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골목은 닮아있다
옆구리에 끼고 가는 골목은 애인 같아서 이따금
무릎 같은 계단에 앉아 쉬었다 가기도 하고
제가 나무인 줄 알고
전단지를 이파리처럼 흔들어대는 전봇대까지도 다정해서
늘 그날인 것처럼
고백 못하는 내 안의 상처나 슬픔까지도 다 받아준다
깊은 저녁 혼자 가는 길을 따라오는 그림자 있어 뒤돌아보면
그도 뒤돌아보며 괜찮다, 괜찮다
토닥토닥
반쯤 접혀서 잘 보이지 않았던 길을 오고 갔던 사람들은
지금 어느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까
이따금 밥 냄새가 작은 창문을 빠져나와 골목 안쪽까지 배부르게 하고
나는 봄밤에 울컥울컥 피어나는 매화처럼 이파리 한 장 없이도
멀리 아주 멀리 향기 보내는 법을 배운다
골목에서 자라고 익어갔던 사람들이
먼 곳에서 불쑥 찾아와서
제 안의 숨은 그림을 찾아 퍼즐을 맞추며
어떤 조각은 생각하지 말자고 눈 속에 비치는 제 얼굴을 바라본다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로 그 자리에서 늙어가는 골목,
깊숙이 간직했던 시간이 여기에 다 있다고
나무 대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린다
달아나고 싶어서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탔어도
끝내 되돌아오게 만드는
다정한 연인의 끌림
김경성, 다정한 연인
-계간 《미네르바》 2020년 여름호
첫댓글 애석하게도 우리는 이별이 있어 더 사랑하고 슬픔이 있어 더 행복하려 하고 상처가 있어 덜 아프려 합니다. 어느 비오는 날이 쇠창살 같다던 따뜻함과 맞닿은 고독의 시와 닮아있는 시 입니다.
고독을 애써 내편으로 만들고 억지 위로를 만들지만 어떤 날은 산처럼 무너지는 고독의 파편들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루 한편 고르는 시 보다 댓글에서 얻는게 더 많은 날이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고독이 날마다 나를 찾아온다
내가 그토록 고독을 사랑하사
고(苦)와 독(毒)을 밥처럼 먹고
옷처럼 입었더니
어느덧 독고인이 되었다
고독에 몸바쳐
예순여섯 번 허물이 된 내게
허전한 허공에다 낮술 마시게 하고
길게 자기 고백하는 뱃고동 소리 들려주네
때때로 나는
고동 소리를 고통 소리로 잘못 읽는다
모든 것은 손을 타면 닳게 마련인데
고독만은 그렇지가 않다 영구불변이다
세상에 좋은 고통은 없고
나쁜 고독도 없는 것인지
나는 지금 공사 중인데
고독은 자기 온몸으로 성전이 된다
천양희, 성(聖) 고독
-창비시선 326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