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영을 조심하라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걱정은 비난과 분노가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이 아니면 온갖 모욕적인 언어와 극언을 퍼붓습니다.
영적으로 분노와 저주에 사로잡혀 버린 것입니다.
2008년 감리교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감리교회에 소망이 없구나, 차라리 감리교를 탈퇴하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갈라서는 것이 낫지 않나!” 라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한편 동의할 만 했지만 기도하면서 주님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국 교회가 타락하는 모습을 보이자, “예수가 한국교회를 떠났다”고 극언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정말 무서운 말입니다.
타락한 자녀에게 누가 찾아가서 “네 부모가 너를 버렸다” 하면 그 부모가 고마워 하겠습니까?
교회가 잘못이 있어도 욕을 먹어도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수 없이 타락하여 그들을 무섭게 징계하셨던 하나님의 속마음은 사랑이었습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교회도 나라도 징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다 저 사람들 때문입니다. 왜 내가 저런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하며 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정말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를 드셨다면 공동체와 함께 같이 매를 맞는 것이 정답입니다.
“하나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매 맞을 일을 했습니다. 매를 때려 주세요”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 해결의 빠른 길입니다.
적대감을 가진 이들은 예수님도 채찍을 휘두르셨을 때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지는 사랑이 있다면 채찍을 휘두르더라도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인 모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이 하나되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면 부부도 교회도 어떤 집단도 하나가 됩니다.
엡 4:3에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이라고 했습니다.
'절대 용서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는 마음은 결코 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과정에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때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지하게 기도하면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비아냥거리고, 극단적인 단어를 써가며 공격하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분노의 영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참의원을 지낸 다무라 고타로(田村耕太郞·55)씨는 정치 경험을 토대로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마라]를 출간했습니다.
“TV 드라마에 복수를 예찬하는 '바이가에시(倍返し·배로 갚음)'란 말이 나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정치할 때는 나도 그렇게 행동하면서 인생을 낭비했다. 나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
“정계에 가보니 '바보'가 많았다. 부조리의 결정체 같았다. 하지만 '바보'를 심판하려고 싸운 내가 사실 더 '바보'였다. 일을 하는데 누가 '적(敵)'이라고 하는 발상은 필요하지 않다.”
“나도 정치할 때는 젊은 혈기에 상대와 충돌하고 협박 같은 일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정책은 좌절됐고, 자리도 얻지 못했다. 얻은 것은 순간의 해방감뿐이다. 소중한 것은 목적이다. 목적을 확실히 인식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공통의 목적을 찾아내면 상대와도 동료가 될 수 있다.”
정치인도 이 정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을 바라보아도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너무나 크시고 사랑이 많으시기에 분노가 작게 여집니다.
그래서 분노의 종노릇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된 교회를 회복하게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하나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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