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대통령배 고교야구 대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목동구장에서 포즈를 취한 유수호 아나운서.
고교야구가 인기를 누리던 1975년 봄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 야구장. 당시 동양방송(TBC) 야구 중계를 맡은 유수호(62) 아나운서는 출입구까지 막아선 관중 때문에 중계석에 들어가는 게 걱정이었다. 고민 끝에 담을 넘었다. 가까스로 중계시간을 맞춘 그는 숨고를 새 없이 중계를 시작했다. “TBC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성동원두, 서울운동장입니다.” 2009년 봄, 제43회 대통령배 고교야구가 열리는 목동구장은 한산했다. 고교야구의 인기는 프로야구에게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40년째 대통령배를 중계하는 유 아나운서다.
“1970년 4회 때는 경기를 기록했고, 71년부터 마이크를 잘았으니 올해로 40년이 됐군요.”
유 아나운서는 69년 TBC에 입사했다. 80년 방송통폐합으로 KBS 소속이 됐다가 2004년 정년퇴직했다. 그 뒤로는 프리랜서로 방송일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71년부터 대통령배 등 거의 모든 고교야구 중계를 도맡았다”며 “대한민국에 나보다 고교야구를 많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부터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국제종합대회 중계를 했고 10여 가지 종목을 맡았다. 그래도 가장 인연이 깊은 종목이 야구다. 프로와 아마를 넘나들며 겨울을 뺀 계절엔 거의 매일 중계를 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하다 보니 일화도 많다.
72년 제6회 대통령배 때다. 당시 대구상고 1학년 장효조(53·현 삼성 스카우트) 선수가 대타로 나와 주자일소 3루타를 때렸다. 타자가 바뀐지 몰랐던 유 아나운서는 원래 타자의 이름을 댔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 어떤 여자가 갑자기 큰 소리를 쳤다. 장 선수의 어머니였다. 라디오로 중계를 듣다가 아들 이름이 잘못 나오자 화를 낸 것이다. 유 아나운서는 서둘러 타자 이름을 정정했고 그제야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한번은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인 다음날 아침 복통을 느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화근이었다. 중계 도중에도 복통이 멈추지 않았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함께 중계를 맡았던 박종세(74·현 아시아컴 회장) 아나운서는 유 아나운서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면 “지금 던진 공 구질이 뭐죠”라고 말을 시켰다. 방송사고는 없었지만 참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중계가 끝난 뒤 박 아나운서는 웃으며 “지금은 내가 함께 중계를 하지만, 나중에 혼자 중계하게 될 때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너는 국민을 대표해 야구를 보는 거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현장을 40년간 지킨 유 아나운서에게는 꿈이 있다. “죽을 때까지 중계현장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스포츠 중계를 하며 “스포츠도, 인생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다음 경기를 위해 챙겨온 경기기록을 꼼꼼히 살폈다.
첫댓글 대통령배 고교 야구 40년의 산증인 유수호 아나운서는 장한 덕수인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