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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6900480
러시아발 우크라이나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관련 뉴스들을 접하고는 있지만
아직 많은 분들이 우크라이나 위기 밑에 깔려져 있는 배경들과 맥락들을 잘 알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도 전문가라고는 할 수 는 없지만, 이 쪽 이야기들에는 정말 놀랄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7년전에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그 글들을 손봐서 조금 줄이고, 최신 이야기들을 덧붙여서 올리고자 합니다.
읽어보시고,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
1. 얘기는 2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차 대전 종전 당시 협약에 따라, 소련은 동독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동독과 동유럽 국가들을 묶어서 바르샤바 조약기구 라는 것을 만들고, 미국은 북미와 서유럽 국가들을 묶어서 NATO라는 군사조직을 만듭니다. 요즘 젊은 분들은 바르샤바 조약기구 라는 이름을 못들어본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소련이 붕괴되자 바르샤바 조약기구도 1991년 해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지 31년이 지났으니, 20대 분들은 잘 못들어본 이름일 것입니다.
소련이 동독에 계속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가, 1989년 11월 동서독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석달 뒤 동서독 통일 협상이 열리게 됩니다.
1990년 2월 동서독 통일 협상에서 고르바쵸프는 '소련군을 동독에서 철군시키겠다. 하지만 소련군이 철군한 빈 자리를 미국이 차지하면 안된다'고 못박았습니다. 동독 지역을 NATO에 집어넣으면 안된다고 미 국무장관 베이커에게 전제조건을 걸은 것입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독일이 자주성을 회복해서 통일국가가 되겠다고 하니 소련은 군대를 철수시켜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독일을 위해서이지, 소련의 철군이 적수인 미국의 힘을 늘려주게 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라는 입장으로 이해됩니다.
이에 미국의 베이커 국무장관은 동쪽으로 한 치도 침범하지 않겠다며 동의하였고,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나토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보증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련 연방이 붕괴되자, 미국은 약속을 깨고 동독을 NATO영역에 넣었습니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화를 냈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http://portside.org/2014-03-11/wikileaks-ukraine-nato(영어 원문)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73464 (번역문)
"러시아 국경 지방으로 동맹을 확장시키려는 나토의 움직임은 당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와 독일 헬무트 콜 사이에 채결한 1990년 2월 협약의 정신을 분명히 위반하는 조치다. 당시 문제는 독일과 나토였다. 2차 세계 대전을 종결시킨 조약에 따라, 소비에트는 동독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과 독일은 미국과 나토군을 서부에 주둔시키는 한편, 동부에 있는 38만 소비에트 군대를 철수 시키게 되는, 동-서독 통일 협상을 위해 애를 썼다.
러시아는 철군 의지가 있었지만 그들의 공백을 미국과 나토군이 메우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였다. 2월 9일 고르바초프는 베이커에게 “나토 지역 확대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그에게 “나토 관할지는 동부를 향해 1인치도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베이커와 고르바초프의 회의는, 고르바초프에게 “당연히 나토는 영토를 확대시킬 수 없다”고 보증한 서독 헬무트 콜 총리와의 회의 다음 날 진행됐다. 그리고 서독 외무장관 한스 디에트리히 겐셔와 소비에트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 간 회의에서, 겐셔는 상대편에 “우리에게, 나토가 동부로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확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떠한 보증도 기록되지 않았고, 소비에트연합은 붕괴하기 시작했으며, 협정은 무시됐고 나토군은 동독에 주둔했다. 러시아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동부를 향한 나토군의 행진에 대해 협정 정신을 침해한다고 불만을 나타냈으나, 러시아는 이에 대해 무엇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러시아는 심각하게 약화되며 냉전의 승리는 서방측으로 넘어갔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95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나토가 전쟁을 하도록 했고, 보스니아에는 군대를 배치했다. 1997년을 마지막으로 폴란드, 헝가리와 체코는 나토에 합류했고 이어 2004년에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7개 소비에트 블록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했다. 나토의 “평화를 위한 파트너쉽”은 구 소비에트 공화국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연합의 ‘구제금융’은 우크라이나를 유럽 군사 조직에 묶어 두려는 조항을 포함한다. 요컨대,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적대세력에 둘러싸여간다고 느끼고 있다..."
2. 독일 선에서 NATO를 저지하는 것에 실패한 러시아는, 이후 구 소련연방 소속의 국가들이 하나둘씩 NATO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야만 했습니다. 이는 러시아를 적으로 상정하는 미군 기지가 점점 더 가까워져 온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급기야 러시아 본국 영토선까지 닿게되는 지경에까지 와 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NATO를 유럽연합군으로 흔히 생각해버리는 데, 실제로는 미군 휘하의 유럽군대 라는 쪽이 더 맞을 것입니다. NATO의 지휘권은 미국에게 있습니다. 우리나라 한미연합사가 미군 지휘 사령부인 것과 같습니다. 한국군의 독자적인 사령부는 합동참모본부이죠.
나토가 유럽의 손에 있지않고 미국의 손안에 있다는 인식.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E.U.는 NATO가 미군 지휘하에 있는 것에 불만을 품고, 미군을 배제한 독자적인 유럽군 통합사령부를 구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가 이 움직임의 주축인 데, 이는 미국이 추구해온 노선 - 미국 지휘하의 유럽-을 벗어날려는 시도이고, 미국과 유럽간의 갈등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아래의 NATO 확장 지도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NATO가 시간이 지나며 계속 동진해온 것이 보이실 것입니다.
https://i2.ruliweb.com/ori/17/10/18/15f2fa8dbf64b5fd8.png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까지 선이 다가오자, 러시아는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NATO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를 가입시키는 것을 회의에서 논의했으며, 그해 12월에 결론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이제는 NATO가 뒷배를 봐준다는 생각에 기세등등해진 조지아는 독립을 선언한 남오세티야의 자치주를 8월에 공격하였습니다. 아직 12월이 되지 않았는 데도 말이죠.
(이번 우크라이나 건과 수순이 똑같습니다. EU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쪽으로 가려는 중앙정부. 이에 반발하여 독립을 선포한 친러시아 주 정부. 주 정부 독립선언을 진압하려는 내전 시작)
빌미를 잡은 러시아는 군을 투입하여 조지아를 박살내버렸습니다. 4일만에 항복선언이 나왔습니다.
이 전쟁은 상당한 충격을 구 소련 출신 국가들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러시아는 조지아 군과 비슷한 수의 병력을 투입했으나 무기 질과 작전체계가 압도적으로 뛰어나 조지아로부터 4일만에 항복을 받아내었습니다. 미군이 오기도 전에 끝나버렸습니다. 러시아가 아직 안죽었구나, 러시아를 버리고 서방측에 붙다가는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주변국들에 인식시켜준 것입니다.
이후에 구 소련연방 출신 국가들에서 줄줄이 친러 후보들이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동유럽 분위기가 반전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포기하지 읺았습니다. 다음해인 2009년,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키는 것을 비밀리에 프랑스와 논의했습니다. 2013년 EU는 우크라이나에게 경제지원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이 경제지원은 우크라이나와 EU간의 FTA를 위한 전제조건이었고, NATO로의 편입을 위한 수순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계 혈통인 야누코비치였습니다. 그는 EU의 경제지원과 러시아의 경제지원 사이에서 고민하였으나 결국 러시아가 내건 경제지원을 받아들였습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EU 가입 위해 지원 필요" - 미국의 소리, 2013. 11. 30
http://www.voakorea.com/content/article/1800360.html
이 결정을 두고 EU의 경제 제안(FTA)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반러파 시위대가 수도에서 데모를 시작하여 시위가 격화되고, 결국 대통령이 하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혁명으로 정권을 획득한 우크라이나계는 러시아와의 손을 끊었고, 친러계가 반발하면서 이후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3. 다시 NATO의 동진정책으로 돌아가서, 푸틴의 방침은 NATO의 동진은 허락할 수 없다 입니다. 정확히는 구 소련국가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입니다.
그러나 이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조지아(그루지아), 몰도바 등 줄줄이 NATO에 가입해 들어간 상황에서 이것은 유명무실한 방침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정말로 참지 못하고 전쟁불사를 하게 되는 것은 언제인가. 러시아 국경선까지 밀고 들어갔을 때입니다.
조지아(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진 것은 그래서입니다. 두 나라는 모두 흑해에 접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국경선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나라를 빼앗기면, 러시아 국경선까지 NATO가 동진하게 됩니다.
사실 러시아는 이미 지중해로 나가지 못하고, 흑해 수준에서 봉쇄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이 러시아에게 그 위협을 보여주기 위해 흑해까지 항공모함을 보냬서 위력 시위를 했죠. 러시아가 유럽으로 나갈 수 있는 크림 항구가 사라지면, 러시아는 지중해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사라진다고 봐야 할 겁니다.
美항모 흑해로?… 우크라이나 전운 고조 - 문화일보, 2014. 3. 3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30301030132102002
英군함 폭탄 4발 피격 진실…간담 서늘했던 러시아 흑해 그날 - 중앙일보, 2021. 7. 18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07846#home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전이 터지자마자 첫주에 전격적으로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흑해 함대를 장악한 것은, 무엇이 러시아의 최우선순위였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아래 지도를 보시면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흑해에 있는 크림항에서 출항해서 지중해를 거쳐서 대서양으로 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 크림항을 잃는다면 러시아는 지중해로 나올 수가 없게 됩니다.
4. NATO의 동진정책은 계속될 것인가?
제 생각으로는 답은 예스입니다.
미국이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애시당초 NATO는 왜 동진정책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요? 냉전은 이미 끝났는데 말이죠.
미국이 러시아가 미래에도 부활할 수 없게 싹을 잘라버리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연방에서 떨어져나간 국가들이 한때는 독립국가연합(CIS)라는 이름으로 묶여있었으나, 이제 상당수 국가들이 NATO에 들어가버렸습니다. 국경선까지 밀리고, 위성국가들을 NATO에 흡수당해버린 러시아는, 세계 슈퍼파워에서 지역 슈퍼파워로 한 등급 내려가게 됩니다. 더 이상 미국의 맞수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라 두어개만 더 NATO에 편입시키면, 미국은 NATO를 통해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중해로 못 나가는 내륙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포기할 리 없지요. (사실 러시아를 내륙국으로 만들어버리고 나면, 미국이 유럽에 항공모함을 주둔시킬 필요가 남아있는지 의문이게 됩니다. 어차피 현 시점에서 러시아에는 가용 가능한 항공모함이 한대도 없기 때문에, 미국이 유럽에 항모를 주둔시킬 필요가 대폭 낮아져 있기도 하지만요. ^^a)
*(물론 내륙국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것입니다. 러시아는 북해함대와 발트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항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림항은 러시아에 해군을 창설한 표트르 대제이후 러시아 해군의 본부 기지이어 왔습니다. 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전함 포텐킨의 반란' 이라고 들어보신 분 있으실 겁니다. 러시아 혁명의 기점이 된 유명한 사건인데, 그것은 오데사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포텐킨에서 일어난 반란입니다. 오데사 항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오데사 주의 수도입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특히 흑해에 접한 지역은 원래 러시아 땅이어서, 우리가 러시아 땅으로 아는 곳들이 우크라이나에 현재 편입되어 있습니다. 본래 러시아 땅이었던 곳을 소련시절에 행정구역상 우크라이나로 편입시켜줬었는데, 소련이 붕괴되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해버리자 이 지역들이 문제가 되게 됩니다. 땅만 넘어간 게 아니라 거주하고 있던 러시아주민들이 우크라이나 소속이 되었으니까요.
일례로 러시아 흑해 함대는 크림항을 수백년간 본부로 삼아왔고, 흑해 함대 구성원들은 러시아출신과 우크라이나 출신들이 뒤섞여 군 장병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사태가 벌어졌을 당시, 흑해 함대 사령관은 우크라이나 출신 장성이었고, 장병들은 러시아인이 다수(70~80%)였습니다. 이 흑해 함대 사령관은 러시아에 흑해 함대를 넘겼고, 모국 우크라이나의 신정부로부터 반역자로 낙인찍힙니다... ;;; 당시 크림 항은 실질적으로는 러시아인들이 사는 도시인데, 서류상으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돈을 받고 빌려준 땅으로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독립이후 러시아로부터 항구 임대료를 받고 있었죠)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가서,
인터넷에서 본, 나토의 동진을 다룬 좋은 글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http://babodool.tistory.com/265
"나토(NATO)는 2000년대 동진 정책을 강화했다. 1999년 폴란드ㆍ체코ㆍ헝가리가 가입했고 2004년에는 러시아의 목 아래인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를 비롯해 7개 나라가 동시에 가입했다. 2009년에는 크로아티아와 알바니아가 가입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부터 계속된 나토의 동진 정책과 유럽연합의 지속적인 확장은 공공연하게 러시아의 고립을 목적으로 했다. 2000년대 러시아의 군사적 재무장과 옛 러시아 제국 부활의 꿈은 일차적으로 이에 대한 반발로 이해해야 한다.
먼저 나토를 살펴보자. 1990년 소련은 통일 독일에 나토군이 주둔하는 것이 서방의 군사적 동진의 신호탄이 될 것을 우려했다. 그해 2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협약은 소련의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베이커는 "나토 관할지는 동부를 향해 1인치도 이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고 콜은 "당연히 나토는 영토를 확대시킬 수 없다"고 보증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약속은 몇 년 지나지 않은 1994년부터 공공연하게 파기됐다. 1991년 바르샤바조약기구 해체 후 집단안보체제의 부재에 불안을 느끼던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 나토는 1994년 나토-PFP(Partnership for Peace)를 제안했다. 소련 해체 후 미국과 관계 개선에 힘써왔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나토의 이 정책에 우왕좌왕 했다. 하지만 1995년 나토가 확대정책을 공식화하면서 러시아의 서방제국주의에 대한 반발은 강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 발트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입장에서 서방으로부터의 위협에 쐬기를 밖는 꼴이었다. 이미 1999년 코소보 사태 당시 나토는 세르비아를 옹호하며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하던 러시아를 무시하고 폭격을 감행해 러시아의 적대감을 키운 바 있다. 세르비아 폭격 후 서방에 반발한 민족주의가 러시아 정치권을 휬쓸었다. 2000년 푸틴의 집권과 '강한 러시아' 정책은 1995년, 1999년, 2004년의 잇따른 나토의 확대에 대한 반발의 과정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푸틴의 개인적 성향을 결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2008년 조지아와의 전쟁은 서방의 동진 정책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이었다.
유럽연합의 확장도 마찬가지다. 소련 해체 후 유럽연합의 경제적 영향력은 중동부 유럽으로 꾸준히 확장되고 있었다. 그 결정적 국면은 2004년 발트3국을 포함한 중동부 유럽의 유럽연합 가입으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도 2003년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함으로써 유럽의 경제영토 확장과 포위라는 위협은 소련에게 현실적인 게 됐다. 유럽연합도 확장 정책에서 자신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가 러시아의 포위와 고립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2003년 우크라이나의 가입 신청 당시 유럽연합은 그 조건으로 이후 전개될 러시아의 경제구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내걸었다. 물론 2013년 우크라이나 정부의 우왕좌왕과 마찬가지로 당시 우크라이나 정부도 유럽연합의 그러한 조건에 한 발 물러서긴 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 총리가 이번에 쫓겨난 야누코비치였다는 것이다. 즉 야누코비치를 일관된 친러시아파로 보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분석일 뿐이다.
이러한 서방의 군사적ㆍ경제적ㆍ정치적 동진, 러시아 포위ㆍ고립 정책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위기를 현실화 시켰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몰도바ㆍ벨로루시ㆍ조지아ㆍ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여섯 개 나라와 유럽연합-동부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펼치면서 동진 정책을 공식화 했다. 자신의 두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진출한 서방 세력에 러시아가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그렇다고 러시아 제국주의를 옹호할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유일한 악의 축으로 모는 것은 문제의 진정한 핵심이 아니다."
5. 그러나 NATO는 동진정책을 찬성하고 있지 않다.
이게 재밌는 부분인데요. 정작 NATO국가들은 더 이상의 동진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NATO의 핵심주축국인 프랑스, 독일, 다른 서 유럽국가들은 더 이상의 동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와 그들 사이에는 이제 충분한 수의 다른 국가들이 방파제로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NATO 기존 주축국들의 입장은, NATO가 느리게 자연적으로 커지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가면서까지 가입국을 늘릴 필요는 없다 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따라 해당 국가들이 원하고, 주변 여건이 충분히 무르익은 후에 하나씩 들어오면 좋겠다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입장이 다릅니다. 미국은 나토의 동진이 빠를 수록 좋습니다. 러시아를 마무리하고, 이제 중국을 조이는 데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미국의 이런 주장은 나토에 비교적 최근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으로부터 적극적인 찬성을 얻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전쟁 경험이 있고, 동진정책이 더 진행되어 자신과 러시아 사이에 방파제 국가들이 생겨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들도 안전이 보장된다 이거지요. 최근에 러시아를 배신하고 NATO에 가입한 리투아니아 같은 경우는 우크라이나 휴전 회담이 이뤄지고 있는 Munich에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찾아와서 NATO가 평화협상을 할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도와서 러시아와 전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배반한다면 다음은 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If we betray Ukrainian people and after them it will happen with us - 2015. 2. 8
https://euromaidanpress.com/2015/02/08/if-we-betray-ukraine-we-will-be-next-lithuanias-president/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NATO나 EU안에서 힘이 없습니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안됩니다. 동유럽 나라 열개 모아봐야 독일 하나 만큼 될까요. 실세인 서유럽 국가들은, 우리가 가난한 구소련 국가들을 자꾸 받아들여서 얻을게 뭐냐. 걔네한테 돈만 나가지 라는 인식이 있거든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미국내에서 촘스키와 키신저가 이번 사태를 7년전에 이미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지 말라. 더 이상 동진하다가는 역사적인 비극 (러시아와의 전쟁)이 터질 거라며, 매우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키신저가 춈스키와 같은 입장이라니, 꽤 재밌는 상황입니다.
Chomsky and Kissinger: Don't Increase US Military Involvement in Ukraine - 2015. 2. 5
Both men argue U.S. military involvement there would be a "historic tragedy."
지금까지 저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지게 된 밑배경의 일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며 해명이 되지 않는 많은 의문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유로마이단 시위대가 반정부 시위를 벌여 정권이 전복되고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애시당초 우크라이나는 경제지원을 왜 받아야 했을까요. 그게 꼭 필요한 일이었을까요?
야누코비치는 자기가 총리일 때는 유럽연합에 경제지원을 요청했었다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러시아에 경제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쫓겨났죠. 친러계라면서 왜 왔다리 갔다리 한 것일까요?
러시아는 리투아니아 같은 발트 3국과 폴란드, 헝가리를 이미 NATO에게 빼았겼으면서 왜 우크라이나 상실에 대해서는 유독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NATO의 동진정책을 싫어했던 것이라면 굳이 자국 경계선에 와 닿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찌감치 거부반응을 보이는 게 러시아 입장에서는 더 낫지 않았을까요?
유럽 연합,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를 2008년부터 나토에 집어넣는 것을 논의해왔다면서, 왜 이제와서 뜻뜨미지근하게 저러는 걸까요? 자기들은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멀어졌고, 버퍼가 될 국가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해 저러는 것이라면, 애시당초 우크라이나를 나토로 끌어들일려고 논의를 하지 말았어야죠. 왜 굳이 논의를 하고 사단을 일으켜놓고는 이제와서 저러는 걸까요?
이런 의문점들은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경제, 정치 지형, 내부적인 특수성들을 아시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다음 글에서 이 이야기를 다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