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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서러운 내 솔로인생을 훤히 알면서도
여자친구까지 떡하니 데려온 밉상 단영이를 보지도 않고
나가버린 후 기억이 끊겼고.
훗날 단영이 말한 것에 의하면 무슨 힘이었는 지 소리 빽빽 질러서 술집 분위기 완전
흐려놓고, 그렇게 데려온 사람 민망하게 해놓고 또 뭘 잘났다고 '칠칠맞게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또한 그 날 엄청 쪽팔렸다고 친절히도 말해줬다.)
.. 아무튼 그렇게 사연 많던 그 날이 지나고 다음날,
서 있는 곳은 승운이 녀석이 다니고 있다는 [정선고등학교]!
아주머니에게 여쭤서 오긴 했는 데 하필 학교에
정문, 후문이 있는 바람에 녀석의 행로를 예측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
이 고등학교는 내 동생도 다니고 있는 곳이라 좀 낮이 익긴 하지만..
설마 내 동생과 같이 녀석도 이 학교에 등교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녀석 얼굴 정도라면 꽤 인기도 많을텐데 단영이는 학교 내의 유명인사(?)들에겐
별 관심이 없는 녀석이라.. 그래서 몰랐나 보다.
한편 나는 녀석에게 치명적인 쇼크를 받은 후로는 작전을 변경했다.. 기 보단 더 끈질기게
따라붙기로 했다. 대신 자꾸 '피아노' 타령만 하면 도망칠 것 같아서 돈까지 투자하면서
우선 친해지기로 했다.
이름하야 [친구되기] 작전!
즉석으로 만든 작전치곤 훌륭한 작전에 혼자 감탄하며
하교시간에 맞춰서 정문을 왔다갔다 활보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오케이ㅡ!
보람은 있던 듯 저~쪽에서 녀석이 보인다.
어제 술집에서 본 그 두명의 친구들과,
또 절대 믿기지 않지만 내 동생 단영이와 함께.
놀라서 눈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뭐야 윤단영.. 아는 사이였던 거야?
아니면 구라를 더 첨가해서 [친한 사이] ?
처음엔 정말 놀랄 '노'에 입이 쩍~ 벌어졌지만..
어쩌면 더 잘 됐겠다 싶어서 우선 단영이를 아주아주 ~ 크게 불렀다.
" 윤단영 ~!!!! "
기차 화통 삶아먹은 듯한 우렁찬 목소리에 흠짓, 하곤 예측이 되는 듯
고개를 푹 숙이는 단영이.
그런 단영이 옆에 있던 어제의 갈색머리가 툭툭 치고, 그렇게 그 네 명의 녀석들은
정문으로 다가왔다.
내 얼굴을 보고 놀라는 노란머리.
" 뭐야 이 아줌마.. 어제 그, "
" 또 만났네요 ^^ "
어제의 인연 덕인 지 정말 태연하게 인사하는 갈색머리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승운이
녀석이 보이고, 단영이는 나를 다시 보더니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 누나, 얘네 알아? "
" 잘 알진 않고, 그냥 알게 됬다. "
" 누나가 무슨 수로? "
의외로 소심한 지라 단영이의 마지막 말에는
권승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대꾸했다.
" 어떤 몹쓸 새끼가 있어서 말야ㅡ 그리고. "
.. 다음으론 학교임에도 당당히 왁스칠을 한 노란머리를 쳐다봤다.
" .. 아직 애띤 스무살에게 아줌마라는 별명을 붙인 놈까지. "
말이 끝나자 동생은 아직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어깨를 으슥했고,
그런 나와 단영이를 쳐다보던 승운이 녀석이 노란머리와 신제현이라는 이름의
갈색머리에게 재촉을 기했다.
" 가자. "
-_- .. 적당히 보내 줄 줄 아냐?
비장의 표정을 한 내가 가려는 그들 앞에 자랑스레 티켓 5장을 꺼내보였다.
하하. 이게 보통 티켓인 줄 아냐?
내가 아주머니한테 물어물어.. 니들이 목맨다던, 그래, 다시 말해서 그리도 보고
싶어한다던
[왕의여자](광고방지;)를 가져왔단 말이다 ~!!
효과는 있겠지?
어떻게 된 게 딱 맞춰서 5장도 있고 잘됐다..
영화표를 꺼내놓고 그들의 표정을 슥ㅡ 훑어보니, 역시나, 효과가 있던 듯 다들
넑이 나갔다.
언제는 '가자'고 재촉했던 승운 녀석마저 눈이 휘둥그레 진 채로 보는 것은
내 손에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표.
..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묘하게 승자의 기분이 된 내가 거만하게 제안했다.
" 어때? 나랑 영화보러 안 갈래? "
.
.
*
그리하여 이 곳은 영화관.
모두들 못 이기는 척 따라와서 지금은 [왕의여자]를 보는 중.
극장 예절을 지키려 노력하며 조용히 단영이 옆구리를 찔렀다.
" 왜. "
" 너 권승운이랑 친하냐? "
"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
.. 하면서 녀석이 덧붙였다.
" 권승운하곤 별로 친하지 않아. 신제현이랑 좀 안면있는 것 뿐이지. "
" 아, 그래? "
" 그나저나 누나는 어떻게 모두를 알고 있는 거야? "
" 내가 권승운 과외선생이라서, 암튼 이러쿵 저러쿵한 사연들이 있어. "
" 그래. 알았으니까 스크린이나 봐. -_- "
동생이란 놈이 정말... -_-
그 동안 숙지하던 예절마저 잊은 채 주먹을 쥐고 들어올리려는데,
옆에 얌전히 있던 노란머리가 그 주먹을 제지시키고 언제 들어도 짜증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 여기가 k-1이냐. "
-_- ...
.
.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뭐야!;)
단영이랑 대화하랴 노란머리랑 티격태격 하랴 영화내용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탓에
[왕의여자]는 안 본거나 마찬가지가 되버리고
배를 채울 겸 또 한턱 쏜 곳은 패스트푸트점.
오늘 돈 꽤 쓴다 나.. ;
" 어여들 먹어~ "
" 누나 왜 그래? 안쓰던 돈을 다 쓰고.. "
" 잘 먹겠습니다! "
" 아줌마라서 어디에 숨겨논 돈이 있긴 하나보네. "
말한 순서부터 차례대로 동생, 신제현, 노란머리.(=이름 : 학도준)
.. 모두들 염치불구하고 맛있게들 먹고 있는데 권승운 만은 티끌만한 자존심인지
어쩐진 몰라도 아무것에도 손 대지 않은 채 일어섰다.
.. 또 갈려고 혼자?
왕의여자는 다 같이 본 주제에..
" 앉아, 권승운. "
"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
" 뭐야? 난 그럴 자격있어. "
" .. 착각하지마. 그럴 자격 없어. "
" 아니ㅡ 있어. "
.. 내 당당하기 그지 없는 말에 하! 하며 기막혀하는 녀석.
" 어디서 그런 자격이 나온건데. "
" 내 표로 [왕의여자] 봤잖아, 이제와서 발뺌할 거야? "
" ...... "
역시 마땅히 발뺌할 수 없나본 지 온 얼굴이 새~빨개진다.
짜식, 재수없는 말만 좀 안하면 귀여울 텐데 말이야.
실실 웃으며 '어때? 반박할 거 없지?' 식으로 밀어부치자
그게 또 보기 가증스러웠는 듯 햄버거를 입에 넣고 있던 노란머리가 하필 음식물을 입에
물은채로 말했다.
" 그거을 밋기로 자븐거냐 ㅡ (해석 - 그걸 미끼로 잡은거냐?)"
말과 함께 침도 함께 적당히 튕겨나왔고,
그렇게 말 많고 탈 많은 패스트푸드점에서의 시간도 끝이 난 채 집에 돌아가는 길.
신제현도 노란머리도 단영이도 모두 각각의 길로 흩어져 남은 거라고는 나와 승운이 둘 .
배도 빵빵하겠다 ㅡ 기분좋게 행군해서 녀석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ㅡ
꿀 먹은 벙어리 같던 녀석이 집에 들어가진 않고 나를 부른다.
" .. 우리집에 들어오는 거 아니었어? "
뭐 들어가곤 싶다만.
그래봤자 네가 피아노 칠 리 만무해서 말이지.
" 아니, 오늘은 그냥 놀려고 부른거였는데? "
" .. 왜 굳이 치게 하려고 애쓰는 건데. "
정말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저쪽에서 질문이 돌아온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 분명 녀석이 전에 했던 말대로 돈때문에ㅡ 그저 돈 때문에
일 수도 있고, 쓸데없는 참견 일 수도 있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ㅡ
" 잘생긴 녀석이 피아노를 치면 어떨까 궁금해진 것 뿐이야. "
그래. 이젠 진짜 궁금해졌어.
네가 피아노 의자에 앉았을 때가 보고 싶어졌어. 단순히 욕심이겠지만.
.. 생각을 마치고 돌아보니 나의 엉뚱한 말에 피식, 김 새듯 웃어보이는 얼굴이 보인다.
그냥 물러서진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난 아마도 녀석한테 거머리처럼 붙어다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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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 중편 ]
○● Touch! (피아노를 치다) ● 7.
해바란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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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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