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알베르빌(프랑스)
여자싱글 - 야마구치(미) 미도리(일) 케리건 (미)
남자싱글 - 페트렌코(구소련)와일리(미) 바나(체)
페어- 미쉬&드미(구소련) 베츠케&페트로프(구소련) 브라&에이(캐)
댄스- 클리&포노(구소련) 뒤세네s(프)우소바&쥴린(구소련)
메달분포
독립국가연합(구소련) 금 3 은1 동 1
미국 금1 은 1 동 1
일본&프랑스 은 1
체코&캐나다 동 1
1988년, 우승은 카타리나 비트였지만 실상 박수를 더 많이 받은 선수는 일본의 이토 미도리였습니다.
지금도 그것 다 하는 선수 드문 5종의 트리플을 완벽히 선보이며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킵니다.
이 여세를 몰아 트리플 액셀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89년 파리 세계 선수권에서 아시아인 최초 금메달을 따며,
피겨스케이팅에 나름 공들인 일본을 흥분하게 만들죠.
90년도에는 그러나 질 트레너리에 밀려 2위, 91년에는 그 유명한 쇼트 경기 중에 경기장 바깥으로 튀 나가는 실수를 범하며 4위..... 살짝 가라앉는 분위기였으나..... 예의 그 점퍼라고 불리우는..... 공간이동할 것 같은 장엄한 점프를 소유한 그녀는
명불허전 이였습니다.
이토미도리의 아성에 도전할 미국 선수의 선두주자는 질 트레너리..
그러나 이 선수는 91년도에 은퇴를 선언합니다.
91년까지 존속한 compulsory figure 라고, 선수들 에지 구사 능력을 심판들이 직접 빙판에 내려가서 보고 채점하는것이 있었는데 이게 빠지자, 이 것에 자신있던 이 선수가 은퇴했다는 말도 있곤 하지만...뭐 딱히 기억할만한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였습니다.
이어 페어와 겸업하며 두 종목 동시석권을 노립니다만, 러시아의 견고한 벽앞에 이 꿈이 너무 야무지다고 판단한 일본계 3세 크리스티 야마구치의 극성마미가 당시 야마구치의 페어 파트너인 루디 갈린도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별을 선언하고, 싱글 올인에 들어갑니다.
개인적으론 크리스티 야마구치는 여러모로 김연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체적인 스타일은 미셸콴의 그것과 닮아있지만 점프에 대해선 말이죠.
flip triple 을 젤로 좋아라 하고, 일본 라이벌이 있으며, 그녀들은 트리플 액셀을 한다.
완벽한 5종 세트를 다 하지만..... 하나 정도는 실수해주는 아쉬움....
그리고 연아가 이번에 들고나온 triple lutz- toe loop combination.
(물론 이토 여사의 그것과 마오의 그것을 같은 라인에다 둔다면...이토 여사 재작년 설에 먹었던 오조니 튀 나오겠지만...)
이토 여사의 perfect triple axel 에 대항할 궁리끝에 야마구치는 가장 어려운 점프인 러츠 뒤에 토르프 트리플을 붙일 계획을 합니다.
남자손에 이끌려 리프트 당하고, 스파이럴 끌리고(?) 그러면서 다져진 스태미너를 통해...
체력하나는 자신있던 야마구치는 어렵잖게 그 컴비네이션을 성공하며...
남는 시간에 트리플 액셀에 도전도 해 봅니다만...에공 하다 맙니다.
하지만 이 둘의 결과는 소문난잔치에 먹을것은 덜 부쳐진 전 밖에 없다는 속설처럼 시덥잖게 끝납니다.
쇼트에서 결정적 실수한 이토 미도리가 4위로 밀리고, 금메달 도전은 오나전 물거품 상황에서 포디엄에 오르기 위해 악착같이 연기하며 프리에서도 트리플 액셀 첫 시도엔 실패하지만....마지막에 이 점프를 다시 도전해 성공하며.... 은메달을 따내게 됩니다.
크리스티 야마구치는 넉넉하게 금메달을 따고, 미국의 다른 선수인 낸시 케리건과 토냐 하딩이 3-4 위에 포진 미국 전성기의 서막을 다시 열게 되죠.
한편 구소련의 기치로 마지막 출전한 독립국가연합은 피겨스케이팅의 맹주로서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합니다.
91년 뮌헨 월드에서 프랑스 뒤세네 남매에게 일격을 당한, 이미 90년 캐나다 월드에서도 프리에서는 이 팀에 뒤졌던 클리모나/포노마렌코가 나탈리아 두보바를 떠나, 타라소바 코치에게로 옮겨가게 되고.....
그 작전은 성공.... 84년 동- 88년 은 - 92년 금으로 아마츄어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죠.
페어는 저 개인적으론 가장 좋아하는 팀인 미쉬쿠티노프&드미트리예프조가 역시 all time my favortie pair 퍼포먼스인 리스트의 사랑의 꿈 3번으로, 완벽한 우승을 차지합니다.
1960년대 말, 남자싱글의 전설적인 코치 펭귄맨 알렉세이 미신과 페어로 월드 동메달 하나 차지한 것이 전부였던 타마라 모스크비나는 GG 때문에 아쉽게 올림픽 페어 금메달 6 연패라는 업적이 그림의 떡이 되었지만 84년부터 해서 금-은 -금- 은 - 금 - 금....으로 이어지는 페어 레전드 코치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첫댓글 님 덕분에 피겨에 대해서 더 관심이 가고 재밌네요 ㅋ저말고도 눈팅만 하시는 분들도 많을듯... 계속 좋은 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