이다.(33쪽)
효과도 적으면서 위험하고 소모적인 일을 벌이며 희생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스스로 물러서서 상황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97쪽)
‘지혜’라는 단어는 철학의 이편에서 자기를 찾고자 하는 사유, 또는 철학을 넘어서는 사유를 그려내기 위해 오늘날에도 부득이한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할 때, 어쩌면 지혜는 놀랍게도 ‘동양’이 아닌 유럽 쪽에서 재발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102쪽)
승리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익은 과일을 따듯이 거두는 것이다. 승리나 패배는 실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상황의 전개과정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126쪽)
철학은 고인 물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분란의 정신이다. 안일한 컨센서스(consensus)에 맞서 깨어 있는 정신으로 디센서스(dissensus)를 일으키는 작업이 철학이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이 책이 사유의 분란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1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