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글라디올러스
정여운
글라디올러스가 요에 붉고 노랗게 피어 있었다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카더마는 인자 너그 아부지가 죽을랑갑다
오줌 싸는 것도 모자라서 피똥까지 싸니 내가 죽을 지경이다
등 굽은 노모 입에서 맵찬 바람이 불었다
꽃밭에 키 큰 측백나무 두 그루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채송화와 제비꽃에 물을 주고 있다
사방으로 흩어진 스테인리스 양푼이에 아버지의 오줌이 찰랑거렸다
오줌통을 턱 밑에까지 갖다 줘도 와 맨날 그릇에다 오줌을 싸노 말이다
내가 너그 아부지 오줌을 먹은 게 한두 번이 아이다
방 안에서 벽지만 뜯고 있던 아버지는 엉덩이로 꽃동산을 만들었다
이게 뭐꼬? 고마 죽으면 편할 낀데,
자는 잠에 가야 될 낀데 너무 오래 살까 봐 걱정이다
너그 아부지 두고 내가 먼저 죽으면 천덕꾸러기 되는데 우짜노
어머니는 침대 머리맡에 족자를 걸어놓고 매일 염불처럼 외웠다
천千 자리 만萬 자리 내 침수寢睡에 맞는 자리
황금을 뿌린 자리 불보살님 닿는 자리
이내 일신 갈 적에는 좋은 날 좋은 시에
자는 잠에 고이 가게 하시옵소서
이따금 찬바람이 와서 마당을 쓸어주고 갔다
뜰아래 꽃들이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글라디올러스가 요에 붉고 노랗게 피어 있었다
-----정여운 시집 {녹슨 글라디올러스}(근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