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란 걸 좀 해보세요!
뭘?
누가 그럽디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지
안그러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요.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맹탕하게 사니 요날 요때까지
이렇게 힘들게 살잖아요!
어쩔 수 없이 한 몸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오면서 당신때문에
이 번 생은 아주 망쳤다고요!
얼마나 속터지고 힘드는지
도대체 알기나 해요?
이 힘든 세상 살아가는데
주변머리도 없고 능력이라곤
개뿔도 없는 게 고집만 세서.
내가 조금만 더 힘이 셌다면
삶의 방향을 틀어 우린 좀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그 멋진 삶이란 게 어떤 건데?
아니 이제껏 그걸 몰라서 물어!
내 안에는 서로 다른 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나는 오늘처럼
이렇게 자주 반목하고 다툽니다.
둘다 늙어서 힘이 빠져 싸움이
끝장까지 가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괴롭기는 여전하지요.
삶의 가치와 목적을 놓고, 이리
가야하나 저리 가야하나 방향을
놓고 서로 다른 자아가 부딪치고
갈등을 겪는 것은 나만이 겪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내면에서 일어난 충돌은
나를 또 몹시 혼란스럽게 합니다.
깊숙히 숨겨져있던 인색함과
소심함이 튀어나와 이 봄날에
나는 갈 곳 모르고 허둥댑니다.
나도 순발력과 능력을 갖추고
부드럽고 너그러운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자주 생각합니다.
물론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기대하는 그런 생각은 아니지요.
분명 운명론자는 아닌데
언젠가부터 사람에게는 각자가
감당해야 하는 운명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한 사람은 살아 남고 한 사람은
삶에서 내 팽개쳐지는 그와 같은
일들을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내 안의 서로 다른 자아가 현재의
상태를 놓고 자주 갈등하고 다투
면서 이르는 곳은 '운명'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종, 태생 시기와
장소, 부모 등등 선택할 수 없는
의문들을 아무리 애써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운명을 믿어서인지
이만큼 살고보니 그 누구의, 그 어떤
삶도 소중하지 않은삶은 없고 존중
하지않아도 되는 삶은 없다는
것을 깊이 자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자각에서 비로소
내 삶과 나의 좋은 면도 부끄럽고
누추한 면도 사랑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운명을, 내
삶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운명과 그
삶을 존중하는 것은
결국 겸손의 문제입니다.
포기해라, 이해해라, 받아들여라
너그러워져라. 이처럼 겸손이란
결국 최선을 다해 자신을
죽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겸손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겸손의 미덕이 부족하기에
나는 날마다 감사하는 연습을
하고, 자주 메멘토 모리, 즉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나의 삶과 다른 이
들의 삶에 연민을 가지려 애씁니다.
한 때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히 두려웠지만 삶이 있는 한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자각을
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려 하지요. 죽음을 생각하면
삶에서 부질없는 것들에서 좀더
자유로워지고 내 삶이 풍요롭고
소중하게 여겨져 오늘 살아 있음에
무한히 감사를 느끼게됩니다.
노년의 삶에서는 피할 수 없이
외로움과 죽음에 자주 맞닥뜨리고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그래서 요 며칠
혼자, 홀로 그리고 죽음에 대한
책을 골라서 읽고 있습니다.
한권은 여러 사람이 외로움에 대해
쓴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이른바
조력 자살, 동행 자살을 실행하는
과정을 쓴, 좀 섬뜩한 느낌이 드는
책입니다.
몇년 전 미국의 어던 80대 노부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해 조력
자살을 실행한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노부인은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주로 이주하고 자식들을 불러
모으기를 세 차례만에 결행했는
데 미국에서 조력 자살을 합법화
한 주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오리건 버몬트, 몬태나, 뉴저지
메인, 워싱턴 같은 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을 담아』는 재혼해서
13년의 삶을 함께한 비교적
젊은 남편이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려 스스로 생을 마감
하는 결정을 부인이 받아들여
그 계획을 실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조건이
까다로운 미국을 피해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라
비영리기관을 택했습니다.
디그니타스는 고통없고, 평화
롭고 합법적 자살이 가능한
비영리단체로 기본 비용은
미화 1만달러정도 라고 합니다.
2020년까지 이 단체를
찾은 사람이 3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정확한 지는
모르지만 한국인도 현재
백여명이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참 많은 생각에 잠겨들곤 했습니다.
자연주의자로 잘 알려진 스콧
니어링이 100세를 맞아 음식을 거부
하여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사례도
있지만 어떻게 조금도 흔들림없이
그 결심대로 할 수 있었고, 또 부인이
그 죽음을 지켜볼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는 "두 발로 설 수 있을 때 떠나고
싶어, 무릎꿇고 살고싶지는 않아"
라며 결행했고, 부부는 "정말 많이
사랑해! 나도 사랑해!"라는 말을 하며
영원한 이별을 맞이했습다.
죽음을 많이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대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심오한
감정의 표현 같은 것은 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기진맥진한 채로, 또는
약에 취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삶은,
사랑은, 죽음은 무엇인가 하는 끝도
없는 생각에 잠겨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 마다 생각과
가치관과 상황에 따라 느낌은
다를 수 밖에 없기에 세세한
내용은 기술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머지 않아 삶의 여정을 끝내고
죽음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한 이별을 맞이해야 합니다.
편안한 죽음은 바란다고 되는 게
아니고 시시각각 찾아오는 죽음의
두려움을 견디는 연습은 충만한
삶을 위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유족이 추모카드에 실은 루미의
시의 일부를 음미하면서
두서없는 긴 글을 마무리합니다.
육신이 무엇인가?
인내다.
사랑이 무엇인가?
감사함이다.
우리 가슴에는 무엇이 숨어있나?
웃음이다.
또 다른 건?
연민이다.
첫댓글
고르비先輩님!
노래하는 논네는
엄청 젊게 사시드라구요.
엔카 모임에 가보면
80대가 주축입니다.
70대는 애들이고,
60대이하는 얼라입니다..
박순진님
안녕하세요?
감탄과 탄성을 잃어가는
시기에 젊게 살 수 있으면
신나는 일이지요.
만인의 언어 노래로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소소한 일상의 기쁨
누릴 수 있으면 족하지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