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반도에 인간이 살았던 흔적은 BC 8000년 무렵부터라고 추정되는데, 목축·농경을 엿볼 수 있는 것은 BC 3000년 이후이다. 이 원주민은 라프인과 같은 계통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BC 2000년 무렵이 되자 배모양의 도끼를 지니고 말을 탄 호전적인 이주민이 나타났다. 그들은 중부유럽 방면에서 온 인도유럽어족이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어서 BC 1500∼BC 500년에는 청동기시대로 접어드는데, 그 무렵에 새겨진 암벽화에는 당시 이미 북유럽인이 항해술에 뛰어나 있었음을 알려주는 무늬가 포함되어 있다. 그 뒤, 북유럽의 기후가 매우 한랭해져서 주민의 생활이 어려워졌으나, 이 무렵에 켈트문화의 영향을 받아 북유럽은 철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어서 서력기원 무렵부터는 기후도 약간 따뜻해지고 인구도 늘기 시작하여, 로마제국의 북서 변경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다만 로마제국측에는 민족대이동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실상을 전하는 사료가 거의 없어, 단지 여러 부족 사이의 항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의 후손이 오늘날의 노르드계 북유럽인(아이슬란드인·덴마크인·노르웨이인·스웨덴인)이나, 또 하나의 북유럽인에 속하는 핀란드인의 조상은 대부분 1세기 무렵부터 수백 년에 걸쳐서 발트해 남쪽 연안으로부터 지금의 핀란드령 남부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킹시대
9∼11세기 초, 노르드계 북유럽인은 해외진출로 전환하여, 이른바 바이킹의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인구과잉, 모험심, 무예를 숭상하는 기풍, 뛰어난 항해술, 남쪽에 대한 동경, 문명세계와의 교역욕구 등 여러 설이 있다. 바이킹으로 나선 북유럽인은 헤브리디스제도를 손에 넣고, 아일랜드에 더블린시를 건설하여 잉글랜드 북서부로 진출하였고, 대서양을 건너 페로스제도에 이주, 아이슬란드에 정착하였다. 더 나아가 <붉은 털의 에릭>이 이끄는 한 무리는 그린란드에 도착하였고, 그의 아들은 1000년 무렵에 아메리카대륙에 이르렀다. 그리고 동쪽으로 향한 바이킹은 러시아 건국에 참여하고, 비잔틴제국과 교역을 하며 이란 북동부까지 진출하였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덴마크인의 바이킹 활동은 프랑크왕국의 세력 신장에 의한 남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위적 반응이라는 특징을 지녔으며 매우 조직적이었다. 바이킹시대 북유럽인의 사상과 생활은 《에다》와 《사가》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북유럽신화의 용맹한 영웅이야기는 그 무렵 노르드계 북유럽인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바이킹시대 노르드인의 사회는 주로 왕·귀족·자유민·노예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유민은 농민이었는데, 각 지역의 집회에 출석하고, 그 대표자가 지방자치조직 라그팅(상원)을 형성하였다. 귀족은 본래 지방의 지도자로서 바이킹원정의 지휘를 맡았고, 그들의 상호항쟁이나 선출에 의하여 왕이 될 사람이 나왔다. 이와 같은 노르드인의 사회는 바이킹에 의한 외계와의 교류를 통하여 차츰 변모하였다. 노예노동의 이용과 함께 바이킹선 건조기술을 이용한 철제 가래의 사용, 외지로부터 배운 농법의 개량 등으로 상업활동이 활발해졌다. 바이킹시대의 외부세력과의 싸움과 내부 항쟁으로 인하여 여러 북유럽국가의 원형도 차츰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남쪽으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던 덴마크인은 국가 형성에 있어서 다른 북유럽국가들보다 앞서 9세기 말에 족장들 사이의 항쟁이 계속된 결과, 하랄왕(재위 ?∼985)·스벤왕(재위 985?∼1014)과 같은 강력한 왕이 잇달아 나와 영토를 확대하였다. 스벤의 아들 크누드는 영국·덴마크·노르웨이의 왕이 되어 1030년 북해에 걸치는 제국을 세웠다.
<참고: 야후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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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서 이란의 북동부면 어디가 되겠습니까?... 바로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 지역이 아닌가요?...
10-11세기 유럽은 북방의 바이킹세력과 남쪽은 프랑크왕국(서게르만족)의 세력이 존재하였습니다. 진정한 유럽의 중심은 서쪽으로 이동한 서게르만족의 '프랑크왕국'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