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도 옆개해수욕장으로
유월 다섯째 화요일은 정기고사 둘째 날이었다. 오전에 고사 감독을 마치고 같은 부서 동료들과 학교 밖으로 나가 식사를 같이 들었다. 시험 기간이면 으레 점심을 함께 들면서 담소를 나눈다. 오십 초반 음악과 부장은 여교사고 중국어과는 육아에 바쁘고 미혼인 보건교사에 이어 올해 두 분이 늘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로 근무하는 오십 초반 국어과와 활동지원사가 동석했다.
교내 급식소에선 성장기 학생 위주 식단이라 선택 여지가 없었다. 휠체어 이동에 제약이 따라 작년에 몇 차례 들린 황칠오리구이집은 찾아가지 못하고 학교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점심 자리에서 안주가 좋아 나는 맑은 술을 몇 잔 비웠다. 식사를 마친 오후에는 갯가 산책을 나섰다. 고현을 출발해 하청을 지나 칠천도로 건너가 섬을 일주하는 35번 버스를 탔다.
거제로 부임해 와 삼 년 동안 여러 차례 칠천도를 찾았다. 칠천도는 옥녀봉이 있고 해수욕장이 두 군데다. 칠천량해전 기념관이 위치한 옥계와 물안마을에서 가까운 옆개였다. 대곡에서 진동만 내해와 인접한 곳은 황덕도라는 유인도가 있었다. 그 섬으로 건너가는 연도교가 놓여 자동차로도 갈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간 바닷가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을 오두막집과 같은 교회도 봤다.
칠천도의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이다. 그곳과 달리 대한해협으로 탁 트인 학동이나 간곡은 몽돌이 깔린 해수욕장도 있다. 모래 결이 곱고 물이 얕은 옆개해수욕장이 기억에 남아 다시 찾고 싶어 칠천도로 향했다. 칠천도로 들어가는 버스는 2 시간에 한 차례씩 운행했다. 고현으로 나들이를 나간 노인이 몇 명 타고 왔다. 아마 병원 진료를 다니거나 생필품을 마련해 오는 이들인 듯했다.
연초삼거리에서 덕치를 넘은 하청 면소재지부터 진동만 바다가 드러났다. 하청과 칠천도 사이 좁은 바닷길이 칠천량으로 정유재란 때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대참패를 당한 뼈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당시 해전에서 조선 수군과 현지 민간인이 2만여 명이나 희생당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실전삼거리에서 칠천도대교를 건넌 장곶에서 타고 간 버스는 시계 방향으로 섬을 일주해 갔다.
칠천도는 하청면에 속한 제법 큰 섬인데 칠천량해전 기념관이 있는 옥계에는 출장소와 보건진료소가 있다. 옥계를 돌아간 금곡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연구를 지난 대곡에는 부산대학의 연수원이 위치했다. 황덕도는 대곡에서 포구를 지나 연도교를 건너갔다. 대곡고개를 넘으면 송포였고 해안선을 따라 더 돌아가면 옆개해수욕장이었다. 옆개는 물안마을 옆의 갯가라는 뜻이지 싶었다.
옆개해수욕장에 내리니 모래밭에 텐트를 치고 머무는 한 젊은이가 보였다. 연인과 함께 며칠째 묵고 있는 듯했다. 옆개는 여느 해수욕장 모래와 달라 결이 아주 고왔다. 신발 바닥에 와 닿는 촉감이 부드러웠다. 옆개해수욕장은 진동만 내해와 접했기에 물결이 잔잔해서 호수 같았다. 건너편은 장목면 황포로 골프장이 보였다. 바다 위는 홍합을 양식하는 하얀 부표가 줄 지어 떠 있었다.
해수욕장 모래톱을 거닐다가 찻길로 나왔다. 한적한 곳이라 오가는 차량이 없어 좋았다. 낮은 고갯마루를 넘으니 편백 숲속에 펜션이 한 동 나왔다. 아까 버스에서 지나쳐 온 송포로 갔다. 송포 부두에서는 진해가 빤히 바라다 보였다. 방파제에서 외딴 집에 이르면 수야방도로 건너는 아치형 산책전용 교량이 놓여 있다. 수야방도는 무인도지만 산책로가 개설되어 몇 차례 건너가 봤다.
오후의 햇살은 따가웠고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아직 일렀다. 수야방도 전망대는 낙조가 아름다웠는데 석양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많아 남았더랬다. 부두에서 가까운 한 펜션은 찻집을 겸하고 있었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찻집 베란다에서 바닷가 풍광을 바라보며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었다. 잠시 뒤 젊은 날 거제를 떠나 서울에서 평생 살았다는 한 노인이 펜션을 예약하러 나타났다. 2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