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이코노미플러스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서울 광화문, 명동, 인사동에 가면 여행사의 깃발을 따라 다니는 관광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일단 한국인은 아니다. 일본인도 아니다. 중국인들이다. 세계적으로 중국인들의 해외관광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들은 한국 관광·유통 업계의 구세주로 부각되고 있다. ‘통 큰’ 씀씀이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왜 사들이는 걸까. 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탐험을 1박 2일 동안 동행 취재했다.세계 관광 업계의 시선이 중국인들에게 쏠리고 있다. 소득이 늘면서 중국인의 해외 나들이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해외관광 소비가 급감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21%나 늘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이미 해외관광 소비에서 독일, 미국, 영국과 함께 4대 강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인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기업 모두 나섰다. 법무부는 지난 8월1일부터 중국인들의 비자 발급 요건을 대폭 낮춰 한국으로 오는 문을 활짝 열었다.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쇼핑몰 중에선 중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신용카드인 ‘은련(銀聯)카드’ 취급점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연말 1만6000곳에서 올해 상반기 7만여 곳까지 늘었다. 많이 와서 많이 쓰고 가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제 중국 관광객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관광마케팅의 서울 패키지투어인 ‘서울형 관광 상품’으로 서울 여행에 나선 중국인 관광객과 동행하며 그들의 속내를 알아보기로 했다. 인사동에서 출발해 경복궁-청와대-동화면세점-청계천으로 이어지는 일정이었다.
“한국 관광 상품 요즘 품귀입니다”
“랑디엔짜이쩔, 지엔미엔(두 시에 이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시간 꼭 지키세요)!”
“칭투이지엔, 하오츨더찬팅(가이드님, 맛집 추천해주세요)!”
서울 인사동 입구가 부산해진다. 중국인들이 모여들면서다.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지만 들뜬 표정들이다. 전날 일정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상하이에선 38도가 기본이에요. 이 정도 기온이면 시원한 편이죠.” 상하이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제시카 리씨(27)가 웃으며 말한다.
이날은 3박 4일 서울 관광의 2일차다. 경복궁-청와대-청계천에 이르는 오후 일정을 소화하려면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 인사동에 들른 것도 서울시내 관광명소인 문화예술의 거리를 구경하면서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꼭 제 시간에 오셔야 돼요, 안 오시면 두고 갈 겁니다!”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관광객들은 이미 제각각 흩어지고 있었다.
리씨도 마찬가지다. 점심도 미루고 찾아간 곳은 인사동의 유명 쇼핑몰 쌈지길. 영화배우 이병헌씨의 팬인 그는 이씨가 쌈지길에 열었다는 모자가게를 방문하는 길이다. 안내인도 없이 앞장서는 모습이 외국인 같지 않다. 벌써 세 번째 한국행이어서 서울 지리에 익숙하다는 설명이다. 리씨는 이곳에서 모자 두 개를 구매했다. 이밖에도 리씨는 한지부채와 찻잔 등 기념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리씨의 이번 한국행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중국에서 한국 관광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원하는 시기의 관광 상품을 사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경우 여행사마다 한국행 상품은 2개월 전에 매진돼버려요. 저만 해도 예약이 취소된 자리가 생겨서 간신히 왔죠.”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 붐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을 찾은 중국인은 모두 75만5000명.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나 급증했다. 정부가 지난해 130만 명이던 중국인 관광객을 2012년 300만 명까지 대폭 늘리겠다며 최근 중국인의 국내 비자 발급 요건을 획기적으로 완화한 것도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 특수를 놓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중국인들이 한국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한국은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으로 관광이 편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는 데다 경비는 일본보다 적게 든다. 일본의 경우 3박 4일 체재비용이 대략 1만위안(174만원)이라면 한국은 5000~6000위안(87만~104만원) 정도다. 중국과 가까운 것도 한국행의 이점이다. 서울, 제주도 같은 인기 관광지들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같은 중화권인 홍콩이나 대만보다 가까운 거리다.
리씨를 따라 쌈지길로 들어섰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넘친다. 상인들은 요즘 리씨처럼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 덕에 웃음꽃이 폈다. 불황 속의 호황이 따로 없다. 쌈지길에서 한방발효차를 판매하는 오은영씨(71)의 설명이다. “쌈지길을 지나가는 유동인구의 30% 정도가 해외 관광객이에요. 가장 많이 찾아오던 일본인들이 요즘 뜸하지만 대신 중국인 방문객들이 크게 늘고 있어요. 쌈지길에 부쩍 활기가 돌고 있습니다.”
점심은 쌈지길 인근의 한식당에서 해결했다. 한식 애호가라고 밝힌 한 관광객은 순두부찌개, 조기구이를 맛있게 해치웠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한식은 그렇게 만족도가 높지 않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중국인들의 한국음식에 대한 만족도(100점 만점)는 68.08점으로 관광종합만족도인 75.90점보다 낮았다.

화장품 쇼핑 바구니 ‘주렁주렁’
일행이 경복궁에 도착한 시간은 2시45분. 예정보다 40분이나 늦어졌다. 일부 관광객들이 인사동에서 쇼핑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해서다. 가이드인 장보룡씨(56)가 다소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경복궁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장씨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건물 한 쪽에서 사진을 찍는 등 딴전을 피우거나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가이드가 주의를 줘도 개의치 않는 눈치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은 대부분 20~30대 대졸 여성들입니다. 사무직이나 전문직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들로 중국에서도 소비문화를 이끄는 계층입니다. 문화재보다 쇼핑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장씨의 설명이다.
중국인들의 쇼핑 욕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세계가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가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도 중국인들의 ‘통 큰’ 소비성향 때문이다. 실제 어느 정도일까. 롯데백화점 명동본점에 문의한 결과, 중국인들은 롤렉스,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의 최대 외국인 소비자였다. 심지어 2억원어치의 보석류를 한 번에 구입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물건은 단연 화장품이고 인삼과 의류가 그 뒤를 잇는다. 화장품 소비가 많은 것은 중국 관광객들의 인구 구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성이 60%에 이르는데, 20~30대의 사무·전문직 종사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여성용 화장품이 잘 팔리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다. 기자가 동행한 관광단에도 여성이 많았다. 38명 중 4명을 제외하고 모두 여성으로 상하이 출신의 20~30대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역시 한국 화장품 애호가였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는 위지아씨(32)는 전날 명동에서만 쇼핑백 네 개 가득 아모레퍼시픽의 라네즈 제품을 사들였다. “한국에선 라네즈가 평범한 브랜드라는데 중국에선 달라요. 명품 대접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인 데다 값도 비싸죠.”
중국인들이 씀씀이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충동구매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국내 소비자들처럼 인터넷에 익숙하다. 한국에 대한 여행정보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충분히 검색해보는 경우가 많다. ‘투도오’, ‘유쿠’ 등의 중국 국내 사이트에서도 한국 관광지에 대한 수천 건의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가이드 장씨의 설명이다. “서울의 명소, 교통수단과 노선도, 쇼핑 품목의 가격대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죠.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에서 여행후기를 교환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오후 4시, 일행이 청와대로 들어섰다. 이들이 찾은 곳은 국가홍보관인 사랑채. 한국의 역동적인 발전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해외 단체관광객들의 필수코스 중 하나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더위에 지친 듯, 홍보관을 둘러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념품 매장을 서성이거나 사랑채 인근을 돌며 사진을 찍는다.
“한류 공연 보러 한국 왔습니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은 어떤 이미지일까. 대체로 우호적이다. 지난 4월 영국의 <BBC>가 28개국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별 여론조사 결과는 인상적이다. 28개국 중 한국에 가장 후한 점수를 준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인 응답자 57%가 한국을 긍정적으로 봤다. 중국의 관광공사 격인 중국국가여유국의 통계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2008년 중국인들은 중화권인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면 한국을 일본, 베트남 다음 가는 관광지로 선호하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는 한류 열풍 덕이 크다. 중국은 일본과 함께 한류 열풍의 진원지다. 실제 한국 드라마나 대중가요의 인기는 대단하다. 조우리씨(30)는 한국 연예인들의 열성팬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대보라고 하자 배용준, 이민호, 지성 등 남성 연예인들의 이름이 줄줄이 흘러나온다.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한국에 온 것은 사실 아이돌 가수인 슈퍼주니어의 콘서트를 현지에서 직접 보고 싶어서죠. 패키지 일정을 일부러 콘서트 일자와 맞췄죠.”
왕밍씨(가명·42)는 중국에서 한류는 너무나 일상적인 것이 됐다고 말한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한국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방영하는 곳이 꼭 한 군데씩은 있어요.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는 상황이죠. <대장금>은 워낙 재방송을 많이 해서 도대체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발달된 산업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한국에 대한 지리쥐엔씨(26)의 인상이다. “한국하면 휴대전화, LCD·LED TV 같은 전자제품이 먼저 떠올라요. 자동차나 선박도 생각나고요.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죠. 관광지나 편의시설, 쇼핑 지역 뭐든 잘 갖춰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중국어 잘 통해 놀랐습니다”
5시 무렵, 관광객을 실은 버스가 광화문 인근의 동화면세점에 멈췄다. 다른 중국 관광단을 실은 버스들이 먼저 주차장을 가득 메운 상태다. 퇴근시간을 앞두고 광화문이 왁자지껄해진다. 이날의 마지막 코스를 면세점으로 선택한 관광단이 서울형 관광 상품의 참가자들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면세점 내부도 북적였다. 서울형 관광 상품 일행들은 화장품 코너와 한약재, 명품 코너로 몰려갔다. 그러나 잠시 뒤 상당수가 청계천 방면으로 빠져 나온다. 면세점은 전날 롯데면세점과 이날 워커힐호텔면세점에 이어 세 번째. 아무리 쇼핑을 즐기는 중국인들이라지만 다소 식상하다는 표정이다.
왕밍씨의 가족은 면세점에서 청계천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계천은 중국에도 잘 알려진 관광명소다. 저녁 무렵이지만 무더위는 그대로였다. 왕씨의 두 아이들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이내 함께 온 다른 관광객들도 신발을 벗고 청계천에 발을 담근다. “시원해서 참 좋습니다. 아이들도 많이 즐거워하고요. 도시 한가운데에 시내를 만들어 놓은 게 참 부럽네요.”
왕씨에게 한국에 다시 올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한국은 발전한 나라지만 관광객이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중국인이 많습니다. 중국과 언어가 매우 달라서죠. 하지만 막상 와보니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인사동이나 명동처럼 관광객들이 많은 곳은 매장이나 안내센터마다 중국어 사용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친절한 배려가 인상적이었죠. 지인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보라고 추천할 수 있겠어요.”
Tip | 중국 관광객 성향 조사
전체 여행경비 중 59%가 쇼핑비
▷▶▷ 대학을 졸업한 20대 전문직 종사자 여성.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단체관광객 3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성별로는 60%가 여성이었다. 연령대는 20~30대가 56%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18.3%로 그 뒤를 이었다. 학력은 대졸 이상이 많았다. 66%가 대졸 이상이었다. 직업은 사무·전문직 등 화이트칼라 직종이 34%로 가장 많았고 학생(15.7%), 자영업자(11.7%) 순이었다.
▷▶▷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을 찾는 목적은 뭘까. 1위는 쇼핑(63.7%)이었다. 2위 자연풍경 감상(56.7%), 3위 패션·유행 등 세련된 문화(32.3%), 4위 역사·문화 유적(23.3%), 5위 저렴한 여행경비(19.0%) 순으로 나타났다.
▷▶▷ 쇼핑을 좋아하는 중국 관광객들이 구입하는 품목은 화장품·향수가 74.7%로 가장 많았다. 인삼·한약재가 40.7%로 그 다음이었으며 3위는 의류(29.3%), 4위 담배(22.3%), 5위 식료품(21.7%) 순서로 쇼핑 리스트를 채우고 있었다.
▷▶▷ 중국 관광객들은 1인당 얼마나 지출할까. 지난해 단체관광객들의 평균 체재기간은 8박 9일이었는데 소요 경비는 1만1285위안(196만원)이었다. 그 중 쇼핑비가 6656위안(116만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전체 여행경비의 59%로 패키지 관광 상품 가격인 4005위안(69만원)보다 많은 돈을 쇼핑에 쓰고 있었다.
Tip |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이건 고쳐라’
중국어 안내 표지판 부족 “불편해요”
▷▶▷ 한국관광이 편리하고 쾌적한 것만은 아니다. 불만도 따른다. 왕지아난씨(26)가 대표적인 경우다. 지난 8월12일 밤 명동에서 숙소가 있는 등촌동까지 택시로 이동했다. 2만원 정도가 나와야 정상인데 택시기사는 그 두 배를 불렀다. 택시를 탄 시간이 10시라 할증시간대도 아니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택시비와 할증시간대를 조회해봤어요. 아직도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들이 있나요?”
▷▶▷ 중국인 관광객들이 제기한 불만사항은 어떤 것이 있을까. 왕씨처럼 바가지를 꼽은 경우는 적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의 불만 1위는 ‘중국어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53.7%가 이렇게 답했다. 명동 등 주요 관광지에 일본어 표기가 곳곳에 붙어있는 것과는 달리 중국어 안내가 부족해 불편하다는 것이다.
▷▶▷ 2위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33.7%)’는 것이다. 실제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개별적으로 한식점을 이용한 경우는 16.3%에 지나지 않았다. 그밖에 ‘물가가 비싸다(25.0%)’, ‘교통 혼잡(11.7%)’, ‘숙박시설과 서비스의 부족(9.0%)’, ‘관광일정 변경(7.3%)’, ‘옵션투어 강요(5.0%)’ 등이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