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의 비밀
요즘처럼 가을 하늘이 더없이 높은 날에는 부석사가 보고 싶다. 예전부터 나는 부석사를 좋아했다. 소백산 산행을 하거나 영주 부근을 지나갈 때면 거의 빼놓지 않고 부석사를 들렀다. 제법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개방적으로 배열된 절집들. 그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다보면 사람의 마음을 오히려 정연하게 모아 잡아주는 삼단 석축과 백팔계단. 안양루에서 내려다보는 태백의 산세와 영주 들판의 호쾌한 풍광. 그 유명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 근처에서 잠시 머물렀다 다시 무량수전 앞마당에 서서 왼쪽 아래를 바라보면 가슴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차오르는 백두대간의 청량한 기운.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영주 부석사를 좋아했다.
그런데 최근 불교 관련 책을 몇 권 읽으면서 또 다른 차원의 부석사를 만나게 되었다. 오래 전에 불교 철학자 안동대 이 모 선생께서 부석사를 직접 안내해 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많이 배웠다. 이 분 설명에 의하면 당나라 유학을 한 의상스님은 화엄종을 통일신라에 전파한다. 스님은 부석사를 비롯하여 범어사, 해인사, 낙산사 등 화엄십찰을 창건하는데, 부석사는 그 중 으뜸가는 화엄종 본찰이었다. 그런데 부석사는 이상하게도 화엄사상이 아니라 정토사상에 따라 설계되었다. 가령 각기 세 개의 단을 가진 세 개의 석축은 정토사상의 구품왕생을 상징하여 일주문에서 안양루에 이르기까지 아홉 단, 모두 백팔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은 수행의 정도가 높아짐을 나타내고, 안양루의 ‘안양’은 극락과 같은 말이며, 무량수전의 ‘무량수’는 정토종의 주불인 아미타 부처를 가리킨다. 또 남향인 무량수전 안에 들어가 보면 아미타불은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앉아 계신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부석사의 가람 배치는 완벽하게 아미타불 정토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이런데도 부석사가 화엄종찰이라니…….
이 선생은 이 수수께끼를 이렇게 풀었다. 알다시피 부석사는 남쪽에서 올라온 백두대간이 소백산 줄기를 따라 동쪽으로 이어지다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 태백산으로 넘어가는 봉황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부석사 서쪽으로는 소백산의 봉우리들인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 등이 연이어 솟아있다. 일단 이런 지리적 지식을 염두에 두자. 이제 무량수전 안에서 아미타불께 삼배를 올린다 치자. 그러면 그것은 아미타불에게 절하는 동시에 부석사 서쪽의 소백산 비로봉을 향해서 절하는 격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비로봉의 비로는 석가모니불의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가리킨다. 이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의 주불이다. 또 그 서쪽의 연화봉은 비로자나불이 계신 연화장 세계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무량수전의 동쪽으로 들어와 서쪽의 아미타불에게 삼배를 올리는 이는 소백산 비로봉과 연화봉에 계신 비로자나불께도 함께 절을 하는 셈이 된다. 그러므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을 동향으로 안치한 것은 정토사상과 화엄사상이 하나임을 암암리에 드러내는 상징 장치, 그것도 고도의 지적 기획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석사는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화엄종찰이며 이 모두를 기획·설계한 의상은 천재라는 것이 이 선생의 주장이다.
이 설명이 학계의 정설인지 아니면 한낱 속설에 불과한지 여부는 나 같은 비전문가가 판단할 일이 아니겠지만, 한두 가지 생각나는 바가 없지는 않다. 정토사상에서는 모든 대중은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는 염불만 하면 아미타부처님의 염력에 의해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게 된다. 반면 연기사상을 무한대의 시공간으로 확장한 화엄사상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홀로가 아니고 다른 모든 것과 원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즉 서로 대립되면서도 서로 융합되어 있음을 말하며, 이를 깨달은 세계가 화엄정토이다. 둘을 비교하면 아미타 정토사상에서는 아미타불의 염력이라는 타력에 의해 대중은 저승의 극락정토로 왕생하게 되지만, 화엄사상에서는 자력에 의한 깨달음의 세계가 곧 화엄정토이다. 하지만 그 깨달음의 과정은 지난하다. 그러므로 일반 대중에게 화엄의 교의는 매우 어려울 터이고 그저 염불만 하면 되는 정토사상은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의상은 오랜 전란을 겪은 통일신라 시대 민중들의 고단한 삶을 인도할 정토사상, 그리고 새로운 통일 신라를 이끌 시대정신으로 융합의 화엄사상을 제시하고 이 두 사상을 부석사에 형상화했다고 한다. 또는 대중과 함께 부처가 되겠다는 대승의 보살행 정신이 이 둘을 함께 아우른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의상의 생각대로 화엄정토와 아미타정토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왜 의상은 부석사를 정토사상에 따라 설계하였을까?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대중을 화엄정토로 인도하겠다는 대승적 자비심, 요즘 말로 이타적 사랑이 교리적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정토사상을 수용하게 했을까? 천년도 더 된 옛날 사람의 생각과 일을 놓고 의문이 꼬리를 문다. 부석사의 풍광은 그 자체로도 일품이지만 그 풍광은 이러한 불교적 기호와 의문들과 겹쳐지면서 더 큰 비의적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듯하다. 어허, 부석사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