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진(何進)의 절명(絕命) -
어느 날...
서량 자사(西凉 刺史)로 있는 동탁(董卓)에게 밀서(密書)가 날아들었다. 동탁은 일찍이 황건적(黃巾賊) 토벌(討伐) 당시(當時)에 황보숭(皇甫嵩)과 함께 사령관(司令官)이었지만 유독(唯獨) 싸움에서 계속(繼續) 퍠(敗)하여 문책(問責)을 당해야 할 형편(形便)이었다. 그러나 그는 십상시(十常侍) 일파(一派)를 교묘(巧妙)하게 매수(買收)하여 견책(譴責)을 면(免)하는 동시(同時)에 황건적(黃巾賊) 섬멸(殲滅) 후(後)에는 오히려 벼슬이 높아지기까지 하였다. 그런 덕택(德澤)에 지금은 서량 자사(西凉 刺史)로서 이십만(二十万)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있었다.
동탁(董卓)은 군사軍士)를 거느리고 시급히 낙양(洛陽)으로 올라오라는 하진(何進)의 밀서(密書)를 받자 혼자 무릎을 탁 쳤다.
(옳지! 이제야 천하(天下)를 내 손에 넣을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機會)가 찾아왔구나!)
동탁(董卓)은 즉시(卽時), 전군(全軍)에 출동(出動) 명령(命令)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自身)의 둘째 사위인 중랑장(中郞將) 우보(牛輔)를 시켜 서량(西凉)을 지키게 하고 휘하(麾下)의 모든 장수(將帥)를 총동원(總動員)하여 급(急)히 낙양(洛陽)으로 출발(出發)하였다.
동탁(董卓)이 대군(大軍)을 이끌고 도성(都城)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消息)이 들리자 시어사(侍御史) 정태(鄭泰)가 깜짝 놀라 하진(何進)에게 달려왔다.
"장군(將軍)님! 서량(西凉)에 있는 동탁(董卓)에게도 군사를 보내라는 밀서(密書)를 보내셨습니까?"
"응! 보냈네!"
"어쩌자고 간교(奸巧)한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인 동탁(董卓)을 낙양(洛陽)으로 부르셨습니까? 그 자는 위험(危險)한 인물(人物)입니다."
"그게 무슨 걱정인가? 그렇게 매사(每事)에 겁이 많아 가지고서야 어찌 천(天下) 대사(大事) 를 도모(圖謀)한단 말인가?" 하진(何進)은 오히려 세상(世上)을 다 아는 듯이 큰소리만 치고 있었다. 정태(鄭泰)는 어이가 없어 한숨만 쉬었다.
그러자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지장(智將) 노식(盧植)이 말했다.
"나는 동탁(董卓)이란 인물(人物)을 잘 알고 있는데 그 자는 간교(奸巧)한 사람이오. 그자가 궁중(宮中)에 들어오면 반드시 환란(患亂)을 일으키게 될 것이외다."
그래도 하진(何進)은 고개를 가로젖는다.
"그대들처럼 의심(疑心)이 많아 가지고서야 천하(天下)의 영웅(英雄)들을 어떻게 다룬 단 말이오? 모든 일은 염려(念慮) 말고 내게 맡기시오."
"........." 노식(盧植)과 정태(鄭泰)는 어이가 없어 아연(啞然)할 뿐이었다.
한번 그런 일이 있자 노식(盧植)과 정태(鄭泰)는 하진(何進)이란 인물(人物)에 환멸(幻滅)이 느껴져서 벼슬을 버리고 자신(自身)들의 집으로 칩거(蟄居)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소식(消息)을 전해 들은 뜻있는 유능(有能)한 고관(高官)들은 제각기 벼슬을 버리고 고향(故鄕) 등으로 낙향(落鄕)해 버리고 말았으니 하진(何進)의 주위(周圍)에는 지혜(智慧)로운 사람들이 모두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동탁(董卓)의 군사(軍士)들은낙양 낙양((洛陽)에서 멀지 않은 승지라는 곳에 이르렀고, 하진(何進)은 사람을 보내어 동탁(董卓)과 그의 군사(軍士)들을 영접(迎接)하였다.
그러나 동탁(董卓)의 군사(軍士)들은 그곳에 진(陣)을 치고 눌러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동탁(董卓)의 맏사위아자 그의 모사(謨士)인 이유(李儒)의 계교(計巧)에 따라 동탁은 군사들을 하진(何進)의 뜻대로 움직이지 아니하고 도성(都城) 내의 동정(動靜)만을 유심)有心)히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십상시 지도자 격인 장양(張讓)을 비롯한 궁중(宮中)에 남아 있는 십상시(十常侍)들은 하진(何進)의 책동(策動)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네들이 먼저 선수(先手)를 쓰지 않았다가는 모두가 전멸(全滅)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그들은 시급(時急)히 수하 병사들을 무기(武器)를 갖추게 시켜 장락궁(長樂宮) 가덕문(嘉德門) 안에 매복(埋伏)시켜 놓고 하태후(太后)를 찾아가 울면서 호소(呼訴)하였다.
"태후(太后) 마마! 저희들은 하장군(何將軍)님 때문에 꼼짝없이 몰살(沒殺)을 당(當)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저희들을 살려 주시려거든, 하장군님을 황궁(皇宮)으로 불러들이셔서 태후 마마께서 저희들을 죽이지 말라는 분부(分付)를 직접(直接) 내려 주시옵소서."
고지식한 태후(太后)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즉석(卽席)에서 하진(何進)을 입궐(入闕)하라는 분부를 내렸다.
하진(何進)이 태후(太后)의 부르심을 받고 황궁(皇宮)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주부(主簿) 진림(陳琳)이 말린다.
"태후(太后)의 부르심은 아무래도 십상시(十常侍)들의 꼬임수 같으니, 장군(將軍)께서는 이에 응(應)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진(何進)은 이런 경우(境遇)일수록 큰소리를 치기 좋아하는 위인(爲人)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마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원소(袁紹)가 말한다.
"십상시(十常侍)들을 죽이려는 계획(計劃)이 백일하(白日下)에 드러난 판국인데 장군(將軍)님은 어째서 위태(危殆)롭게 황궁(皇宮)에 들어가시려 합니까? 기어이 들어가시려거든 십상시(十常侍)들을 먼저 문밖으로 불러내고 나서 들어가십시오." 그 소리에 하진(何進)은 크게 웃는다.
"하하하, 궁중(宮中)의 병폐(病弊)를 다스려 천하(天下)를 호령(號令)하는 나에게 십상시 따위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만약 내가 십상시(十常侍)가 무서워 입궐(入闕)을 하지 않았다는 소문(所聞)이 한번 퍼져 보게! 그러면 천하의 영웅들이 나를 뭘로 알겠나?" 웬일인지 하진은 이날따라 유난스럽게 큰소리를 쳤다.
이렇게 하진(何進)이 기어코 입권(入闕)을 고집(固執)하므로 원소(袁紹)와 조조(曹操)는 정병(精兵) 오백 명을 거느리고 하진을 호위(護衛)하며 황궁(皇宮)으로 향하였다.
황제(皇帝)께서 계시는 곳이니 군대(軍隊)를 대궐(大闕) 안으로 끌고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하진(何進)은 호위병(護衛兵)을 남겨 둔 채로 대장군(大將軍)의 위풍(威風)을 뽐내며 당당(堂堂)하게 문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가덕문(嘉德門) 안에 이르렀을 때 장양(張讓)과 단규(段珪)가 허리를 구부리고 종종걸음으로 마중 나오더니 별안간 큰소리로 하진을 꾸짖는다.
"하진(何進) 이놈 듣거라! 네 본시(本是) 백정(白丁)질이나 해먹던 놈이 오늘날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누리게 된 것이 누구의 덕(德)인 줄 아느냐? 너의 누이동생을 영제(靈帝)에게 추천(推薦)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였거늘 네가 우리의 은혜(恩惠)를 몰라보고 도리어 우리를 해치려고 하니 세상에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이 어디 있단 말이냐!" 하진(何進)은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얼른 뒤돌아 도망(逃亡)갈 길을 찾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궁문(宮門)은 이미 첩첩(疊疊)이 닫혀 있는 데다가 미리 매복(埋伏)해 있던 십상시(十常侍)의 군사(軍士)들이 일순(一瞬) 파도(波濤)와 같이 덤벼드는 바람에 하진(何進)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목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누이동생 : 태후(太后)의 후광으로 일약(一躍) 대장군(大將軍)에 자리에 올랐던 하진(何進)은 매사(每事)를 신중(愼重)하게 생각하고 후환(後患)을 제거(除去)하는 데 심혈(心血)을 기울이지 못했던 탓에 그가 죽여 없애려 했던 십상시(十常侍)에게 어이없이 절명(絶命)하고 말았으니 하진(何進)이야말로 천하(天下)를 제패(制霸)할 수 있는 영웅호걸(英雄豪傑)의 인물(人物)은 아니었던 것이다.
삼국지 - 30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