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18: 15. 그 사람만 상대하여 16. 두세 증인의 입으로
2. 용서하라 ( 18: 15-20. 눅 17: 3 )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 15. 그 사람만 상대하여 -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의 교제이다.
그런데 우리의 형제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범할 때가 있다. 그 죄가 말로 우리를 잘못 비난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의 돈을 떼어먹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할 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 사람의 성화는 다 불완전하여 말의 실수가 있을 수도 있고 또 사람이 지혜롭게 살지 않으면 궁핍해져 남에게 물질적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
예수님을 믿는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주께서는 그 대처 방안을 말씀해 주신다.
1]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앞에서는 어린아이, 작은 자 등의 말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부터는 '형제'라는 말이 앞의 그것과 거의 같은 의미로 반복 사용되고 있다(15, 21, 35절).
유대인의 용법에서는 형제라는 말이 '같은 종교를 가진 자', '같은 종교적 공동체의 일원'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믿음의 동료', '신앙의 동지'로 번역될 수 있다.
예수는 메시아 공동체, 즉 주를 따르는 무리들 안에서 행해진 죄에 대해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말씀하신다.
본문에서의 죄는 하나님께 대한 근원적, 궁극적 범죄가 아니라 신자 상호 간의 도덕적 범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한글 개역 성경과 바티칸 사본 등에서는 생략되었으나 라틴 벌게잇(Vulgate)역을 위시한 제 문서들에서는 '네게 대해'(*, 에이스 데)라는 말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뒤 이어지는 문장을 살펴보면 본문의 죄라는 것이 다른 형제를 멸시하는 행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의 교제이다.
그런데 우리의 형제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죄를 범할 때가 있다. 그 죄가 말로 우리를 비난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의 돈을 떼어먹는 일일 수도 있다.
교회 생활에서 이런 일들이 종종 있다. 사람의 인격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실수할 때가 없지 않다. 형제가 우리에게 죄를 범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2]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주께서는 그 대처 방안을 말씀해 주신다.
첫째,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책망]하라.”
개인적 책망이나 충고가 첫 단계이다. 이것은 그런 문제를 남에게 먼저 알리지 말아야 함을 내포한다.
이 명령은 실족한 자를 잃지 않기 위한 제 1단계의 작업으로 죄를 지은 형제를 보호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일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다.
'권고하다'는 말씀은 꾸짖는 의미인 '에피티몬'(*)이 아니라 '노출 시키다', '빛으로 가져 오다',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과 확신을 주다'란 뜻의 '엘렝코'(*)이다.
본문에서 권고의 의미는 죄에 대한 심판이나 책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죄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도록 '무엇이 죄인가'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 또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 형제의 잘못을 정당하게 지적하고 개도(開導)하는 것을 말한다.
* 요 8: 46 -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 딤전 5: 20 -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권고의 목적은 형제를 판단, 질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참 형제로 얻기 위함이다.
* 고전 9: 19-23 –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 벧전 3: 1 –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이것이 바로 죄를 지은 형제와의 첫 화해 작업에 해당한다.
* 레 19: 17 -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첫 번째는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충고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개인적 충고와 책망이 첫 번째 단계이다. 우리는 그런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먼저 알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또 ‘저런 자와는 만날 것도 없어!’ 하고 그를 끊거나 정죄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먼저 그를 찾아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그에게 충고하고 책망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시간이 들고 수고가 든다. 또 잘못하면 마음 상하는 말을 한 마디 더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가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그에게 충고하고 책망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 형제를 사랑하고 그를 아끼는 성도의 바른 태도이다. 만일 그가 들으면 우리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성도의 교제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연합과 하나 됨을 보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1)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어야 한다.
범죄한 형제를 권고한다는 것은 그를 향한 깊은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형제에 대한 관심이 전제되지 않는 한 그의 범죄 여부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자연히 눈길이 끌린다. 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 신경을 쓰며, 그의 삶 전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내 이웃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록 콘크리트 벽이 나와 우리의 이웃을 갈라놓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이기주의의 풍조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그 벽을 허물어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내 이웃의 즐거움에 같이 웃고, 내 이웃의 슬픔에 같이 울며, 내 이웃의 희생에 박수를 보내고 내 이웃의 범죄를 정중히 꾸짖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여 이웃의 범죄조차도 모르고 지나간다면 주님은 내 형제의 범죄를 책망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무관심과 사랑 없음을 책망할 것이다.
(2) 우리의 권면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르게 하기 위한 권면이어야 한다.
① 권면은 조용히 시작해야 한다.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진정한 권면은 조용히 시작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는 권면은 소문을 내는 권면이 아니라 그와 단둘이 만나 그의 잘못을 정당하게 지적하여 줌으로 그가 깨닫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형제의 잘못을 가지고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찾아가 드러내는 것은 형제에 대한 사랑과 사랑으로 인해 행해지는 권면이 아니라 형제에 대한 질투와 미움으로 인한 비난일 뿐이다.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와 직접 만날 수 있는 용기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사심을 버리고 진리에 바로 서서 행하는 권면이어야 한다.
② 권면은 형제의 회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권면은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권면의 목적은 그를 향한 비난이나 조롱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권면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께로 돌이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권면은 평소에 그에게 품고 있던 감정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권면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도록 하되 절망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때문에 진정한 권면은 권면하는 자의 사랑이 수반되어야 한다. 거기에 권면하는 자의 겸손이 포함되어야 한다. 자녀에게 회초리를 드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처럼 몇 배나 더 아픈 마음으로 권면해야 한다.
이러한 권면일 때에만이 권면의 진정한 목적인 범죄한 자의 회개와 신앙의 유익을 이룰 수 있다.
* 약 5: 19-20 –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③ 권면은 최선이어야 한다.
혼자 하는 권면이 통하지 않을 때 본문은 우리에게 두세 사람이 함께하는 권면의 방법을 권한다.
그 방법도 통하지 않을 때 최후의 방법으로 주님은 교회가 행하는 권면의 방법을 권했다. 이러한 방법은 주님은 범죄한 한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회개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하나님은 범죄한 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되 끝까지 기다리셨다. 그분은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으셨다.
죄인을 향한 우리의 자세 역시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인내이어야 한다. 한두 번의 권면으로 돌아서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모든 방법을 다해 그가 돌이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듯이,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포기하지 아니한 사랑이었듯이 형제를 향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권면은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3) 진정한 권면은 범죄한 자가 돌아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는 권면이다.
회개하지 않는 자를 주님은 '마귀의 자녀'라 선언하지 않으시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선언하셨다.
이방인과 세리는 마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귀가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멸망의 자식이라면 이방인과 세리는 언제든지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들이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일지라도 그들이 다시금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셨던 것이다.
참된 권면은 징계 후에도 그를 돌보는 것이다. 교회가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보살펴야 한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권면으로 인해 오히려 그리스와 영원한 담을 쌓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사이에 막혀진 담을 헐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3]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개인적으로 만나 책망을 듣는 경우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이보다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겸손한 마음으로 형제의 잘못을 권고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와 지혜와 조심성과 자기 부정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형제를 진실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요구된다.
이런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 형제적 친교를 회복하고 주의 제자요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할 수만 있다면 그러한 노력은 정녕 필요하다.
* 눅 17: 3-4 –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이것은 우리가 ‘저런 자와는 만날 것도 없어!’라고 그를 정죄하고 그와의 교제를 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내포한다.
우리가 먼저 그를 찾아가서 당사자만 상대하여 책망하고 충고하려면 시간이 들고 수고가 든다. 잘못하면 마음 상하는 말을 더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당사자만 상대하여 책망하고 충고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 형제를 사랑하고 아끼는 성도의 바른 태도다.
만일 그가 들으면 우리는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참된 성도의 교제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이 “서로 사랑하라”라는 주의 명령이 내포하는 바다. 이것이 교회의 일체성(一體性)을 보존하려는 노력이다.
* 살후 3: 14-15 –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 약 5: 19-20 – 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마 18: 16. 두세 증인의 입으로 -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
두 번째 단계는, 만일 그 형제가 개인적 책망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모든 말을 확증케 하는 것이다.
본문에 ‘확증한다’라고 번역한 말은 ‘확실케 한다,’ ‘확증케 한다’는 뜻이다. 신명기 19: 15는,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말하였다.
1] 만일 듣지 않거든
'무심코 듣다', '무시하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신중히 듣지 않고 오히려 방관하는 자세로 건성으로 듣거나 완전히 무시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 사 65: 12 -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일 것인즉 다 구푸리고 죽임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내가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
2]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확증한다'라고 번역한 말은 ‘확실케 한다’, ‘확증하게 한다’는 뜻이다.
만일 그 형제가 개인적 권면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증인을 동반한 권면이 두 번째 단계이다.
이것은 구약 신명기 19: 15의 말씀이다.
우리 말 성경에 보면,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라고 번역되어 있다.
신명기의 그 본문 다음에 보면, 위증자(僞證者)에 대해서는 자세히 사실을 조사하여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명령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