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원인은 늘 사전에 기인된다.
일찍 아버님이 작고한 탓에 장손과 가장의 무거운 멍에를 어린 나이에 둘러 메신 큰형님을 어제 찾아뵈었다.
해가 기우는 저녘 무렵에 인천 연수동 아파트에 당도하니 이미 4층에서 창문을 열고 키비밀번호를 불러주신다. 현관문을 여니 아!!!!!
이미 큰형수님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또는 개미도 지나갈 빈틈도 없이 큰상에 장어구이와 된장찌게, 손수 담그신 서해안 어리굴젓 등 산해진미가 따로없다. 큰형수는 나의 대학시절 경제적 책임을 져준 은인이시다.
하여 여차저차 허다가 저차여차혀서 다아 때려치고 회사 사표내고 이미 원주 시골에다가 전세집 계약했다구 말씀 올리니 하하하! 웃으신다. 잘했어. 차암 잘햇어. 그동안 고생 많았다. 난 첨 어리둥절 했다. 최소한 " 야! 이눔아, 요즘처럼 x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판에 사표는 뭔 사표고 시골은 뭔 시골여! 앞으로 뭐 먹고 살껴?"하면서 호통할 줄 알았는데.........
아내와 나는 정말 맛있게 식사를 하며 평소 안하시는 복북자란 술까지 함께 형과 곁들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건강얘기가 나오고 울나라 명산중에 마니산의 기가 최고란다 하시며 마니산 이야기를 흔쾌히 들려 주신다.
형님에게 어느날 갑자기 가려움증이 왔다고 한다. 하도 가려워 병원도 가고 약도 먹고 했지만 낫지를 않고 하여 누가 마니산이 좋다며 한번 가보라는 권유를 하여 마니산을 두번 올라가 시간을 보냈는데 우연인지 기연인지 진짜인지 가려움증이 씻은듯이 나았다고 했다. 글구 마니산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는 중에 참선하는 듯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사람있어 그대로 흉내 내다가 나중에는 심심하여 한 손바닥에 빵조각을 놓고 허공에 올려 가만 있으니 작은 산새가 날라와 그 빵을 물어갔다고 했다. 이 말을 믿을까? 말까?
그 산새는 손안의 빵조각을 세번에 걸쳐 물어가고 한참을 안보이다가 또 날아와서는 세번을 물어가고 또 한참을 안보이고 그걸 세번 그리하더라는 이야기였다. 거기가 끝이였으면 난 이글을 쓸 이유가 없다. 마니산 이야기를 마치고 연이어 하시는 말이
"시골가서 맘 편히하고 건강 챙기게."하신다. "제가 어찌 맘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의 아들이며 아내의 남편이며 아들의 아버지인데 어찌 그짐을 벗고 혼자 산에 다니며 건강을 챙기겠습니까?하며 반문하니 "그럴려면 가지마. 다아 떨구고 가아. 덜 먹구 덜 쓰고 이 도시의 모든 습관과 사고를 죄다 벗구 왜 시골루 가는가?부터 다시 한번 생각하고, 가는 어려움이 아깝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야 하네." 하신다.
많은 이야기를 넷이서 나누며 떠들며 웃고 하다가 집에 와서 TV를 켜니 글래디에이이턴가? 검투사 영화가 시작되었다. 격렬하고 처절하고 뜨거운 사나이 일생을 그린 영화이다. 그 영활 보면서 아직 식지도 않은 큰형의 말을 가슴에 떠올리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을 새웠다. 캄캄한 밤에 불현듯 마니산이 생각나서 곤히 자고있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가세, 마니산으루......"
여섯시가 넘어 서울 외곽순환도롤 돌아 김포공항 앞을 지나는데 해는 이미 동쪽 하늘 위에 떠 있었다. 강화도 마니산 근처에 다달아 국밥을 먹고 소주 한병을 샀다. 주차장은 터엉 비었고 매표소는 꽉 닫혀있었다. 아내와 둘이 하는 아침 산행길, 아내는 참 좋다고 흥겨워 하는데 하늘은 흐리더니 이슬비가 내렸다. "어떻하지? 내려갈까?" 아내가 놀래 묻는다. "진정한 마라토너는 빈깡통이 발에 채이고 언덕이 보인다고 완주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외수 얘기 몰라?"하며 일축하니 그 뒤루 말이 필요없다. 산에다 짐을 벗을 필요도 없었고 벗어놀 짐도 없었건만 하산길에 기어히 또 한번 아내가 우문을 한다. " 그래, 산에다 짐 벗어놓고 오니 맘 좀 편해?" 묻는다.
아내는 교회를 다니지만 나에겐 종교가 없다. "공즉시색, 색증시공, 번뇌와 시름이 어디서 왔는데 벗긴다구 벗어질 짐두 아닌데 아직두 몰라."하며 웃으니 아내가 하얗게 웃는다. 하하하, 끼끼끼......
* 마니산 정상 참성단은 우리의 시조산이라고 하고 연말연시 이틀, 시월삼일 제천행사, 글구 전국체전이나 특별한 국가행사 외엔 보존을 위하여 개방하지 않습니다. 이건 순수 마니산 안내문의 내용이고 저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군로니 단군이 올라와 제천행사를 지냈는니 하지만 날조요 허횡된 내용이라고 봅니다. 단군조선 이래로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이 있었는데 그들이 마니산을 지금처럼 받들었나요? 단기고사니, 제왕운기니, 한단고기를 열거하지 않아도 아파트 1층은 있고 중간은 비었다가 갑자가기 9층이 올라설 수 있겠습니까? 영남의 고려말 고려삼은의 한사람 목은 이색의 시가 매표소 근처에 쓰여 있지만 그런 내용은 없었으며 조선말의 신채호선생님과 고산자 김정호선생님의 노고가 헛되이 하지 않도록 최소한 왜곡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고향 팔봉산 우럭바위)
(마니산 바위)
(마니산 아내바위)
(마니산 짱돌)
(이 땅에서 살게해준 조상님과 산신령님께 감사)
(하마바위)
(우둔바위)
(닮음바위)
(하산하여 본 마니산 서쪽방향) |
출처: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처럼
첫댓글 마니산... 인천에서 15년 가까이 살면서 몇번 접해 보았고 나름 제게는 몇가지사연을 덧붙여준 산이지요. 여러 생각을 가지게 했던 산... 님 덕분에 과거를 새겨 봅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요.
저도 인천에서 오래 살아서 마니산에 몇번 가봤는데요. 사진 보니까 반갑네요. 강화도 가고 싶다...
감사합니다. 말만 시골이고 서울 인천서 오신분들로 집들이 모두 삐까뻔쩍합니다.
인디언은 신성한 땅에 담배를 놓아두는데 우리는 소주를.... 역쉬 문화에 따라 다른 풍습. ㅎㅎ
그래...뭣 좀 얻어 오셨나요~~~ㅎ 참으로 한 번 가보고 싶은 산인데..기회를 못 갖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