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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산, 이오 두분께서 채희동 묘소에 가시던 날 ㅡ 야산 안인철 목사의 사진과 글입니다. 장례식 때와 마찬가지로 민들레교회 글찻집에서 모셔왔습니다. 북산(최완택 목사), 이오(이현주 목사) 두 분께서는 채희동 목사를 매우 고이셨는데 히말라야에 입산 중이셨습니다. ㅡ 들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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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수) 북산 선생님과 이오선생님께서 고 채희동 목사의 집과 묘소를 방문하셨습니다. 이 방문에는 이오선생님 사모님, 장재환목사, 장병용목사, 은총의 집 세바스찬, 율리아 부부 그리고 야산이 동행했습니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서울, 충주, 수원, 서산, 당진 등에서 모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발걸음이 더 무거웠겠지요....
이진영 전도사(이진영 사모가 벧엘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는 이렇게 부르시겠다는 북산선생님의 말씀에 따라...)차(茶)를 준비하는 시간이 그렇게 '길고' '민망'하게 느껴질 수 가 없더군요.
맨 왼쪽에 계신 분은 이진영 전도사의 친정 아버지 이십니다. 정말로 할 말은 많은데 말 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공감하시겠는지요.
온양역에서 만나서 벧엘교회로 오는 동안에도 그런 분위기 였지요. 북산선생과 이오선생이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궁굼하였는데..
역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북산선생께서 겨우 하신다는 말씀이 "go man go, is mam is..." 였을 뿐이었으니까요..
이오선생님 사모님께서 분위기를 바꾸시려고 네팔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꺼내시자 차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차라리 그 얘기가 낫겠다 싶었을 것입니다.
온양역에서 다시 터미널로 와서 세바스챤 부부를 만나 벧엘교회로 오는 그 짧은 시간도 참으로 길 수 밖에 없더군요...
북산선생님께서 율미에게 말을 붙이시더군요. 분위기를 좀 깨보려고 그러신거겠지만 원래 북산 선생님은 그런거 잘 못하시잖아요... 북산선생님의 웃는 표정이 오히려 애처럽게 느껴지는건 저만 그랬을까요?
지난 8월 말에 채목사의 집에 갔을 때 윤기와 <꼭꼭이>라는 그림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장례식장에서 봤을 때 저를 알아보고는 쪼르를 달려와서 제일 먼저 한다는 말이 "목사님, 목사님... 우리 아빠 어디 간 줄 알아요?" 였습니다.
원래 윤기나 율미 모두 집에 사람이 찾아오는 걸 참 좋아합니다. 두 아이 다 부모의 그런 심성을 닮아서 사람을 참 좋아하고 잘 따릅니다.
이번에도 윤기는 그저 사람이... 그것도 많은 사람이 왔다는 것이 참 좋은 듯했습니다. 율미도 늘 윤기를 따라하는 '따라쟁이'라 오빠 따라 좋아하려고 하다가 털복숭이 세바스챤을 보는 순간 할아버지 품에 안겨 나오지 않더군요...
이오 선생님 사모님이나 장재환 목사, 장병용 목사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윤기 외할아버지께서 말문을 여시더군요... 채 목사 사고당하던 날의 정황을 말씀해주시더군요
채목사를 덥친 트럭은 알려진것처럼 유조차가 아니라 15톤 엘엔지(LNG) 트럭이었고, 그날 그 트럭은 평택 엘엔지 저장소에서 엘엔지를 적재량보다 많은 양인 16톤 가량을 싣고 가던 중이었답니다.
과속으로 달려오던 그 트럭이 벧엘교회 앞에서 앞에 서있던 차량을 피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었고 길가에 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채목사 차를 그대로 정면에서 덮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안 됐지만 ..." 하며 들려준 경찰의 말에 의하면 만일 채목사 차가 없었다면 그 트럭은 그대로 뚝방아래로 떨어져 전복되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십중 팔구 엘엔지 개스가 터져서 온양은 물론 천안까지도 불바다가 되었을 지도 모른 다는 것입니다.
보통 가정영 엘피지 개스가 20리터인데 그게 하나 터져도 집이 다 날라가는 마당에 그 것의 800배인 16톤이니 그런 계산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채희동 목사가 온양.. 아니 천안까지 살렸다는 것이지요..
고인에 대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많은 사람이 채희동의 죽음앞에서 생각한 것은 "죽음" 이 아니라 "왜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을까?" 였습니다.
물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고 또 우리가 감히 그 분의 뜻을 헤아린다는 것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는 일이긴 합니다만 다른 사람(불과 한 두 사람이든지 아니면 수많은 시민이든지..)을 살리기위해 채희동을 데려가셨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채희동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흠 없는 어린양.."이라는 성서의 한 대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채희동이 그만큼 선하고 아름답게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런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채희동에게 갖다 붙이는 것이 어불성설이고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와 가까워서 그를 애도하고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사로서 채희동과 나를 비교할 수 없었는데 ... 그는 충분히 더 살아야 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데려가신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라도 갖다 붙여야 조금이라도 납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채희동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윤기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시면서 이오 선생님은 몇번이고 이렇게 천장을 쳐다보시더군요. 이오 선생님은 지금 묵언수행중이시라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이렇게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에서 "오 주님... 당신의 뜻이오니까?"라고 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 좋은 세바스찬은 수염 더부룩한 그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하는 율미 때문에 문간에 앉아있고 나중에 묘소에서 율미의 환심을 사려고 같이 놀아주며 무척 애쓰더군요.
차와 과일을 준비해온 이진영 전도사가 와서 앉았지만 그렇다고 분위기가 쉽게 달라지겠습니까? 침묵은 여전히 흐르고....
아이들 챙겨주는 척 딴청을 부리지만 두 분 선생님을 바로 쳐다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이오 선생님도 찻잔만 바라보시고...
북산 선생님도 율미만 쳐다보시고...
그렇게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고..
장난꾸러기 윤기는 제 나름대로 적막감을 깨보는데....
그래도 뭔가 말은 해야 했지요... 북산선생님이 윤기엄마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물으시더군요. 윤기엄마는 여기서 목회하겠다고 대답하더군요. 다행히 신학을 전공했고(감리교신학대학 95학번) 벧엘교회가 속해있는 온양서지방에서도 양해가 되었다더군요.
북산선생님이 "내가 말려도 할 거냐?"고 다시 물으시더군요.
"네!!"
.....................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해." "이제부터 이진영 전도사로 부르마"
분위기가 좀 밝아진 것 같지 않나요? 북산선생님이 기도하고 묘소로 가기로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시더군요.
장병용 목사가 헌화를 합니다.
세바스찬이 돌아서있는 것은 채희동의 무덤을 차마 똑바로 쳐다 볼 수 없어서였을까요? 그랬을거라 생각되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불거지지 않고 옆에서 자연스럽게 찍으려고 했는데 뒤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계신 이오 선생님을 찍기위해 제가 앞으로 많이 나와야 했습니다.
율미는 제가 엎드린 곳이 제 아빠의 머리맡 쯤 이라는 걸 알고 엎드린 걸 까요?
여전히 두손모아 기도하는 이진영 전도사......
윤기가 천원짜리 두장을 흔들며 좋아하면서 그 돈으로 과자를 사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묘소에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가게에 들러 과자를 사주마 했습니다.
집앞에 있는 농협 하나로 마트에 장재환 목사가 데리고 갔습니다. 율미는 차에서 잠들었지요. 몇개 고르지도 못하더군요...그러면서도 꼭 두개씩 집는 녀석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다른 건 모르겠고.. 드릴 말씀 없는데.... 제발 이녀석이 제 아빠가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알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이녀석도 제 아뻐처럼만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가 있는 하늘과 그의 아내가 있는 이 땅이 둘이 아니길...
없어도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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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들풀님 고맙습니다. 평화롭고 아름답군요.
들풀님! 수고가 많으십니다.멀리서나마 채희동목사님가족의 평안이 궁금했는데, 님의 덕분에 또 소식 듣게되어 감사드립니다.항상 채목사님의 남은 가족들의 건강과 평안을 빌겠습니다.
들풀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