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여자
우린 궁녀(宮女)를 왕의 여자라고 칭합니다. 그리고 의자왕의 삼천궁녀 설을 꺼내 들곤 하지요. 하지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해 보면 궁녀는 왕의 여자도 아니고 의자왕도 삼천궁녀를 거느리지 않았습니다.
조선왕조를 통틀어 궁녀가 제일 많을 때가 700명가량 됩니다. 의자왕 시절 백제 사비성의 인구가 5만인데….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거느렸다는 말은 실패한 왕일지라도 너무 가혹한 루머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왕조시대의 궁녀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흔히 궁녀는 입궁하면 죽기 전에는 나오지 못하는 가련한 여인들로 인식되었고 왕만 바라보는 왕바라기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녀들은 단순히 시중의 역할이 아니라 왕조시대의 전문직 여성으로 분류하여야 마땅합니다.
조선왕조 말엔 정5품 제조상궁부터 종9품 나인까지 200명이 궁녀로 나머지 500명은 품계 없는 천한 노비 신분이었습니다. 그들은 7개 부서로 나누어서 일을 맡아 합니다. 지밀(至密), 침방(針房), 수방(繡房), 세수간(洗手間), 생과방(生果房), 소주방(燒廚房), 세답방(洗踏房)이 그러하지요.
지밀은 왕의 성생활을 비롯해 왕과 왕비의 신변 보호나 의식주와 관련된 모두 일을 담당합니다. 침방은 바늘로 하는 일로 궁궐에서 소용되는 옷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수방은 옷에 수를 놓거나 장식물을 다는 임무를 하고 세수간은 세숫물과 목욕물을 담당합니다. 생과방은 식사 이외의 음료수나 다과를 준비하는 일을 하고 소주방은 음식을 담당하지요. 세답방은 빨래로 세탁, 다듬이질, 다리미질, 염색 등도 맡아서 합니다.
그러니 궁녀가 없이는 궁이 돌아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지요. 물론 궁녀 중에는 얼굴이 예쁘게 생겨서 왕의 눈에 들어 승은(承恩, 왕과의 합방)을 입으면 특별상궁이 되기도 하고 왕의 아이를 낳게 되면 후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이 사실이지요.
청와대 안에는 칠궁(七宮)이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중 왕을 생산한 사람을 모신 사당이지요. 선조의 후궁 인빈김씨(추존완 원종의 생모), 숙종의 후궁 희빈장씨(경종의 생모), 영조의 후궁 정빈이씨(추존왕 진종의 생모), 영빈이씨(사도세자의 생모) 정조의 후궁 수빈박씨(순조의 생모) 고종의 후궁 엄씨(영친왕의 생모)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우린 사실을 알기 전에 그럴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어떠한 사실을 놓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공자님은 말씀하시지요. 衆惡之必察焉 衆好之必察焉(중오지필찰언 중호지필찰언) "모든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