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在衡 | 현재 煙秋(노우키에프스크)에 있고 자산을 가지고 있음. 牛肉業·共義會(다른 이름으로 同義會,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임. 작년까지 존재한 것은 확실함) 會長이고, 李範晋의 從侄이다. |
李範允 | 현재 煙秋에 있으며 倡義會를 이끈다. |
金起龍 | 金奇龍일 것이며, 安應七의 徒黨이다. |
李瑋鍾 | 鐘은 鍾일 것이며, 李範晋의 아들이다. 共義會에 있었지만 李範允과는 어울리지 못했다. 작년 부친의 명으로 러시아 수도로 돌아갔다. |
李範晋 | 러시아 수도 근방에 머물고 있다. 1924년 러시아 수도를 유람한 한국인의 말에 의하면 李는 여유로운 생계를 영위한다고 한다. 露日戰爭 즈음에 그가 한국정부로부터 받은 봉급(월 1,000圓 이상일 것임)과 비슷한 수당을 러시아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것 같으며, 당시 李는 무엇을 직업으로 하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嚴仁燮 | 통상 燮은 涉에 의한다. 한국인 사이에서는 유명한 악한으로 현재 蘇城에 있으며 농업을 하고 있지만, 의병을 모집하고 병기를 수집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한국인 사이에서도 악평이 높기 때문에 蘇城과 블라디보스토크(浦港) 외에는 나가지 않는다. 安應七과 의형제를 맺었다. 일본 탐정의 이름으로 그의 독수에 걸린 한국인이 5~6명 있다. 일찍이 이만에서 한국인 의사를 생매장한 적이 있으며, 전에 의병장이었던 적도 있다. |
田明雲 | 아무런 지식도 없는 자로서 몸집이 왜소하다. |
崔鳳俊 |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기 3년 전부터 그곳에서『海朝新聞』을 발간했으나 작년『大東共報』가 이를 매수했다. 崔는 재산을 가지고 기선을 소유하며 牛肉商이다. 신문 발간 때문에 일본인의 감정을 상하게 될까 우려해 이를 팔았다. 崔在衡과는 의형제를 결의하고 친교가 있고, 전에는 장사를 함께 했다. |
李相卨 | 헤이그밀사사건에 관계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자산가 金學萬의 원조를 받아 蜂蜜山(니콜리스크의 서북쪽 약 300韓里) 개척 사업에 종사했다. 그는 主義로 폭동·암살 등의 비문명적인 행위에 반대하고 오로지 문명적인 행동에 의해 한국의 독립을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
金仁洙 | 현재 秋豊에 있다. 한국 군대가 러시아식이었을 때 그 大隊長이었다. 露日戰爭 때 러시아 병사를 이끌고 北韓에 들어와 한국인 사이에 이름이 두드러졌다. |
姜鳳俊 | 일찍이 하얼빈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아마도 烟秋에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을 것이다. |
李利俊 | 헤이그에 가서 자살을 한 李儁과 音이 상통하므로 그가 아닌지. |
咸東哲 |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으며『大東共報』에 관계한다. |
金錫永 | 하바롭스크에 있다. 일찍이 蘇城에서 한국인 학교의 교원이었지만 동포에게 배척되어 하바롭스크로 갔다. |
車錫甫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운송업을 경영하고 있다. 달리 작은 잡화 상점을 가지고 있다. |
王昌東 | 앞서 말한 鄭淳萬과 동일인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왔을 때 王昌東으로 불렸으며 지금은 鄭淳萬이라고 하는 上記『海朝新聞』의 주필이지만 현재는『大東共報』의 탐방원이다. |
許益 | 烟秋의 한 마을(청국 명칭 츄르호)에 있으며 농업을 영위한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여러 번 와서 도박을 했다. |
姜宅善 |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으며 의병이다. 당초에는 官兵 鐘城隊의 副尉(中尉에 해당함)였지만 후에 北靑隊에 들어가 군량을 휴대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달아나서(러시아인과 공모함) 의병을 모집했다. |
李 進士 | 進士는 이름이 아닐 것이다. 왕년에 한국의 학위에 進士가 있었다. |
他云京(池云京) | 한국에는 ‘他’ 라는 성이 없다. |
金允京 | 允은 文일 것이다. 金文京은 지식은 없어도 재산이 있어서 共立會員이다. |
方德漢 | 金文京의 러시아어 통역이지만 러시아어에 정통하지 못하며, 금년 여름 이만에서 病死했다. |
鄭在寬 | 일찍이 하와이에 있었으며 신문에 관계하다가 현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사이를 내왕하며 共立會 설립에 진력 중이다. |
奇山道 | 일찍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으며 同地 石幕洞에 현재 있는 洗東學校 창설 당시에 자금을 모아서 이를 휴대하고 京城으로 달아나 朴 內閣大臣을 암살하고자 한 일이 있다. |
金國甫 |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으며 자산가이고 前 共立會長이다. 이전에 某 금광의 監理였다. 사람들이 모두 監理라고 일컫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현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한국인들은 同人의 지배를 받고 있다. |
柳麟錫 | 北韓 폭도의 部將으로 統監府의 주의인물이다. |
金濟昇 | 金昇濟가 아닌지. 同人은 전에는 군인으로 京城에 있었다. |
| [補遣] |
尹日柄 | 일찍이 러시아 수도에 유학하고 뒤에 한국 군대의 통역이었다. 현재는 블라디보스토크 헌병대의 통역에 종사한다. 전에는 여러 단체에 가입하고 있었다. 나이는 27~28세이다. |
兪眞律 | 咸鏡北道 慶興 출생으로 러시아에 귀화해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유카이로 일컫고『大東共報』의 발행인이다. 브라고에스친스크의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이는 35~36세이다. 尹日柄, 兪眞律, 러시아의 전 군인 미하일로프 3명은 서로 결탁해『大東共報』를 경영한다. |
李崗 | 『大東共報』의 主筆이다. |
金成年 | 『大東共報』의 탐방원이다.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사이를 내왕하며 의병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
李致權 | 忠淸道 출생으로 나이는 44~45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開拓里에 거주한다. 자산은 없어도 住屋이 넓어서 유사시에는 한국인들이 이 집에 모인다. 귀화인은 아니다. |
禹連俊 |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으며 본업은 錢銀匠으로서『大東共報』의 신문대금을 수금한다. |
金顯土 | 京城 출생으로 블라디보스토크 東洋語學校의 한국어 교사로『大東共報』에도 관계했으며 李範晋과 친교가 있다. 왕년에 李容翊을 러시아 수도에서 습격했기 때문에 李는 이로 인해 블라디보스토크 근방에서 죽었다. 나이는 37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