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흘러 시리즈 17차입니다.
재외 국민과 범국민
국민을 상대로 한다는 뜻을 가진 ‘대국민’은 붙여 쓰는데, 모든 국민을 뜻하는 ‘전 국민’은 띄어 씁니다. 그렇다면 ‘재외 국민’과 ‘범국민’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띄어쓰기와 관련하여 가장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사전을 검색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전에서 검색이 되는 단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합니다. 다만 접사가 붙어서 한 단어가 된 말들은 사전에서 검색할 수 없으므로 ‘대’나 ‘전’, ‘재외’, ‘범’ 등을 사전에서 찾아 그것이 접사인지 아닌지 확인하면 됩니다. 실례로 ‘대’와 ‘범’은 접사이므로 붙여 쓰는 것이고, ‘전’과 ‘재외’ 등은 접사가 아니라 관형사와 명사이므로 띄어 쓰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온 국민’과 ‘우리 국민’ 등을 띄어 쓰는 이유를 아시겠죠? 그것은 이 단어들이 접사가 아니라 관형사와 대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우겨넣다와 욱여넣다
우리는 삼겹살을 먹을 때 종종 상추쌈을 싸서 먹는데, ‘쌈’을 조금 크게 싸서 한입에 밀어 넣어야 제맛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추쌈을 한입에 우겨넣다”라고 말을 하는데, ‘우겨넣다’는 ‘욱여넣다’의 잘못된 표현입니다. ‘욱여넣다’는 “주위에서 중심으로 함부로 밀어 넣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참고로 ‘욱이다’는 ‘우그리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무엇인가를 안쪽으로 밀어 넣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자밤
요리를 할 때 계량컵으로 한 컵이라든지 스푼으로 두 스푼이라는 식의 표현을 종종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집을 만큼 적은 분량을 가리키는 순우리말 표현 ‘자밤’을 아시나요? 며칠 전 우리말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이 단어를 보게 되었는데, ‘자밤’이라는 말은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을 모아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소금 한 자밤’, ‘깨 두어 자밤’이라는 식으로 사용하면 됩니다.
인사말씀과 인사말
대회를 개최하거나 행사를 진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단체장의 인사말입니다. 그런데 대회나 행사 진행 순서를 알리는 책자에 단체장의 인사말을 간혹 ‘인사말씀’이라고 써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표기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다른 사람의 말을 높이거나 자신의 말을 낮출 때 사용하는 말로서 대회나 행사처럼 공식적인 자리에 사용하기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높임법을 적용하기보다 중립적인 의미로 ‘인사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방정맞다와 방정하다
우리는 “방정맞다”라는 표현은 자주 사용하는데, 그에 비해 “방정하다”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상장의 문구로 “품행이 방정하여”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는데 요즘은 듣기 어려운 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말은 생긴 것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방정맞다’의 ‘방정’은 고유어이고, ‘방정하다’의 ‘방정’은 한자어라는 점이 다릅니다. 또한 뜻도 다릅니다. 고유어 ‘방정’은 “찬찬하지 못하고 몹시 가볍고 점잖지 못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뜻하지만, 한자어 ‘방정’은 “말이나 행동이 바르고 점잖다”를 뜻합니다. 참고로 “방정을 떨다.”라고 할 때의 ‘방정’ 역시 고유어로 ‘방정맞다’와 뜻이 같습니다.
각 호와 각호
‘전(全) 국민’과 ‘대(對)국민’의 띄어 쓰는 법이 다른 이유는 ‘전(全)’은 관형사이고, ‘대(對)’는 접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매 사업’과 ‘미참여’ 등의 표기도 다릅니다. 그렇다면 ‘각(各)’은 어떨까요? ‘각’은 관형사입니다. 따라서 ‘각 학교’나 ‘각 부처’처럼 띄어 써야 합니다. 이와 같은 논리로 ‘각 호’를 띄어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은 그 자체로 한 낱말의 지위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각호’가 바로 그러한 예입니다. ‘각호’는 그 자체로 한 낱말이기 때문에 띄어 쓰면 안 됩니다.
엥간하다와 엔간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엔간히 하는 것입니다. ‘엔간하다’는 “수준이나 정도가 보통이거나 그보다 약간 더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러한 상태가 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노력이 부족하거나 욕심이 과해 일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으니 얼마나 경제적입니까? 엔간하면 참기 마련이고, 그러면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엔간하다’라는 말을 ‘엥간하다’나 ‘웬간하다’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엔간하다’의 본말은 ‘어지간하다’와 뜻이 같은 ‘어연간하다’입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엔간히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