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기(危機) 속의 진류 왕(陳留王) -
한편,
대궐 문(大闕門) 앞에서 대기(待機)하고 있던 하진의 부장(副將) 오광(吳匡)은 궐 안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놀라 대문을 두드렸다.
"하장군(何將軍)님! 하장군님! 무슨 일이옵니까?"
그러자 성(城) 안의 관병(官兵) 하나가 성벽(城壁) 위에서 내려다보며,
"이 썩을 놈들아! 조용히 하거라! 네놈들의 주인(主人)인 하진(何進)은 역적(逆賊)질한 것이 탄로(綻露) 나서 방금(方今) 전에 참형(斬刑)에 처(處)해졌다! 자, 이것이나 가지고 썩 돌아가거라!" 하고 외치며 성(城) 밖으로 무엇인가 던져 주는데 급(急)히 주워 보니 그것은 바로 대장군(大將軍) 하진(何進)의 머리였다.
성문(城門) 밖에 대기(待機)하던 호위병(護衛兵)들은 경악(驚愕)해 마지않았다. 그중에서도 특(特)히 하진(何進)의 부장(副將) 오광(吳匡)은 불같이 화를 내며 성문(城門)에 기름을 끼얹어 불을 지르게 하고 부하(部下)들과 함께 성문을 깨고 궁중(宮中)으로 뛰어들어 환관(宦官)이란 환관(宦官)은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목을 잘라 죽였다. 궁중은 삽시간에 피비린내가 진동(振動)하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도가니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이리하여 십상시(十常侍) 조충(趙忠)과 곽승(郭勝), 하운 등은 황급(遑急)히 도망(逃亡)을 가다 서궁 취화루(西宮 翠花樓) 아래서 하진(何進)의 호의병(護衛兵)에 의해 창검(槍劍)에 쓰러져 죽었다. 그러나 장양(張讓)과 단규(段珪) 등 몇 명의 십상시(十常侍)만은 재빠르게 몸을 피하여 하 태후(何太后)에게 달려왔다.
그리하여 어린 황제(皇帝)와 하 태후(何太后) 그리고 진류 왕(陳留王), < 협 황자(協皇子)를 나중에 "진류왕"으로 불렀다> 세 사람을 데리고 북궁(北宮)으로 달아나려 하였다. 그리하여 검은 연기가 중천(中天)으로 타오르는 대궐(大闕)을 바라보며 북궁 비취문(北宮 翡翠門)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늙은 장수(將帥) 하나가 갑옷을 갖춰 입고 큰 칼을 비껴든 채로 쏜살같이 말을 달려왔다.
그는 대궐(大闕)에 변(變)이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황실(皇室)을 도우려고 달려온 노식(盧植) 장군(將軍)이었다.
"이 역적(逆賊)놈들아! 네놈들이 감(敢)히 황제(皇帝)와 태후(太后)를 어디로 모셔가려고 그러느냐?"
노식(盧植) 장군(將軍)이 큰소리로 외치며 달려오자 장양(張讓)은 황제(皇帝)와 진류 왕(陳留王)이 타고 있는 수레에 채찍을 가하여 번개같이 도망(逃亡)을 쳐버리고 노식(盧植)은 하 태후(何太后)가 타고 있는 수레만을 붙잡았다.
마침, 그때 조조(曹操)가 달려왔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태후(太后)에게,
"황제(皇帝)를 찾아 모실 때까지 태후(太后) 마마께서 정사(政事)를 살피셔야 하겠사옵니다." 하고 말한 뒤에 병사들을 각지(各地)로 보내어 황제(皇帝)와 진류 왕(陳留王)의 행방(行方)을 찾게 하였다.
대궐(大闕)에서는 아직도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맹렬(猛烈)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거리는 세간(世間)의 백성(百姓)들은 병란(兵亂)을 피하려고 가장집물(家藏什物 : 집에 놓고 쓰는 살림 도구)을 둘러메고 피난(避難)을 떠나는 무리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한편, 하진(何進)의 부장(副將) 오광(吳廣)은 환관(宦官) 무리를 색출(索出)하려고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때마침 하진(何進)의 아우 하묘(何苗)를 발견(發見)하였다.
"이놈! 재물(財物)이 탐(貪)이 나서 형(兄)을 죽게한 놈아!" 하고 벼락같은 고함(高喊)을 지르며 하묘(何苗)를 한칼에 베어버렸다.
그리고 원소(袁紹)는 원소대로 화염(火焰)이 충천(沖天)하는 궁중(宮中)에서 십상시(十常侍)의 가족들을 모조리 찾아내어 죽여대는 바람에 대궐(大闕) 안은 그야말로 피비린내가 진동(振動)하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혼돈천지(混沌天地)가 되었다.
한편, 皇황제(帝)와 진류 왕(陳留王)을 납치(拉致)해서 궁중을 떠난 장양(張讓)과 단규(段珪)는 성(城) 밖으로 멀리 벗어나는 대로 수레를 버리고 산중(山中)으로 숨어들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는데 그들은 숨을 곳이 없었다. 게다가 어린 황제(皇帝)와 진류 왕(陳留王)은 다리가 아파 더 이상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행(一行)이 북망산(北邙山) 속 여울을 끼고 있는 풀밭에 모여 앉아 잠시(暫時) 쉬고 있노라니까, 문득 어디선가 추격(追擊)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장양(張讓)은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諦念)하고 여울 물속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단규(段珪)만은 아직도 삶의 미련(未練)이 남아서 황제(皇帝)와 진류 왕(陳留王)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황제(皇帝)와 진류 왕(陳留王)은 겁(怯)에 질려 나무그늘에 몸을 숨겼다.
이윽고 말을 타고 나타난 사람은 하남 중부 연사 민공(閔貢)과 그가 이끄는 이십여 명의 군사들이었다.
그러나 민공(閔貢)은 황제(皇帝)와 진류 왕(陳留王)이 나무 그늘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아이, 배가 고파라!" 어린 황제(皇帝)는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때, 때마침 한 떼의 반딧불이가 무리를 지어 두 사람의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 형님! 저 반딧불이가 우리를 구해 주려나 봅니다. 저 반딧불이를 따라가 보십시다."
어린 진류 왕(陳留王)이 용기(勇氣)를 내어 말했다.
두 소년(少年)이 반딧불이를 따라 얼마를 걸어가니 산속에 커다란 기와집 한채가 보였다. 그러나 그 집은 어떤 집인지를 몰라서 섣불리 찾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배고픔과 피곤(疲困)함에 지친 두 소년은 애처롭게도 집 앞 나무그늘에 쓰러진 채로 곤(困)히 잠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에 두 소년(少年)을 흔들어 깨우는 사람이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어디서 온 아이들이냐?"
깜짝 놀라 깨어난 진 류왕(陳留王)은 황제를 가리키며,
"이 분은 얼마 전에 새로 즉위(卽位)하신 황제(皇帝) 폐하(陛下)이십니다. 어젯밤 십상시(十常侍)의 난((亂))을 피해 여기까지 피난(避難)을 오신 것입니다." 하고 대답(對答)하였다.
"엣? 이 분이 천자(天子)님이시라고?.... 그러면 당신(當身)은 누구시오?"
"저는 천자(天子)님의 아우인 진류 왕(陳留王)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란 사람은 두 소년(少年)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이렇게 누추(陋醜)한 곳으로 모시게 되어 황공(惶恐) 무(無備)비 하옵니다. 소인(小人)은 사도(司徒 : 관직명으로 교육에 관한 일을 하는...) 최열(崔烈)의 동생 최의(崔毅)이옵니다. 일찍이 벼슬을 지내다가 십상시의 난동(亂動)이 자심(滋甚)하기에 벼슬을 버리고 초야(草野)에 묻혀 지내고 있는 중이옵니다." 집 주인(主人)은 어전(御前)에 엎드려 자기(自己)를 소개(紹介)하였다.
이윽고 날이 밝고, 아침이 되었다.
천자(天子)와 진류 왕(陳留王)이 방(房) 안에서 조반(朝飯)을 잡숫고 계시는데 어떤 장수(將帥) 한 사람이 대문(大門) 밖에서 주인(主人)을 찾았다.
"누구시오?"
"나는 중부 연사 민공(閔貢)이라는 사람이오. 밤새워 배가 몹시 고프니 아침을 좀 먹을 수 있겠소?"
"어렵지 않은 부탁(付託)입니다." 집 주인(主人) 최의가 그렇게 대답(對答)하며 민공(閔貢)을 살펴보니 그의 말허리에는 사람의 머리가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앗? 이게 웬 수급(首級)입니까?" 깜짝 놀란 최의(崔毅)가 물었다.
"이 머리는 십상시(十常侍)의 한 놈이었던 단규(段珪)의 머리요. 어젯밤에 도망(逃亡)가는 단규의 머리를 벤 것은 다행(多幸)이었으나 황제 폐하(皇帝 陛下) 형제(兄弟)분의 행방(行方)을 몰라서 나는 그분들을 찾아 헤매는 중이오."
주인(主人)은 그 소리를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금상(今上)과 진류 왕(陳留王)께서는 지금 저희 집에 계시옵니다."
민공(閔貢)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이내 방안으로 들어와 천자(天子)와 진류 왕(陳留王)을 찾아뵈었다.
"어젯밤에는 얼마나 괴로우셨습니까? 궁중(宮中)에서는 모두가 폐하(陛下)를 애타게 찾고 있사오니 피곤(疲困)하시더라도 지금 곧 황궁(皇宮)으로 돌아가셔야 하옵니다."
민공(閔貢)은 두 분을 모시고 즉시(卽時) 길을 떠났다.
그리고 민공(閔貢)이 낙양(洛陽) 가까이 왔을 때 황제(皇帝)가 환궁(還宮)하신다는 소문(所聞)을 듣고 사도 왕윤(司徒 王允), 태위 양표(太尉 楊彪), 좌군교위(佐軍校尉) 순우경(淳于瓊), 우군교위(右軍校尉) 조맹(趙萌), 후군교위(後軍校尉) 포신(鮑信), 중군교위(中軍校尉) 원소(袁紹) 등이 제각기(各其) 수백 명의 군사(軍士)를 거느리고 영접(迎接)을 나왔다.
이렇게 어가(御駕)가 낙양(洛陽)에 가까워지고 있는 바로 그때 문득 산속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깃발을 높이 들고 어가를 향하여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하여 원소(袁紹)가 앞으로 달려나가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금상(今上)께서 환궁(還宮)하시는데 무엄(無嚴)하게도 앞을 막는 군사(軍士)는 누구냐?"
"오오, 나요! 나 서량지사(西凉之事) 동탁(董卓)이오!"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한 장수(將帥)가 군마(軍馬)를 내달아 나오며 마주 소리를 지른다.
그러는 이 사람이야말로 진작부터 승지(勝地:경치가 좋은 곳)에 대군(大軍)을 멈춰 놓고 낙양(洛陽)의 정세(情勢)만 유심(有心)히 살피고 있던 야심가(野心家) 동탁(董卓)이었다.
원소(袁紹)는 동탁(董卓)의 위세(位勢)에 눌려 잠시(暫時) 말이 없었다.
그러자 문득 소년(少年) 진류 왕(陳留王)이 동탁(董卓)의 앞으로 말을 달려 나오며,
"그대가 누구길래 방자(放恣)스럽게 천자(天子)의 앞길을 막느냐?" 하고 엄숙(嚴肅)한 소리로 꾸짖었다.
아홉 살짜리 소년(少年)으로서는 놀라운 기백(氣魄)이었다. 아무려니 동탁(董卓)도 소년의 꾸짖음에 기가 질렸다.
그리하여 소년(少年)을 향(向)하여 물었다.
"그러는 그대는 누구 시옵니까?"
"나는 천자(天子)의 아우 진류 왕(陳留王)이다. 그대는 천자(天子)를 영접(迎接)하러 온 것이냐? 아니면 어가(御駕)를 겁탈(劫奪)하려고 온 것이냐?"
"옛? 폐하(陛下)를 영접(迎接)하러 왔사옵니다."
"그렇다면 무엄(無嚴)하게도 어느 안전(案前)이라고 말을 타고 시끄럽게 구느냐?"
"넷! 황송(惶悚) 무비(無備)하옵니다." 동탁(董卓)은 저도 모르게 말에서 뛰어내려 마상(馬上)의 진류 왕(陳留王)에게 허리를 굽혔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오호! 제법인데...! 저런 인물(人物)이라면... 조만간(早晩間) 천자(天子)를 폐하고 진류 왕(陳留王)을 새로 책립(冊立)해야 하겠다.) 하고 혼자의 결심(決心)을 굳히는 것이었다.
삼국지 - 31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