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양이의 사생활]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녀석과 같이 소파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영화채널에서
하는 영화를 한편 보고나면 한번도 빼놓지않고 산책을 나간다.산책을 끝난후에는
녀석이 만든 따듯한 저녁식사를 한 뒤,학교숙제같은거나 준비물같은것을 준비해놓은 후
씻고 편안한 잠을 잔다.나쁘진않았다.분명 나혼자 살았다면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은
분명 하지못했을것이다.
"겨울누나,좋은꿈 꿔요."
내가 머리 말리는것을 도와주고 나서 녀석은 내가 잠이 들때까지 옆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쓸데없는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그리고나서 녀석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겨우 잠을 자는것이였다.엄마도 해주지않는것을 녀석이 하는것이였다.
".....음....."
갈증이 일었다.탁자위에 물병을 놔둔것을 생각하고는 물을 급히 찾았지만 물병은
텅 비어있었다.할수없이 물을 뜨러간 나는 문득- 녀석이 잘 자고있을까 하는 생각에
문을 열어보았다.
'끼이'
방안 어디에도 녀석은 보이지않았다.나는 물을 마시며 소파에 앉았다.
"어디간거지...."
녀석은 시간이 한참이 지나도록 오지않았다.혹시 내가 자는사이에 녀석은 늘 나가는
것이 아닐까?나는 그런생각을 했다.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만약 그렇다고 해도
내가 신경쓸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있다.녀석이 내게 아무것도 묻지않는 이상 나도
그녀석에게 물어볼 수 없는것이다.하지만....난 왜 그녀석을 기다리는것일까.
'철컥'
현관문에서 소리가 났다.난 현관문쪽을 바라보았다.한참을 부시럭대면서 녀석은
내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날 보더니 약간 놀란듯한 얼굴이였다.
"왜 안자고있었어요?"
"......그냥....."
"......옆에 앉아도 되요?"
녀석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녀석이 내 옆에 앉자 갑자기
지독한 향수가 풍겼다.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향수가 너무 지독하죠?냄새 뺀다고 하고서 깜빡했네."
"어디갔다온거야?"
".....음.......알바요."
".....무슨 아르바이트가 이렇게 늦게하니?"
"그러게요.나도 늦는걸 싫어하긴하지만 어쩔수없어요."
어깨를 으쓱거리는 녀석에게 더이상 물어보기가 난감했다.휴- 하고 한숨을 내쉰 뒤,
나는 내 방으로 향했다.
"무슨 알바인지 물어보지않을꺼예요?"
"........그래."
"겨울누나가 물어본다면 대답해줄 수 있어요."
"...........궁금하지않으니까 물어보지않아."
사실 물어보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결국 물어보지못했다.물어보면 어쩐지 녀석에게
실망하게 될 것같아서 물어보고싶지않았다.난 그렇게 속마음을 숨긴체 방으로 들어갔다.
녀석이 뒤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못하고.
".......거짓말쟁이.........묻고싶었으면서......"
.....
..............
"겨울아,우리 오늘 시내가지않을래?"
이유정이 내게 말했다.시내라.시내는 한번도 나가보지못했는데.한번쯤 가보는것도
좋을것같아서 나는 그녀석에게 오늘은 먼저가겠다 라는 문자를 보냈다.한참을 기다려도
녀석의 문자는 오지않았다.방과후가 되자 나는 녀석의 문자를 포기하고 그냥 이유정과
시내로 가기로 마음먹었다.난 힐끔 내 옆자리의 녀석을 바라보았다.옆얼굴은 분명히
신우오빠와 달랐다.그 뒤로 내게 시비도 말도 걸지않았지만 가끔씩 날 뚫어져라
바라보곤했다.
"내가 맛있는 아이스크림가게 알아.거기 딸기아이스크림 무지하게 맛있거든."
딸기는 질색이지만 다른 아이스크림이라면 좋다.특히 녹차아이스크림이라면 더욱 좋다.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시내로 향했다.이유정,그녀는 참 쓸데없이 말이 많은 여자였다.
하지만 나쁘지않았다.워낙 말이 없는 나같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는
사람도 더러 많은데 그녀는 날 꺼리는기색같은것은 없었다.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꺄- 이쁘다.그치만 용돈이~ 용돈이 모자라!"
팬시점을 지나가면서 그녀는 말하곤했다.끊임없이 용돈의 부족을 외치며.아마 저게
평범한 여자애의 모습이 아닐까?내가 언젠가 원했던 그런 모습들.저렇게 명랑하고 활기차고
밝은 여자애였다면......사랑받을 수 있었던건가?
"아,여기야.비싸긴하지만 맛은 아주 끝장이야~"
호들갑을 떨면서 들어선 아이스크림 가게는 달콤한 향기가 그윽하게 풍겼다.나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앉자마자 그녀는 내게 묻는다.
"무슨 맛 먹을래?"
"녹차."
"엥?녹차?으윽,너 생각보다 취향이 늙은이 취향이구나."
"그래?"
"내 친구들 중에는 녹차 좋아하는애들 별로 없는데....헤에,역시 겨울이 너는 특이해."
특이하다라....좋은뜻일까?그녀는 좋아라 딸기맛과 녹차맛을 시키고는 아이스크림을
받아가지고 내 앞에 내려놓았다.조그만 스푼으로 열심히 퍼먹는 그녀를 보면서 한편으론
참 산만하다 느끼면서도 귀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원하고 달콤해라.맛있지?"
"응.맛있다."
"여기 생긴지도 별로 안되는데 아주 끝내주는 가게야.나 단골이거든.헤헤."
새로 생긴대라 그런지 외양도 괜찮고 속도 깔끔한게 맘에드는 곳이였다.큰 전면
유리창 근처에 앉아서 걸어다니는 사람도 보고,나름대로 괜찮은곳이였다.
"어머,쟤 강이루 아냐?"
멈칫.나는 아는사람의 이름을 듣고는 살짝 놀라 아이스크림을 먹던 손을 멈추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 말대로 그녀석은 시내를 활보하고있었다.그것도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그녀는 부러운듯한 얼굴로 헤벌쭉- 쳐다보다가 날 보고는 아차,한다.
"아,미안미안.쟤 누군지 모르지?"
".......아.......응."
나는 얼떨결에 모른다고 말했다.이유정은 눈을 반짝이며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사실,별볼일 없는 우리학교가 유명한건 바로 다~ 저 강이루때문이야!"
"응?"
"2학년 강이루!음,한마디로 말하면 '옮겨다니는 최상급 애인' 이랄까.흠,뭐 하여튼
한마디로는 좀 부족한 남자애야.가족사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아무래도 좀 사정이 있는
남자애인것같아.늘 이집저집 옮겨다니거든.그렇지만 자신의 집에 있게해주는 대신
그 집 주인한테는 무지하게- 잘해준다나봐.완전 애완용 남자친구랄까."
정보통으로 얻은 정보를 술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턱을 괴며 사라져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신경쓰지말자,신경쓰지말자.라고 다짐했지만
저런말을 듣고서 신경쓰지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게 아닐까.
"그래도 생긴건 초절정 꽃미남이니까.....아~ 한번만 강이루의 집 주인이 되봤으면..."
그래그래.너가 그렇게 원하던 집 주인이 바로 니 눈앞에 있단다.정말이지 난 그녀석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서 덥썩 받아들였나보다.버림받은고양이라.그말이 끌려서 그랬나...
나는 남은 녹차 아이스크림을 다 먹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겨울아,잘가.즐거웠어."
"응.너도 잘 들어가."
크게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난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집에 가면
녀석이 있을까?소파에서 늘어지게 누우면서 싱긋 웃는 녀석이 있을까?싫다,정말.
누군가와 정이 들어버리는것은.이런 감정....다시는 느끼고 싶지않았는데.누군가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있다는 그런 사실이........정말 바보같다.
"강이루는....도대체 뭐지."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휘익'
"엇"
'꼬옥'
누군가 날 배려한듯 조심스럽게 안는다.꽉 안는것조차 미안하다는듯이 아주 살며시.
따듯하다.시계처럼 규칙적으로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의 고동이.....마음편하다.
".......바보.......문자를 그렇게했는데......."
문자?진동을 너무 약하게해놓아서 못 봤나보다.난 가만히 녀석의 품안에 안겨있었다.
녀석은 약간 힘주어 날 안더니 걱정어린 투로 말했다.
".....많이......걱정했잖아요.......한참이나 찾아다녔는데......."
나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보이던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고는.....녀석을 밀어냈다.
녀석은 의아하다는듯이 날 바라보았다.
".......거짓말하지마.넌 여자랑 놀고있었잖아."
"..........겨울누나?"
"시내에 가서 널 봤어."
"..........흐음........그랬구나."
그랬구나?그랬구나?!.......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흐음........겨울누나........나한테 궁금한거 많죠?"
"뭐?"
"........내가 왜 여자들한테 둘러쌓여서 갔는지 궁금한거 맞죠?"
".........하.......하나도 안 궁금해."
"........정말로?"
말할수없어.난 너한테 실망하고싶지않아.실망하기가 두려워.
"어?"
왜지?왜?나는 왜 이녀석한테 실망하고 싶지가 않은거지?신경쓰지않는다고했는데.....
"겨울누나,솔직히 말해봐요."
".......그래!궁금해."
"하하,역시 궁금하면서."
"알았으니까 빨리 말해봐."
"겨울누나를 찾기위한 사람들이였어요."
"뭐?"
"이유정이라는 누나랑 같이있어죠?그 누나 친구들 좀 조사했죠.그래서 그 누나랑 겨울누나
갈곳을 물색하다보니까 어쩌다 같이있게 된것뿐이예요."
나는 할말을 잃고 멍하니- 있었다.나 하나 찾으려고 그렇게 많은여자들을?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니까 냉큼 저한테 붙어서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럼.....날 찾고있었다고?"
"네.하필이면 누나가 간 다음에 아이스크림가게로 갔지만요."
"..........누가 그런거하래."
".......글쎄요.........난 겨울누나를 혼자 내버려두기가 어쩐지 싫으니까요."
"............."
".........누나는 혼자있으면........늘 슬픈눈을 짓고마니까......"
녀석은 빙그레- 웃었다.차가운 내마음에 갑자기 따듯한 바람이 불어왔다.너무나 따스해서
얼어붙은 얼음을 녹여버릴만큼.아아,알겠다.난 이녀석이 좋아.녀석이 웃는게 너무 좋아.
...............같이있고싶어.함께있으면서 녀석이 웃는것을 보고싶어.
"갈까요?"
"응."
"난 집이 최고좋더라."
"......응.....나도."
사람과 정이 드는것은 싫다.헤어지면 아프니까.
..........그렇지만...........녀석과 정이들어 언젠가 헤어져서 슬프고 아프게되어도
.....난 그래도 좋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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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장편 ]
캣츠 아이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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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2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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