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바레의 자택과 트레일러 파크 등에서 총기 난동을 벌여 자신의 자녀 5명을 비롯해 13명을 살해했고 한 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조지 뱅크스(83)가 지난 2일(현지시간) 옥중에서 병사했다고 일간 뉴욕 타임스(NYT)가 다음날 보도했다. 당시만 해도 그는 미국에서 역대 최악의 대량 학살을 저지른 인물로 꼽혔다.
우리로선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NYT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뉴욕판 섹션 B 10면에 버젓이 부음을 게재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칼리지빌의 감옥에서 눈을 감았다고 주 교정국이 확인했는데, 사망 원인은 신장암 합병증이라고 몽고메리 카운티 검시관 재닌 다비 박사가 밝혔다.
1982년 9월 25일 이른 아침, 육군 퇴역 군인이자 전직 교도관 뱅크스는 자택에서 여성 3명과 어린이 5명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어린이 4명은 자신의 자녀들이었다. 그는 집을 떠나며 자신을 알아본 10대들에게 총을 쏴 한 명을 죽이고 다른 한 명을 다치게 했다.
뱅크스는 군인 복장으로 갈아 입은 뒤 차를 훔쳐 젠킨스 타운십에 있는 헤더 하이랜드 트레일러 파크로 갔다. 그곳에서 5세 아들과 소년의 어머니, 그녀의 어머니와 7세 조카가 시신으로 경찰에 발견됐다. 아버지 손에 목숨을 빼앗긴 자녀들의 나이는 1~6세 사이였다.
다른 두 어린이와 10대 한 명, 뱅크스가 관계를 맺었던 네 여성, 그들의 친척, 지나가는 사람도 피해를 입었다.
그는 친구 집에서 4시간 대치하다 경찰에 투항했다. 그는 AR-15 공격용 라이플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현지 일간 타임스 리더가 보도했다. 이 신문 1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당시 루체른 카운티 지방검사였던 로버트 길레스피는 범죄 현장 중 한 곳을 방문한 후 "마치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뱅크스는 이전에 무장 강도 혐의로 복역하다 감형 받은 전력이 있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 외곽에서 교도관으로 일하다 총격 사건 직전에 휴가를 내 정신과 의사를 만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그의 어머니 메리 옐랜드는 1982년 더 타임스에 말했다.
사형정보센터에 따르면, 변호인단은 재판 도중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인종 전쟁에 대한 망상과 자녀에 대한 인종 학대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부친이 흑인이고 모친이 백인인 뱅크스는 재판에서 총격이 "40년의 인종차별적 증오의 정점"이라고 증언했다고 타임스는 1987년에 보도했다.
법원 증언에 나선 두 명의 10세 의붓형제는 뱅크스가 젠킨스 타운십의 트레일러 파크에 침입한 뒤 숨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숨어 있던 곳에서 바깥을 내다보니 뱅크스가 4명을 살해하는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뱅크스는 12건의 1급 살인 혐의와 한 건의 3급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조지 에밀 뱅크스는 1942년 6월 22일에 태어났다. 그는 제대 후 첫 번째 폭력 범죄를 저질렀고, 1961년 강도 사건 중 무장하지 않은 선술집 주인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타임스 리더가 보도했다. 그는 6~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964년 잠깐 풀려났다가 추가 시간을 선고받았다.
뱅크스는 1969년에 가석방된 뒤 민주당원인 밀턴 샤프 주지사로부터 1974년에 감형 받았다.
사형정보센터에 따르면 뱅크스는 유죄 판결을 받은 뒤 몇 년 동안 자살하겠다고 위협하고 단식 투쟁을 벌였으며 의료 및 정신과 치료를 거부했다.
뱅크스의 사형 선고는 2001년 항소심에서 뒤집혔다가 2004년 대법원에 의해 확정됐다. 같은 해 말,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은 사형 집행을 연기하고 정신건강 청문회를 명령했다. 2006년 판사는 뱅크스가 사형을 받아들일 정신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몇 년에 걸친 항소 절차는 2011년 주 대법원이 뱅크스의 정신건강 청문회에서 얻은 증거를 인용해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해 일단락됐다.
10대 시절 뱅크스의 총에 맞고도 살아 남은 짐 올슨은 2012년까지도 뱅크스의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것에 낙담했다며 "집행하지 않으면 사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따졌다.
AP 통신에 따르면, 변호인단은 뱅크스가 총격을 저질렀을 때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종차별 사회에서 자라야 하는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를 댔다. 재판 중에 그는 변호사를 해고하고 대신 검사, 판사, 윌크스바레 시장이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강변했다.
뱅크스는 또 피해자들이 피투성이가 된 사진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줬는데, 그의 변호사가 끔찍하고 편견이 깔려 있다는 이유로 사진을 금지시키는 데 성공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