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모래시계/안 민-
그러니까 이건 난해한 스토리다 시간이 감금된다는 것, 지평선이 허물어진다는 것, 아무리 버둥거려도 네 안에선 꽃이 피지
않는다
믿기지 않겠지만 네 운명은 사막을 견디는 것, 주위를 돌아봐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데 너는 수북했겠지 전생에선 낙타와
은빛 여우가 네 심장에 고독 같은 족적을 남겼겠지 뿌옇게 흩날리는 허구들,
그건 너인 동시에 나였다 그즈음 거대한 언덕이 또 다른 너와 나로 분열되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 불가해한 지대에서
바람의 몸을 빌려 이곳에 갇혔다 그리고 윤회, 이제 더는 세포분열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네가 속한 이곳도 블랙홀, 네 원적에선 아직도 푸른 두건을 두른 자들이 몸을 횡단하겠지만 이곳에선 알몸의 안구들
이 네 몸을 횡단 한다 너는 죄명도 없이 유죄다 눈들이 헉헉거리며 너를 가늠 한다 어떤 눈은 탈레반처럼 날카롭다 어떤 눈
은 대상처럼 탐욕적이다 그들의 눈 또한 주르륵 흘러내린다 폭염과 침묵 속에서
흘러라 흘러,
삭막한 육신이여,
너는 사막을 허물어 나의 무덤을 짓는다 이젠 내 차례다 내 몸을 뒤집어 네 무덤을 지어주마
눈들이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난장을, 소멸을, 이해할 수 없는 순환을
<2>-피아노/안 민-
피아노가 죽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피아노다
몸 안에 현이 심어져 있다 눈을 감으면
캄캄한 기억 속을 방문하는 창백한 소녀
손가락 사이에서 푸른 새들이 난다
손톱에는 붉은 꽃잎이 비치고
에테르, 너울거리며 밀려오는 에테르
나는 피아노 선율처럼 흘러온 것이다
악보 같은 차트를 흔들며 들어서는 흰 가운들
저들은 왜 검은 빛을 흘리는 걸까 피아노인가
病人이 아니라 피아노로 살아온 것에 대해
동공이 먼저 증거할 때 나는 열일곱 살이 된다
어둠을 진동시켜 소리가 들리게 되는 거죠 잠이 내려가는
깊이는 약 10mm이고 잠의 무게는 50g 전후입니다 저음은
아주 무겁게 고음은 조금만 가볍게 조정되어있어요 뼈는
장식성을 고려하여 아크릴이나 인공 상아, 베이크라이트 등의
합성수지일 것입니다 뼈를 잠 속에 빠트려 그 공률로 현을
치게 됩니다 악몽은 이때 완성되죠 조율되지 못할 만큼
자랐습니다
흰 가운들이 피아노를 판독하기 위해
내 몸을 밀폐된 통속에 밀어 넣는다
뚜뚜뚜뚜 징징징징 디디디디 쿵쿵쿵쿵
두개골 안에서 낙엽이 흩날린다
졸면 안 돼 졸면 안 돼…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내 심장을 만진다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내 동공을 만진다
나도 소녀를 만진다
내 그림자를 소녀 그림자에 포개 놓는다
하얀 건반 하얀 가슴 까만 건반 까만 거기
하얀 어둠 까만 어둠 망막이 젖는 소녀
빗물 같은 음악이 된다 도시라솔파미래도
피아노가 소녀의 손목을 잡고
아득한 저음으로 내려간다
뚜뚜뚜뚜 징징징징 디디디디 쿵쿵쿵쿵
내 몸속 피아노는 귀를 틀어막고 있고
악보는 홀로 펄럭이고
<3>-바라나시 겅가/안 민-
겅가로 떠나지 못한 나날이었다 눈보라가 쓸쓸하게 치고 있었다 겅가 겅가 겅가의 江가 그 강가로 난 떠날 거야 되뇌며 겅가
강가를 그리다가 그림이 되질 않아 찢어버리고 겅가 강가의 유연한 곡선을 닮은 붉은 裸身을 그리던 밤이었다 문밖에는 어
둠이 강가처럼 질척거렸고 캔버스 안 나신이 완성될 즈음이었다 초대한 적도 없는 젊은 사두(sadhu)가 내 방문 앞에 당도했
다 그러고는 뱀을 부리듯 屍身 한 구를 그림 안으로 운구하였다 그림 밖에선 눈보라가 여전히 흩날렸고 그림 안에선 검은 잎
들이 무성해지려 하였다 사두의 눈동자가 나신을 향해 풀어지자 나신의 중심에선 강이 흘렀다 사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시
신을 내려놓고 火葬을 시작했다 아, 화장되는 시신은 흘러간 내 몸이었다 그림밖엔 눈보라가 쳤으므로 나는 뜨거워졌다 식
기를 반복하며 졸았는데 졸음 틈새 그토록 원하던 겅가 겅가 겅가의 강가 그 강가에 내가 놓여 있었다 미래의 내 주검이었고
모든 주검은 다 내 몸이었다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다시 임종을 맞지 않도록 사두는 주검을 버닝가트(burning ghat)에 차곡
차곡 쌓았다 바라나시 겅가겅가 희뿌연 강가에서 내 육신은 어제까지 죽은 사람 오늘 임종을 맞게 될 사람 그리고 다시는 임
종이 없을 사람이었다 火葬용 속옷을 걸친 주검을 람람싸드야헤- 람람싸드야헤-주문이 넝쿨 모양 칭칭 감았다 눈썹 끝에선
나비가 팔랑거렸고 연기가 눈보라처럼 너울거렸다 하지
만 아무도 울지 않았다 생과 사가 그림 같았다
<<안 민 시인 약력>>
*경남 김해에서 출생(본명: 안병호).
*동국대학교 회계학과 졸업.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3년 제2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당선.
*부산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