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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이곳에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특별회원에서 쫓아내지 않아 주신 카라얀님께 감사^^; 요즘 분위기 때문에 활발하게 일을 못하게 되기도 하고 심란한 일 들을 잠시 잊기 위해서 틈틈히 글을 만져 10년 동안 방치되었던 글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 공유 드립니다.
브루크너 교향곡 6번 A장조
브루크너 교향곡 6번에 관한 글을 써 보려고 하는 데 4번을 쓸 때 만큼이나 잘 안되었다. 둘 다 좋아하는 작품인데 4번은 나 말고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작품이라면 6번은 별로 인기 없는 데 내가 좋아하는 작품. 둘 다 어렵지만 후자가 좀 더 글을 쓰기 어려웠다. 교향곡 6번의 CD속지에 자주 적혀 있는 내용으로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은 2번과 함께 가장 인기 없는 교향곡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인기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설명도 많이 붙어 있기는 했다. 인기가 없는 이유로 곡이 짧아서라는 말도 있고 별로 브루크너답지 않아서라는 설명도 있다.
평론가들의 의견은 이렇다.
Newin: Bruckner 교향곡의 많은 특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나머지 교향곡들에 비교해 가장 이질적이다.
Redlilch: Bruckner의 지지자, 반대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본인 교향곡의 스타일을 지워버렸다.
Robert Simpson: 브루크너 교향곡의 미운 오리 새끼이지만 대담함과 미묘함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뛰어나며 브람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고전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 (실제로 브람스는 2, 3악장만으로 진행되었던 이 작품의 초연에 참석하여 평소와 달리 호의적인 평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브루크너 마니아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대작 5번과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는 7번 사이에 끼어있는 애매한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글쎄, 길이가 짧아서라면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길이가 길어서 듣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왜 감상자들은 이렇게 변덕스러울까하는 생각도 들고 브루크너답지 않다는 것도 조금은 의아해서 거꾸로 이런 작품을 브루크너가 아니면 누가 쓰겠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5번, 7번 사이에서 가렸다는 말은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마치 슈만이 북구의 두 거인 사이에 있는 그리스 미녀같다고 했던 베토벤 교향곡 4번처럼.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이렇게 인기가 없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남들이 별로 찾지 않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비경을 하나 알고 있는 것 같은 흐뭇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의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는 두 가지 정도인 것 같은데 첫 번째는 이 작품이 상대적으로 짧고 선율적이라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교향곡 4번과 7번을 접한 후 브루크너를 탐구해 보려고 요훔의 5, 6번 커플 음반을 장만하고 들어보면서였는데, 당시 5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기가 버거웠던 반면 6번은 지루해질 틈이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1악장의 멜로디는 어딘지 4번 교향곡을 연상시키기도 했고 4악장은 4번보다도 훨씬 명료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이유는 브루크너를 본격적으로 듣게 된 계기가 말러의 음악에 빠진 것이었는데 교향곡 3번과 함께 6번은 연주에 따라서는 말러를 연상시키는 극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교향곡 3번과 6번은 말러와도 실제 관계가 있는데 3번은 초연 당시 말러가 관객으로 있었고 공연장은 썰렁했고 청중들의 반응도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말러는 좋아했었고 브루크너에게 작품 너무 훌륭하니 고치지 말라고 전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말러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은 브루크너는 교향곡 3번을 여러 번 고치게 된다. 교향곡 6번의 경우 브루크너 사후에 말러가 전곡 초연을 했다. 이 사건도 해설서에서 약간 이견이 있는데 작품이 길다는 이유로 많은 부분을 잘라내고 공연했는데 누군가가 여기저기 잘라낸 무허가 개정판 원고를 말러에게 전달했다는 의견과 말러가 여기저기 잘라내어 곡을 줄여 공연했다는 설이 있다.
마치 말러의 교향곡을 전부 다 즐기게 된 다음에도 교향곡 1번이 늘 매력적으로 느껴지듯이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있었던 교향곡 5번과 8번을 제법 즐겨 듣게 된 지금에도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아마 짜릿한 느낌을 주는 피날레와 물론 브루크너의 작품임은 확실하지만 연주에 따라 바그너처럼 들리기도 말러처럼 들리기도 하는 마력이 이 작품을 질리지 않고 가끔씩 CD장에서 꺼내게 내지는 어디선가 이 작품을 연주한다고 하면 그날의 일정을 확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작품으로 돌아오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탄생한 5번 교향곡은 브루크너에게 형식에 대한 만족감을 주었던 것 같고 5번 교향곡을 작곡한 이후에 교향곡 3번의 초연이 실패하기는 하였지만 대체로 브루크너는 어려운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작품을 작곡하던 시기에 브루크너는 헬메스베르거 현악 4중주단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현악 5중주곡 F장조를 작곡하게 되고 4번 교향곡을 개정하여 무대에 올려 제법 호평을 받게 된다. 그리고 스위스 몽블랑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등 브루크너가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기쁨을 느끼면서 탄생한 작품이 6번 교향곡이라고 한다.
이 곡은 1883년 2월에 초연될 기회가 생겼는데, 초연하고 싶다고 신청해온 빈 필의 지휘자 빌헬름 얀은 곡이 길다고 하며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에서 초기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가장 짧은 편에 속할뿐더러 브람스의 교향곡들에 비해 별로 길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 2 악장과 3 악장만을 연주하겠다고 했고, 브루크너도 그것을 양해하여 그 형태로 그것도 꽤 개정되어서 연주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이해할 수 없다’고 평했던 브람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물론 안티 바그너로 유명한 한슬릭은 이 작품에 대해서도 악평을 했다고 한다. 전곡의 초연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브루크너의 사망 후 2년 반 정도 지난 1899년 2월 26일에 말러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니에 의해 연주되었는데 청중들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루크너의 6번 교향곡은 5번 교향곡과 함께 판본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브루크너가 살아생전에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완벽을 향해 노력하는 본인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곡이 전곡 초연 과정을 겪으면서 여러 사람에게 노출되고 그 사람들의 의견이 쏟아지면 부지런히 펜을 들곤 했으니 두 작품은 그런 영향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작품은 모두 장조를 택하고 있고 6번 교향곡 스케르초 악장의 트리오에서 5번 교향곡 1악장 1주제를 인용하고 있기도 하고 두 작품 모두 브루크너의 중기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곡의 느낌을 놓고 볼 때 두 작품은 유사하다기보다는 대조적인 면이 많다.
이 곡의 출판은 1901년 브루크너의 제자인 하나이스의 편집으로 이루어졌는데 브루크너의 자필 원고와는 꽤 차이가 있다고 하고 1937년 브루크너의 자필 원고를 바탕으로 한 하스판이 출판되었다. 1952년에는 노바크에 의한 원전판이 나왔는데 앞서 출판된 하스판과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악장(Majestoso) 셋잇단 음표 리듬을 바탕으로 등장하는 1주제는 장조의 교향곡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처럼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서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는 뭔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스크로바체프스키가 지휘한 RSO 자브뤼켄의 연주가 담긴 CD의 해설서에 보면 이 작품을 브루크너의 ‘전원 교향곡’이라고 하고 있는데 5번 교향곡에서 안개가 걷히고 드러난 것이 거대한 고딕 성당이었다면 이 작품에서 안개가 걷히고 나타난 모습은 브루크너가 여행했던 몽블랑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해설서에 따라서는 6번 교향곡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같은 어둠에서 광명으로의 구도이고 1악장은 장조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느낌이라고 되어 있기도 하지만 작곡 배경을 듣고 접하면 2주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여행을 하는 해방감이나 휴식하는 심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3주제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3주제가 그러하듯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코랄로 되어 있고 브루크너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6번 교향곡의 3주제는 좀 더 축제적인 느낌을 준다. 연주를 들을 때는 도입부의 셋잇단 음표를 어떻게 들려주느냐가 인상을 많이 결정하고 2주제의 서정성을 강조할지 아니면 조금 빠르게 연주할지에서 해석이 갈리고 3주제에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녹음의 수준이 귀에 들어오게 되는 것들이 포인트가 되는 것 같다.
제2악장(Adagio Sehr feieirlich) 브루크너의 교향곡 6번은 2악장도 소나타 형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2악장에 소나타 형식을 채용하는 것은 그리 흔한 선택은 아닌데 브루크너는 교향곡 0번, 00번에서 시도를 했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햄머 클라비어도 2악장에 소나타 양식을 채용했다고 한다. 양식을 보았을 때는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기보다는 구조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시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브루크너 자신이 이 악장에다가 '장중하게'라고 기입해놓고 있는데 고요한 어둠이 깔리는 느낌의 현의 1주제로 2악장이 시작된다. 하향음계로 만들어진 1주제는 살짝 바로크적인 느낌을 준다. 2주제는 유려한 현의 상승 음형과 혼의 에코로 따뜻한 아름다움을 준다. 2주제 정말 아름다운데 음산한 1주제 뒤에 이어지면서 따뜻한 느낌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1악장에서는 코랄의 3주제를 많이 활용하는데 2악장에서는 장송행진곡풍의 3주제를 선택했다. 따뜻한 느낌의 2주제에 이어지는 무거운 장례행렬같은 3주제를 듣고 있으면 브루크너가 이 작품을 쓸 때까지 겪었던 인생 역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2주제도 마치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진 무언가를 보고 그때는 고생이었지만 지나보면 추억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제3악장(Scherzo Nicht schnell-Trio. Langsam) 스케르쵸이지만, 브루크너 자신이 '너무 빠르지 않게'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스케르초는 3박자 리듬의 저음현을 깔고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 가는데 개인적으로는 스케르초 주제가 선율적이지 않아 교향곡 4번 같은 작품에 비해 아쉽게 생각하는데 애호가 분들은 좋아하시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선율적이지 않은 스케르초는 브루크너가 의도했을 것이고 세련되고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 트리오와의 대비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불행히도 음악은 머리로만 들을 수 없기에 내지는 촌스러운 취향을 갖고 있기에 개인적인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스케르초 사이에 현, 호른, 플륫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트리오가 들어가 있다. 현의 피치카토로 2박자의 랜틀러 리듬을 연주하고는 플륫으로 교향곡 5번의 1악장 1주제를 인용하고 있는데 거의 원형에 가깝게 인용해서 금방 교향곡 5번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전 악장이 아닌 이전 작품의 주제를 인용한 시도는 매니아를 위한 선물 같기도 하다.
제4악장(Finale.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전체적으로 정열적인 악상의 전개가 눈부시다. 율동적으로 연주하되 너무 빠르지 않게 하라는 지시가 되어 있어서 적당히 빠르고 적당한 율동감을 갖춘 역동감을 요구하고 있다. 스케르초가 끝나고 비올라와 저음 현이 피치카토로 깔아주면서 바이올린의 화려한 하향음으로 악장이 시작되면 벌써 신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혼과 트럼펫의 팡파르가 들어오면서 분위기는 고조된다. 다음으로 폴카 풍의 2주제가 등장하고 리듬감 있게 출발해서 서정적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1악장과 같은 금관 코랄의 3주제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지휘자와 악단에 따라서는 파이프오르간같은 음향을 만들어 내서 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말러 교향곡 1번처럼 이 작품의 압권은 4악장의 코다일 것 같다. 정신없이 빠른 현으로 들어가서 1악장의 1주제를 회상하는 듯한 금관의 화려한 팡파르로 마무리되는 코다를 듣고 있으면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의 코다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음반으로 듣고 있어도 지휘해보고 싶은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음반 감상)
요훔/드레스덴/EMI
요훔이 남긴 3가지 전집 녹음 중에서 레코드포럼의 이명재 씨는 타라의 녹음을 선택했고 EMI 드레스덴 전집에서의 6번은 너무 늘어진다는 평을 남겼다. 전체 연주시간이 56분이라 그리 느린 연주가 아닌데 1악장은 부분적으로 늘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EMI 드레스덴 전집에서 전반적으로 아쉬운 부분인데 금관이 조금 피곤하게 들리는 것도 자칫 흐름이 끊어지기 쉬운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요훔의 장점을 까먹는 것 같기는 했다. 다행히 2악장부터는 늘어진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 녹음은 2악장, 3악장 연주가 좋게 들렸는데 2악장은 일단 슬픔을 간직한 것 같은 현의 음색이 좋은 효과를 주는 것 같았다. 서정적이면서도 흐름은 자연스러웠고 소나타 형식의 구조도 잘 구축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3악장 스케르초도 경쾌하고 탄탄하게 표현되었고 트리오도 아름답게 연주되어 곡 전체에서 스케르초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연주되었다. 4악장은 신나는 느낌이 들면서도 잘 정리된 듯 했는데 코다는 조금 가벼워서 연주가 끝나고 살짝 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브루크너 전문가답게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1악장에서 4악장까지의 구조가 치우치지 않도록 이끌어간 연주이지만 요훔의 다른 브루크너 연주에 비해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6번 교향곡을 좋아하고 요훔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발리쉬/바이에른/ORFEO
‘브루크너 음악의 화려한 축제’라는 부제와 함께 레코드 포럼의 이명재 씨가 브루크너 교향곡 6번 음반 중에서 초이스한 음반이다. 현이 조금 가늘고 날카로운데 잔향이 풍부해서 인발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의 연주같이 사이버적인 느낌을 준다. 투박하고 두툼한 질감이었다면 잔향이 많은 녹음과 어울리지 않았겠지만 반대였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주고 있고 1악장 1주제의 도입부부터 명징하지만 건조하지 않은 인상을 준다. 2주제는 살짝 빠르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우아하고 밝은 현의 표현력 때문에 삭막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명재 씨는 잔향 때문에 금관의 소리가 모호해진다고 아쉬워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밸런스 면에서 아쉬운 부분은 오히려 팀파니 소리가 많이 묻혀 버리는 쪽이었을지 모르겠다.
2악장은 가는 현과 풍부한 잔향의 조합이 탄력있는 템포와 함께 우아한 효과를 연출해 내서 듣기 좋았다. 3악장은 경쾌하다고 날렵하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만큼 가볍다는 인상도 받았다. 트리오의 우아한 표현력은 3악장에서도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4악장은 악단의 밝은 음색이 밝고 낙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화려한 음색의 코다가 인상적인데 왜 이명재 씨가 이 음반을 초이스했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 특이한 조합인 카톨릭 문화권의 게르만 지역의 악단이 브루크너에서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하는 분들이 계신 데 물론 빈필이 훌륭하지만 이런 공통분모를 갖는 바이에른이나 뮌헨필도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음색도 음색이지만 비교적 빠른 템포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합주력이 뒷받침되었으니 멋진 4악장 코다를 만들어 냈겠지만.
블롬슈테트/샌프란시스코/DECCA
레코드 포럼에서 이명재 씨가 이 연주를 클렘페러의 해석과 비교하면서 클렘페러의 해석이 ‘무뚝뚝하고 고지식’하다면 블롬슈테트의 해석은 ‘세련되고 도시적’이라고 평했다. 브루크너 6번의 경우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고 하는데 같은 생각이다. 미국 악단으로 브루크너 교향곡이 좋은 연주가 나오기 어렵다는 설이 있는데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 음반에 등장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는 금관 소리가 조금 거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1악장의 2주제의 템포를 떨어뜨려 서정적인 느낌을 강조했고 3주제를 펼치면서 전개할 때 멋진 그림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2악장에서는 1악장에서 다소 거친 느낌을 주었던 금관이 부드러워져서 듣기 좋은 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부분부분 조금 늘어지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이 음반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은 3악장인데 스케르초의 색채감이 인상적이었다. 선율적이지 않아 어둡게 들릴 수 있는데 블롬슈테트의 해석에서는 화사하게 표현되었다. 악단이 가진 음색의 약점을 지휘자가 극복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대신 3악장이 전체 곡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있는데 3악장을 이렇게 칼라풀하게 만들면 4악장의 효과가 죽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좀 들었는데 4악장에서도 화려한 느낌은 잘 이어지게 표현되었다. 대신 4악장은 2악장처럼 중간중간 늘어진다는 느낌을 좀 받았고 폴카를 서정적으로 연주하다보니 폴카의 리듬이 약해졌는데 곡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코다 진입 직전에 템포를 떨어뜨렸다가 가속을 시키면서 마무리하고 있는데 피날레는 조금 얌전하게 끝난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3악장은 신선했지만 결정반이라고 하기엔 조금 아쉬웠다.
첼리비다케/뮌헨필/EMI
박수가 담긴 첫 트랙이 지나고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2번째 트랙에서 1악장이 시작되면 또박 또박 천천히 연주하여 최면적인 느낌을 주는 현의 셋잇단 음표가 깔리면서 위로 울려 퍼지는 뮌헨필의 금관 소리가 멋지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2주제, 3주제까지 비교적 느린 템포로 연주되면서 에코를 담당하는 부선율이 귀에 잘 들어와서 신비롭다는 느낌과 함께 바그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들려준다. 여유있는 템포에서 늘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게 만드는 건 첼리비다케의 장점일 것이다.
2악장의 1주제는 여유있는 템포로 연주되어 전체적으로 최면적인 느낌을 주고 클라이맥스는 장대하게 구축되었다. 2주제는 숨죽이듯이 표현되었고 전개부에서 다시 등장할 때는 카논의 느낌이 부각되게 표현되었다. 정화감을 주며 사라져가는 듯한 마무리도 인상 깊다.
3악장은 첼리비다케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느릴 것이라고 생각했는 데 그렇게 느린 느낌은 아니었다. 스케르초는 살짝 최면적이었고 트리오에서는 뮌헨 필의 혼 소리가 작품하고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4악장 1주제 후반부에 금관의 팡파르가 등장할 때 아름답게 울려펴지는 소리 덕분에 뮌헨 필이 브루크너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고 2주제는 폴카라기 보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떠올리게 하는 몽롱한 느낌으로 연출되었다.
전체적으로 첼리비다케의 만년 브루크너 연주들이 느린 템포로 장중한 스케일을 경험하게 해 주지만 듣기 힘든 면이 있는데 6번의 경우 곡 자체의 길이가 짧아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것 같다.
바렌보임/베를린필/TELDEC
바렌보임과 베를린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2번째 전집은 묵직한 음색과 파워풀한 해석이 특징일 것 같은데 브루크너의 초기 작품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아 시카고 교향악단과 녹음한 첫 번째 전집을 선호하는 분들도 계신 듯하다. 6번 교향곡은 묵직한 음색과 파워풀한 해석이 독특한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일단 현악의 다양한 디테일이 잘 표현된 연주력과 녹음이 뒷받침이 되어서 바렌보임의 해석이 빛을 발하는 듯 했다. 1악장 2주제의 서정성은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했지만 2악장은 충분히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다. 스케르초는 긴장감 내지는 박진감이 돋보였고 트리오는 여유로운 호흡을 가져가 확실한 대비효과를 보여주었다. 4악장은 다이내믹이 크고 3주제가 격정적이어서 주제별로 큰 대비를 보여주는데 3악장에 비해서는 역효과가 조금 있는 것 같다. 주제끼리 조금 단절되는 느낌이 나서 곡 자체가 조금 복잡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코다는 베를린필의 합주력이 매우 훌륭했다. 현의 힘이 살아있으면서도 정교하고 금관도 임팩트 있게 울려 주었고 앞서 느꼈던 아쉬움들을 날려 버릴 듯한 인상을 남겼다.
샤이/콘서트헤보/DECCA
일단 트랙의 길이를 보면, 1악장이 느리기로 유명한 첼리비다케보다도 연주시간이 길고 2악장은 비교적 빠르다는 요훔보다도 연주시간이 짧다. 빠른 악장을 느리게 느린 악장을 빠르게 연주했다면 당연히 부작용은 있을 것이다. 악장간의 대비감은 죽을 거고 빠른 악장의 다이내믹이 모자라 보일 거고 느린 악장에서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먼저 1악장에서는 교향곡 6번에 나타난 브루크너의 대담한 시도인 셋잇단 음표에 의한 도입이 역시 좀 활력이 없고 유약해 보인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혼의 소리를 줄여버리다니. 좀 아깝기도 했고. 악구의 끝부분에서 소리를 줄이는 게 조금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샤이는 느린 템포로 생긴 시간을 예상대로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있다. 물론 악단의 음색과 녹음도 매우 뛰어나다. 바이올린으로 화음을 넣는 부분에서는 순간적으로 이 작품에 혹 파이프 오르간이 쓰인 게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2악장은 빠른 템포이지만 투명한 아름다움이 더해져 급하다는 느낌보다는 잘못하면 늘어지기 쉬운 곡을 아름답게 연주한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게 된다. 1, 2악장의 템포는 고클 주간 리뷰에서 읽은 것처럼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다는 쪽에 공감은 하지만 이 작품의 레코드를 2가지 이상 보유한다는 입장에서 나름대고 개성있어서 만족스럽다. 3악장에서는 1악장에서 조금 모자란 듯했던 리듬감이 살았고 4악장은 첼리비다케같은 장대함은 아니었지만 콘서트헤보의 소리가 멋지게 울려퍼졌다. 결론은 표준적으로 누구에게나 추천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브루크너 수집가라면 표준적인 명연과 함께 갖출만한 아이템인 것 같다.
반트/NDR/RCA
레코드 포럼에서 이명재 씨는 첼로와 혼의 소리가 좋아 중후한 느낌이 난다고 하셨는데 내가 듣기에는 현의 소리가 어딘지 조금 투박하게 들렸다. 현과 관이 어우러져 오르간 같은 느낌을 내야 할 때 관에 묻혀 버리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반트는 거장이고 브루크너 전문가이니 각이 잘 잡혀있고 악장간 균형도 좋고 깔끔하고 잘 정돈된 해석을 들려준다. 2악장도 재미없다기보다는 깔끔하게 잘했다는 쪽으로 평이 기울기는 하는데 정박자로 조금 느리게 또박 또박 연주한 3악장의 스케르초는 딱딱하게 들림에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4악장 역시 잘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나 마지막 코다에서 현이 금관에 묻혀서 멋진 효과를 못내는 것 같아 아쉬웠다.
스크로바체프스키/자브뤼켄RSO/Arte Nova
개인적으로 15년 전에 일본에 있을 때 스크로바체프스키가 지휘하는 요미우리 일향의 브루크너 교향곡 6번 연주회에 갔던 경험이 있어 이 음반이 조금 특별하게 들리기도 하는 것 같다. 연주가 시작되면 부드러운 음색이 느껴지는데 1주제의 멜로디를 악기를 바꾸며 이어가는 부분에서 악기 사이의 밸런스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멜로디가 조금 단절되는 것 같이 느껴져 내가 들었을 때는 그렇게 좋게 들리지 않았다. 부드러운 음색은 특히 금관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전체적으로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지만 1악장의 3주제를 연주할 때는 조금 유약하게 들리고 악기들이 뭉게지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2악장은 연주회에서 들었을 때도 가장 감동적이었는데 구조적으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처연한 연주가 심금을 울린다. 3악장은 금관의 부드러운 표현 때문인지 중후하다고 정평이 난 반트의 연주보다도 중후하게 느껴졌다. 4악장은 여유있는 템포로 현악과 금관의 밸런스를 잘 가져가서 오르간같은 음향을 잘 만들어 내는 듯 했다. 특히 4악장 코다에서 바이올린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어지는 피날레에서는 템포를 떨어뜨리며 장대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템포는 느려지지만 음향이 커지지 않아 어딘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카라얀/베를린필/DG
1악장이 시작되고 1주제가 진행될수록 절도있는 연주로 카리스마를 느끼게 된다. 2주제는 빠르게 연주하여 서정적인 느낌은 배제했다. 3주제는 오르간같은 음향을 들려주지는 못했다. 2악장, 3악장이 카라얀의 베를린필의 장점이 잘 살아난 것 같다. 2악장은 현을 중심으로 하나의 악기처럼 움직이는 베를린필의 소리를 느낄 수 있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클라이맥스를 구축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다른 한쪽을 잃어버리기 쉬운 서정성과 구조적인 완결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베를린필의 깎아 놓은 듯한 매끈한 음향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3악장의 스케르초일 것 같다. 다른 지휘자와 악단이 흉내내기 어려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앞선 악장들에 비해 4악장은 다소 아쉬웠다. 조금 느린 템포로 진행하면서 현으로 또박또박 대위구를 연주하면서 바로크적인 느낌을 주려고 한 것 같은데 바로크적이라기보다는 비대해지고 늘어지고 박진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현의 표정이 풍부한 폴카 등 인상적인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베를린필과 카라얀에 대한 기대가 커서인지 내 취향에는 조금 아니었다. 바로크적인 느낌을 조금 손해보더라도 카라얀이 연주하는 다른 교향곡 작품들처럼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 주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보게 하는 연주였다.
틴트너/뉴질랜드SO/Naxos
틴트너의 브루크너 전곡 녹음은 00, 0번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주로 초판본을 채택하고 있고 해석도 뛰어난데 악단과 녹음이 중요한 브루크너 교향곡의 특징을 생각하면 주요 악단과 메이저 음반사에서 녹음을 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다른 교향곡은 유럽의 악단과 연주한 경우가 많은데 6번은 유럽의 악단도 아닌 뉴질랜드 심포니와 녹음을 했다.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꽤 놀랄 만큼 괜찮았다. 송로버섯, 캐비어, 푸와그라가 다 들어가야 하는 음식에 그 식재료가 다 빠졌는데도 비슷한 맛이 나는 것 같은 놀라움이었는 데 틴트너가 다소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을 펼친 것인지 원래 해석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1악장은 1주제는 조금 느리고 2주제는 조금 빠른 접근을 취했고 3주제는 부드럽게 연주를 했다. 결과적으로 금관의 거친 느낌이나 녹음이 건조해서 생기는 문제점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점묘법을 쓴 신인상파의 그림처럼 현과 금관의 여음을 조금 길게 가져가면서 건조할 수 있는 녹음을 극복하고 있는 데 윤곽선이 조금 모호하게 보일 수 있어서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면 1, 3악장이 유약하게 들리는 건 사실인데 강한 표현을 했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났을 것 같다. 2악장과 특히 4악장 폴카를 연주할 때 현의 표현이 일류 악단 못지않게 좋아 잠시 감탄하게 만들고 4악장 코다의 밸런스가 훌륭해서 곡이 끝났을 때 허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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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로맨티커님, 정말 너무도 반갑습니다. 정말 십년 만인가 싶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기회가 되면 꼭 인사나누고 싶습니다. 코로나에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날 꼭 뵙겠습니다. 역시나 변함없으신 로맨티커님의 깊은 내공을 멋진 글로 승화시켜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도 좋은 기회에 뵙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정성의 글 너무 잘 봤습니다. 공연장에서도 종종 뵙고 좋은 글도 자주 올려주십시오~
안녕하세요? 저도 언젠가 한 번 율리시즈 님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