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사십이 다 되어 얻은 늦둥이 녀석은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닌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온 녀석은 대문에 들어서기 무섭게 컴퓨터가 있는 아랫방으로 들어간다 "다녀왔습니다!"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대충 인사 한마디로 때운다, "바람의 나라"라는 게임에 사로잡혀서 헤어 날 줄을 모르고 말리지 않으면 저녁 시간까지 아랫방에서 보낸다.
몇번씩 재촉하는 소릴 듣고서야 마지못해 일어나 친구집을 찾아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씩 돌고 오곤한다.
또래의 녀석들은 골목에서 보기 어렵다,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주거공간이 아파트로 바뀌면서 동네에선 아이들의 노는 소릴 듣기 어렵게 되었다.또한 자녀 수도 줄어들고 대부분 맞벌이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의 놀이터가 골목에서 학원으로 바귀었기 때문이리라.
녀석은 친구들이 학원에가고 없을 동안을 컴퓨터로 친구를 대신하다 이젠 친구가 찾아와도 별반 달가운 기색이없다.
우리집 처럼 아이를 키우는 집도 없으리라 학원은 가기 싫다 한다고 보내지 않고 학교에서 하는 특기수업도 컴퓨터만 한다해서 그러라고 했다. 이웃에 살고 있는 고모들은 오시면 아일 그렇게 방치한다고 성화가 대단하시다 학원이라도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고모들의 눈으로 보면 일종의 직무유기쯤 될성싶다 부모의 직무유기...
사실 모처럼 만난 동창 녀석은 일곱살짜리를 학원을 네 군데나 보낸다 했다, 그 잣대로 보면 우린 부모의 자격을 이미 상실 했는지도 모르겠다.
열린교육 운운하면서도 부모들은 자신이없다, 나 역시도 자식 교육에 왕도는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 호기심 많을 유년을 삭막한 도시에 같혀서 사육된다면 추후 아이에게 부모는 무슨애길 들려줄 수 있을까? 현대를 사는 의식있는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우린 얼마나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낸걸까?
장난감이 없어도 컴퓨터나 동화책이 없어도 아무 거리낄것없이. 풀로 돌로 장난감을 대신했고 그마저 싫증 날라치면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온 들판을 뛰어다녔고 산 등성이를 넘나들었다.
저녁 어스름, 집에만 들어가면 그 뿐이었다
학원도 개인지도도 모르고 숙제나 해가면 어른들은 공부하는 줄로 여겨 기특해하셨고, 숙제를 않해가도 꾸중 조차 않으실때도 있었다.
원래 온화한 성품을 지니셨던 숙부께선 아이들을 나무라는 법이 없으셨다 그 어른이 언성을 높이신 일이 있었는데 내가 발단이었다, 지금에야 어린이 비만이 문제되고 당뇨가 풀어야할 숙제고 영양과잉으로 인한 폐단이 들어나지만 그시절 춘궁기엔 배급나온 밀가루로 허기를 때우던 이웃도 있었다. 군것질 거리가 있을리 없었다 방 웃목에 둘러치고 고구마를 저장했던 수수깡 울타리도 텅 비어서 걷어내고 땅콩은 씨만 남기고 돈바꿔 쓰고, 광엔 찹쌀이며 잡곡이며 있기야 했지만 아이들 간식까지 챙겨주실 여유는 없었다.
하루는 바다에 나가 고동을 주워 왔다 할머니가 삶아 주신걸 옷핀이랑 손톱깍기 펜치까지 동원해 고동을 먹는것까진 별 문제될게 없었는데, 껍질을 온 집안에 흘리고 다녔으니... 텃밭에 들어가고 앞논에 들어가지 않게 껍질을 바다에 버리면 되는 것 이었는데.
요즘엔 공해 때문인지 관심이 없어서 인지 몰라도 갯 냉이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아카시아 필 무렵에 요긴한 군것질 거리였는데 호미로 캐서 바닷물에 씻어서 그냥 먹어도 달고 맛 있었지만 잎을 떼내고 뿌리의 껍질을 벗겨서 하얀 속살을 씹으면 달달한 맛이 혀끝을 감돌았다.
그 때의 그 맛을 지금도 느낄 수있을까?
지금쯤 내 유년의 삘기(삐레기) 밭에는 누가 앉아 있을까?
많이 뽑아와도 걱정 듣지 않는게 있었는데 그게 삐레기 였다, 까먹다 미처 못 먹으면 쇠죽에 넣고 끓이면 그만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 내던지고 삐레기 밭에 가서 앉아 저녁이 되어 삐레기가 보이지 않아야 들어왔다, 웬 집착 이었을까?
오월이되면 아카시아가 뒷술 모래사장을 하얗게 덮었었다.
향기에 날아든건 벌 나비 뿐만이 아니었다.
학교 옆에 꽤 큰 아카시아 나무가 있어서 쉬는 시간만 되면 꽃을 따먹느라 아카시아가 수난을 당했다 보다못한 학교아저씨가 농약을 뿌렸으니 먹으면 큰일난다 엄포를 놓아도 아이들은 그때만 멈칫 했을뿐 아카시아꽃의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뿐이랴. 찔레순, 아카시아줄기, 민들레, 송기, 망개, 소라, 피조개, 등등...
먹을꺼리 놀꺼리가 철따라 지천이었던 내 어린시절...
그때도 우리 남매는 놀 친구가 별로 없었다.
우린 토박이여서 논밭이 있었지만 옆집은 살던 곳 등지고 흘러흘러 온 터수여서 먹고 살려니 어른들은 일 나가고 또래의 친구들은 동생을 보살펴야 했다.
끼니 때가 되어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할머니의 걱정을 들어야 했다, 아침에 점심까지 지어놓는데 넉넉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 할때도 있어서 어른들의 식사를 축내는 축객이 되곤 했다.
그래도 그 친구들 덕분에 메뚜기 볶은것도 먹어보고, 아카시아 어린줄기며 날감자도 먹어보았다.
나름 대로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을까?
한번은 날 콩을 먹어 보라는데 그것은 정말 먹을 수 없었다, 씹는 순간 비린내가 코를 찔러 먹어보진 못했지만 하여튼 어울려 다니며 그애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다.
펄벅의 대지에서 왕룽이 씨로 남겨둔 곡식 낱알을 씹어 어린 자식 입에 넣어 주는걸 읽으면서 그 지난날을 떠올렸던 적이있다, 어린 자식 배 곯리는 일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알지 못한채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갔다.
저 또한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있던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터라, 지금까지도 피부끝에서 촉촉히 감도는 기운을 잊을 수가 없네요. 교육은 그런 것 같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실력갖춘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땅에서 자란 사람냄새가 가득한 인성교육이 만발해야 할 교육..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겨우 20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시골 생활을 했던 터라 공감 가는 부분이 많네요. 저는 메뚜기는 먹어보지 못했지만 도랑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던가, 아니면 튀김옷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먹던가 하곤 했었습니다.
그렇군요, 튀겨먹음 정말 맛있죠. 메뚜기는 요즘은 보기힘든 곤충이죠, 아마 꽤 비쌀걸요...
저 또한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있던 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터라, 지금까지도 피부끝에서 촉촉히 감도는 기운을 잊을 수가 없네요. 교육은 그런 것 같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실력갖춘 엘리트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땅에서 자란 사람냄새가 가득한 인성교육이 만발해야 할 교육..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메뚜기가 비싸다는 표현에, 어쩌면 님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속으로 그리던 고향에 대한 향수만 가득할 뿐 세상 물정에 젖어버린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 메뚜기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