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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새' 신한열 수사 인터뷰
국가와 문화, 종교, 인종, 계층, 이념, 나이, 성별.... 우리는 매일 수없이 다양한 삶의 영역들을 직간접적으로 만나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다양성은 포용의 대상이 되기보다, 몰이해와 갈등의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누구보다 이해와 포용,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종교인, 특히 그리스도인의 역할 중 하나는 무엇일까.
지난 32년간 프랑스 떼제공동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신한열 수사가 2020년 영구 귀국한 한국에서 주목한 것이 바로 이 상황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동안 떼제공동체에서 다양한 종교와 국적을 가진 이들을 만났고, 또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수많은 만남을 가졌던 그는 한국에서도 그러한 “만남”이 무척 소중한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모국은 한국이었지만 32년, 일생의 반을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온 한국에서 그는 “사실상 이방인의 정서가 더 짙다”면서, 모국을 떠나 여러 이유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의 처지를 특별하게 여겼다. 나아가 이른바 “일반”의 영역에 속하지 않은 모든 영역의 사람들에게 연민과 애정을 표했다.
스스로 살길을 도모해야 하는 까닭도 있어서 고민하던 중, 그가 주변의 조언을 구하며 결정한 일은 지금껏 해 왔던 일의 연장선이자, 노동을 통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비영리단체 운영과 활동이었다. 그것이 2022년 12월 2일 공식 창립한 '이음새'다.
창립 이전부터 현재까지 동참하는 이들은 100여 명. 신한열 수사는 이들과 함께 정기 기도 모임과 피정, 걷기 모임, 다양한 지역과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 만남, 미얀마와 우크라이나 등 어려움에 처한 곳을 위한 연대, 해외 지역 방문 등을 이어 오고 있다. 이 모임이나 활동에는 어떠한 제한 조건이 없다.
신한열 수사는 이음새를 통해 더 넓어지기 위한 다리 놓기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한국에서 돌아와서 지내는 2년 동안 그가 본 한국 사회 모습은 어땠을까.
“제가 한국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목격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우선은 참 풍요롭고 세련되고 화려해졌어요. 하지만 그만큼 가난해진 것도 같아요. 젊은 친구들은 옛날처럼 친구 집에 가서 놀고, 자기도 하고 이런 모습이 없더라고요. 각자 방을 가진 집이 많은데, 집은 비고, 카페는 가득 차요. 성당도 마찬가지죠. 사는 곳이 아니라 늘 먼 곳을 동경하고요. 그래서 코로나 때 해외에 나가지 못하니까 우울할 정도로. 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같은 게 느껴져요.”
국제화 시대. 할 수 있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 문화를 만날 기회가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우리 옆에 사는 외국인, 이방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없다. 이 시대에 “다름”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또 어떠해야 할까. 또 다른 모습은 많은 비판 의견이 오가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비판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는 “한국 사회에는 중간 지대나 제3의 영역이 없다”고 말하면서, “누구나 비판할 수 있지만, 비판만으로는 어떤 대안을 만들고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없다”며, “너무 많은 단절과 분절이 있는 시대에,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 어쩌면 예언자적 소명이 아닐까 한다. 분열과 단절 사이를 엮고 연결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했다.
신한열 수사는 스스로 운동가, 활동가가 아니라 단지 수도자일 뿐이라면서, “이 시대 수도자의 역할이 바로 듣고, 연결하고, 만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다리를 놓으며, 높은 울타리를 낮추거나 없애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다리놓기는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등 범주를 제한하지 않으며, 부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에게 먼저 다가감으로써 시작된다. 만나기 위해서는 더 원하는 사람이 다가가야 하고, 만나서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신한열 수사가 그렇게 만난 사람 중에는 대구 10월 항쟁 유가족이 있다.
(주: 1946년 9월 부산 철도노동자 파업으로 총파업이 시작됐다. 미군정이 친일 관리를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늦추면서도 식량 공출을 강제 실행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최초의 민중항쟁이었던 10월 항쟁은 총파업 중인 10월 1일 대구에서 경찰이 쏜 총에 시민 1명이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12월 중순까지 남한 73개 지역에서 일어난 10월 항쟁으로 미군정과 경찰, 우익 세력은 좌익 세력을 탄압하며 민간인 희생자 758명을 냈다.)
우연히 대구 10월 항쟁 유족회 회원들을 만나게 된 신 수사는 재판도 없이 희생된 이들과 이후 연좌제 피해를 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8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종교인들이 동반해 준 적이 있느냐”고 유가족에게 물었다. 1초 망설임도 없이 “없었다”고 답하는 것을 들으면서 신 수사는 그들의 증언을 본격적으로 듣기로 했다.
이음새 회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2-3시간 유족들의 증언을 들은 그는, 그 자리에서 끝낼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본격 인터뷰를 녹화해 기록했다. 그렇게 만든 증언 기록 16편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면서 신 수사가 찾은 이음새의 또 다른 몫은 “치유”였다. 그는 “지금까지 사람들과 여러 시도를 해 왔던 것을 한 단어로 줄이면 ‘치유’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회가 병들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이가 치유와 위로를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개인 차원에서 머물 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치유는 국가의 인정과 함께 주변 모든 이가 사실을 제대로 알고 냉대와 무관심을 거둘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을 밝히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시작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며, 올해도 이후에도 계속 이런 일들을 이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시에 그 증언을 듣던 우리 회원들도 10월 항쟁을 제대로 몰랐죠. 심지어 유가족의 자녀들도 잘 모르고 있어요. 왜냐하면 연좌제에 너무 고통받았기 때문에 알리지 않은 거죠. 혹시 또 빨갱이라고 자식들이 손가락질 받을까 봐. 기억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게 또 하나의 비극이에요. 이런 사건에 대해 말하면 또 정치적으로 접근하기 쉽죠. 진영논리로 시작하면 대화가 안 돼요. 이건 정치가 아니라, 해법은 정치적이겠지만, 본질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거든요.”
자난 2월 이음새 회원들과 동행한 일본 평화 기행. 우토로 마을에서. (사진 출처 = 이음새)
또 다른 만남은 한국 내 이슬람 신자들, 무슬림과의 만남이다. 신한열 수사는 개인적으로도 무슬림을 만나고 피정 모임에도 초대한다. 그는 넓은 의미에서는 종교간 대화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구에서 무슬림 유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건축하는 문제로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고, 급기야 그들의 종교를 조롱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신 수사는 대구 무슬림 유학생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두어 차례 자리를 마련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유는 갈등을 일으킨 지역 주민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이자 이웃 종교인인 무슬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슬림이든, 어떤 상황의 소수자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궁극적으로 화해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한국 사회의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짚었다.
“이주노동자 인권 침해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법적으로도 인권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죠. 하지만 인권침해를 노골적으로 받는 이주노동자가 아닌 다른 외국인이라고 해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언어 문제에서부터 시작하는 불편함이요. 저는 우리말을 잘하는 한국 사람인데도 오래 외국에 있다 보니 불편합니다.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이 230만 명 정도고, 어떤 경제학자는 2030년대는 천만 명까지 들어올 거라고 하는데, 우리 사회는 외국인과 살아갈 아무 준비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교회에서도 이주민, 이주노동자 사목을 말할 때, 프랑스나 독일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면서, “국가별 공동체도 필요하지만 교회에서는 한국인과 함께 전례, 신앙 활동에 참여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외국인이 아니라 형제자매로 함께 어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장애인 본당을 따로 설치하고, 빈민이나 특수한 상황에 있는 이들을 위한 특수 사목이 별도로 이뤄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포용과 보편 차원에서 그는 “가톨릭교회는 보편적인 교회이지 다른 종교, 종단과 구분 짓는 교파로서의 가톨릭이 아니”라며, “경계와 구분 짓기를 위해 ‘가톨릭’을 강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같은 그리스도교로 개신교도 세례를 받는데, 세례명을 굳이 강조하는 건, 배제의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지만, 경계가 없고, 울타리도 없다. 울타리가 있다고 해도 점점 밖으로 넓어져야 한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이 점점 넓어져서 누구나 포용하고, 누구라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흡수하는 형태의 일치가 아니라 점점 확장되고 넓어지는 교회여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의 울타리가 없으면 어디까지가 교회인지 구분이 안 되죠. 두려움이 있을 때 울타리나 장벽을 치는 것 같아요. 울타리는 없지만 그리스도라는 중심점은 있으니 결코 정체성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가톨릭교회 자체가 가진 것이 많은 것인지, 다른 종단과 협력하는 모습이 별로 없어요. 예수님이 그러셨듯, 모든 경계를 넘어 만나고 환대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조금씩 가 보고자 합니다.”
올해 2월, 신한열 수사는 이음새 회원들과 일본 평화 기행을 다녀왔다. 한국 회원 8명과 일본 교토, 우지의 우토로, 오사카 빈민가인 가마가사키 등을 방문했고, 일본 청년들도 만났다. 올해 이음새 활동을 본격화하면서 국내 평화 기행은 물론, 하반기에는 타이완으로 평화 기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이음새만이 아니라 국내외 여러 지역, 단체와 연계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는 국제사회 시민들과 연대도 이어 간다.
그는 이런 일상적이고도 특별한 기도와 만남의 자리에 가톨릭 성직자, 수도자들도 많이 동참하기를 바란다. 또 어느 때부터인지 낯설어진 이웃, 만남이라는 말, 어쩐지 무거워진 화해, 연대라는 말이 더 가볍고 친숙하게 삶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를 바란다.
신한열 수사는 사람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드는 장을 계속 열어 가는 것이 기본 계획이라면서, “어떤 큰 이슈 중심이 아니라 함께 걷고, 기도하고, 이야기하는 일상의 자리를 만들 것이다. 또 규모 역시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정도로 꾸준히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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