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안겨준 추억
이 종 준
1970년 11월 30일
“새벽종이 울렸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자.”이른 아침부터 동네 집집마다 스피커를 통하여 울려 퍼진다. 청주에서 음성 가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니 쌀쌀한 날씨에 하얀 눈이 내려 소나무 위에 쌓이고 있다. 한 시간지나 기차는 낮 설고 물 설은 음성역에 도착하자 나는 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경찰서 정문 앞에 도착하자 경찰 선배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내가 처음 발령받은 곳은 음성경찰서에서 제일 바쁘고 근무하기 힘든 설성파출소다. 일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워보자는 각오로 풋내기경찰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한해를 보내고 다음해 이월. 나이 삼십에 스물 한 살 된 소녀와 월세 천원자리 방에서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18시간을 근무하고 집에 있는 시간은 겨우 6시간 사무실에서 쓰리꾼. 노름 쟁이 폭력배들과 씨름을 하다 집에 오면 대화는커녕 파김치가 되어 세상모르게 잠에 취해 “야 훔쳤어? 안 훔쳤어? 말해 옆에서 잠꼬대 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근무시간 되었다고 깨운다. 밥 한술 뜨고 새벽인지 밤중인지 모르게 파출소에 오면 파출소가 가득하게 끌려온 주정뱅이들 의자를 부수고 전화통을 집어던지며 유리창을 깨뜨리는 막가파 인생들 어쩜 한 시대의 함께 겪는 시련인가 생각하고 달래며 달래어 보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잡혀오니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성격이 거칠어 져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나온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가꾸어 거두어 드리는 가을이 지나 다시 또 겨울이 돌아왔다. 새벽 1시에 교대하여 근무하는 중 가로등마저 졸고 있고 그날 따라 몸씨도 추워 나뭇가지가 시립다고 윙윙 울어대는 밤이다. 깊어가는 겨울밤에 20대 초반 미모의 여인이 갓 난 이이를 업고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난로 옆에다 의자를 권하고 “어떻게 오셨습니까? 해도 대꾸가 없다. 따끈한 보리차 한잔을 권하니 단 숨에 들이키고는 업고 온 아이를 가리키며 애 아빠가 유치장에 있으니 면회 좀 시켜 달라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아주머니 밤에는 절대 면회가 안 됩니다. 내일오세요” “아이고 순사아저씨 이 아이를 업고 경기 여주에서 새벽부터 150리 길을 걸어서 이제 왔습니다. 얼굴만 한번 보고 가겠습니다.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이 일을 어쩌나 수사계 전화를 하여 유치장 근무자가 누구냐고 하니 유 순경이라고 한다
“유 순경 좀 바꿔 주세요.” 얼마 후“ 예 유순경입니다”
“응 나 설파 이 순경”
“ 웬일이야”
“나 좀 잠깐 봐 밖으로 나와 봐” 나는 유순 경을 붙들고 통사정을 하였다. “야 당직 사령관한테 들키면 너나 내나 모가지야” “그러나 사정이 딱하니 어찌하겠는가. 경찰 동기가 이래서 좋은 거야냐” 마침 유치인이 한사람뿐이라 다행이라며 “네가 데리고 유치장 복도로 와 내가 그리 데리고 올깨” “알았어.” 나는 파출소에 와서 “아주머니 조용히 따라오세요. 들키면 난 집에 가야해요 얼굴만 보고 나오세요. 하며 우리는 살금살금 유치장문을 열고 복도에 가니 유순경과 유치인이 나와 있었다. 여인은 업은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달려들어 남편 뺨을 힘차게 내려친다. “이 더러운 피로 아이를 낳았으니 나 안 기른다.” 하고는 아이를 두고 유치장문을 통해 도망치고 말았다 유치장 복도 바닥에서 아닌 밤중에 간난아이가 숨넘어가게 울어대고 있다. 아 이런 운명이 다가오다니 아니나 다를까 경찰서는 비상이 걸리고 모든 당직자들이 뛰어 나왔다. 나와 유순경은 당직사령관 앞에 끌려갔다 청천 벼락을 친다. 애송이 두 놈이 일을 저질렀다고 내일 너희들은 사표를 내고 나가라고 소리소리 지르더니 “야 이놈들아 어서 나가 그 여자를 찾아봐” 당직실에서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아무리 찾아도 여인은 찿을길이 없어 나는 경찰서 옆 노송이 있는 곳으로 갔다. 소나무가지위에 눈이 소복이 쌓여 마치 달빛에 목련이 활짝 핀 것 같다. 나는 눈을 집어 눈 덩이를 만들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데 어데서 신음소리가 난다 가만히 소나무 밑을 들여다보니 그 여인이 소나무 밑에서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놀라 “아주머니 여기 있다” 소리를 쳤다 직원들이 쏜살같이 모여들어 그 아주머니를 유치장으로 데리고 가 그 아이를 않고 나오게 하였다 나는 그 아주머니와 파출소에 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아주머니 갈 데가 있으신지요?” “없습니다.” 온 종일 굶고 먼 길을 걸어온 저 여인이 어디 갈 곳이 있겠는가! 나는 그 여인을 데리고 내 방 앞에 가서 기침을 하니 아내가 문을 열어준다.
이 여인을 아랫목에 따뜻하게 주무시게 하라하고 아무 말 못하고 파출소로 달려와 근무 를 마치고 아침 10시 교대를 하여 집에 오니 아침밥은커녕 아내는 일어나지도 않는다. 누워 있는 얼굴을 보니 눈물이 고여 있고 눈언저리가 소복이 부위 있다 이 또 무슨 일인가? 나는 해장국집에 가서 해장국 세그릇을 사가지고 와 아내를 일어나라고 권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먹자고 권하자 얼마나 시장했던지 순 식간에 그릇을 비우고는 “아저씨 나는 경찰관을 보면 아주 싫어했어요. 그런데 어제 아저씨를 만난 후부터 내가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 그리면서 남편이 구속된 사연을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는 아내가 일어나 앉으며 그렇지 나이 30에 장가를 안 가다니 저렇게 여자가 있어 애까지 낳아 데리고 왔다며 밤새 울었다고 한다. 나는 긴 한숨만 쉴 수밖에 아주머니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오해를 하게 해서 ” 하며 아이를 업고 일어선다. 나는 그 여인을 정류장까지 가는 동안 친 오누이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여주 가는 버스표를 사서 아주머니에게 전해주고 아주머니 내가 밤에 아주머니에게 쓴 글입니다 집에 가서 읽어 보라고 하며 봉투를 업은 아이 앞에 꽂아주고는 차에 오르기를 권했다 차는 미끄러지듯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감사하다고 눈물지며 살아진다. 정류장 가장자리 소나무 위에 하얀 눈송이들이 함박 웃으며 떠오르는 태양이 그 날 따라 더욱 눈이 부시였다. 어서 속히 아기의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 행복의 꽃을 피우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발길을 돌렸다.
첫댓글 경찰관의 인정 어린 사연이 가슴을 울립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감동이 배여있음이 남다릅니다.
경찰관이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때의 일이라니 더욱 기억에 남았던 거죠..? 좋은 추억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단편 소설을 읽는듯 짜릿한 감동입니다. "쓰리군" 은 "쓰리꾼"으로 써야 바르지 않는지요?
인정많으신 신입 경찰관님의 아름다운 추억을 감명깊게 봤습니다.
정의 용기 사랑의 실천은 삶에 귀감이 됩니다.
가슴이 찡~합니다.
선생님께서 뿌리신 따뜻한 정은 곳곳에 사랑으로 자랄것입니다. 삶의 귀감이 됩니다.
졸필을 읽어주신 선생님들 감사드립니다.
사명감이 대단하십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