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tue 한밤중 비상계엄이 6시간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48시간이 지난 가운데 야당은 탄핵도 아깝다 내란죄로 당장 구속하라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의료계 전노총 등등이 이때 다 싶어 총공세하고 있는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 힘은 ‘대통령 지키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습니다. 내가 볼 때는 한동훈 대표가 제안 한 대로(탈당/임기 단축 개헌) 전국이 흘러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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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동훈 대표의 의견에 동의 합니다. 지금 성난 민심을 달래려면 최소한 (내각 사퇴-국방 부 장관 해임-대통령 탈당-임기 단축 개헌)은 필수 과목이라고 봅니다. 60년 살면서 이런 엉터리 계엄은 듣보잡입니다. 계엄이 병정놀이도 아니고 모르긴 해도 이번 일로 대통령 부부는 지옥문 앞까지 다녀왔을 것입니다. 큰 실수를 해서 이미 벌을 다 받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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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처음으로 해 본 사람이 사면초가에 몰리자 취한 치기입니다. 평생 공무원만 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아버지이다, 혹은 물정 모른 삼촌이 저지른 실수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용서해 주면 안 될까요? 63세, 서울대 졸업, 사법 코스 패스 검찰총장이 자연인 윤석열의 이력이 아닙니까? 2번을 찍었을 때 다 알고 찍었잖아요. 뭘 기대하셨나요? 123 vs 1212의 차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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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살면서 5.18과 12.12 사태를 통해 두 번의 비상계엄을 경험했는데 오늘은 12.12 사태의 계엄 상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4공화국에 이어 제5공화국을 보면서 전두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통이 그냥 쿠데타를 했고 통이 된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김 재규가 육본으로 간 후 김 계원 외에 누구도 김 재규가 코드 1을 쏜 범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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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이 청와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스인 보안 사령관(전통)에게 알려 주었고 전통이 보안사에서 도청을 해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김 재규 기습 체포 골든 타임'의 1등 공신이 장세동이라는 뜻입니다. 이 일로 정 승화 참모 총장(대장)에게 합수부장을 임명받아 브리핑을 하면서 도미노 되는 권력의 정점에 계속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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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대목에서 전 두환이 매우 나쁜 군인이긴 하지만 야망을 가지고 준비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하나는 전 통이 팀플레이를 잘했고, 그의 참모들이 모두 자신의 보스를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겠지만 ‘대 (배짱)‘가 큰 놈이라서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야망에 몰 빵을 한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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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비된 리더 2. 팀플레이 3. 배짱이 큰 인간 정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후 보안 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통은 11월 중순부터 정승화 총장을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하나회를 비롯한 동조 세력 규합에 나섭니다. 허 화평 보안 사령부 비서실장, 허삼수 보안 사령부 인사처장, 이학봉 보안 사령부 수사과장, 장세동 제30 경비 단장, 김진영 제33 경비 단장 등 영관급 후배의 동조를 얻어 모의를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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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경 전두환은 황 영시 제1군 단장, 노태우 제9사단장, 백 운택 제71 방위사단장, 박희도, 최세창, 장 기오 1, 3, 5 공수 특전 여단장 등 선후배 동료 장성과 쿠데타를 모의하게 됩니다. 12월 8일 전두환은 이학봉 중령으로부터 정승화 총장은 일과시간 후 총장 공관에서 연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첨부된 세부 계획서를 전달받고, 이를 확정한 후 허삼수와 우 경윤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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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오후, 전두환은 박희도, 최세창, 장 기오, 차 규현, 노태우, 황영시 등 규합한 동조세력을 장세동이 있던 경복궁 내 수도경비 사령부 여하 제30경비단 단장 실로 모이도록 한 후 시내 일원을 장악하기로 한 계획을 지시, 논의합니다. 같은 날 18시, 전두환은 최 규하 대통령에게 목욕 시간을 피해서 20분 일찍 오라는 전갈까지 받고 육군참모총장 체포 안에 대한 재가를 윤필용 사건의 경우를 예로 들어 시급하고 비밀을 요하는 경우라며 홀로 제안했으나 거절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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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최규화 대통령은 결재란에 am 05;30 (12.13)이라는 별도 체크를 했다는데 군부가 제시한 결재서류에는 문제의 날인이 없는 이유를 아직 까지 밝히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대통령 재가와 정 총장 체포를 동시 패션으로 잡은 작전대로 전두환의 부하(허삼수, 우 경윤)들은 정 승화 총장 연행 계획을 진행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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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이들은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기 위해 수도경비 사령부 33 헌병대 50명을 투입합니다. 전두환을 체포할 수 있는 두 지휘관(수경 사령관 장태완, 헌병 감, 김 진기)은 지금 요정에 붙잡혀 있는 상황입니다. 33 헌병대는 해병대 병력이 경비하던 공관 내에 일제 슈퍼 살롱 1대와 마이크로 버스 1대를 타고 들어와 보안사 차장의 보고라며 손님 대접까지 받고 거실에서 대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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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엄 사령관에게 뇌물 수수 혐의를 거론하여 총리공관으로 확인 연락을 하려던 인원을 향해 총격이 일어나고 공관 내부를 제압합니다. 사복 차림에 두 대령이 총장을 양쪽에서 잡아서 일으켜 세우니, 현관 창문을 깨고 군인이 들어와 소총의 총구로 총장을 찌르며 처가로 가려던 길을 도리어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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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송 도중에 건물 밖에서 공관 경비 해병 대원들과 총격전을 치릅니다. 이 총격전에서는 보안사 휘하 납치 대의 육본 소속 우 경윤 대령 1명만 납치 대 간의 오인 사격으로 인해서 총상을 입습니다. 정 총장 신변의 위험을 느낀 경비 헌병들이 물러나자 허 대령의 총구가 총장의 뺨에 닿아 있는 상태로 세단에 떠밀려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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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 정문은 세단 뒷좌석에서 2명의 대령에게 붙들려 꼼짝 못 하는 상태로 총장의 기대와는 반대로 저지를 받지 않고 순조롭게 통과합니다. 공관 경비병까지 연행을 당했는데, 상부에서 무단 연행으로 뒤늦게 알려와 해병대가 공관을 재탈환하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 박윤관 일병이 사살당합니다. 계엄사령관 공관에서 모두 3명이 사망, 20명이 중경상을 입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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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시 21분, 반란군은 정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합니다. 21시 30분경, 전두환, 유학성, 황영시 등은 다시 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 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사후 결재여서 거절당합니다. 그리고 결재와 관련한 의견들로 밤을 새우게 되는 밀고 당기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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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신군부 세력은 총장의 강제 연행이 부당하다며 원상 복귀를 주장하던 3군 사령관 이건영 중장, 수도경비 사령관 장태완 소장, 특전 사령관 정병주 소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하 소곤 소장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 준장 등에 대해 하극상을 감행하고,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며 연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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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수경 사령관(소장)이 마지막 출동 명령을 하는데 현역 시절 0뺑이 쳤던 필동 사령부 시퀀스가 나와 만감이 교차하더이다. 이 연병장에서 장세동 30 단장 전역식을 했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EBC 453기(84)인데 장태환 수경 사령관(소장)을 체포한 사람이 수경사 헌병 대장(중령) 신윤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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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33 헌병 대장과 수경사 헌병단장이 보안대와 짜고 직속 상관을 체포한 것은 우리 병과의 치욕입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일병 때 목숨을 걸고 보안대에 쳐들어가 소대장을 구한 일은 헌병 단장보다 훨씬 멋진 일을 해낸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로 신윤희는 대령으로 진급하고 제가 현역 시절까지 수방사 헌병단장을 해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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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사령관(장태완) 후임으로 노태우, 특전 사령관(정병주) 후임으로 정호영이 역임을 한 것으로 압니다. 진짜 군인이었던 특전 사령관 정병주는 예편을 하고 훗날(2010) 자살을 한 걸로 보도가 되었는데 그가 자살을 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박희도 준장(하나회)이 이끄는 제1공수특전여단 병력과 최세창 준장이 지휘하던 3공수특전여단, 그리고 장 기오 준장의 제5 공수특전여단이 서울로 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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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는 무슨 군부대가 어디를 점령했으며 국방부에서 총격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통령은 결재가 불가능 하며 국방부 장관 결재가 없으니 국방부 장관을 데려오라고 요구합니다. 밤 2시가 되어 전두환이 몇 번씩 결재를 요구하는 가운데 사단 병력에 움직임이 보고 되어 대통령은 사단장 노태우 소장한테 원대 복귀를 명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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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선적으로 내란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양측의 접촉을 총리공관에서 연락하여 막아 놓습니다. 그런 이후에야 국방부에 도착한 장관과 연락이 되는데 국방부 장관은 대치 상태를 이유로 총리공관으로 가기를 거부합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국방부 장관한테 다시 연락하여 총리가 가면 오는 것으로 대통령은 확답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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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소장은 자신이 지휘관이던 9사단 29연대를 중앙청 앞에 집결시켰습니다. 1공수특전여단은 행주대교에 있던 30사단 병력을 무력화시킨 후 곧장 서울로 달려갔습니다. 얼마 후, 1공수 특전 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공격하여 노 재현 국방부 장관을 체포해요. 국방부 50헌병대 경비 병력으로 근무하던 정 선엽 병장을 사살한 후 국군 수뇌부를 체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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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는 총격전으로 국방부 건물 앞은 유리문 등이 부서지고 선혈이 낭자하였습니다. 그 상황 이후 국방부 청사에 도착한 총리는 노 재현 국방부 장관을 찾아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끌고 갑니다. 한편 3공수특전여단은 3 여단의 영내에 있던 특전 사령부 본부에 3 여단 15대 대장이 이끄는 10여 명의 체포조가 투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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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 사령관 비서실장 김 오랑 소령을 사살, 특전 사령관 정병주 소장을 체포해갑니다. 3공수에서 차출된 정예 병력이 특전 사령부 지휘 통제실에 1주일 가까이 상주하며 특전 사령부의 기능을 정지시킵니다. 결국 전두환의 의도대로 사태는 일단락됩니다. 최규하 대통령에게는 세 차례 걸쳐 10시간 만인 13일 새벽 5시, 사후 재가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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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오후, 노 재현 국방부 장관이 담화문을 통해 10.26사건 연류 혐의로 정승화 총장을 연행하고 이와 연관된 정승화의 육군참모총장과 일부 장성 또한 구속됐으며, 계엄사령관 직에 이희성 육군 대장으로 임명되었음을 발표합니다. 12.12 사건 이후 전두환 보안 사령관은 사실상 이 희성 육군참모총장을 직접 임명하고 6인 위원회를 통해 군부의 인사를 조정하여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권력 공백기에 최고 실력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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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사태를 10번 쯤 본 것 같은데 전통이 박 대통령의 비호 아래 '하나회'라는 조직을 갖는 등 운 빨도 좋았지만 보안 사령관이라는 찬스 판을 잘 이용했고, 결국 김재규는 쭉 쒀서 개를 준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썰렁한 얘기이긴 한데 운명을 바꾼 역사의 쓰리 U턴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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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2. 김재규 남산-육본
3.1공수와 9공수의 서울 침투 중 9공수의 자대 복귀.
I'm thinking of trying to memorize 10 words a day with only 10 sentences for a year.
2024.12.16.fri.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