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탱크주의', '세계경영' 이 셋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그룹해체와 총수 구속이라는 말로를 겪은 대우그룹과
김우중 전 회장이다. 물론 지금도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처럼 대우의 이름이 남아있는 기업들이 있지만, 가장 값있게 남아있는 곳은 따로 있다. 1983년부터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기초학문을 지원하는 취지로 출간된 대우학술총서다. 2001년 500권을 돌파했고 2006년에 600권을 돌파했다.
김우중 전 회장은 1980년 당시 기초학술진흥을 위해 대우재단에 200억원을 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지원한 기초학술 분야 연구과제의 성과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바로 대우학술총서로 출간됐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도 하지만, 곳간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인심을 제대로 내서 쓰는 건 다른 문제다. 김 전 회장은 대우재단의 학술지원과 대우학술총서를 통해 인심을 제대로 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게 엇갈리더라도, 대우학술총서에 대해서만은 제대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문학 분야에서는 교보생명의 대산문화재단과 파라다이스그룹의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을 빼놓을 수 없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내고 있는 대산세계문학총서가 현재 70권을 넘었고, 대산창작기금이나 대산문학상은 우리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도 기여해 왔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도 우리 문학의 해외 교류를 적극 지원하고 문화예술 분야의 공모 지원 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LG그룹의 LG연암문화재단은 전 세계의
한국 관련 고서적 및 문서를 발굴해 수집, 정리하는 '명지대-LG연암문고' 사업으로 유명하다. 두산그룹의 연강재단도 장학금, 연구비, 도서 지원 사업 등을 통해 학술과 출판 분야에 크게 기여해 왔다. ㈜빙그레의 아단문고는 고서는 물론 우리 근현대 문학 및 잡지들을 수집, 정리하면서 전시 및 출판 지원에 나서고 있다.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 창업주 고(故) 이양구 회장의 뜻을 이은 서남재단은 서남포럼을 운영하면서 동아시아 관련 연구와 학술총서 발간을 지원해 왔다.
필자가 출판에 관한 일을 하기 때문에 문학·학술·출판과 관련 있는 몇몇 민간재단들을 거론했지만, 이 밖에도 문화 분야에 다양하게 기여하는 많은 민간재단들이 있다. 기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러한 재단들은 기업 이윤의 사회적 환원과 공익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앞으로 이러한 재단들이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반(反)기업정서를 완화시켜 나가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카네기재단·록펠러재단·포드재단·구겐하임재단·산토리재단 등
미국과
일본 유수의 재단들이 학문·예술·문화 분야를 크게 지원해 온 것을 부러워하곤 한다. "그들은 저렇게 하는데 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재단 기금이나 지원 규모, 지원 분야, 운영 체계 등에서 우리의 민간재단들이 아직까지 해외 유수의 재단들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잘하는 일은 잘한다고 칭찬하고 격려해야 더 잘하게 되는 법이다. 학술·문화·출판 지원은 당장 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크게 화제가 되는 일도 드물다. 요컨대 우리의 민간재단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음지에서 묵묵히 기여하고 있다. 최근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어렵더라도 공익을 위한 재단 사업에 꾸준히 공들여 달라.
첫댓글 미래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기업도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보면 중요한 것을 잃게되므로 문화에 투자하여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