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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알과 그의 형제들
삿 9:22-29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25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26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27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29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이르되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하니라
삿 9:22-29 / [아비멜렉과 세겜의 갈등]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3년이 지났다.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를 좋지 않게 하셨다. 결국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에게 반기를 들었다. 24)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시려는 까닭에서였다. 아비멜렉은 자기 형제인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의 피를 흘렸고, 또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이렇게 자기 형제들을 살해하는 것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25)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게 돌아가는 통행세를 적게 해서 피해를 주려고 세겜을 둘러싸는 산꼭대기에 사람들을 매복시켰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빼앗았다. 이 소식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졌다. 26) 이즈음에 에벳의 아들 가알이 자기 형제들과 함께 세겜으로 왔다. 세겜 사람들은 그를 따르게 되었다. 27) 그들 모두가 밭으로 나가 포도를 거두어다가 틀에 넣고 짜서 새 포도주를 만들어 잔치를 벌였다. 그들은 신전으로 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실컷 욕하였다. 28) 그러자 에벳의 아들 가알이 말하였다 `아비멜렉이 대체 누구요? 또 우리 세겜 사람들은 뭐냔 말이오? 무엇때문에 우리 세겜 사람들이 그를 받들어 섬겨야 한단 말이오? 아비멜렉이란 자는 이스라엘 사람 기드온의 자식이고 스불이라는 자는 그의 하수인이 아니오? 오히려 그들이 우리 세겜을 세운 하몰 집안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소? 우리가 아비멜렉을 떠받들다니 그건 말도 안 될 소리요! 29) 내게 이 백성을 거느릴 권한만 준다면 아비멜렉을 제거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아비멜렉에게 `네 군대를 동원하여 이리 나와 덤벼 보아라' 하고 말하고 싶소'
요담의 예언대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시매(22-25) 아비멜렉이 왕이 된지 3년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셔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의 근원이 되지 아니하시며, 하나님께는 악이 조금도 있을 수 없습니다(요일 1:5). 이는 욥에게서와 같이(욥 1:12),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험당하신 것 같이(마 4:1)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하에서 악한 세력의 활동을 용인하고 계실 뿐입니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으로 자기 형제 70인의 피를 흘린 죄에 대한 율법적인 심판입니다. 요담의 지적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3년간 있었음에도 회개하지 않은 그들에게 요담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세겜 사람들은 산적 떼와 같이 산에 매복하여 있다가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사람을 강탈하며 아비멜렉의 세력에 도전했습니다. 진실함과 의로움이 없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을 신뢰하는 세겜 사람들(26-29) 가알과 그의 형제는 가알을 두목으로 쫓아다니는 약탈자 무리를 의미합니다. 아비멜렉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세겜 사람들이 ‘몹시 싫어하다’의 뜻을 가진 가알을 신뢰합니다. 가알은 아비멜렉을 반대하기 위해 세겜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의 집에 모여서 연회를 하며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을 바알의 단을 파괴한 여룹바알의 아들임을 상기시키며 세겜 사람들로 아비멜렉을 더욱 적대시하게 유도합니다. 하몰은 히위 족속의 사람으로 그의 아들 세겜은 아브라함 당시 세겜 성의 족장이었습니다. 가알은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과 그의 신복 스불이 도리어 세겜의 조상인 하몰의 후손을 섬겨야 된다고 합니다. 가알은 자기가 왕이 되었다면 아비멜렉을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며 아비멜렉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가알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반역하고 자기를 따르도록 부추깁니다. 불의한 연합은 또 다른 불의함으로 관계가 깨어지는 보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하고 의로운 관계유지를 위해 모든 관계는 관계의 회복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왕이 될 때 결정적인 도움과 지원을 하였던 세겜 사람들의 배반으로 아비멜렉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린 관계의 어려움은 없습니까?
능력이 너무 많은 사람은 과거의 성공의 기억들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해결합니다. 기획, 실행, 점검 다 자기가 합니다. 일을 다 자기 혼자서 하려는 사람은 영광도 모두 자기 혼자 받으려 합니다. 교만은 항상 자기 고립을 자초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많은 지식을 원하겠지만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지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리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지식은 우주를 연구하면서도 자신을 소홀히 여기는 교만한 철학자보다 훨씬 더 낫다”(토마스 아 켐피스)
< 설 교 >
세겜 사람들의 배신
삿 9:22-29 / 우인택목사
오늘 본문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겨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하고 에벳의 아들 가알을 중심으로 아비멜렉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먼저, 22-23절에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비멜렉이 세겜에서 왕이 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서로 협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사이였기에 아비멜렉이 왕이 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이 아비멜렉이 왕이 된 지 3년 만에 서로 대적하여 싸우는 원수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에 세겜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아비멜렉을 배신했는지 그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나무들의 우화로 미루어 볼 때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울 때의 기대와는 달리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심한 억압을 당하자 그를 대적한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제의 동지였던 그들이 오늘은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면서 인간은 변하기 쉬운 존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굳은 약속을 하고서도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따라서 그 약속을 깨뜨리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깨뜨린 이유를 물으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좋을 때는 형님동생하면서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 같이 행동하다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실상입니다.
심지어 가장 믿고 있던 사람에 의해 배신당한 모습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은 믿고 의지할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사람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의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의지할 힘과 방패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약 1:17).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평안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시 125:1).
여러분, 삶의 주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은 모두가 다 우리가 의지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돌보고 섬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는 동역자들입니다.
이에서 넘어가면 오늘 본문의 아비멜렉과 세겜사람들의 처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성도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하게 된 것은 24절에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비멜렉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배신이 세겜 사람들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23절에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그들 사이에 보내신 까닭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배반이 겉으로는 그들의 이기적인 욕심들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선악간의 다툼 사이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욥 12:23, 시 103:9, 잠 16:9).
인간의 역사는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악의 승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이러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없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 어떠한 거대한 악이 출현하더라도 결국에는 그들이 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영어로 ‘history’, 곧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셨는지를 나타내는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역사를 그저 단순히 과거 사건의 기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보면서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따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보다 발전적인 역사를 만들어 가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나의 삶속에 개입하셔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이어지는 25절에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사이가 얼마나 벌어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게 대항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병사들을 산속에 매복시키기 까지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매복’은 상대의 허점을 찔러 급습함으로 적군을 몰살시키려는 군대의 전술입니다.
전쟁을 할 때 부대가 이동 중에 뜻하지 않은 매복병들과 마주치게 되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만큼 매복은 큰 위협이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원수인 사탄이 바로 이러한 전술로 우리 성도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숨어 매복하고 있는 악한 존재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인생길에 매복하여 있다가 우리가 잠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방심하면 즉시 와서 우리를 큰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막 4:15).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려고할 때 그 길에 매복하여 순탄하게 전도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합니다(살전 2:18).
또한, 사탄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죄에 넘어지면 우리를 포로로 잡아 영적인 눈을 멀게 만들고 우리의 심령을 억압하여 자기의 종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듭니다(눅 4:1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 매복자인 사탄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더할 때만이 매복한 사탄이 우리를 급습할지라도 그 공격을 막아 내고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한시도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고 깨어 있음으로 사탄의 기습 공격을 막아 내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악한 계획을 품고 악한 권력을 취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서로를 멸망의 길로 이끈 것을 보면서 모든 인생의 삶에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탄의 악한 매복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말씀으로 깨어 있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항상 승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사기 9:22~29
<나눔> 1. 아비멜렉은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머니 고향 사람들이었던 세겜 사람들의 힘을 빌어 70명이나 되는 형들을 모두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계셔야 하는 자리에 앉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역하고, 이웃을 해치는 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2. 오늘 말씀은 이러한 아비멜렉이 몰락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몰락의 시발점은 분열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할 때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죄악은 분열과 갈등과 폭력입니다. 가인과 아벨, 바벨론 사건, 이집트의 파라오 등 성경은 이러한 결과들을 수없이 보여줍니다.
3. 오늘 말씀은 이러한 죄악의 결과를 ‘악령을 보내셨다’는 표현으로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악을 저지르셨다는 뜻이 아니라, 악한 권세가 그들의 마음을 붙잡은 것을 두고 보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고백 위에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권력을 독차지 하고자 갈등이 생겼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다툼과 갈등을 두고 보심으로 그들의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4, 자신의 욕망과 탐욕에 사로잡혀 자기가 모든 것을 가지려 하고, 그 소유를 위해 끊임없이 이웃과 갈등하고, 나아가 이웃을 해하는 삶을 살다가 자신의 인격과 관계와 삶이 모두 파괴되는 것, 이것이 가장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5. 죄를 짓고 있음에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그 죄의 노예가 되어 죄가 불러오는 참혹한 결과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삶은 이러한 길로 점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이 아비멜렉이 그 형제 70명을 죽인 죄에 대한 심판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6.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미워하기 시작하여 그를 배신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산꼭대기마다 사람을 매복시키고 강도질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불안하게 되면 아비멜렉의 왕권이 흔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아비멜렉 흔들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7. 그 때에 세겜 지방에 아비멜렉과 대립각을 세우는 대표적인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에벳의 아들 가알이었습니다. 그는 세겜 사람들과 어울려 아비멜렉을 저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겜사람들을 높이고 아비멜렉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세겜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우리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섬기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우리 세겜의 아버지인 하몰을 섬기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아비멜렉은 세겜을 섬기는 것이 맞습니다. 나에게 군사를 준다면 아비멜렉을 몰아내겠습니다!”
8. 가알의 연설을 세겜 사람들의 욕망을 추동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 열매를 먹으면 네게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한 뱀의 꼬득임과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앉고 싶었던 것처럼, 가알도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앉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세겜 사람들에게 너희가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과 같은 자리라 선동한 것입니다. 모두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었고 그 욕망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9.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죄악된 우리의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그 경쟁의 길에서 다른 이를 속이고, 해치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러한 욕망의 아비규환 속에서 많은 약한 이들이 희생을 당하고, 정의와 공의는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과 정반대의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0.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고 있는 우리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보여주시며 온전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통해 죄에 빠져 심판의 길로 가는 모든 이들을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비멜렉처럼, 가알처럼, 세겜 사람들처럼 살지 않는 길은 오직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금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삿 9: 22-29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왕이 되려고 했던 아비멜렉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아비멜렉이 아버지 기드온을 따라서 절대권력을 가지고 싶었던 동기나, 그래서 친혈육 69명을 죽인 과정에서나,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해서 방탕한 자들을 모아서 세력다툼을 한 것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힘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전략, 욕심, 욕망으로 가득찬 채로 왕이 되려고 했고 결국에는 왕이 되고야 맙니다. 22-23절입니다.
22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23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그간 사사기 내용에서 반복되는 패턴은 올바른 사사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몇년간 누구로부터 평화를 누렸는지를 말해줬습니다. 하지만 이번 아비멜렉 지도자를 통해서는 그러한 기록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비멜렉이 다스린지 3년만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말해줍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아비멜렉과 함께 한 세겜 사람들의 배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했던 아비멜렉이니,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자신의 죄악 그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유기하십니다. 그러니 악한 영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개입하여 결국 깨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지 않는 관계의 결말은 이와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경제공동체, 무역공동체, 지역공동체, 군사공동체, 계약관계 등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의 이익이 다 하면 깨어질 수 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게 깨어진 관계는 더 큰 이익을 주는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비멜렉은 하나님의 사사로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위한 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22절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린지"라고 말할 때 다스리다는 "왕의 통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비췄을 뿐이라는 보다 간접적인 의미로 원어는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비멜렉은 말 그대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지, 하나님의 뜻과 가치, 이스라엘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왕의 헌신으로써의 다스림이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요담이 말하듯이 우쭐대기 위한, 누군가의 위에 서기 위해 왕이 되었을 뿐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렇게 하나님이 유기하신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24절입니다. 24-25절입니다.
24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25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심판하고자 하셨습니다. 친족 69명을 살해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모두에 대한 심판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유기로 악한 영은 세겜사람들에게로 들어가 아비멜렉을 배반하게끔 욕심과 탐욕이 있는 그대로 두셨습니다. 이 말은 그때까지도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지켜주고 기다려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쨌든 결국 세겜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나타내게 되었으니, 아비멜렉을 처단하고자 매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되어 아비멜렉에게 전해졌습니다. 둘 사이가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상태였는데, 그 사이에 한 가지 더 다른 요소가 개입됩니다. 26절을 보니 세겜 사람들이 가알이라는 사람을 의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6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의 행태가 그대로 돋보입니다. 서로를 향한 배반, 모사, 계략이 판을 칩니다. 신뢰라는 이름은 언제든지 자신의 욕심에 의해 배반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27절을 보니 "27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저주가 난무하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지금 이 땅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인데, 여기에 여전히 우상숭배 신당이 있었으니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말은 결국 아비멜렉을 향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28-29절입니다.
28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29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이르되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하니라
가알은 직접적으로 세겜사람들에게 아비멜렉을 배반하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이 땅에 본래 살던 가나안 족속 히위사람들의 통치를 받자고까지 말합니다. 이 부분이 의미심장합니다. 이 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림이 마치 없어지는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로부터 여호수아, 갈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의 역사의 결과물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세속적인 삶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무너지는듯한 상황까지 끌고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살아가는 자의 과정과 결말을 너무나도 여실히 보여주는 본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 세속적인 판단, 물질이 주는 결과를 바라며 살아가다가는 결국 이렇게 믿었던 자들에게 배반당하고, 내가 쌓아올린 것들이 무너지는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 섭리, 가르침을 따르고 그것을 내 삶의 기둥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삶 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승리하며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세겜 사람들의 배신
삿 9:22-29 / 우인택 목사
오늘 본문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겨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하고 에벳의 아들 가알을 중심으로 아비멜렉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먼저, 22-23절에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비멜렉이 세겜에서 왕이 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서로 협조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혈연관계로 맺어진 사이였기에 아비멜렉이 왕이 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이 아비멜렉이 왕이 된 지 3년 만에 서로 대적하여 싸우는 원수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에 세겜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아비멜렉을 배신했는지 그 이유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나무들의 우화로 미루어 볼 때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울 때의 기대와는 달리 그에 상응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심한 억압을 당하자 그를 대적한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제의 동지였던 그들이 오늘은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면서 인간은 변하기 쉬운 존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굳은 약속을 하고서도 언제든지 자신의 이익을 따라서 그 약속을 깨뜨리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깨뜨린 이유를 물으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좋을 때는 형님동생하면서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것 같이 행동하다가,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실상입니다.
심지어 가장 믿고 있던 사람에 의해 배신당한 모습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은 믿고 의지할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사람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의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의지할 힘과 방패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약 1:17).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평안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시 125:1).
여러분, 삶의 주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들은 모두가 다 우리가 의지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돌보고 섬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는 동역자들입니다.
이에서 넘어가면 오늘 본문의 아비멜렉과 세겜사람들의 처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성도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신하게 된 것은 24절에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비멜렉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배신이 세겜 사람들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23절에 하나님께서 악한 영을 그들 사이에 보내신 까닭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에 대한 세겜 사람들의 배반이 겉으로는 그들의 이기적인 욕심들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들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선악간의 다툼 사이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욥 12:23, 시 103:9, 잠 16:9).
인간의 역사는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악의 승리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이러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없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 어떠한 거대한 악이 출현하더라도 결국에는 그들이 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영어로 ‘history’, 곧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셨는지를 나타내는 기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역사를 그저 단순히 과거 사건의 기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보면서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따르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보다 발전적인 역사를 만들어 가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나의 삶속에 개입하셔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이어지는 25절에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사이가 얼마나 벌어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게 대항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병사들을 산속에 매복시키기 까지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매복’은 상대의 허점을 찔러 급습함으로 적군을 몰살시키려는 군대의 전술입니다.
전쟁을 할 때 부대가 이동 중에 뜻하지 않은 매복병들과 마주치게 되면 미처 손쓸 틈도 없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만큼 매복은 큰 위협이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원수인 사탄이 바로 이러한 전술로 우리 성도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해 숨어 매복하고 있는 악한 존재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인생길에 매복하여 있다가 우리가 잠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방심하면 즉시 와서 우리를 큰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막 4:15).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려고할 때 그 길에 매복하여 순탄하게 전도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합니다(살전 2:18).
또한, 사탄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죄에 넘어지면 우리를 포로로 잡아 영적인 눈을 멀게 만들고 우리의 심령을 억압하여 자기의 종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듭니다(눅 4:1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길을 걸어갈 때 매복자인 사탄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더할 때만이 매복한 사탄이 우리를 급습할지라도 그 공격을 막아 내고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한시도 영적 긴장을 늦추지 말고 깨어 있음으로 사탄의 기습 공격을 막아 내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악한 계획을 품고 악한 권력을 취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서로를 멸망의 길로 이끈 것을 보면서 모든 인생의 삶에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탄의 악한 매복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말씀으로 깨어 있는 복음의 일꾼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 항상 승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