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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교회미술 작가 장동현, 조수선 부부
교회 미술 작가 장동현, 조수선 부부. ⓒ정현진 기자
지난해 박물관 등록을 마친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가톨릭박물관. 2022년 10월부터 3월 18일까지 등록 기념 전시회를 열고 있다. '장동현, 조수선 초대전: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제 원을 채워주소서'.
미술품 전시를 위한 공간이 아닌데도, 장동현(비오) 작가의 유리화(스테인드글라스), 조수선(수산나) 작가의 조소 작품은 각각 맞춤한 공간에서 어우러져 있었고, 미술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도 특별한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별히 눈에 들어온 것은, 조수선 작가가 한국 순교자들의 이야기로 엮어 낸 십자가의 길 14처, 그리고 떨어지는 빛을 받아 유리 벽에 조형물 형태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었다.
이 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다. 어느 정도 기자의 사심이 묻어 있는 인터뷰를 섭외한 뒤, 두 작가를 만난 곳은 작업실이 함께 있는 그들의 집이었다.
집은 양쪽으로 펼친 산 능선 사이에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쪽 능선 너머엔 성 김대건 신부의 처음과 마지막이었던 은이 성지, 다른 한쪽 너머에는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미리내 성지가 있다.
광주가톨릭박물관에 전시한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만든 것보다 기존 작품들이 더 많았다고 했다. 작품을 설치하는 데 거의 두 달 걸렸다. 선택한 작품을 한 번에 싣고 가 설치하는 통상적 방식과 달리, 장동현 작가는 몇 차례 걸쳐 작품을 싣고 오가며, 최적의 공간 구성을 위해 상당히 공들였다고 말했다. 전시 작품들은 두 작가에게 일종의 터닝포인트이자 개인 역사를 담고 있다고 했다.
충만한 환대를 느끼며 두 작가에게 그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조수선 작가, 여성과 어머니의 교회를 살아가다
‘무명 순교자’에 담긴 이야기
'어머니의 선택', 조수선. 작품 속 어머니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가슴에는 배냇저고리를 품었다. 손에 쥔 묵주는 최양업 신부 또는 자신의 굳은 신앙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연결된 남은 자식들이다. ©정현진 기자
2009년 조수선 작가가 맡았던 원고 타이핑 아르바이트가 그의 작품들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이충우 시인의 '꽃이 되고 빛이 되어'라는 성지 소개 책을 재판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각 지역의 성지와 순교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조 작가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복자 이성례 마리아를 만났다.
이성례에게는 순교 당시 여섯 아이가 있었다. 장남 최양업은 마카오로 유학을 갔고, 젖먹이 하나는 옥중에서 굶어 죽었다. 이성례는 남은 아이들을 위해 한번 배교하지만 다시 옥에 들어가 순교한다.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자식이 여섯 명이나 있는데 순교를 결심한다니. 젖먹이도 있었는데 더 이해가 안 됐죠. 신앙인 이전에 어머니로서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한 걸까 묻게 됐어요. 그리고 그 내용을 담아 스케치했죠.”
순교자라면 김대건 신부밖에는 모르던 시절, 그는 글을 입력하며 꽤 많은 순교자의 삶을 읽게 됐다. 이성례 마리아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선택'이라는 작품이 됐지만, 순교 성인들의 이야기를 14처 장면으로 담은 '무명 순교자의 길'은 스케치 상태에서 오래 빛을 보지 못했다.
‘무명 순교자의 길’이 탄생한 계기는 2016년 독일 한인 성당 25주년 전시회였다.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사는 지역의 한인 성당 주임 신부와 우연히 만나 일이 진행됐다. 전시회 제안을 받고 어떤 내용으로 전시회를 구상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한국의 신앙, 순교 역사 이야기를 가져가자고 생각했고, '무명 순교자의 길'을 만들며, '어머니의 선택'도 다시 크게 작업했다.
조수선 작가는 “사실 돈도 없는 상황에서 굉장히 무모한 일이었어요. 작품을 만드는 것도, 독일로 보내는 것도 모두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생각하니 그 모든 일이 정말 많은 이의 도움으로 이뤄졌고, 어렵게 진행한 전시였지만 그전까지 한국 순교 역사를 모르는 한국인 신자, 독일 성직자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는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무명 순교자의 십자가 길
1처와 3처 주인공이 여성이어야만 하는 이유
(왼쪽부터) '무명 순교자의 길' 1처 '천주학을 받아들이심', 3처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심'. 조수선. ©정현진 기자
'무명 순교자의 길'은 한국 천주교 전래 과정의 십자가 길이다. 1처 '천주학을 받아들이심', 2처 '물로 세례 받으심', 3처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심'은 모두 여성 상이다.
조수선 작가는 처음 이 이야기와 이미지를 고민하면서 “여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여성은 글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존재였어요. 하지만 "천주실의"라는 책 내용을 듣고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한 거죠. 또 3처에서 여성이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종교를 위해 고향을 떠나요. 그 당시에 여성이 집을 나간다는 것, 고향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고 또 파격, 혁신이었거든요. 그 시대에 여성은 늘 억압받고 속박됐지만 천주교라는 종교가 평등과 정의를 이야기했고, 그것이 여성들에게 일깨움이 되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모습을 그리면서 너무 신나고 좋았어요.”
조 작가는 14처의 모티브를 따라갔지만, 그럼에도 정확히 들어맞는 순교 역사의 모습들이 있었다고 했다. 세 번째 넘어지심과 세 번의 박해, 천주학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죽음, 고난을 각오한 시점이었다는 것. 그리고 4처 '양반과 천민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만남'의 의미 또한 십자가 길 위에서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만나는 장면의 의미와 겹칠 수 있다.
작업 과정을 지켜봤던 장동현 작가는 “여성과 양반 아닌 이들에게 천주교는 평등과 정의였고, 그 당시의 사회교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천주교가 쉽게 정착하지 못하고 박해 시기를 겪었던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기존 관념을 완전히 깨 버리는 거였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특히 여성이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유와 상황은 사회교리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천주학이 전래하면서 또 박해 시기에도 신앙의 선조들은 신분과 성별을 나누지 않고 서로 공동체를 이루면서, 핍박받으면서도 행복했고, 그 행복을 지켰던 것 같아요. 조수선 작가가 어릴 적 본당에서 만났던 김승훈 신부님이 정권에 핍박받고 옥살이하면서도 본당 아이들을 보면서 웃어 줬던 것처럼요. 요즘도 그러한 모습들이 시대 배경은 다르지만 똑같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계속 잃지 않아야 하는 건 그때도 지금도 지켜야 할 것이 초기 교회 공동체가 꿈꾸고 살았던 것이 아닐까요.”(장동현 작가)
장동현 작가, 작품이란 뼈대에 사람들 원의 입혀 완성하는 교회 미술
어디에나 항상 있는 빛이 비로소 그 존재를 드러내도록
두 사람이 미술가의 길을 걸으며, 그중에서도 교회 미술을 선택하고, 기존 틀에서 더욱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맥락을 찾게 된 과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장동현, 조수선 작가는 2003년 즈음, 장학금을 받아 이탈리아 성당 순례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현대 성당 건축 양식과 교회 미술을 보면서, 이들은 이런 미술적 분위기나 성당 건축의 변화라면 교회 미술에 투신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조각을 전공한 장동현 작가는 흙, 나무 등 모든 재료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조광호 신부의 유리화 작업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조금씩 유리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먹고살기 위해서 유리화를 시작했다는 장 작가는 그럼에도 분명한 매력이 있었고, 그 매력은 유리화를 비로소 완성하는 “빛”이었다고 했다.
(왼쪽부터) '빛을 주노라', 'LOVE1'. 장동현. ©정현진 기자
“순교와 영원한 부활의 빛, 즉 영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은 하느님의 영역일 것이다. 그림자만이 내가 느끼는 것일 뿐. 물리적으로 지금 내 곁에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없다. 하지만 그분은 죽음을 넘어 우리 곁에 사랑의 빛으로 계신다. 빛이란 분명 그런 것이다. 그 실체를 짐작하나 만져지지는 않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빛을 주노라' 작품에 쓴 장동현 작가의 글)
장동현 작가가 유리화를 통해 그려내고,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이 발견하길 바라는 것은 작품 자체보다는 그것을 투과한 빛, 빛이 비치는 상황, 그리고 그 빛으로 빚어내는 또 하나의 형상이다. 하느님이 빛이라면, 그 하느님을 어떻게 작품으로 보여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장 작가는 볼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기처럼 빛도 존재하지만 늘 인식하지는 않는다. 하느님과 같다. 그런 빛의 의미로 하느님을 드러내고자 했다”면서, “유리화의 매력은 빛을 인식하게 해 주는 도구이고, 화가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 도구에 걸러진 또는 비친 빛은 그저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된다. 빛을 진짜 빛으로 인식할 수 있고, 빛의 현존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동현 작가의 유리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고딕 양식 성당들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차별된다. 그는 현대 성당 양식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했고, 그렇다면 그 안에 있는 미술 작품 역시 하느님을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친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의 성당은 어둡고 높았고, 그래서 유리화도 화려하거나 높이 설치되어 있었죠. 그런데 높고 화려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누르는 느낌보다는 조금 더 아래로, 곁으로, 가까이 왔으면 좋겠어요. 물론 요즘은 상당히 밝은 성당도 있어요. 하지만 과한 빛 역시 빛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성당 안에 있는 이들이 그 안에 있는 빛을 통해서 하느님을 느낀다면, 가까이에서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동현 작가의 작품은 유리화에 조각 요소를 접목했다. 작품은 벽에서 떨어져 공간을 두고 전시했고, 작품을 투과한 빛이 오히려 더 크고 짙게 주변 벽과 바닥에 떨어진다. 그래서 작품이 빛을 통해 역동적이 된다.
이를테면, 광주가톨릭박물관 복도에 설치한 십자가 작품은 아래가 짧은 형태지만, 빛이 통과해 비치는 십자가는 반대다. 또 밖에서 어떤 빛이 비치느냐에 따라 작품 형태도 느낌도 분위기도 달라진다. 다른 유리화 작품도 전시장에서는 고정된 조명을 받지만, 어디에 언제 걸리느냐에 따라, 보는 시간에 따라 느낌이 모두 다르다.
“교회 미술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험들이 몇 가지가 있어요. 언젠가 한 수도회 십자가를 만든 적이 있는데, 저희가 굉장히 힘든 시기여서 사실은 아주 열심히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완성해서 설치하고 나중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이태석 신부님이 생전에 그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진 속 십자가가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교회 미술 작품은 정말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구나. 작품이라는 뼈대를 만들어 놓으면 그 내용을 채우고 완성하는 것은 다른 분들의 기도,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 그런 것들의 총합이구나. 무수히 많은 이의 원의가 그 위에 살과 옷으로 입혀지는 것이구나.”
장동현 작가는 무수히 많은 이의 원의로 완성되는 것이 교회 미술의 매력인 것 같다면서, “요즘 젊은 작가들이 이런 매력을 선택하지 않는 것, 오히려 시장성이라든가, 교회 안에서 새로운 작업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리다든가 하는 교회 미술의 한계를 더 많이 보는 것이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교회가 새로운 시도에 보수적이라는 것, 단지 낯설다는 관점에서 성장과 변화일 수 있는 것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또한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제는 창작자 입장에서 라파엘로의 그림 같은 양식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시대가 변하고 삶이 변했다면, 그 삶을 담을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삶과 하늘에 계신 분은 점점 관계가 없어진다. 삶이 담기지 않으면 교회 미술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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