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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2018년 봄호.
촛불혁명의 행진곡
맹문재
1.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의 헌법재판소 주문(主文)을 다시 듣는다. 꼼꼼하게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던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장의 얼굴이 선하고 목소리도 또렷하다. 헌법재판소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선고 목록 및 결정문’의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알려린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가 청와대가 개입해 대기업으로부터 500억 원 이상 모금해 설립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2016년 7월경부터 있었다. 이 문제가 2016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는데 청와대와 전경련은 의혹을 부인했지만, 계속 정치적 쟁점이 되었다. 그러던 중 2016년 10월 24일 청와대의 문건들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에게 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국정 운영에 개입해 왔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많은 국민들은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보도에 충격을 받았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2016년 10월 25일 ‘최순실 씨는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 두었다.’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박 대통령의 담화에도 불구하고 최서원의 국정 개입과 관련한 보도가 계속 나왔고, 2016년 11월 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 혐의로 최서원이 구속되었다. 대통령은 그 다음 날인 4일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하니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다.’는 내용의 2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11월 14일경부터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 추진을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야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은 11월 28일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마련하여 12월 2일 탄핵안 표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박 대통령은 2016년 11월 29일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내용의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였다. 국회는 대통령의 퇴진 의사 표명이 없자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진행하였고, 2016년 12월 1일 특별검사도 임명했다. 이어 국회는 171명의 의원이 2016년 12월 3일에 발의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8일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2016년 12월 9일 제18차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300인 중 234인의 찬성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소추위원은 소추의결서 정본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여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청구하였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힘을 실어준 것은 다름 아니라 23차례에 걸쳐 촛불을 든 국민들이었다.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토)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을 거쳐 광화문광장에 2만 명의 국민들이 모인 데서 시작되었다. 집회명(슬로건)은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였다. 1차 촛불집회를 마친 뒤 집회의 주관이 민중총궐기투쟁본부, 백남기투쟁본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4·16연대, 민주주의국민행동 등으로, 주최가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준)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11월 5일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2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이라는 집회명 아래 20만 명이 모였다. 시민들의 호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아울러 11월 9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행동)이 발족되었다. 같은 날 전국 1,553개 시민사회 단체 대표자 회의 기자회견도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4층 강당에서 열렸다. 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 세월호 인양, 백남기 농민에 가해진 국가 폭력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국민들의 항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3차 촛불집회는 2016년 11월 12일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열렸다. 집회명은 “박근혜는 하야해라!”였다. 서울에서 90만 명, 지역에서 10만 명 등 총 100만 명으로 19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인원이 집회에 참여했다. 4차 촛불집회는 11월 19일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열렸는데, 집회명은 역시 “박근혜는 하야해라!”였다. 서울에서 60만 명 등 전국적으로 96만 명이 참여했다. 집회 인원이 연달아 100만 명에 이르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새누리당) 내의 ‘비박계’ 의원들도 대통령 탄핵안을 꺼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5차 촛불집회는 11월 26일 160만 명(서울 130만 명)의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탄핵 지지를 보였다. 집회명은 “박근혜 즉각 퇴진!”이었다. 그렇지만 새누리당은 2017년 4월 퇴진론으로 지연 작전을 펼쳐 12월 2일 탄핵안이 의결되지 못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이 6차 촛불집회인 12월 3일 232만 명(서울 170만 명)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기록으로 국민들도 정치인들도 놀랐다. 그리하여 “박근혜는 퇴진하라”라고 외친 국민들의 분노에 놀란 여당 ‘비박계’ 의원들은 탄핵 표결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고, 12월 9일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7차 집회는 12월 10일 전국에서 열렸는데 104만 명(서울 80만 명)이 참여했다. 집회명은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박근혜 정권 끝장내는 날”로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8차 집회는 12월 17일에 열렸는데 77만 명(서울 65만 명)이 참여했다. 헌법재판소에 탄핵 이유가 없다고 제출한 박 대통령의 답변서에 국민들이 분노해 “끝까지 간다! 박근혜 즉각 퇴진! 공범 처벌·적폐 청산의 날”을 외쳤다. 9차 집회는 12월 24일 열렸는데 ‘하야 크리스마스’로 명명되기도 했다. 70만 명(서울 60만 명)이 모여 “끝까지 간다! 박근혜 즉각 퇴진! 조기 탄핵! 적폐 청산!”을 외쳤다. 10차 집회는 12월 31일 열렸는데 110만 명(서울 100만 명)이 전국의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집회명은 “박근혜 즉각 퇴진! 조기 탄핵! 적폐 청산! 송박영신”이었다. 촛불집회 참가 연인원이 1천만 명을 넘어서는 대기록을 이룬 날이었다. 11차 집회는 2017년 1월 7일 새해 들어 처음 열렸는데 65만 명(서울 60만 명)이 참여했다. 세월호 참사 1,000일(1월 9일)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집회명은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였다. 촛불혁명을 노래한 시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2.
저 벌판에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바람에 같이 흔들리는 들꽃들처럼
오늘 광화문광장에 타오르는 촛불이
우리들 심장에 정의가 되어 살아난다
가슴속에 일어나는 양심으로
오래도록 응어리진 분노가 함성이 되어
거리로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가자
우리들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되자
너와 내가 치켜든 촛불이 바다가 되고
어깨 걸고 치달리는 파도가 되어
우리들 진정 주인 되는 혁명을 이루자
광화문광장에 혁명의 역사를 쓰자
부정부패로 썩은 세상 갈아엎고
불평등한 세상 땅을 고르고
불공정한 세상 꽃씨를 뿌려
광화문광장에 혁명의 꽃을 피우자
살아나라 정의의 촛불이여
피어나라 시민 혁명의 아름다운 꽃이여
― 채상근, 「광화문 촛불 혁명가」 전문
촛불집회 동안 발표된 수많은 시작품들은 대체로 위와 같은 주제의식을 보이고 있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 타오르는 촛불이/우리들 심장에 정의가 되어 살아난다”고 했듯이 촛불을 든 국민들의 바람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광장에 나온 “촛불”은 “저 벌판에 돋아나는 새싹들처럼” 또는 “바람에 같이 흔들리는 들꽃들처럼” 연약하지만 “가슴속에 일어나는 양심”은 “오래도록 응어리진 분노”의 “함성”이다. “거리로 광장으로” 나가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너와 내가 치켜든 촛불이 바다가 되고/어깨 걸고 치달리는 파도가 되어/우리들 진정 주인 되는 혁명을 이루”고자 한다. “춧불”을 통한 “혁명의 역사를” 추구하는 것이다.
‘혁명’이란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듯이 기존의 사회 체제를 바꾸기 위해 기존의 권력 계층을 대신해서 민중들이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하는 형식이다. 지배 세력이 구축한 정치 조직이나 경제 체제나 사회 구조 등에 민중들이 대항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 세력 간의 권력 교체를 이루는 쿠데타에 비해 혁명은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 간의 권력 교체를 이룬다. “부정부패로 썩은 세상 갈아엎고/불평등한 세상 땅을 고르고/불공정한 세상 꽃씨를 뿌”린 민중 의식이 꽃핀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화자가 “살아나라 정의의 촛불이여/피어나라 시민 혁명의 아름다운 꽃이여”라고 노래한 것은 촛불을 든 국민들이 추구하는 희망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혁명이다
오늘 광화문광장에서 보았다
세상의 어둠을 밀어내고자
모여든 백만 개의 촛불들
살아있는 역사를 보았다
유모차를 끌며 모여든 부모들
피켓을 든 어린 남녀 학생들
상인 농부 회사원 노동자 학생
장년 청년 소년 남녀노소 각계각층
끝없이 이어진 목멘 함성들
경찰과 차벽이 없는 거리에
촛불들이 거대한 강물로 흐른다
백만 촛불의 파도타기를 보았는가
이것은 혁명이다
“촛불은 촛불일 뿐이다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
어느 국회의원의 말을 들었는가
한 사람이 든 촛불은 그냥 촛불이지만
백만 시민들이 함께 든 촛불은
꺼지지 않는 횃불이다
우리는 함께 보았지 그리고 분노했지
세월호 침몰에서 백남기 농민의 물대포 사망까지
독재자 아비에게 쫓겨나고 딸에게 살해당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두고
벌이는 검찰과 법원과 이 정부의 몰염치를
외인사가 아니고 병사라고 우기는
S의대 신경외과 백 모 교수의 비양심적 소신을
불의의 서슬이 튼튼하게 자랄수록
들풀 같은 민초들의 불꽃은 고요해졌지
JTBC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기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들
“위록지마”라 할 때 “네”라고 설설 기던
알면서도 호가호위하던 정치인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의 비선 측근들과 어리석고 무능한
조종 받은 군주 한 명이 온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다
군대 생활 함께한 참으로
오랜만에 광장에서 다시 만난
친구여, 이것은 혁명이다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살아가던
우리 몸속에 잠들어 있던 전설을 깨우듯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
5·18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의 유전자들
SNS에서, 광장에서, 시민들에 의한,
이것은 촛불혁명이다
우리에게 내일의 생은 없다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때까지
친일, 독재와 반역의 역사를 청산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완성할 때까지
아이들에게만은 더 이상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다는
아픈 각성이 따라오는 밤이다
역사의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크고 긴 호흡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힘내길 소망하자
괴물 같은 자본주의 헬조선을 추방하고
젊은이들의 참세상 진실을 인양하자
이것은 오래된 침묵의 함성이다
광장에서, 집에서, 세계 곳곳에서
마음속 촛불을 들어 함께 외치자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밀어내는
친구여, 촛불은 우리들의 혁명이다
* 2016. 9. 5일자 뉴욕타임지 보도 인용.
― 김완, 「촛불은 혁명이다」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 역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를 “이것은 혁명이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 근거는 “세상의 어둠을 밀어내고자/모여든 백만 개의 촛불들”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성이 담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화문광장”에는 “유모차를 끌며 모여든 부모들/피켓을 든 어린 남녀 학생들/상인 농부 회사원 노동자 학생/장년 청년 소년 남녀노소 각계각층/끝없이 이어진 목멘 함성들”로 채워졌다. “군대 생활 함께한 참으로/오랜만에” “만난/친구”도 있었다. 그리하여 화자는 “촛불은 촛불일 뿐이다/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라는 “어느 국회의원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든 촛불은 그냥 촛불이지만/백만 시민들이 함께 든 촛불은/꺼지지 않는 횃불”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위의 작품의 화자는 촛불 집회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에서 백남기 농민의 물대포 사망까지/독재자 아비에게 쫓겨나고 딸에게 살해당한/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두고/벌이는 검찰과 법원과 이 정부의 몰염치를/외인사가 아니고 병사라고 우기는/S의대 신경외과 백 모 교수의 비양심적 소신을”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들/“위록지마”라 할 때 “네”라고 설설 기던/알면서도 호가호위하던 정치인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라고 외친다. “대통령의 비선 측근들과 어리석고 무능한/조종 받은 군주 한 명이 온 세상을/어지럽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민주주의는 피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킬 만한 가치를 지닌 정치 체제이고,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동체 의식을 공유한 계층이 필요하다. 또한 시민들의 감시와 저항이 필요하다. 권력이 반민주적으로 사용되거나 징후가 보이면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촛불혁명은 이와 같은 감시와 저항을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끌었다.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시종일관 평화적으로 투쟁했던 것이다. 시민들은 각자의 절박한 요구도 민주정부가 들어서야만 해결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수준 높은 정치의식을 보여주었다. 민주정부를 세우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는 의식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쳤던 것이다.
작품의 화자는 “동학농민운동, 3·1운동, 4·19혁명,/5·18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의 유전자들”이 “SNS에서, 광장에서, 시민들에”서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 데서 보듯이 촛불혁명의 역사성을 노래한다. “우리 몸속에 잠들어 있던 전설을 깨우”고 나섰다는 것이다. 화자의 이와 같은 역사의식은 과거로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넘어/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때까지/친일, 독재와 반역의 역사를 청산하고/더불어 사는 삶을 완성할 때까지” “촛불”을 내릴 수 없다고 단언한다. “아이들에게만은 더 이상/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기에 “촛불은 우리들의 혁명”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3.
‘이게 나라냐!’
한 발을 내디디며 곱씹고
또 한 발 내디디며 묻고
그러다 보면 길은 어느새 광화문
대보름날 쥐불놀이도 그렇게 신나지는 않았다
촛불 그림자에 어른거리는 바람의 뒷모습
또 하나의 촛불이 지우고, 그 촛불 그림자
또 다른 촛불이 지우고 지우면서
서로 투명해져서 오롯이 바람만 남아
거대한 불꽃이 되어버린 광장
깡통 속에서 식식 소리를 내던
대보름 불춤도 그렇게 달아오르진 않았다
모르쇠, 모르쇠 도리질치는 각다귀들의 세상
층층이 쌓인 악의 더께를 뚫고
새봄에는, 새로 맞은 그날에는
함빡 웃음으로 살아보자고
다지고 다진 삶의 각오 같은 자존(自存)
모여서 걸으며, 외치며, 다짐하며, 설레며, 기다리며
오지 않는 바람을 기름 삼아 태우던 그날
비가 흩뿌리고 갔고, 눈발이 흩날리다 갔다
맵짠 겨울바람도 어느새 건물 모퉁이로 사라지고
새봄이 왔다, 발자국 서성이던 자리엔 어느새
푸릇푸릇한 풀들이 돋아나고
모처럼 푸른 하늘 벗 삼아 살랑인다
그렇게 한 시대를 건너왔다
―김이하, 「길은 어느새 광화문」 전문
집회에 참여하는 민중들의 여론과 신념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이 있다. 원인은 민중들로 하여금 어떤 신조를 받아들이거나 완강하게 거부하도록 하는 요인이고, 근인은 장기적인 예비 운동에 불을 지르는 기폭제라고 할 수 있다. 기폭제는 어떤 사상이 형체를 갖도록 충격을 가한다. 군중이 결연하게 일어서는 것이나 폭등이 일어나고 파업이 선언되어 절대 다수가 한 사람에게 권력을 부여하여 정부를 전복시키기도 한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원인과 근인의 연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박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집회의 원인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1항)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2항)라고 광장에 모인 국민들이 외쳤듯이 ‘국민 주권’으로 파악된다.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기에 나라의 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어기고 민주주의를 훼손했다. 그와 같은 면은 “피청구인이 최○원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하여 최○원 등의 사익 추구를 도와주는 한편 이러한 사실을 철저히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의 정신을 훼손한 행위로서 대통령으로서의 공익실현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다.”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박 대통령의 헌법 위반으로 인해 국민들은 인권이 유린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제당하는 등 수많은 고통을 받았다.
촛불집회의 근인은 박 대통령의 진실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볼 수 있다. 2차 촛불집회 하루 전날인 2016년 11월 4일 대통령은 2차 국민 담화를 발표했는데, “무엇으로도 국민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사과나 책임지는 태도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에 국정 전반을 맡긴 위법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라 신세를 한탄하는 듯해서 국민들로부터 분노를 산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을 했나’라고 조롱하면서 “이게 나라냐”라며 촛불을 든 것이다.
촛불집회는 이와 같은 원인과 근인이 결합해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국민들은 “한 발을 내디디며 곱씹고/또 한 발 내디디며 묻고/그러다 보면 길은 어느새 광화문”이 될 정도로 열정을 다했다. 그동안 국가와 대통령에게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국민들이 주권을 회복하고 “대보름날 쥐불놀이도 그렇게 신나지는 않았다”라고 노래한 것이다. “촛불 그림자에 어른거리는 바람의 뒷모습/또 하나의 촛불이 지우고, 그 촛불 그림자/또 다른 촛불이 지우고 지우면서/서로 투명해져서 오롯이 바람만 남아/거대한 불꽃이 되어버린 광장”은 축제의 장이 되었다. “깡통 속에서 식식 소리를 내던/대보름 불춤도 그렇게 달아오르진 않았”을 만큼 달아올랐던 것이다.
작품의 화자는 “층층이 쌓인 악의 더께를 뚫고/새봄에는, 새로 맞은 그날에는/함빡 웃음으로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다짐으로 말미암아 “맵짠 겨울바람도 어느새 건물 모퉁이로 사라지고/새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발자국 서성이던 자리엔 어느새/푸릇푸릇한 풀들이 돋아”날 세상을 기대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기 이전에는 “모르쇠, 모르쇠 도리질치는 각다귀들의 세상”이었지만, 촛불을 든 뒤에는 “모여서 걸으며, 외치며, 다짐하며, 설레며, 기다리”는 국민 주권의 세상이 된 것이다.
행진곡 둥둥 북을 울려라
둥둥 징을 울려라
꽹과리 장구 다 모여라
한라에서 서울 하늘까지
우리 장벽을 부수리라
우리 어둠을 찢으리라
돌과 흙 나무와 꽃으로
아 Korea! 다시 세우리라
둥둥 북을 울려라
둥둥 징을 울려라
꽹과리 장구 다 모여라
온 나라가 그대를 부른다
우리 횃불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하나되리라
우리 평화하리라
아 우리 영원하리라.
― 김준태, 「행진곡」 전문
광장에 모인 국민들이 “행진곡”을 부르는 상황이므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둥둥 북을 울려라/둥둥 징을 울려라/꽹과리 장구 다 모여라/한라에서 서울 하늘까지”라고 노래 부른 국민들이 3차 집회부터 100만 명을 넘겼고, 6차 집회 때에는 232만 명이나 참여한 데서 증명된다. 그 어떤 정권도 국민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그리하여 여당 내에서도 탄핵 쪽으로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것이다.
“행진곡”은 감염성이 강해 또 다른 “행진곡”을 부른다. 집회에 참여한 국민들은 개인의 입장보다도 전체의 입장을, 자신의 이익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개별화되거나 고립되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나타난다. 전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고 활기차고 위력적인 모습을 띠어 “우리 장벽을 부수리라/우리 어둠을 찢으리라/돌과 흙 나무와 꽃으로/아 Korea! 다시 세우리라”고 노래 부르는 것이다. “우리 횃불되리라/우리 승리하리라/우리 하나되리라/우리 평화하리라” 하고 외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고도의 전문화와 조직화로 말미암아 한 개인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권의 지배자들은 국민보다도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유리한 정책을 결정하게 된다. 절차적으로는 민주적인지만 내용적으로는 비민주 혹은 반민주적인 정책을 마련해 국민들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억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명분으로 정권이 결정한 정책에 국민들이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부정과 부패한 정권이라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국민들에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상황을 극복하려면 내용의 정당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비록 민주적 절차를 거쳐 결정된 내용일지라도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옳지 못하다면 내용적 정당성을 결여한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길”인 것이다.”
광장에 모인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곡”을 부른 것은 내용적 정당성을 추구한 모습이다. 절차적인 합법성을 내세우며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협박한 정권에 맞서 박탈당한 주권을 되찾은 것이다. 그 당당함으로 인해 국민들은 광장으로 나와 촛불 축제를 만들었다. 그 어떤 폭력도 없이 “행진곡”을 부른 것이다. 아무리 강한 정권이라도 촛불을 든 국민들이 “행진곡”을 부르면 막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 등이 있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이다.