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2: 5 술을 즐기며 ( 5 )
3]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것은 곧 거짓되는 교만과 한없는 욕심 등이다.
4]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1) 스올
"죽은 자의 세계"로 번역된 히브리어. 스올은 지구의 깊은 곳에 있는 심연(深淵)으로 '음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스올'은 먹이를 삼키는 곳으로 일관되게 언급되어 있다.
* 민 16: 30-34 - 30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이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유물을 삼켜 산 채로 스올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31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지니라. 32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33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34 그 주위에 있는 온 이스라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하며 이르되,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하였고
* 잠 1: 12 -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 잠 27: 20 -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 사 5: 14 -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스올은 '지하 세계', '지옥'(KJV, RSV)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스올’ (לוֹא)은 구약 성경에 모두 합하여 65회 출현하는데, 칠십인 역에서는 거의 전부 ‘하데스’ (ᾅδης)로 번역되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지하 세계’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러한 용법에 대하여 특별히 신학적인 해석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낱말은 단순히 당시 (성경 시대) 히브리인들의 문화 및 언어 관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스올’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 표현은 아마도 ‘저승’이 될 것이다.
‘스올’은 때때로 의인화되어 신체 기관의 일부와 연결되어 사용되는 예도 있다.
예를 들자면 ‘스올의 배(腹)’ (요나 2: 3), ‘스올의 손’ (호세아 13: 14; 시편 49: 15; 89: 48), ‘스올의 입’ (시편 141: 7) 등이다.
이런 표현들과 더불어 ‘스올의 줄’ (삼하 22: 6; 시편 18: 5)과 같은 표현은 모두다 ‘스올’을 의인화하여 ‘죽음’이란 뜻으로 사용된 것들이다.
‘스올’이 ‘죽음’에 대한 대체어로 사용된다는 사실은 위에 언급한 구절들에 나오는 댓구적(對句的) 표현들만 보더라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삼하 22: 6과 시편 18: 5에서는 ‘사망의 올무’, 그리고 호세아 13: 14과 시편 89: 48에서는 ‘죽음’이, ‘스올’과 어울려 생겨난 표현들과 대구(對句)를 이루고 있다.
* 삼하 22: 6 -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 시 18: 5 -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 호 13: 14 -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 시 89: 48 -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2) 욕심
'욕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프쇼'는 '욕망', '목구멍', '욕구'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KJV, NEB, TWOT).
여기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탐내거나 부당한 욕심으로 탐심(貪心, Greed)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탐심의 죄악 때문에 노하셔서 그들을 치셨다고 말씀하셨다.
* 사 57: 17 -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헬라어 탐심'은 '플레오녀시아'로 '더 많은'의 뜻을 가진 '플레온'과 '소유하다'의 뜻을 가진 '혀시'의 합성어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가리킨다.
* 눅 12: 15 -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여기서 지적되는 것은 단지 '물질'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모든 종류의 죄악된 성향(性向)을 총칭한다고 보아야 한다.
* 시 39: 6 -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 합 2: 9 -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 딤전 6: 9-11 -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사도 바울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정의하였다.
* 골 3: 5 -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은 물질을 추구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5]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
이어지는 비유들은 욕망의 정도를 좀 더 확실하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다시 말하면 1: 5-17에서 이미 증명되었듯이 그 욕망이 만족할 줄 모르고 지속된다는 것이다.
* 잠 27: 20 -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 잠 30: 15-16 - 15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16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 사 5: 14 -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 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그만큼 갈대아 사람들은 자신의 과다한 욕심과 파괴적이며 모든 것을 삼켜도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가지고 왕성하게 이웃 나라들을 독식하였다.
당시 막강한 군사력으로써 "자기에게로 여러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고" 있던 바벨론인들은 그 "스올"과 "교만"과 "욕심"이 극에 달해 있었다.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